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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적절한 남자(4)

리드미온 |2004.04.06 14:41
조회 73,007 |추천 0

*로맨스 소설 '시기적절한 남자-4'입니다.

오늘의 톡에 올랐기에 소설인지 모르시는 분이 계실까봐...

 

"야....나 집 구했다!! 인간 강민아...드뎌 독립한다구..."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신이 나서 민석에게 전화를 했다.

민석은 대학교 입학해서부터 친해진 남자친구였는데 몇 년동안 남들에게 CC로 오해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우정을 지키고 있는 친구였다.

대학교 2학년 때는 27살이 되서 서로가 애인이 없다면 결혼하자는 약속도 했었는데 27살이 되자 민석은 내 동생과 연인 사이를 선언해버렸다.

그때 나보다는 우리 부모님의 충격이 더 켰다.

민석이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오곤 했는데 부모님은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민석과 내가 연인 사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동생과 연인 사이라는 말은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음에 틀림 없었다.

그러다 민석과 동생의 연인 사이를 인정은 하셨지만 내가 먼저 결혼하기 전까지 민석과 동생이 절대 결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하고 동생과 민석을 원수지간으로 만드려고 하시는지....

그러나...그 후로 민석과 나는 더 친해졌다. 정말 친구에서 가족으로 발전한 느낌이었다.

나는 야반도주의 계획으로 독립하는 것도 동생에게는 비밀이었지만 오히려 민석에게는 얘기해 두었다.

 

"전에 말한 그 집 계약한 거야?"

 

"응. 3천만원이다. 15평 정도는 되어 보이고, 거기다 미국 간다고 가구도 다 놓고 간데...넘 잘 됐지?"

 

"월세가 있다면서? 그건 어떻게 하려고?"

 

"그게...고양이가 있더라고...눈치를 보니까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가 키워줄테니 월세 안내겠다고 했지..."

 

"야. 머리도 쓸 줄 아네..."

 

"이 녀석...처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나는 민석이 짓궂은 장난을 할 때마다 '처형'이란 단어를 들먹거리며 입을 막았다.

 

"그나저나 오늘 선 본 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집 때문에 들떠 있어서 맞선남이 집주인이었다는 것도 잠시 잊고 있었다.

 

"그게...."

 

나는 민석에게 맞선남이 집주인이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맞선 상대로는 꽝인데 집주인으로는 괜찮다? 라는 거군."

 

"그래. 그 남자는 미국가서 안돌아오는 게 여러모로 날 도와주는 거지."

 

"야. 얼른 집에나 들어가라. 난 현아랑 영화 보러 갈거다. 표가 없어서 좀 저녁 늦게 예약했다."

 

민석은 내 동생 현아와 영화를 보러갈 데이트 약속이 있는 모양이었다.

 

"세상 모든 커플이 안부럽다. 난 이제 무적의 솔로부대가 될 거다. 집도 있는...."

 

나는 민석에게 큰소리치고 전화를 끊었다.

 

세상에 이렇게 즐거운 일주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다만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금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29살의 여자가 부모님 눈치를 보며 산다는 것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현수라는 남자에게 고마운 것은 내가 자신의 집으로 세를 얻어 들어간다는 사실을 나에게 약속한 대로 비밀로 해준 것이었다. 다만 기분 나쁜 일은 자기는 좋은데 내가 싫어하는 것 같아 용기가 안난다는 말을 해놓아 맞선 주선자와 부모님께 시달리게 만들었다는 것이이었다.

 

'네가 뭐가 잘나서 그런 남자를 마다하냐..한번 더 만나봐라...'

 

한번 더 만나보긴...이미 미국 갈 사람이고 집주인만 아니라면 내 인생에서 절대로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여성 비하의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옷만 챙겨서 그 집에 들어가면 되었지만 그래도 침대 시트 정도는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넷 쇼핑에서 침구 세트를 열심히 구경했다. 그리고 내가 토요일에 받을 수 있도록 그 집 주소로 배달되도록 해놓았다.

 

막상 출정을 앞둔 금요일 밤에는 너무 설레여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가출하는 마당에 부모님께 편지라도 한통 써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적당한 문구가 생각나지 않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느닷없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누군가 싶었는데 오늘 출국한다는 현수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아. 죄송합니다. 새벽에...제가 이것저것 준비하느라고 바빠서...이제야 전화를..."

 

하긴 출국인사치고는 너무 늦은 전화가 아닌가 싶었다.

 

"네..안녕히 가세요..."

 

나는 별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지막 통화라고 생각하니 따뜻하게 인사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레종이요..."

 

"네..."

 

"레종을 잘 부탁드린다고요. 제가 미국가서 자리 잡으면 그 집으로 편지를 보낼 테니 레종 사진이라도 찍어서 보내주세요."

 

이 남자의 고양이 사랑은 정말 눈물겨웠다.

 

"네...그럴게요."

 

"아..그리고 비밀번호는 1234로 바꾸어 놨고요. 집에 가시거든 바꾸어 쓰세요. 다른 것들은 제가 간단한 설명서를 써 놓았습니다."

 

"네...어쨌든 좋은 집을 저에게 빌려주셔서 감사해요."

 

"네...그럼...안녕히 계십시오."

 

"네..잘 다녀오세요."

 

그래도 웬지 마지막에는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현수란 사람이 몇 살인지 모르지만 여자가 스물아홉에 결혼하지 않고 독립을 하는 것이나 남자가 서른이 넘어 결혼하지 않고 미국으로 가버리는 것이나 너무 늦은 반항일지도 모른다는 동변상련이 잠시나마 느껴졌다.

나는 레종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현수가 혼자 살며 레종에게 정을 붙였던 것을 생각하면 마지막으로 고양이를 부탁하는 마음을 알 듯 했다.

나는 현수와 통화를 끝내고 아예  부모님이 깨기 전에 움직이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옷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왔다.

일단 오늘 밤엔 실컷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잠들었다가 일요일 늦게 눈을 뜨는 일부터 해보고 싶었다.

일요일에도 온가족이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아버지 때문에 한번도 일요일에 늦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현수가 말해준 비밀번호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전에 와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이미 청소도 깨끗하게 되어 있는 터라 내가 할 일이라곤 빈 옷장에 옷을 넣는 일 정도였다.

거기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가구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트 잇, 그리고 그곳에 적혀진 설명문들...

 

장미차를 끓이던 무선포트에는

 

'하얀 색이라 지저분해질 때가 많아요. 수세미로 일주일에 한번씩 닦으면 좋아요.'

 

그리고 냉장고에는

 

'냉장고 온도는 '중'에 맞춰 놓으세요. 냉동고는 '강'에 맞춰 놓으세요.'

 

냉장고 위의 전자렌지에는

 

'음식을 데우고 꺼내지 않으면 '삑' 소기라 납니다. 얼른 꺼내 드세요.'

 

컴퓨터에는

 

'내 화일은 '내문서'에 넣고 비밀번호를 걸어두었습니다. 그대로 두세요.'

 

모든 물건에 빼곡히 설명이 적힌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꼭 내가 세입자가 아니라 집안 관리인내지는 하녀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따로 청소할 것은 없었지만, 그렇게 열심히 적어 있는 포스트잇을 떼어내는 게 일이었다.

 

침대에는

 

'시트는 새로 사실 것 같아 제 거는 일단 세탁해서 장에 넣어두었습니다. 혹시 날씨가 추으면 가져다 쓰세요. 깨끗하게 빨아놓았으니까요.'

 

라고 쓰여져 있었다.

 

나는 얼마나 현수가 집에 애정이 많으면 그럴까 싶어 이해하기로 했다.

비록 나도 남의 집이지만 내 공간이라는데 애착이 갔다.

레종을 부탁한다는 현수의 말이 생각나 레종의 사료 그릇을 봤는데 거기에도 설명서가 가득했다.

 

'레종은 생선이 들어간 걸 좋아해요. 물도 꼬박꼬박 채워주세요....'

 

나는 현수가 남긴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떼다가 아예 한곳에 모아두었다가 필요한 때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에다가 붙여 놓기 시작했다.

오후에 침대 시트가 배달되고 침대 시트를 씌우고 누웠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일요일, 따스한 오후 햇살 그리고 푹신한 침대.....나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달콤한 낮잠에 빠져 들었다.

 

'아가씨!'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남자가 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으~~~아~~~~~'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시기적절한 남자 5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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