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수준 낮은 일본인들 같으니... 제대로 알고나 떠들어라~
위안부가 순수한 상업행위였다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절대 그렇지 않단다.
이른바 일본군위안부로 불리는 여성들은 일본이 패망하기 전까지
강제로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하여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갖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안은 채 살고 계시거든?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너희들 일본 제국주의는 1932년 상해사변을 일으킨 후에
일본군들의 학살을 독려하기 위한 사기 진작책으로 1932년 1월 28일 상해에
일본군이 직접 운영하는 최초의 위안소 '다이사룽(大一沙龍)'를 설치했지.
여기에는 1차로 한국 여성 80명과 일본여성 24명을 성 노리개로 착취한 사실이
중국의 한 역사학 교수에 의하여 밝혀진 바 있어.
1938년 난징대학살 사건 때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극악무도한 학살과 민간인 강간사건이
반일감정으로 번지고 국제사회 지탄의 대상이 됐을 때
그 수습책의 일환으로 위안소를 서둘러 설치한거야.
이때부터 위안소는 일본군 내에 널리 일반화되기 시작되었는데
문제의 일본군위안부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을 전후하여 더욱 노골화되어서
당시 야만적인 일본군의 추악한 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가 되고 있단다.
아시아침략전쟁 당시 일제가 노동력 부족을 메운다는 미명아래 악랄하게 강제 동원한 여성들을
근로정신대라 부르는데 이들 여성들 중에 대부분은 군 성노예로 강제 동원되었어.
일제는 성노예 여성을 동원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군. 관. 민 합동으로
군수공장, 간호보조, 군부대 잡역, 여자 특수군속 등으로 취직 또는 일본유학 등의
갖은 감언이설을 동원했고 또 조선의 지도급 인사들을 내세워서
“일본을 위해, 일왕을 위해 우리의 딸을 바치자”라고 선동까지 했다는구나.
하지만 자발적인 참여가 저조해지니까 일제는 10가구 단위의 ‘애국반’이라는 것을 조직해서
시골 구석구석까지 필요한 인원을 이 잡듯이 인간사냥에 나섰어.
또 각 마을의 이장들이 조선인 부녀자 현황을 파악하고 명단을 작성해
이를 근거로 성노예로 강제 동원했다고 하는구나.. 이런 망할..
당시의 일본인 교사와 관련인들 증언에 의하면
초등학교에서는일본인 교장과 교사를 중심으로 어린 여학생을 동원했고,
경찰은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을 무차별 강제 연행하였다고 하니까
이것들이 제정신이었는지 원...
마을단위로 일정 수의 여성을 할당하여 강제 연행은 물론
창씨개명을 하지 않는 세대를 중심으로 우선 징발했다지.
이렇게 성노예로 차출된 어린 여자아이들만 전국적으로 약 20여 만 명에 달했다니
정말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구나.
물론 이들은 일본군이 배치된 군부대에 강제로 끌려가 성적 착취를 당했지.
이러한 사실은 1992년 ‘정신대의 고용조건, 동원권자, 의무규정 등을 명시한 일왕 칙령(勅令)
제519호(여자정신근로령 : 1944년 8월 22일 공포)’가 발견됨으로써 일왕이 직접 개입하였음이 밝혀졌단다. 이거야말로 그 동안 수많은 관련자들의 증언. 국제기구의 판결 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부인만 해오던 일본 정부에겐 변명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된 거잖아.
UN이나 기타 국제기구를 포함한 영어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공식 명칭이 뭔지 아니?
바로 '일본에 의한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일본군위안부가 강제적인 성 노역이었다는걸 인정하는거야.
이래도 너의 왜놈들은 일본군위안부가 자발적인 상업조직이었다고 주장할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