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의 황궁인 연희궁(延熙宮) 조양전(朝陽殿).
진부인(陳夫人)의 안마를 받고 있는 수황(隨皇)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간간이 태자궁에서 나는 함성 소리가 조양전에까지 흐르고 있었다.
"시원하시옵니까, 폐하?"
"요즘 속을 썩이는 일이 많아서 아무리 만져도 별 느낌이 나지 않는구나. 저 함성 소리가 자꾸 내 신경을 건드리고 있어. 이젠 아예 악들을 쓰는구나. 군사들이 일만이 되길 하나, 십만이 되길 하나? 고작 천명을 가지고 저리 전쟁 놀음이 좋을까? 좁쌀 같은 놈이군. 쯧쯧쯧..."
문제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자 진부인이 말했다.
"폐하, 어찌 천명의 군사를 작다 하시옵니까?"
"그건 무슨 소리냐?"
"황궁에서 천명이면 결코 작은 병력이 아니옵니다. 만일 폐하께서 순시차 황궁을 비우시는 날에는
태자궁의 군사들이 황궁 전체를 장악할 수도 있사옵니다."
"그건 그렇다. 태자가 대체 무슨 마음으로 군사 훈련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어."
그때 환관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 황후마마께서 납시옵니다."
독고황후(獨孤皇后)가 상궁 한명과 함께 황제의 처소 안으로 들어왔다. 상궁의 손에는 보자기에 덮인 쟁반이 들려 있었다. 진부인이 공손히 예를 올리고 옆으로 물러났다.
"황후마마께서 오셨사옵니까?"
"그래, 음..."
"황후가 여긴 웬일이오? 그 쟁반은 무엇이오?"
"요즘 기력이 없어 보이시어 보약을 달여 왔사옵니다."
독고황후가 잔기침을 하자 문제가 물었다.
"고뿔이 여태 낫지 않은 것이오?"
"괜찮을 것이옵니다. 어서 드시옵소서."
문제가 약을 마시는 사이에 태자궁에서 함성 소리가 또 들렸다.
"폐하, 도대체 저 철없는 장난을 언제까지 두고 보실 참이옵니까? 한번 불러서 경을 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후가 짜증기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문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오. 내 그동안 두고 볼 만큼 보았는데. 아니 되겠소. 여러가지로 불미한 이야기도 많이 들려오고 또 황후도 두렵다고 하지 않았소? 황후의 말처럼 이참에 자식들의 주변을 한번 살필 필요가 있소이다."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드시옵니까?"
"아무튼 가 보십시다. 뭐 자식들이래야 둘은 지방에 나가 있고, 태자와 진왕 뿐이니 가 보십시다."
"예, 폐하. 기왕에 말씀하셨으니 지금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곧 해가 질 것이옵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태자는 도대체 왜 자꾸 저리 하는지...? 그리고 황후가 신료들이 칭찬하는 진왕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한번 가 보십시다. 정 환관은 차비를 차려라."
"예, 폐하!"
황제는 곤룡포를 벗고 일반 귀족의 옷으로 갈아입은 후 황후와 함께 대전을 나섰다.
저녁이 되자 진왕(晉王) 양광(楊廣)의 처소에는 한 점술가가 방문해 운세를 점치고 있었다. 양광은 우복야(右僕射) 양소(楊蘇)와 더불어 술상을 두고 나란히 앉았는데, 양소가 점술가를 마주 보고 '뿔 각(角)'이란 글자가 씌인 종이를 내밀었다.
"머리에 큰 뿔이 나는 꿈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점술가는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사주를 보아하니, 고귀한 집안의 손(孫)이신데..."
양소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꿈이 대체 어떤 꿈인가?"
점술가는 한참 고개를 외로 꼬다가 대답했다.
"뭐 길게 더 볼 것도 없사옵니다요. 누군지 꿈을 꿔도 아주 흉몽(凶夢)을 꿨사옵니다."
"....."
"송구하옵니다만, 흉몽 중에 아주 끔찍한 흉몽이옵니다. 이 꿈을 꾸신 분은 머지 않아 이 세상에 아니 계실 것이옵니다."
점술가가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옵소서. '뿔 각(角)'자를 이렇게 둘로 나누면 '쓸 용(用)'과 '칼 도(刀)자가 됩니다요. 이는 곧 머리에 칼을 받게 된다는 뜻이옵니다. 이렇게 말이옵니다."
점술가는 손으로 목을 치는 시늉을 하며 설명했다. 양광은 잠시 글자를 보다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이 놈이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소인은 그저 보이는대로 말씀을 올렸을 뿐이옵니다."
점술가는 눈치를 보면서 납작 엎드렸다. 양광은 미소를 지으며 금덩이를 던져주었다.
"수고했다. 그만 가보거라."
그러나 점술가는 금덩이를 빤히 보다가 다시 되밀어주며 엎드렸다. 의아한 양광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 대가가 적어서 그러느냐?"
"그게 아니옵고, 소인은 이런 금덩이보다도 훗날... 작은 벼슬자리나마 원하옵니다. 제 앞에 앉아 계신 분은 훗날 사해(四海)를 평정하실 분이시옵니다. 어찌 이런 금덩이에 연연하겠사옵니까? 굽어살피시옵소서."
양광은 껄껄 웃으며 점술가를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놈이로구나. 하는 말이 과히 밉지가 않다. 오냐, 기억해두마. 물러가거라."
점술가가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나자 두사람은 서로 보고 웃었다.
"머리에 칼을 쓴다? 참으로 그럴듯한 해몽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이젠 하늘도 전하를 돕는 것 같사옵니다. 저 점술가 놈이 여간 신기가 있는게 아닙니다."
"그러게 말이오. 금붙이보다는 벼슬을 달라? 이 놈이 이거 우리 앞길을 손바닥 보듯 보고 있는 것 같소이다? 언젠가는 목을 베어야지 안되겠소이다."
그때 소비(蘇妃)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전하, 소첩이옵니다."
그녀의 옆에는 진부인의 궁녀가 서 있었다. 양광이 그것을 보고 놀랐다.
"아니, 자네는...?"
"예, 전하! 진부인께서 보내셨습니다. 황제 폐하 내외분께서 지금 이리로 오고 계시옵니다."
양소가 놀라며 양광을 바라보았지만 양광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이보게. 자네 이리 좀 오게."
양광이 궁녀에게 귓속말로 뭔가 전하자 궁녀는 예를 차리며 대답한다.
"예, 전하.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궁녀가 급히 나가자 양광은 소비에게 말했다.
"찻상을 준비하고 향을 피우시오. 책을 가져다 쌓도록 하오. 줄 끊어진 거문고를 밖에 세우고, 노비들은 모두 늙고 못생긴 것들로 바꾸도록 하시오. 모두 식솔들이 무명옷을 입었는지 비가 직접 확인하시오."
소비는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의 분부를 거스를 수는 없는지라 표현하지 못한 채 짧게 대답했다.
"예, 전하."
"허면 소인도 그만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양소가 목례를 하고 양광의 집을 떠나자 노비들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술상은 치워지고 작은 탁자가 준비되면서 향이 살라졌다. 책들이 소품으로 가득 쌓였다. 양광이 탁자 앞에 책을 펴고 앉으며 크게 웃었다. 그럴 듯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산다는게 다 연극이고, 인생 자체가 다 연극이 아닌가? 오늘 제대로 연기(演技)를 한번 해 보겠구만."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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