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보편적 사랑과 (종교적) 박애의 존재가 아니다.
격동기의 홉스(Thomas Hobbes)와 마찬가지로
프로이트의 분석은 그의 인성론에 닻을 내리고 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인간에 대해서 늑대다."
- beast within
그의 유명한 인성의 3층 구조에서
이드(id)는 원천적이며 집요한 모반이며,
알다시피, 이드는
사회적 합리성이나 윤리관의 규범을 내면화하지 못한 채
오직 '쾌락원칙'에 따른 본능의 충족만을 추구하는
'마음 속의 짐승(beast within)'과 같다고 했다.
이 '짐승'은 주로 두 가지 방식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는데,
충동적인 행동과 이미지 형성이 그것이다.
이 이드의 충동 소질 안에는
다량의 공격적 성향이 포함되어 있으며,
공격을 저지하는 정신적 저항력(수퍼에고)이 소실되어 버렸을 경우에
공격은 자발적으로 자동적으로 나타난다.
에릭슨(E.H. Erikson)은 <라이프 사이클>에서,
이같은 심리는 성년에 이르러서도 계속해서 유지되며,
'삶의 각박함'이나 '죽음의 공포'를 회피하게 하는 기제로서 기능한다고 해명하였다.
(프로이트의 성격이론에서의 핵심개념인
이드(Id), 에고(Ego), 수퍼에고(Superego)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거니와,
에릭슨의 정체성이라는 개념 역시 매우 잘 알고 있으리라.)
다시 말해,
프로이트와 에릭슨에 따르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무차별 공격 성향을 보이는 사람은
공격을 저지하는 정신적 저항력이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삶과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서,
그리고/또는 성적 욕구가 현실적으로 해소되지 않고 억압됨으로써,
그런 현실을 회피하려는 반작용이라는 얘기다.
프로이트의 성격 발달 이론을 보면
구강기에 욕구 충족이 억압되어
공격적, 가학적 성격이 생겨난다.
또, 항문기에 초자아(수퍼에고)가 형성되지 않아
이드의 공격적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자라면서 각 단계마다 욕구 충족이 좌절되거나 과잉되지 않고 적절하게 이루어져야만
원만하고 건강한 성격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의 일생의 성격을 규정하는 성장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미 '성인'인 경우 성장 환경에 모든 책임을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건강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 "배알꼴림"을
비도덕적으로 충동적으로 발산하기 이전에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대개 "양심의 가책"이라고 불리며 도덕적 원칙을 따르는 수퍼에고와,
이드와 수퍼에고 사이에서 '조정자'라고 할 수 있는 실용주의자(?)인 에고가
공격적이고 가학적인 이드를 누르고 발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어야
'사회 속의 성숙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편,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대표적인
리비도(성적 욕구)와 타나토스(공격적 욕구)의 자유로운 충족은
사회적으로 금지되고 억압되는데,
현재 익명의 인터넷 세상은
이런 욕구들의 발동을 보다 쉽고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익명이라는 점으로 인해 사이버월드가
오프라인 실세계와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단순히 믿어버리기 때문인데,
그러나 인터넷 세상은 현실 세상과 동떨어진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상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인터넷이 협동적 공공 사회의 이기(利器)로 기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이 현실과는 다른 가상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한,
실제 현실 세상에서는 감히 하지 못하는 온갖 패악을 보다 쉽게 저지르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인 '마음 속의 짐승(beast within)'은
더이상 마음 속의 짐승이 아니라
충동적 무차별 공격성향이 두드러지는 누군가의 마음을 벗어나
조만간 그 자신이 바로
'현실 속의 짐승'으로 진화(?)할 것이다.
- 나오며
롤랑(Romain Rolland)이
프로이트의 <환상의 미래>가
종교적 신비의 심층을 경시했거나 무시했다고 비판하면서,
'대양적 감정'이라는 용어 속에 자신의 논지를 집약시켜
프로이트의 과학주의를 성가시게 하자,
프로이트는 <문화의 불안>에서
"(롤랑이 말한) '대양적 감정'이라는 것을 내 자신 안에서 발견할 수가 없다"고 답한다.
피셔(D.J. Fisher)는,
"그 '대양적 감정'이라는 것이 인류의 절멸을 원하는 가학적 소망의 '반응 형성'이며,
정신적 유치가 대양적 감정에 깊이 연루한다"고 했다.
이 말은 (여러 종교 등에서 정언명령으로 제시되는) 보편적 박애의 요구는
인간과 그 현실을 몸으로 겪어낸 결과가 아니라,
관념론적 유치증과 사통하는 심리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상술하기는 곤란하지만, 프로이트는
유아기적 일체감으로 소급되는 정신적 유치가
바로 '대양적 감정'과 깊이 연루한다고 했는데,
그리하여, 되풀이 하거니와,
인간은 보편적 사랑과 (종교적) 박애의 존재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의 깊은 냉소를 카피하자면,
"내가 '그 사람'도 역시 곤충이나 지렁이나 뱀과 같이
지구상의 생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에 대한 분량으로는
지극히 소량의 사랑밖에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