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직감적으로 내 알람소리가 아니란 것은 알았고 진우의 알람소리라 생각하며 시계를 보았는데 겨우 새벽 6시가 되었을 뿐이었다.
저 사람 이렇게 일찍 출근한단 말인가?
아니면 아침에 우유라도 돌리는 걸까?
그러나 진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여전히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나는 이미 잠이 깨버려서 진우를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시간에 깨우는 것이 맞다면 좋은 일 한 셈 치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달콤한 아침 잠을 깨우는 것이 얼마나 고문인지를 잘 알고 있는 터라 일단 깨우기로 했다.
그 동안 여러 번 당했던 잠깨우기 복수를 할 수 있으리란 야심찬 계획도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떨어져 있는 진우의 라꾸라꾸 침대로 갔다.
"진우씨!"
큰 소리로 불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이번에는 진우가 했던 것처럼 그의 신체 일부를 툭툭 건드리며 깨웠다.
"일어나세요. 알람 울렸어요."
여전히 반응 없는 진우.
나는 박진우, 잘 걸렸던 생각에 이불까지 걷어내며 요란스럽게 깨웠다.
"박진우씨! 출근 시간이라고요."
그제서야 진우는 억지로 눈을 뜨며 물었다.
"몇 시에요?"
"6시요."
"아...더 자도 돼요."
"알람 울렸잖아요. 당신 때문에 난 잠이 깼다고요."
"그거...잘못 맞춘 거에요. 더 자도 돼요...."
진우는 다시 눈을 감고는 이불을 끌어 덮으며 대답했다.
잘못 맞춘 알람이라고? 정말 사람 괴롭히는 것도 여러 가지라고 생각하며 나도 침대로 돌아갔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정작 내 알람소리를 듣지 못한 채 일어날 시간을 30분이나 지난 후였다.
얼른 샤워를 하려고 했으나 진우가 목욕탕을 쓰고 있는지 물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나는 이번에는 목욕탕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나, 늦었다고요. 빨리 나오세요."
안에서 물소리만 요란하고 아무 대답도 없었다.
"늦었다고요. 빨리 하시라고요."
"네!"
잠시 물소리가 중단되고 진우의 대답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속옷과 입고 갈 옷을 챙기며 진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도대체 몇 시에 출근하시는 거에요?"
나는 짜증스럽게 그 한마디를 내뱉고는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초스피드로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드라이로 말리고 있을 때였다.
"강민아씨. 회사가 어디라고 했죠?"
밖에서 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울역이요."
"빨리 하세요. 제가 용산 쪽이니깐 좀 돌아가지요."
이런, 웬 친절?
"됐어요. 먼저 가세요."
굳이 신세지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 상황이면 태워줄 수 있어요. 더구나 동거녀 태워주는 건데..."
동거녀? 저 남자 지금 날 그렇게 불렀나?
"이거 보세요. 동거남님! 엄연히 이건 동거가 아니라고요."
"괜히 시비 걸지 말고 준비나 하세요."
나는 잠시 진우를 뾰로통한 시선을 바라보다 출근 준비를 했다.
진우는 정말로 태워줄 생각이 있는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호, 옷 제대로 입고 화장하니까 다섯 살은 어려보여요."
진우는 또 날 놀리고 있었다. 정말 경황이 없어서 그렇지 이럴 땐 제대로 뺨이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빨리 갑시다. 저도 데려다 주고 가려면 시간이 빠듯해요."
이런 게 울며 겨자먹기일 것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시간에 맞추려면 진우의 차를 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저, 얘기할 게 있습니다."
진우는 꼬불꼬불한 동네 길을 빠져나와 큰 길에 나오자 말을 꺼냈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어제 일을 사과라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고 나가야 하죠?"
"7시반에 일어나서 꽃단장하고 8시 20분엔 나가야 하죠."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민아씨가 일단 일어나서 목욕탕을 쓰세요. 그리고 전 꽃단장은 필요 없으니까 8시에 일어나면 됩니다. 전 10분이면 되니까..."
이 남자 모든 게 이렇게 합리적으로 따지면서 사는 걸까? 기껏하는 얘기가 아침 출근시간의 룰을 정하는 거였다.
"알았어요. 근데 아침에 왜 6시에 알람을 맞춰 놓은 거에요?"
"그저께 여자 친구랑 일산에서 잤거든요. 그때 맞추고 어제 깜박 잊고 안바꾼 거죠."
"그럼 앞으로는 여자 친구와 자고 온 다음 날 꼭 알람 바꿔 놓으세요. 괜히 저만 잠이 깼다고요."
"알았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서 억울하신가 봅니다."
"코고는 소리에 겨우 잠들었는데 알람땜에 또 깨고..."
진우에게 불평을 호소하는 사이 전화벨이 울렸다.
"hello?"
스위스 본사에서의 전화였다. 오늘까지 넘겨주기로 한 서류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no problem...."
나는 간단하게 몇 마디로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 영어 잘하시나봐요."
"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안그래도 이번에 회사에서 토익 시험보는데 도움을 좀 받아야겠습니다."
역시 진우란 남자는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 것은 잘도 집어냈다.
"그렇게 차려 입고 옆좌석에 앉아서 영어로 전화하는 거 보니까 집에서 볼 때랑 전혀 다른데요?"
게다가 아부까지?
"정말 남자친구 없어요?"
지금 이 남자 나를 다시 작업 대상 리스트에 넣으려는 속셈인가?
"저기 코너 돌아서 세워주세요."
나는 진우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얼른 내려달라고 했다.
"안녕히 가세요. 동거녀님. 이따 집에서 봅시다."
진우는 나를 내려주며 또 한번 큰 소리로 말했다. 다신 늦더라도 진우의 차를 타는 일이 없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마침 출근 중이던 회사의 직원들이 내가 낯선 남자의 차에서 내리는 것을 흘낏흘낏 보고 있었다.
아, 또 엉뚱한 소문 나는 거 아냐?
어떤 남자가 아침에 태워주더라...애인인가 보다...어제 같이 잔 거 아냐? 기타 등등
정말 싫다.
차라리 진짜 애인이 있어서 동거한다는 소문이라도 제대로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이 마주친 직원들에게 미소를 띄우며 눈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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