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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지는 배우들을 보며

하마 |2004.04.03 16:55
조회 426 |추천 0

한 은퇴한 여배우가 있었다.
젊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했으나 이제는 낡은 아파트에서
역시 늙은 하녀와 그날 그날을 연명하는 왕년의 스타.
그녀가 매일같이 하는 일은 빛바랜 앨범을 보며 그 화려했던 추억을
되새기는 것 뿐.

그 어느 날인가, 앨범 한 귀퉁이에서 과거 최고의 스타였던
한 남자 배우와 공연하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녀의 전성기였던
시절 숱한 여성들을 설레이게 만들었던 그와
숱한 남자들을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그녀가 나란히 서서
활짝 웃는 사진이었다.
여배우의 되새김질은 어느덧 몽상이 되고 환청과 환시가 되어
사방에서 박수 소리와 환호와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나왔다.
여배우는 일어나 관객의 환호에 손으로 키스를 보냈고
남자 배우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이럴수가.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그 남자 배우였던 것이다.
근처에 와 있는데 옛 친구의 집을 방문할 수 없겠느냐고.
여배우는 서둘러 옷장을 열고 그때의 화려했던 드레스를 찾아냈다.
관객의 환호는 잦아들었으나 여배우의 가슴은 점점 더 요동쳤다.
어렵사리 낡은 레코드를 찾아내어 그때의 화려했던 춤곡을
이제 틀기만 하면 되었다.

현관 벨이 울렸고
여배우는 머리를 매만지며 폭발할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런데...그러나..
문을 연 순간 여배우는 석상이 되어버렸다.

*********

제대로 된 기억인지 모르겠으나 오래 전에 본 영화였다.
여배우는 다음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자살 이유는
문 밖의 초라한 노인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의 늙은 몰골에서 현재의 자기 모습을
보아버렸던 것이다.

영화와는 다르지만 무성영화 시대 최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는
서른 여섯살에 은퇴하여 팔십 넘어 죽을 때까지 한번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명을 쓰고 거처는 물론 비밀이었고
잠깐씩 나들이를 할 때도 변장을 하기 일쑤여서 전문 파파라치 몇몇이
어렵게 찍은 사진 몇장이 그녀를 짐작케 하는 단서의 전부였다.

나이든 것이 추함과 동의어가 아니거늘 그녀는 왜 그토록
늙은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까.

**********

그다지 늙은 것은 아니나 왕년의 미남 미녀들이 심심치 않게 TV나 영화에
나와 소위 "망가진다."

세기의 미녀 황신혜가 안재욱과 투닥거리고
내 기억에 청초함만 남아있는 금보라가 임현식에게 악다구니를 쓴다.
김자옥. 어렸을 때 드라마 수선화에서 그녀는 단아하면서도 여린
수선화 그 자체였다. 그런 그녀가 공주 푼수를 떨어댄다.
하이틴 스타 임예진이 밉상 시누이가 될줄 상상이나 했을까.

망가질 때마다 신문 방송은 그들이 체면을 접고 탄탄한 연기력으로
젊은 배우들을 받쳐준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옛 명성에 도취하거나 은둔을 고집한다 해서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그러나, 망가지는 그들은 나를 쓸쓸하게 한다.
그들은 여전히 아름답거늘 굳이 푼수가 될 필요가 있을까?

내 나이도 사십줄에 접어들었다. 그들처럼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나 또한 그리 멋있게 늙는것 같지 않다. 여덟살 난 딸아이와
투닥투닥 쌈이나 하니, 나도 푼수연기가 제격인가보다.

아직은 그래도 참아줄만 하다.
훗날 이영애가, 심은하가, 이미연 고현정이 꾀죄죄한 아줌마로 나와
푸닥거리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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