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기의 변화>
어린 시절, 그러니까 10대 말에서부터 20대 초반에 미친듯이 읽어댔던
먼지 쌓인 책들을 꺼내 볼 때가 가끔 있다.
그 당시 중요하다고 밑줄 그어 놓았던 부분들은,
지극히 추상화된 명제, 정의, 개념 등이었다.
그런 것들을 알면
구체적인 사례나 구체적인 판단들은 자연히 해결된다고 믿었나보다.
물론, 판단을 쉽게 할 수 없었음은 당연했고
아마도 그런 판단 능력은
실력이나 통찰력,
혹은 legal mind 따위의 것들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나보다.
그러면서 추상적인 개념들과 명제들에 익숙해지면
언젠가는 자연히
모든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요즈음 줄긋는 부분들은
실체적인 사례, 개별적인 해결, 결론들이다.
추상화된 정의나 상위 개념보다는 하위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수많은 다르게 생긴 모래알들'에 관심을 가진다.
명제, 정의, 개념 등의 추상적인 것들을 이제는
다만 필요에 의해 생긴 메타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어떤 모집단을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선 긋고 구획 짓고 구분하려는 선호가 먼저 존재하고,
그것을 분석한 결과를 결국 추상적인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처음부터 선험적인 것이 과연 얼마나 되나 하는 회의가 생긴 것이다.
선험적인 것에서 연역하여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먼저 존재한다는 '선호'나
선긋고 구획지으려는 '이러저러한 모습'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왔나,
그런 것들도 근원적인,
어떤 동일성 판단의 기준이 없다면 가능할 수 없지 않느냐 하는
꿀꿀한 기분도 늘 떨칠 수는 없다.
근원적인 무언가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것인데
과감히 없다고 믿어버린 것이 아닌가 찜찜하기도 하다.
며칠 전에 술김에 읽은 아서 밀러라는,
실재론을 신봉하는 물리학자의 호소는 찜찜함을 더해준다.
어쨌건 분명한 것은,
'밑줄 긋는 내용과 부분이 달라질 만큼',
'저 꿀꿀한 기분들은 다분히 애써 미루어버릴 정도로'
내 속의 무언가가 몇년 사이에 변했다는 사실이다.
사변(思辨)에서 현실로의 변환과정 중일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