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 아임게이(i'm gay) - #9

夜記(야기) |2004.04.27 13:31
조회 220 |추천 0

** 맑은 날씨도 좋지만 이런 날씨도 참 좋아요. 비가 올락말락~ 집에 틀어 박혀서 불도 하나 안켜고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을때의 음침함이란 ~캬아~ 조타 **

 

 

 

CHAPTER 9. 꽃보다 아름다운

 

 

늘 변함없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잃어버려 본 사람만이 안다.

야기는 다시 찾은 평온한 일상에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도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매니저님 우편물, 책상에 올려뒀어요.”

“땡큐, 연진씨.”

 

런치를 끝내고 디너까지 약 세시간 동안 문을 닫는 사이 바쁜 곳은 주방뿐이다.

홀의 직원들이 청소를 마치고 다리를 쭉 뻗는 중에도 주방만은 디너준비로 눈코뜰세 없이 돌아간다.

그런 주방직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야기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뭐냐, 이번 카드값은 왜 이렇게 많이 나온거야?”

 

투덜거리며 항목을 살피던 야기는 청구서 외에 다른 편지가 한장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광고나 청구서 말고 다른 우편물을 받아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보낸 사람을 확인한 순간 야기의 얼굴이 가볍게 굳었다.

 

-이준원

 

“준원이가…”

 

절로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야기는 침착지 못한 손놀림으로 조심스럽게 겉봉을 뜯어냈다.

1년만에 준원이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봉투 안에서 나온 것은 한장의 사진.

노을이 지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선 준원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툭, 자신도 모르게 떨어진 눈물이 준원의 얼굴을 덮었다. 마치 준원이 흘리는 눈물처럼.

 

-참 아름다운 바다야. 나를 만나러 와줄래?

 

야기는 급하게 옷을 걸쳤다.

사진을 소중하게 품 안에 간직하고 주소를 확인한다.

한 마디 용서도 받지 못하고 고백도 하지 못한 채 보내버린 옛사랑.

비록 사랑은 아니었다고 해도 최소한 친구였던 그들이다.

얼굴을 보고 제대로 일 년전 끊긴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 어디가?”

 

문 앞에서 마주친 효윤의 얼굴에 야기는 미소 지었다.

 

“쯧쯔… 아직도 저 말버릇하고는…”

“앗, 죄송해요, 할아버님.”

 

쏙 혀를 내미는 모습이 귀엽다.

마냥 선머슴아 같던 효윤은 단정히 길러 묶은 머리와 옅은 화장을 해 다른 사람같았다.

하지만 알맹이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무슨 일이야?”

“그냥, 지나는 길에 들렀어요. 할아버님께서 야기씨 일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고 하시고…”

“저, 저 녀석이! 끌고 온 건 너다. 내가 가자고 한 게 아니야.”

“에에, 뭘 그러세요. 속으로는 오고 싶으셨잖아요. 이왕 온 김에 맛있는 거 먹고 가요, 할아버님. 예?”

 

여전히 갓과 도포를 고집스레 챙기시는 할아버지를 애정 어린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효윤이 덕이다.

 

처음 인사시켰던 날의 해프닝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즐거움이었다.

오죽하면 온 문중에 소문이 좍 퍼져서 일부러 ‘그 당차다는 종부’를 보러 오시는 어르신도 계실 정도였다. 어린 손부가 당신 눈에도 귀여우셨던 걸까.

크게 경을 칠 일에 조용하다 싶어 야기가 슬쩍 눈치를 살피니 할아버지는 에헴 헛기침을 하며 뒤돌아서서 웃고 계셨다.

이상하게 죽이 척척 맞는 조손간이라 티격태격하면서도 늘 서로를 챙기는 사이다.

어린 손부가 보고 싶어서 일부러 이유를 만들어 서울행을 하시는 할아버지나 그런 당신을 사심없이 웃으며 맞이하고 여기저기 모시고 가고 싶어 안달인 효윤이나 참 보기 좋았다.

효윤이에게 말로 다 못하는 고마움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런 때다.

 

“바람 피우러.”

 

씩 웃으며 말하는 야기에게 효윤이 코 방귀를 뀌며 속삭였다.

 

“능력 있으면 한번 해봐.”

“엉, 나를 무시하네. 박효윤, 너 하늘 같은 서방님을 무시했겠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

 

딱!

 

“악!”

 

머리를 감싸쥔 야기의 눈앞에 할아버지의 지팡이가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한번 더 말해봐라. 뭐라고?”

 

이마에 핏대를 세우시는 할아버지 곁에서 효윤이 보이지 않게 브이자를 그리며 메롱 혀를 내밀었다.

 

“하, 할아버지… 장난이예요, 장난.”

“아무리 장난이라고 그런 소릴 함부로 하다니. 효윤이 눈에 눈물만 뽑아봐라. 그날로 호적에서 파버릴 테니까.”

“할아버지, 종손을 호적에서 파는 법이 어디 있어요?”

“종손 아니라 뭐라도 팔만하면 파야지.”

 

말을 마치고 휘적휘적 걸어 들어가는 할아버지의 뒤를 조르르 따라가며 효윤이 약을 올렸다.

 

“들었지? 할아버님은 내 편이라고. 쫓겨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보시지.”

“이젠 완전히 찬밥이구만.”

 

울상을 지으면서도 야기는 마냥 좋아 웃음이 났다.

 

“나 오늘 늦을거야.”

“알았어요. 할아버님 오늘 내려가신다니까 너무 늦지는 마. 종손 배웅 못 받으면 서운해 하셔.”

“응. 근데 너 그렇게 자신있냐?”

“뭐가?”

“내가 누구 만나러 가는지도 안 궁금해?”

“누군데?”

“준원이.”

 

효윤의 얼굴이 잠깐 흐려지는가 싶더니 곧 더욱 밝아졌다.

 

“우와, 드디어 화해하는 거야? 형이 백번 잘못했으니까 제대로 싹싹 빌고와. 나도 그 언니 한번 보고 싶단 말야.”

“아무리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지만… 해도 너무하는군. 흑.”

“잘 다녀와요.”

“응, 다녀올게.”

 

야기는 효윤의 이마에 입맞추면서 한없는 애정을 담아 포옹했다.

이렇게 단단한 결속이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앞으로도 끊임없는 바람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이 팔에 닿는 온기가 있는 한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앞을 향해 걸어나갈 수 있다.

 

“몸조심하고. 문단속도 잘 하고 있어.”

 

야기는 살짝 효윤의 배를 어루만졌다. 아직 겉으로 보기에는 티도 안 나지만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분신에게 애정을 전하듯이. 효윤이 그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응, 빨리 와요.”

“그래.”

 

미소를 교환하고 애정을 확인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가장 놀라운 업적.

마법처럼 신비로운 사랑의 힘으로 타인이 가족이 된다.

야기는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멋진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이 참 대견했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일을 하게 해 주고 같이 만들어가는 효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하늘의 별보다도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미워하고 끝내 다시 사랑한다.

구구절절 애절한 사랑도, 담담하게 풀어가는 수필 같은 사랑도, 너무 사랑해서 미워하게 된 안타까운 일도... 헤아릴 수 없는 각각의 사연들이 우리 주위에는 펼쳐져 있을 것이다.

사람수만큼이나 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각자의 가슴 속에 잠들어 있다. 언

젠가 깨어날 날을 기다리며. 한껏 힘을 비축하는 봄눈처럼 봄이 오면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던질 준비를 하고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이 아름답다.

무한한 사랑을 준비하고 키워나가는 사람은 그 이유만으로도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이다.

 

에필로그로 계속됩니다. ^^

추천수0
반대수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