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야"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난 해버린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흘러가기
만 한다. 누가 아프든 누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치든 세상은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물
처럼 흘러가기만 할뿐이다. 언제였을까... 마지막으로 웃어 본 때가 상관은 없지만 왠지 조금
은 화가 나기도 한다. 무엇에 대한 무엇을 위한 화인가 지금 내 뒤로는 넓은 강이 나타났다.
석양에 반사되어 빛나는 강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열차의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역에서는
지금쯤 이런 방송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정부전용 수송열차가 지금 도착하고 있습니다. 출입문은 열리오나 탑승하시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공무수행중인 정부전용 수송열차가 지금 역
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출입문은 열리오나 탑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차가 멈췄다.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제복을 입은 남자와 가운을 걸친 여자가 탑승했다. 남
자는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눈이 좋지 않은지 테가 굵어 보였다. 여자는 장발을 한 모습이
었는데 뭐가 그리 바쁜지 노트북을 계속 눌러대고 있었다. 열차가 움직일 때까지 침묵은 계
속되었다. 남자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네인가 3번째 적격자가?"
"잘은 모르지만 그럴 겁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하야시 야마모토 라고 합니다."
노트북을 두드리던 여자는 계속 노트북을 누르며 우리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현준군 현준이라는 이름이 있으면서 일본식 이름을 말할 필요는 없어요 G-Front는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국제 연맹 직속의 기관이니까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현준이라는 이름이 듣기 싫다. 현준이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
름이다. 아버지... 아버지 따위 생각하기도 싫다. 아버지는 우리를 버리셨다. G-Front의 건설
에 평생을 거셨던 아버지... 가족 따윈 생각도 않았다. 그 아버지가 지부장인 G-Front의 한
국지부에서의 호출을 받은 건 1주일 전이었다. 열차는 이미 정규 노선을 벗어나 어딘가 산
아래로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터널에서 벗어나자 그 곳에는 또다른 세상이 펼
쳐져 있었다. 열차가 멈추자 문이 열렸다. 나는 거북한 자리를 피하기 위해 재빠르게 열차에
서 내렸다. 난 무의식 적으로 오른쪽을 봤다. 거대한 로벗이 크레인에 의해 들어올려지고 있
었다. 스피커에서 시끄러운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다.
"토쿄발 수송열차가 지금막 기지에 도착했습니다. 제로기는 기술개발 팀에서 인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번째 적격자의 인도자는 지금 곧 4번 플렛홈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
다."
난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저쪽에서 장발의 여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그녀는 몹시 지쳐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냈다.
"신현준군 맞지?"
"하야시 야마모토입니다."
"에에, 그럼 3번째 적격자가 아닌건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던 쇼핑벡을 나에게 건냈다.
"남자가 무거운걸 들어주는게 예의겠지?"
나는 쇼핑벡을 들었다. 의외로 꽤 무거웠다.
"대충 설명은 들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이곳은 G-Front라는 곳으로서 너희 아버지가 체계
를 잡은 틀아래 탄생한 집단이야. 2025년에 발생한 세계3차 대전 이후 UN은 힘을 잃었지
왠만한 나라에선 다 핵무기를 사용하는데 UN은 자체 조약 때문에 핵무기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UN이라는 이름은 유명무실하게 된거야 그래서 만들어진 조약
이 G-Front, UN의 뒤를 이을 국제 연맹이야"
나는 쇼핑벡을 내려다 보았다. 그곳에는 각종 책자들이 쌓여있었다. 그녀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뒤를 따라 걸었다. 역사를 벗어나자 모노벨트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모노 벨트에 몸을 실었다.
"궁금하지 않니? 왜 네가 불려진건지?"
나는 투명한 벽너머로 시선을 향한체 대답했다.
"상관은 없어요 어차피 이용하기 위해서 일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오른쪽의 모노벨트로 옮겨섰다. 모노 벨트가 멈추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났
다. 그녀는 자켓의 바깥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들고는 숫자가 적혀진 판에 그었다. 그리고는
계속 숫자를 눌러댔다.
"안녕하십니까 아나야마 미키씨"
라는 말과 함께 문이 열리고 복도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그녀의 구두 소리가 복
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 곳에는 다시 거대한 철문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제1 브리핑실 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문이 열리고 그녀는 거수 경례
하며 외첬다.
"아나야마 미키 서드 칠드런(third children)을 인도하여 지금막 도착했습니다."
난 방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안은 어두웠다. 불이 켜졌다. 거대한 탁자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안쪽의 중앙에 아버지가 앉아있었고 그 곁에 금발의 남자가 탁자에 기대어 서있었다.
썰렁한 분위기 브리핑실을 감았다. 금발의 남자가 침묵을 깨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G-front에 온걸 환영하네 부자간이라고 들었네만 인사라도 하시게"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꼭 7년 만이군요"
"사령관이라고 불러라. 공과사를 구분하거라!"
왜일까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미키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뒤로 아
까 열차에서 봤던 여자가 뛰어서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제로기의 상태 체크를 끝내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제로기의 상태는?"
아버지, 아니 사령관은 차가운 어투로 물었다.
"네 지금 당장이라도 기동할수 있게 모두 스텐바이 되어 있습니다."
"좋다. 유나를 불러라 기동실험에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 third 프라그 수트로 갈아입고 기
동실험 준비를 하도록"
나는 뒤로 돌아서 문에서 약간 떨어졌다.
"미키 안내해라"
미키는 다시 거수 경례를 하고는 한발자욱 물러났다. 문은 닫혀졌다.
"어서 안내해 주세요"
미키는 아무말도 없었다. 그냥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따스하다. 이런기분은 오래간 만
이다. 나는 케비넷들이 즐비한 탈의실로 안내 받았다. 내이름이 적힌 케비넷이 눈에 들어왔
다. 문을 열었다. 그속에는 단 한벌의 옷이 들어있을 분이었다. 나는 그것을 들었다. 옷을 벗
고 그것을 입었다. 헐렁했다. 그래도 장갑까지 끼고는 문을 나섰다. 미키가 다가오더니 목부
위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내몸에 꼭맞게 옷이 조여졌다. 몸을 조르고 있긴 했지만
조인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했
다. 한참을 복도를 빙빙 돌고 나자 제2 기술개발실이라는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문이 열리
자 그곳에는 6~7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향해있는 창 아래에는 아까 봤던 로벗이 수
십대의 크레인에 연결되어 마치 십자가에 못박혀진 것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얼굴부위로
연결된 크레인 위로 누군가 걸어가는 듯 했다. 그 형상이 얼굴 가까이로 가자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입부위가 둘로 갈라졌다. 그모습이 확대되어 스크린에 비춰졌다.
"파일럿 탑승확인 조정실을 패쇄 합니다."
"초기 감정회로 로그온 파일럿과의 동조가 시작되었습니다. 내부전력 충전율 제로 기동가능
임계전력까지 앞으로 오초"
"사"
"삼"
"이"
"구속구 해제!"
실험을 지켜보고만 있던 미키가 소리치지 로벗의 팔을 잡고 있던 두 개의 크레인이 덜컹 하
는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머리를 붙잡고 있던 크레인 몸을 감싸고 있던 크레인
어깨를 짓누르던 크레인등 로벗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모든 크레인의 연결이 끊어졌다.
"조정실과의 무선연결 지금부터 제로기의 시야로 모니터링을 시작합니다."
"제로 심장박동수 급상승 맥박 혈압 모두 비정상입니다."
"펄스 역류! 파일럿에게 고통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로벗의 눈이 붉게 빛났다. 로벗이 걷기 시작했다. 창 너머의 우리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우
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유리가 날아가고 벽이 찌그러졌다. 한명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감싸쥔 손에서 피가 베어 나오고 있었다.
"젠장! 동력 및 연료 차단 공급을 정지해라!"
미키가 당황한 듯 소리치자 한 대원이 대답했다.
"않됩니다. 이미 이곳 기술개발실로 연결된 주 동력선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온다 모두숙여!"
난 바닥에 엎드렸다. 로벗의 팔이 다시한번 가격하자 벽을 뚫고 손이 들어왔다. 로벗의 주먹
이 펴쥐더니 내앞에 손바닥을 보이며 펴졌다. 그리고는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아까 탑승했
던 형상이 팔을 어깨를 통해 내려 팔을 타고 이동해 내려왔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
다. 눈이 아픈지 왼쪽눈을 가린체.. 로벗의 눈초리가 나를 응시하는 듯 했다. 스스로 심장박
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