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간 동안 그녀와 돌아다니면서 어렵게 어렵게 인터넷 까페를 찾았다. 지금이야 어디에나 고개만 돌리면, PC방이 있었지만, 그때만해도 인터넷이라는 단어도 자체도 생소할때였다.
자리를 잡고 PC통신에 대해서 이것 저것 민경이에게 알려주었다. 통신이란것이 그렇듯이 맨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이 대화방이다.
그녀는 대화방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내가 대화를 하는 것을 무척이나 신기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면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는 방법등 인터넷 접속해서 사이트를 찾는 법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전자상거래에 무척이나 관심을 보였다.
“ 와. 여기서 이것저것 다 살수 있네, 책이며 음반이며 ”
“ 응, 그런데, 책이며 음반은 직접 구하는게 낫지 않아? ”
“ ..................... ”
민경이는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렸다. 컴퓨터가 다 조립되었다는 연락이었다.
컴퓨터를 택시에 실고 민경이 집으로 향했다.
“ 아저씨 일산이요 ”
사는 곳이 한남동이라고 은경이에게서 들은 적이있었는데, 그녀가 가자고 한 곳은 일산 신도시를 향하고 있었다. 이사를 갔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파트로 컴퓨터를 가지고 올라갔다. 문을 여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들었다. 부부가 사는 집이라고 하기엔 제대로 갖춰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 초라하지? ”
“ 아니야. 무슨 그런 소리를 ”
“ 나 여기 이사온지 몇일 안됐어 "
" 컴퓨터는 어디에 설치할까? “
남편이 있는 여자, 그리고 심한 그리움으로만 그려내던 그 녀와 단둘이 있다는 것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컴퓨터를 설치하고 나가려했다.
“ 인혁씨 차부터 차마시자. 그리고 컴퓨터는 천천히 설치해도 돼. 인혁씨가 좋아하는 블루마운틴은 없고, 스위스 모카 괜찮아? ”
“ 응 ”
차를 마시며 이곳 저곳을 힐긋 힐긋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화장실을 가서도 이상한것은 마찬가지였다. 부부가 사는 곳의 화장실이라고 보기엔 전혀 남자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다.
영화를 보자고 하다가 그만 둔 것, 그리고 마치 가면을 쓰고 하는 가장무도회와 같은 통신의 대화방......... 그리고 전자상거래에 관심을 보이는 그녀, 왠지 그녀는 사람이 많은 곳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Hitel에 아이디를 신청했다. 그녀의 아이디는 Slamp78 했다.
“ 민경아 무슨 뜻이야? 영어에 저런 단어가 있어? 그리고 78 은 무슨 의미야? 78년생도 아니면서. ”
“ 후후, 78년생인척 해보려고, 하하 아니야. 그냥, ”
통신을 접속하고 나서 또 그녀에게 난 이것 저것을 하나 하나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역시 대화방이었다. 사람들의 이름이 쏟아져 나와고 이런 저런 얘기를 그녀는 가만히 쳐다 보면서 재미있어했다.
“ 아. 내 정신좀봐. 너무 늦었다. ”
“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 ”
시계가 벌써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11시 30분 기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빠듯했다.
“ 인혁씨, 여기서 그냥 자고 가, 지금 가도 기차 탈지 못 탈지도 모르잖아 ”
그리고 그녀는 이불자리를 들고 건너 방으로 향했다. 뭐라고 말할 뜸도 주지 않은 채, 아니 그 말에 순간 당황하는 찰라에 이루어 진 일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남편과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자리를 펴놓은 건너 방으로 가서 나는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일찍 가봐야할 곳이 있어, 바로 잠을 청해야 만했다.
" 엄마, 걱정마세요 "
소변이 마려워서 잠을 뒤적일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전화를 하고 있는 듯했다.
“ 엄마.......... ”
“네 엄마, 걱정마세요 ”
그녀의 대화 내용속에는 계속해서 엄마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참다 참다 결국 어쩔수 가 없어서 조용 조용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다시 내방으로 들어 가려는 순간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안겨왔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그녀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녀를 안고 있는 것에 죄스러운 감정이 한쪽에서 그 반대의 감정이 서로 얽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슬픔이 사그러지길 바라면서. 그런 채로 한참을 있었다. 하지만, 내 안에서의 두감정의 대립 때문에 더 이상 그녀를 안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녀와 떨어지려고 하자......
“ 인혁씨 잠깐만 이러고 있어줘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고 난 뒤 그녀는 화장실로 향했다. 난 쇼파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무것도 그녀에게 물을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왠지 물으면 안 될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달빛에 탁자위에 그녀의 결혼식때, 민경이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나만 유일하게 남자로 자리 잡고 있던 그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며,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렸다.
처음 본 그 순간 부터라면 믿겠니?
너를 볼때마다, 시간으로 녹아드는 초침처럼 끊임없이 다가오는
그 낮설은 설레임으로 니가 한번도 들어 본적 없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것이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닌 줄 알았지만,
너무 쉽게 낮 익어가는 널 사랑했다.
매일 오늘 처럼.
그것이 내 유일한 간절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상이 끝난 것처럼 아펐다.
" 나 결혼해? " 그 말이
우정이라는 미명아래 진실하지 못한 내 잘못에 니가 든 회초리였으면 했다.
멍하니 한참을 심한 그리움을 앓다,
바보같은 모습이 녹아든 창가로 투영된 세상은 언제나 씁슬했다.
그리곤 또다시, 사랑한다 말은 하지 못하고 그 말만 입술에 읊조렸다.
내일이면 나아질거란 믿음조차 외면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별시답지 않은 것들로 그녀가 지나 칠때면
잊었다 말하면서도
꿈속에 조차 그녀를 그리는 내가 있었다.
여전히.
하지만, 그녀는 이제 나와 다른 시간에서 다른 모습으로 행복해야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자꾸만 기대오는 그녀, 이러다간 정말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나 만큼만이라도 최소한 나만큼만이라도 이 순간 냉정을 잃어서 안된다.
잃어선 안된다.
그렇게 계속해서 되내고 있었다.
“ 인혁씨 ”
그녀가 나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부를때마다 난 왠지 불편했다. 그녀가 결혼했다는 것이 그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알 수 없는 무언가 계속 나를 두렵게 했다.. 그녀는 내 옆에 와서 가만히 앉은채 고개를 내 어깨에 기대었다.
“ 인혁씨, 내 모습이 우습지? ”
“................... ”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그냥 가만히 그녀를 쳐다 볼뿐이었다.
“ 나 이혼했어 ”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것만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만 있었다. 그녀가 왜 그렇게 어둡게 변했는지도 사람들을 그렇게 피했는지도 이제서 모든 것이 그 한마디로 설명되었다.
그녀는 왜 이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제 그녀에 대한 모든 부담감은 사라졌다. 어느 날 호진이 녀석이 자기 애인을 내게 소개 하던 날 처럼 나는 다시 그녀를 이제 여자로 쳐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곤 그녀의 결혼으로 나는 다시는 그녀를 여자로 쳐다보아선 안됐다.
그런 이유의 그녀가 면회오던 날 이후로 그녀가 불편했었지만, 그 불편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렇치 않다면 그렇게 까지 그녀가 불편스럽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다시 혼란이 밀려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난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 불편함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있다 그녀가 먼저 내게 기댄체 잠이 들었다. 그녀가 숨을 내 쉴 때마다 풍기는 술 냄새가 얼마나 그녀가 괴로운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방에 데려다 눕히고 나는 한시간 정도 더 빨리 그녀의 집을 나왔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주민등록증을 신청하고 그렇게 또 여러 날이 지나서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겐 여전히 혼란 뿐이였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어야한다는 그런 것이 내가 아는 한, 철모를때의 내 사랑의 정의였다.
그녀는 내게 기대오고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데 무언가 그 알 수 없는 것이 나를 자꾸만 조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