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해 19세 되는 사회인으로써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두번째로 이렇게 톡을 쓰네요.
다름이 아니라 차선도색작업을 하는 한 학생입니다.
가정환경때문에 16살때 부터 검정고시로 고검, 대검패스하고 이일 저일하다가 도색 일을 시작한지 1년반이되어가네요.
글이 조금 기네요..ㅠㅠ
시간 아깝다고 생각하시는분 밑에 결론만 보시고 뒤로가기 하셔도 좋습니다.
글이 뒤죽박죽이거나 맞춤법이 안맞거나 띄어쓰기가 잘 안되있어도 이해해주세요^^;
시간이 그리 많지않다보니 뒤죽박죽이네요 ㅠㅠ
차선도색은 아시겠지만 골목길부터 시작해서 고속도로까지 중앙선, 화살표, 미끄럼방지,횡단보도,과속방지턱등을 삭선(지우는것),도색,재도색하는게 저희 작업입니다.이 일을 처음시작할때 제 또래들이랑 눈마주치는게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특히 서울작업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사람 저사람 뵙다보니 이런생각은 잠시더라구요.
어이쿠 그러고보니 지금 서론만 길게 쭉 늘어놨네요.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건설근로자는 성격이 않좋다고 생각을 많이 하십니다.모두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럴수밖에없습니다. 이일 안해보신분들은 모르실겁니다..
여름에 콘크리트에서 올라오는 열기 누구나 불쾌지수가 올라가죠.....
또 안전이 중요하기때문에 긴장을 바짝해야합니다. 신경이 날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1.2008년 4월
광주 중앙선,미끄럼방지작업
이때 유난히 차가 많았었던것으로 기억을 하네요.
차가 쌩쌩달리는 차도에서 작업을 하기때문에 3차선에서 4차선으로 라마콘(꼬깔모자?라고 많이 칭하시더라구요.)을 옮겨야 작업을 할수있습니다.
라마콘을 옮기는 도중 어떤분이 라마콘사이로 차가 들어왔습니다.
저희는 정말 생사가 오가는 순간이였죠.
그런데 그차는 갓길에 세우시더니 저희더러 썅욕을 하시더라구요.
죄송하다고 했지만 너희 그딴식으로 일하는거 농땡이까는거 다알고있고 시청에다 찌른다고 하면서 여러 헛?소리를 하시더라구요.저희는 일이 커지고 민원이 들어오면 100%중 1%만 작업완료를해도 철수를 해야하기 때문에 맞 대응할 길이 없었죠..그분도 살인자가 될까봐 저렇게 욕하고 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나이또래,60대까지 계시는분들께 저렇게 말을 하시는거보고 냉정한 사회를 느꼈었습니다.
2008년에는 이것외에는 큰 일이 없었네요 기억이 안나는건지..
2.2009년 3월
가락동 ~장지동등 거주자 우선표시 작업
가락본동에서 작업할때였습니다.
거주자 우선표시 다세대주택같은 골목에서 흔히볼수있는 숫자-예)01-05-258 이런식으로
거주자 우선으로 주차할 수 있도록 표시를 해놓는 작업을 합니다.
이때 저는 번호를 녹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는분은 계실지 모르겠지만 페인트질이 아닌 특수한 재질로 제작된 숫자를 땅에다 녹이는거에요.
그날 작업을 하다가 제가 작업하는곳 땅 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집에서 나온뒤 구경을 하고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함을 지르시더라구요. 이유는 즉 땅이 까맣게 그을려졌다고...자기땅 이렇게 된거 책임지라고하면서 땅값의 10%를 내놓으라하더라구요..?
저는 까맣게 된거 2주~1달정도면 원래대로 복원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먹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제 또래 하교시간이라 정말 창피했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쟤 뭔짓했길래 저영감한테 욕을 퍼먹냐?"라는등의 말도 들렸구..
섭씨 몇백도를 1분정도 녹여야만 제대로 붙습니다. 그렇게 안하면 쉽게 떨어지기 때문이죠. 문제는 콘크리트도 같이 녹기때문에 땅이 약간 시꺼멓게 되버립니다.
팀장님 부장님 나서서 말씀을 드렸지만 자기땅 어떻게해서 찾은건데 하면서 욕만하시더라구요..그날작업 70%하고 나머지는 다음날와서 작업을 했습니다.
다음날 쫓아다니시면서 큰소리로 치욕적인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중 충격적이였던 한 말씀..
"시X놈이 부모도 없는게 나랏밥먹으면서 행패나 처부리고 다니네"
"니 그따구로 살지말어 자기 행동 책임질줄은 알아야지"
이러면 안될 행동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전 그냥 그자리에서 팀장님께 말도 않하고 퇴근했습니다.
괜히 큰일이라도 벌이면 저뿐아니라 팀장님께도 피해를 가기때문이죠..
저는 부모님 다계시고 나랏밥이 아닌 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면서 생활을 했는데 이건 무슨말씀이신지..저에대해 아시는게 있으신건지..
책임은 무슨 말씀이신지..돈을 바라시는건지..이런생각밖에 없었네요.
그날 저는 집에돌아와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때 첫 딜레마가 왔었죠.
마인드컨트롤도 조절못해서 당분간 말도없이 무단결근을 했었죠.
그때 정말 많은것을 느꼈습니다.
3.2009년 3월
인천 작전역이였나?
별일은 아니였습니다.
그부근에서 공용주차장 재도색하던날 이였습니다.
그때 또 학생들 하굣길 이였습니다.
저는 5톤차위에서 재료넣으면서 녹이고 있었습니다.
근데 어떤 남학생이 지나가면서 저한테 한마디 하더라구요.
"왜 저런일을 할까?"
"돈없으면 저렇게 개고생하는구나"
대충 이런내용으로 듣었습니다.
대충봐도 제 또래인데 저런말을하니 저는 어의가 없었죠.
마음같아서는 그색히 따라가서 한마디 하고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런상황이 한두번도 아니라보니..폭발할뻔했죠..
정말 제또래가 저렇게 한번 말하면 비수를 꽃혀버리더라구요..
팀장님께서는 이런생각 저런생각 너무하면 일도 안되고 힘들고 딜레마온다고 격려해주시는덕에 5월초까지는 버틴 것 같네요..
4.2009년4월
한국도로공사 대전지사 관할 T.G등 재도색
거의 1달동안 고속도로 작업만 했었습니다.
이때 대전 고속터미널부근 모텔에서 합숙을 했었습니다.
방당 2~3명씩. 이때 저는 페인트팀과 도색팀 왔다갔다하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모르는분도 많이 계시더라구요.
고속도로작업은 특히 생사의 갈림길 바로앞이라고 보셔두 되겠네요..
5톤트럭도 110km는 밟아주기 때문에 치이면 바로 저세상이죠..이때 제일 무서운건 졸음운전과 급커브입니다.. 치일뻔한건 팀당10회는 넘다보니..이때 졸음운전하시는분때문에 저와 차 간격이 10cm밖에 안될정도로 사고직면이 꽤 많이 있었어요.다행히 사고는 한건도일어난적이 없는데 욕은 정말 엄청먹었습니다..
4차선경우 1,2차선 막은뒤 작업을하고 3,4차선으로 옮기는데 이때 기수뒤에 있는사람이 라마콘을 옮깁니다. 기수가 정말 위험하고 기수가 사고나면 뒤에있는사람까지 차에치이기때문에 정말 조심해야되죠..
3,4차선을 막고작업할때 차가 꽉막히는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조금은 안전하죠..
하지만 지나가는차마다 썅욕을하는경우는 다반사고 심지어는 쓰레기가득담은봉투 작업하시는분들한테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작업하시는분들이 쓰레기 다 치워야하죠..저희 아버님 또래분들..어머님또래분들이 눈마주친상태에서 욕하고 담배꽁초를 저한테 뿌렸을때 정말 힘들었습니다..도로작업뒤로 많은분이 일자리를 그만두었습니다..
피해드리고 싶지 않다면서요..
결론
이렇게 욕하시고 폭행하시는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음료수사오셔서 힘내라는분도 많이계셔서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건설근로자 깔보시는분들
사람들은 저희 일하시는분들을 비롯해 일명 노가다하시는분들 욕하시는분 많이 계십니다.그분들 이일 안해보실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여기있으면서 대기업 다니시던분들도 구조조정등등 이유로 여기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처음 들어오셨을때 그분들 회식하고 나면 내손에 목장갑이라니 하면서 펑펑우신분도 여럿계셨었습니다.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저는 머리굴리는 일보다 이일하면서 보람느끼면서 일하는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길가다가 제가 직접 도색한곳을보면 저기 정말 더운날 직원사람들하고 힘들게 작업했는데 ...하면서 이생각 저생각 많이하게 해주는 직업입니다. 대기업다니다 목장갑끼셨다고 펑펑우시는분들 지금 이곳에서 팀장하시면서 "옛날로돌아가서 스트레스받고 구조조정이라는 압박받는것보다 가족과 즐거운시간 많이 보내면서 보람느끼는일 하고싶다 " 라고 하셨습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다 라는말이 있습니다.
또 제 나이또래 저 비웃으시던분들 한만큼 되돌아 온다는 말이있습니다.
그쪽이 저를 그렇게 대하셨지만 저는 지금 법원경매로 포천시에 작은집까지 낙찰했습니다.또 5시퇴근하면 사진학원다니고 사진하시는분들 중대사진학과 입시 준비중입니다.
절 비웃던 사람들 그쪽은 얼마나 대단하신지는 모르겠지만은 노력하는분들 비웃으면서 깔보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