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열 (성형외과 원장, 의학박사)
개원 가 풍토도 시류에 따라 변해 간다. 예전에는 한 건물에 여러 의원이 있어도 같은 과가 겹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건물 주인이 세를 놓을 때 세입자의 정서를 배려한 까닭이었다. 이것이 얼마 전까지는 하나의 묵시적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불과 수 년 전부터 같은 과를 써 넣은 간판들이 한 건물에 여러 개 붙어 있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특히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이나 강남 역 부근에는 성형외과를 표방하는 간판이 정말 많다. 압구정역을 중심으로 반경 1km내에 성형외과 의원이 400개나 된다.
번듯한 빌딩치고 성형외과 간판이 안 붙은 빌딩이 없어 대로변의 10층 정도 되는 어느 건물에는 간판 중 반 이상이 성형외과로 채워진 경우도 보았다.
1천200여 명의 성형외과 전문의들 중 봉직 의를 제외한 개업의들은 이런 경우 대학 동문, 수련병원 선후배 등 이리 저리 얽혀있는 관계로 인하여 조금은 어색한 점이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즈니스라는 대원칙 하에 질서 있게 자기 위치에서 불협화음 없이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성형외과 진료 의원 중에는 전문의 외에도 자신의 전공과목을 접고 성형외과 관련 진료를 표방하는 타과 의사들에 의한 의원이 4409개나 되며 이 숫자는 매월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자료). 이는 전국 의원 수가 2만6천여 개이므로 약 6분의 1에 해당되는 셈이다.
여기서 타과란 주로 흉부외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그리고 가정의학과 등으로 자기의 전문과목이 아닌 어깨너머로 배운 성형외과의 간판을 걸어놓는 것이다. 이렇듯 여러 과의 전문의들이 미용성형을 진료과목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인 환자의 입장에서는 전문의의 성형외과와 비전문의의 성형외과 간판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 지 난감할 것이다.
막상 필자가 보아도 정말 교묘해서 필자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의료법 상 전문의의 경우 개업 시 간판에 “안00 성형외과 의원”이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성형외과 비전문의인 경우에는 `xxx 의원 진료과목 성형외과’라고 해야 한다. 전화번호와 e-mail 주소는 넣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비즈니스를 위한 상술이 교묘히 개입된다.
가장 흔한 방법은 진료과목 앞에 들어가는 의원을 아주 작게 쓰거나, 글자색을 배경색과 비슷하게 하여 낮에는 잘 보이지 않고 야간에는 진료과목이라는 글자에 등을 비추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자구책으로 간판에 성형외과 전문의라는 문구를 넣으려고 했으나 현행 의료법에 위배된다고 하여 포기하고 대신 차선책으로 병원 안에 의사면허증과 함께 전문의 자격증을 비치하고 학회 차원에서는 대한 성형외과 학회의 로고를 표시해놓도록 지원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이야 이런 것 까지 알 리가 없다.
필자는 성형외과와 피부과, 두 과의 전문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므로 “안00 성형외과, 피부과 의원”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런 표기의 간판은 국내에서는 하나뿐이어야 하나 `xx 피부과, 성형외과’식의 표기를 포함해 실제로는 굉장히 많다.
피부과의 경우 서울, 부산, 대구 등 3대 도시에서 볼 때 3천200여 개 피부과 의원 가운데 피부과 전문의에 의한 것은 800개로 전체의 25%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피부 관리실은 관리라는 글자를 빼고 “ㅇㅇㅇ피부”라고 쓰기도 하여 마치 피부과 의원인 양 착각을 유발하게도 한다.
의약분업 이후 동네 의원들은 생존을 위한 방편이라고는 하나 과에 관계없이 피부 관리실을 운영하고 지방흡입, 모발이식 뒤에 클리닉이라는 말을 붙인 간판을 무분별하게 내걸고 있다. 한번은 내원 환자가 요즈음 지방흡입 전문 클리닉이 많은데 여기에서도 지방흡입을 하느냐고 물어 황당해 한 적이 있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