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신 시간인데도 위로해주시고 조언해주신 많은분들과
잠시나마 관심가지고 읽어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따뜻한 말과 따끔한 조언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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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빠른 90년생이라 사회 나온지 이제막 2년정도된 20살 남자입니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될지 모르겠네요. 요즘 이래저래 너무 답답합니다.
저보다 생각이 깊으신 분들이 제게 조언좀 해주셨으면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희 아버지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노가다를 하십니다.
어릴때부터 가난에 허덕이셔서 17살때부터 허리에 못주머니를 차고
경주에서 일만 죽도록 하신분입니다.
노가다라는 직업이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에는 일할수없거든요.
그런대도 저희 아버지는 젊었을때부터 비나 눈이와도 열심히 사셨습니다.
제가 어릴때도 아버지가 일쉬는날이 3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였었으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일만 하시면서 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 작지만 소중한 집도 사셨고
적금도 열심히 부우셔서 만기일만 기다리시면서
가게하나 차려서 저랑 제동생에게 가난만은 물려주지않을려고 힘쓰셨습니다.
그러다... 아.. 조금 씁쓸하지만 엄마라는 사람이 고스톱에 미쳐서
집이고 적금이고 재산이고 뭐고 전부다 말아먹고 도망쳤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아버진 매일 술만 드시게됬구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때 저랑 제동생은 수원에있는 큰댁으로 가게됬습니다.
그때 IMF라서 경기가 지금처럼 안좋았었죠.
아버지가 매일 술에 의존하시니까 친척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서야 아버지랑 같이 지낼수있겠됬는데
젊었을때 너무 많을걸 얻고 한순간에 잃어버리셔서 그런걸까요?
3,4달에 한번은 몇달동안 술만 드셨습니다.
그러던중 제가 6학년이됬을때 아버지가 알콜중독으로 병원에서 요양하고계셨고
그사이 엄마라는 사람이 뻔뻔하게 저희 남매앞에 나타났습니다.
엄마 집도있고 가게도 하니까 잘키울수있다고 그러니까 엄마랑 살자고..
어린맘에 아버지 매일 술드시는 모습이 괴로워서 경주로 따라갔습니다.
가보니까 방세는 몇달치밀려서 주인할머니가 매일 욕하시고
가게는 술집인데 장사도 잘안되고 사채업자들이며 카드업체들때문에
저희에게 거짓말 시키고 엄마는 이틀이나 삼일정도 도망가있었습니다.
엄마가 집에 없을때면 엄마랑같이 지내던 남자한테도 죽기직전까지 매일 맞았구요.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저흴 더심하게 때렸습니다.
웨이터놈이 엄마곁을 떠나고 조그만 월셋방으로 이사를 갔는데
제가 다닌 초등학교 근처였죠.
하루는 엄마가 제 손에 5000원짜리 지폐한장 쥐어주더니
" 늘 그랬던거처럼. 엄마 이틀뒤에 올테니까 동생 잘보살피고있어 "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어린맘에 알겠다고 그 돈으로 라면사먹으면서 버텼죠.
집에 쌀도 냉장고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록 안오더군요. 이틀이 일주일이되더니
보름째 되니까 전화마져 피해버리더군요.
동생이랑 추운겨울에 두달동안 있는데 무서웠습니다.
너무 배가고파서 학교앞 문방구에서 외상으로
아폴로나 자잘한 불량식품사서 배도 채웠구요.
나중엔 외상도안해줘서 바닥에 떨어진 과자부스러기까지 주워먹었습니다.
보일러에 가득찼던 기름은 바닥나버려서
매일 밤 유리병에 뜨거운물을 부어서 부등켜안고 잠을 자야만했습니다.
배고프면 움직이지 못한다는것도 그때 알게됬구요.
드라마같은 일이 존재한단것도 그때 알게됬습니다.
뒤늦게 경주 황남초등학교 교장선생님과 6학년때 담임선생님이 도와주셔서
굶주림과 추위는 해결됬었죠.
그러다 하루는 복지사들이 저희 남매를 찾아왔습니다.
동생이랑 같이 지낼수있도록 집도 구해주고 학교도 좋은 데로 보내줄테니
자기들만 따라오라고...
왠지 따라가면 영영 아버지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못볼거같은 마음에
거절했지만 3일뒤에 다시와서 반강제적으로 저희를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아버지 휴대폰은 번호가 바껴버려서 연락도 안되고 하루하루가 지옥같았습니다.
다행히 큰아버지랑 연락이되서 일주일만에 아버지를 만날수있었죠.
(아버지가 번호를 바꾼건 매달 생활비를 보내줘도 엄마란 사람이 매일전화해서 돈붙여달라고 그랬다네요)
아무튼 제가 탄 자동차가 수원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있을때.
동생이 잠든걸 확인하신 아버지가 제게 작은 쪽지 하나를 보여주더군요.
아이들을 키우기가 힘드니 동사무소에서 알아서 해달라고..
엄마글씨로 또박또박 적혀있었습니다.
고아원에 보내도 좋다고까지 써있더군요.
아버진 제가 그걸 다읽은걸 확인하시고선 찢어버리셨습니다.
그뒤 저희 세식구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아버진 엄마없단소리 안듣게하려고 집안살림이며 노가다며 열심히하셨으니까요.
그러다 중3때 아버지께서 일하시다가 척추와 고관절을 다치셨습니다.
장애 4급판정 받으시고 지금은 일도 잘 못나가싶니다.
제가 빠른 90년생이라 나라에서는 장애복지혜택과 의료혜택을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확 줄여버렸습니다.
지금 저희 아버지 병원비가 아까워서 매일 끙끙대시면서 방한켠에 누워계십니다.
제가 빠른 90이라 작년엔 아르바이트도 청소년보호법에
걸려서 안된다며 퇴짜먹기일수였구요.
이제막 야간일을 하게됬는데 사회가 너무 힘드네요.
하루 10시간 일하면서 쉬는 날없이 70만원받고 일합니다.
사장도 이래저래 욕만하구요...
그래서 일그만두고싶습니다.
저희 아버지 젊었을때 힘들게 일하셨는데
저도 그렇게하고싶은데 다른 일자리 알아보고싶습니다...
제가 그렇게해도 되는걸까요?
그리고 아버진 엄마라는 씨X년을 용서하라지만 전 그렇게할수없어요...
저랑 제동생은 진짜 용서해야만하는걸까요?
낳아주신 분이지만 그 분때문에 어릴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용서해야하나요?..
그리고 또 복지혜택이나 이런거 어떻게 다시 돌릴수있는 방법없을까요?
이제 제동생 고1인데 제가 군대가면 어떻게 될지 걱정됩니다...
어린애가 부리는 투정일까요?
저 어떡해야되죠?
아버지 20날 생신이셨는데 못챙겨드렸네요...
섭섭하셨을텐데 어떡해야할까요?...
- 쓸데없이 어릴때 기억을 꺼내서 길게 늘려논점 죄송합니다.
너무 답답해서 말하고싶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