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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중의 꽃 모란

푸른바다 |2004.04.27 13:01
조회 981 |추천 0

4.꽃목단

       흰 모란                             

 

                                    꽃 중의 꽃 모란



지난 3월 26일 방영된 KBS <TV쇼 진품명품>을 보다가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3등 선무공신 권협(1553~1618)의 영정 두 점이 감정단의 평가에서 9억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 감정가를 경신하는 장면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물급이라 평가한 그 기품 있는 영정에서 더욱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흉배에 우아하게 수놓인 모란꽃이었다. 감정단의 말에 의하면 모란꽃은 정이품(正二品)이상의 고관대작이아니면 흉배에 수놓을 수 없다는 것이 내게 강한 호기심을 일으켰다.


정이품이란 벼슬이 어떠한 벼슬인가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가 바로 정이품 벼슬이다. 바로 임금과 무릎을 맞대고 대면할 수 있는 정승판서의 자리가 아닌가. 요즈음으로 치자면 국무총리와 장관벼슬이다. 감정단의 설명 중에서 정이품의 흉배에만 장식할 수 있는 꽃이 바로 모란(牧丹)꽃이란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속리산 법주사 입구에 정이품송(正二品松)이 있다. 이 정이품송에도 신이(神異)한 설화가 전한다. 조선의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가던 연(輦)이 소나무 밑을 지나게 되었는데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연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했다. 세조는 이 소나무의 신이함에 탄복하여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꽃은 모란이 정이품이요, 나무는 소나무가 정이품인가 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모란꽃을 키워보고 싶었지만 도시에 살 때는 아파트의 비좁은 베란다에 작은 꽃분도 때로는 거추장스러울 정도인지라 잎사귀는 푸지도록 무성하고 꽃은 큰 대접만한 모란을 키운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이기만 하였다. 다행히 인연이 닿아 넓은 마당을 가진 시골집으로 이사를 와서는 내가 기르고 싶고 키우고 싶은 모든 꽃과 나무를 구하여 이리저리 심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그러나 모란과는 인연이 닿지 않는지 수 삼년이 지나도록 모란을 구하지 못해 안달을 부리고 있었는데 앞마을 밭둑에 보기에도 탐스러운 모란이 대접만한 꽃을 피워서 나를 유혹 하고 있었다. 수소문을 하여 주인을 알아보니 다행이도 아는 선배의 밭인지라 모란 한 포기만 나누어 가자 청하니 가져가라 하신다. 얼씨구나, 하고 호미로 모란을 파내려가니 곁뿌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뿌리에서 가지가 번져 나와 있는지라 분주를 할 수가 없어서 섭섭하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읍내에 꽃장수가 장날이면 오는데 지난해에 꽃장수에게 모란 한 그루만 구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더니 다음 장날 잘생긴 모란 한 그루를 가져왔는데 이놈을 볕 잘 더는 곳에 정성껏 심었다. 특별히 신경을 써서 퇴비도 잘하고 관수도 열심히 하였는데 날이 갈수록 시름시름하더니 기어이 죽고 말았다. 처음 가져올 때 뿌리가 부실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였으나 꽃장수 말이 뿌리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잘라내어서 잔뿌리가 없지만 심으면 그대로 살아난다는 말만 믿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다.


사실 모란의 뿌리껍질은 목단피(牧丹皮)라 하여 민간 및 한방에서 지혈·창종·대하증·진통·각혈·이뇨·부인병·두통·복통·소염·정혈 등에 다른 약재와 같이 처방하여 약으로 널리 쓰이므로 한방에서는 귀하게 쓰이는 약재이다 보니 간혹 시중에서 모란을 구입하다보면 나처럼 뿌리 없는 모란을 구입하는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지난밤엔 모란이 만발한 곳에서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울려 희희낙락하는 꿈을 꾸었다. 이제는 꿈속에서 까지 모란이 보이다 보니 아마도 병이되려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만나서 꿈이 되고 형체가 서로 접촉하여 사건이 되는데, 그것은 곧 낮에 생각한 것이 밤에 꿈으로 나타나 정신과 형체가 만난다.’고 하였는데 내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밤낮 모란을 많이도 생각하고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모란에 이렇게 집착을 하다보니 아내는 퉁명스럽게 말한다. 또 그 편집증, 집착증, 소아병적인 고집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둥 핀잔을 준다. 사실 나는 한곳에 빠지면 뿌리를 뽑을 때 까지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성질이 있다. 낚시도 그러했고, 사진에도 미쳤었고, 전국을 몇 바퀴 돌 정도의 여행에도 빠져 있었으며 다반사 밤을새는 독서도 마찬가지이고,  비디오와 DVD, LP판  모으기도 그러하며 수년 동안 난(蘭)에도 푹 빠져 있었기에 핀잔을 받을 만도 하지만 천성으로 타고난지라 한번 손을 대면 여간해서 헤어나질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까지 모란에 집착을 보인까닭은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에서 ‘꽃들의 왕’으로 등장하는 모란 이야기와, 조선 시대 때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나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일컬어진 강희안(姜希顔)의 꽃과 나무에 품계와 등수를 매긴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원예서인 <양화소록>을 읽고부터 이기도 하고, <삼국유사>에 수록된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지기삼사(知機三事)를 읽고부터  모란꽃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기삼사는 여왕의 슬기를 일러주는 세 가지 일화로 그 중에서 모란꽃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가 특히 흥미 있다.


<선덕여왕은 어릴 적에 당(唐)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그림을 보고 필경 그 꽃에 향기가 없으리라는 사실을 벌·나비가 그려지지 않은 데서 알아 차렸다. 함께 보내온 씨를 심었더니 과연 그러했다.>라고 한다. 탐화봉접(探花蜂蝶)이라, 꽃에는 으레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인데 그 그림에는 벌과 나비가 그려져 있지 않았으니 향기가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으리라.


강희안은 꽃의 아름다움보다도 꽃이 지닌 상징적 의미에 따라 품계를 정하였는데, 뛰어난 운치나 절개를 의미하는 매화·국화·연꽃·대나무를 1등으로 하고, 부귀를 의미하는 모란·작약·파초·해류(海榴) 등을 2등으로, 운치가 있는 치자·동백·사계화(四季花=월계화, 장미의 일종)·종려·만년송은 3등으로, 소철·서향·포도·귤은 4등으로, 석류·복사꽃·해당화·장미·수양버들 등은 5등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진달래·살구·백일홍·오동·감 등은 6등으로, 배·정향·목련·앵도·단풍 등은 7등으로, 무궁화·석죽·옥잠화·봉선화·두충등은 8등으로, 해바라기·전춘라(동자꽃)·금잔화·창포·화양목 등은 9등으로 구분하였다.


사람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어떠한 물건에 관심을 두고 있거나 어떠한 것에 몰입을 하다 보면 갑자기 그러한 물건이나 몰입한 대상이  눈에 많이 보이거나 내 주변에 자연스레 다가오기도 한다. 옷을 한 벌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때부터 거리의 옷가게만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신발을 한 켤레 사야겠다고 마음을 두면 남이 신은 신발을 유심히 보게 되며, 머리를 손질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두면 남의 머리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모란에 관하여 마음을 두고 있다보니까 별스레 모란에 관한 그림이나 싯귀(詩句)라던가 글들이 잘 잡힌다. 민화(民畵)그림책을 뒤적거리다 보니 모란꽃을 그린 병풍그림이 많이 보인다. 내용이 거의가 8폭 병풍으로 똑같은 구도의 반복으로 구성된 그림이 많으며, 모란꽃 병풍은 옛날 마당에 차일을 치고 결혼식을 올릴 때는 빠질 수 없었다고 한다. 결혼식에 쓰인 모란꽃 그림은 벌·나비의 배합이 없는 것이 아마도 선덕여왕의 지기삼사에 연결되지 않나 싶다.


그러나 민화 가운데서 가장 수효가 많은 화조도(花鳥圖)에는 대개 꽃과 암수 한 쌍의 새를 어울리게 해서 그리는데, 예를 들면 한 쌍의 새와 모란꽃을 그려 집안의 풍요와 부부 화합을 염원하는 식이다. 더러는 순전히 꽃만을 그린 모란도도 보인다.


모란은 예로부터 꽃 중의 왕(花中王), 부귀화(富貴花)라고 칭할 만큼 웅장하고 화려하다. 또한 은은한 운치가 있으며 귀인의 상을 지니고 있어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당나라 고종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에는 모란 가꾸기가 크게 유행했으며 또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모란을 좋아하여 궁중에 심은 이래 당대에는 상하가 모두 모란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 당시 천하의 부호로 유명한 장자공(張滋公)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 온 천하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큰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그는 묘수를 짜낸 다음 많은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드디어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장자공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연회장에는 주인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고 있을 때 주렴이 오르더니 그윽한 향기가 연회석을 가득 메웠다. 이어 아름다운 여인들이 술과 안주를 가지고 나타났다. 모든 여인들은 목걸이며 귀걸이며 옷 할 것 없이 모두 흰색의 모란꽃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는데 모란의 요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멋진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여인들이 술시중을 들었다. 사람들이 흥겨워하고 있는데 한차례의 잔치가 끝났다. 다시 주렴이 내려졌다가 올랐을 때 여인들의 치장은 모두 바뀌어 있었다. 흰색 모란을 비녀로 꽂은 여인, 자줏빛 모란으로 옷을 해 입은 여인 등 온통 각양각색의 모란꽃으로 치장을 하고 있었는데 부르는 노래도 모두 모란에 대한 노래였다. 이에 초대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과연 천하의 부호로 그 취미와 범절이 대단하다고 탄복하였다고 한다.


전설에는 중국의 수양제가 처음으로 이 꽃을 세상에 전했다고 하며, 중국의 국화(國花)가  지금은 매화이지만 그 이전에는 모란꽃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이나 부잣집 정원에 많이 심다가 나중에는 분양(盆養)하여 널리 보급했다고 한다.


중국에는 모란과 관련된 설화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옛날 중국의 한 공주가 사랑하는 왕자를 싸움터로 보내고 혼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왕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죽어서 모란꽃이 되어 이국땅에서 살았다. 공주는 슬픔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공주는 모란꽃으로 변해버린 왕자를 찾아가 함께 있어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하여 공주는 작약꽃으로 변해 왕자의 화신인 모란꽃과 함께 지냈다.


중국의 학자 한퇴지의 조카는 공부보다 모란 가꾸기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한퇴지는 조카에게 모란을 심게 했는데, 그 꽃 속에서 글이 나타났다. 한퇴지가 그 글을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자신이 젊었을 때 집을 떠나면서 지은 열 넉자의 한시(韓詩 한퇴지 본인의 시)였다고 한다.

 

모란은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예찬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모란의 그림도 많고 모란에 대한 글과 시도 많다. 옛날 신랑신부는 신방에 모란꽃 병풍을 치거나 베갯머리에 모란꽃을 그려 넣으면 부귀가 찾아오는 것으로 믿었고, 왕비나 공주와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는 모란 무늬가 들어갔으며, 신부의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는 모란꽃이 수놓아졌고, 풍류객들은 모란꽃잎을 따서 안주로 하며 꽃의 귀함을 즐겼고, 선비들의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이 그려졌다.

 

얼마 전 고문진보(古文眞寶)를 뒤적이다 모란에 관한 참으로 좋은 글을 보았다. 송(宋)대 도학(道學)의 조종(祖宗)이라고 일컬어지는 주무숙(周茂叔)의 애련설(愛蓮說)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국화지은일자야     菊花之隱逸者也

모란화지부귀자야   牡丹花之富貴者也


국화는 사람으로 말하면 은자 같아서 고요하고 우아한 멋이 있고,

모란은 부자나 신분이 높은 사람 같아서 화려하고 의젓하다.


위의 글은 부분이고 전문을 옮기면 이러하다.


내가 생각컨대, 국화는 사람으로 말하면 은자 같아서 고요하고 우아한 멋이 있고, 모란은 부자나 신분이 높은 사람 같아서 화려하고 의젓하다. 연꽃은 학덕이 높은 군자의 풍도가 있다. 그런데 도연명 이후에 국화를 진정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들은 바 없으며, 연꽃을 진정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이와 같이 은자 같은 국화나, 군자 같은 연꽃을 사랑하는 자는 극히 드물어도, 모란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많으니 부귀공명을 탐하는 이 세상으로서는 차라리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주무숙은 연꽃을 사랑하는 까닭을 설명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사랑함은 모란꽃이 풍기는 부귀의 이미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모란은 어디서나 신분이 높은 부귀의 꽃으로 불렸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나는 남도 일 번지 강진 땅에서 불후의 명시(名詩)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노래한 김영랑의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때가 모란이 피는 계절이 아닌지라 영랑의 생가에서 시인이 노래한 모란꽃을 보지 못한 것에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다. 영랑의 생가에서 모란꽃을 본다면 필시 다른 감회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모란꽃이 잃어버린 조국을 의미하는 꽃이라든가, 생의 가치나 이상을 대표하는 일정한 카테고리 속에 묶인 어떤 관념의 상징이나 무형한 가치의 구상으로 보지 않고, 일상적으로 피고지는 마냥 아름다운 모란꽃으로 보며 다시 한 번 이 시를 되 내어 본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ㅎ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1934 년 문학 3월호)


그렇게 소원이다 시피 한 모란꽃을 지난번 장날 한 할머니가 여남은 포기를 가지고 장에 내다 팔려고 나온 것이 보였다. 할머니 말씀이 담배값이나 되려나, 소일삼아 나왔단다. 비록 크기가 내 무릎정도였지만 얼마나 구하려 했던가 하는 마음에 반가움이 앞서 한 그루당 천오백 원을 주고 몽땅 사버렸다. 할머니는 한 그루에 천원을 달라고 하였지만 내가 오백 원을 더 얹어주었다.


비록 작은 포기이지만 앞뜰과 뒤뜰에 골고루 심었다. 키워가면서 꽃을 보리라 생각을 하니 내 마음속엔 사발 같은 붉은 모란꽃이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만큼이나 뜨겁게 피어있었고, 모란에 대한 집착도 어느 틈에 소슬한 바람처럼 향기롭게 사라지고, 기분은 모란만큼이나 청청하게 활짝 개어 있었다. 



2004, 4, 19 봄비 내리는 새벽에

푸 른 바 다

 


Chopin - Piano Concerto No.1 in em, Op11. - 2.Romance Largh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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