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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군대가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과시했던 비밀

조의선인 |2009.03.30 20:06
조회 377 |추천 0

12세기의 몽골 고원은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할 만한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였다. 당시 몽골 고원을 지배한 중국 동북부의 금(金)이 강대 세력의 출현을 두려워하여 부족간의 대립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두각을 나타낸 자가 '초원의 푸른 늑대'를 선조로 두었다는 명문 씨족의 테무진이다. 테무진은 어렸을 때 부친이 독살되고 고난의 시절을 보냈다. 45세가 넘어서야 몽골 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1206년에 오논 강가에서 열린 쿠릴타이(부족장 회의)에서 몽골 제국의 칸[汗]에 추대되었다. 이때 부족의 샤먼으로부터 칭기즈(Chinggis)라는 칭호를 받고 이후 칭기즈칸[成吉思汗]이라 칭하였다.

 

칭기즈칸이 등장하기 전까지 몽골은 각 부족의 독립성이 강해 쿠릴타이에서 지도자 선출과 정복 활동을 결정했다. 칭기즈칸은 과거의 부족을 해체하고 초원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정했다.

 

그는 적대국가인 금의 군사 제도를 받아들여 십진법(十鎭法)을 토대로 군사를 십호, 백호, 천호, 만호의 단위로 나누고 심복 부하를 각각의 장(長)으로 파견하여 중앙집권체제를 정비했다. 칭기즈칸은 엄격한 군율을 선포하여 설형 천호장이라 할지라도 군율을 어기면 엄하게 처벌하였다. 강력한 군대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12세기의 유라시아는 대분열 상태라 강력한 몽골의 군사집단이 대제국을 수립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어 있었다.

 

중앙이사이 대상업망의 지혜를 노린 칭기즈칸은 실크로드 동쪽을 지배하는 서하(西夏)를 공격하는 한편 서아시아의 신흥 세력인 투르크인의 호라즘 제국과 협조하려 했다. 그러나 호라짐 제국에 파견한 이슬람 상인을 중심으로 한 사절단이 몰살당하고 선물이 약탈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재차 보낸 사절단도 소중한 수염이 잘리는 매우 굴욕적인 대접을 받았다. 울분의 눈물을 흘리며 설욕을 맹세한 칭기즈칸은 10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40만의 대군을 보유한 호라즘 원정길에 올랐다.

 

통상로를 따라 쳐들어간 칭기즈칸은 각지에서 호라즘의 군대를 격파하고 1220년에 호라즘 제국을 무너뜨렸다. 별동대는 1225년에 남쪽 러시아 평원을 정복했다. 1227년에는 동쪽의 서하를 멸망시켜 실크로드와 초원길은 완전히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1227년에 칭기즈칸은 말에서 떨어진 상처가 덧나 육반산(六盤山)에서 사망하였다. 시체는 불칸 산기슭에 묻혔는데 유목민의 관습대로 매장한 뒤 평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무덤의 소재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세기의 풍운아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흙으로 돌아가고 광대한 영토는 네명의 아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칭기즈칸이 통일한 중앙아시아 세계가 중화제국, 이슬람 제국, 키예프 공국이라는 농경 세계를 정복함으로써 몽골 제국이 형성되었다.

 

몽골 제국은 동서 세계를 통합하고 유라시아의 대부분을 지배했다는 점에서 세계사의 기점이 되는 대제국이다. 13세기 초 당시의 중화제국(南宋)은 북쪽을 여진족(女眞族)의 금(金)에게 빼앗기고 이슬람 제국(아바스 왕조)도 지방 정권의 분립으로 이름만 제국일뿐 쇠약해진 상태였다. 몽골인들은 대상권의 통합을 요구하는 이슬람 상인의 도움을 얻어 동서의 대농경지대를 정복하고 지배한 것이다.

 

칭기즈칸이 죽은 지 2년 후 두번째 칸이 된 오고타이는 남쪽 러시아 평원이 혼란스러워지자 1236년 바투를 사령관으로 하는 10만 원정군을 파견해 4년간의 전쟁에서 키예프 공국을 비롯해 러시아 전체를 정복했다. 러시아는 그 후 240년 동안 '타타르의 멍에'라고 하는 힘든 몽골의 지배 시대를 겪어야 했다.

 

바투의 군대는 그 후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들어가 1241년에 리그니트 부근의 월슈타트에서 독일, 폴란드 연합군을 격파했다.

 

유럽 세계는 몽골 기마병들의 압도적인 힘에 두려움을 떨었다. 그때 오고타이칸이 사망했다는 급보가 도달하자 몽골 제국 내부에서의 지위 확립을 노린 바투는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 남부로 철수했다. 운명의 장난이 유럽 세계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다.

 

몽골 제국의 네번째 칸인 몽케칸의 명령을 받은 홀라구는 이슬람 세계 정복에 나섰다. 홀라구는 1258년 번영기에는 인구 150만을 자랑했던 아바스 왕조의 수도 바그다드를 함락시키고 아바스 왕조를 무너뜨린 뒤 일한국(IL-汗國)을 세웠다. 7세기 이후 세계사를 이끌어 온 이슬람 제국은 맥없이 무너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슬람 세계의 대부분은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한편 황하 유역은 두번째 칸인 오고타이칸이 1234년 금을 멸망시키고 몽골의 지배하에 넣은 상태였다.

 

1260년 쿠빌라이는 정당한 수속을 밟아 다섯번째 칸이 된 아우 아리크부카를 군사력으로 몰아내고 칸의 지위를 빼앗았다. 후에 오고타이의 손자 하이두가 초원의 세 한국(汗國)을 통합하여 쿠빌라이에 반기를 덜어 30년간의 내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쿠빌라이칸은 중국 전역을 지배하여 하이두의 초원 세력에 대항하려 했다. 1226년부터 수도인 대도(大都)의 건설에 착수했으며 1271년에 대원(大元)이라고 국호를 정했다. 1276년 남송의 수도 임안(臨安)을 함락시켰으며 남송은 1279년에 멸망하였다. 원 제국은 중국, 몽골, 티베트, 동북부 지역을 지배하고 고려를 속국으로 삼았으며 일본과 동남아시아도 원정하는 등 동아시아 세계 통일을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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