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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성에서 온 왕자님

wagi |2004.05.13 15:14
조회 1,899 |추천 0

3. 준서의 정체


“어머, 정말이야? 준서 걔 생각보다 심지가 굵네.”

 

“드디어 내 인생도 찬란하게 꽃피는거야.”

 

“내 생각에는 그날 준서가 제대로 안 당했다 싶은데.”

 

“악담을 해라. 넌 내가 잘 되는게 그렇게 배아프냐?”

 

“아니, 솔직히 니네 오빠들을 보고 붙어있을 남자가 어디 있냐?”

 

“그러니까 내 짝이라는 거지.”

 

“어, 근데 오늘 데이트가 꽤 어려울 것 같다.”

 

“왜?”

 

미진이가 가리킨 곳을 무심코 쳐다본 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니, 저 녀석이 여긴 왜? 혹시…’

 

윤은 자기도 모르게 오빠들이 숨을만한 장소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미진이는 남의 속도 모르고 방긋 웃으며 유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여기야, 윤이 찾아 온 거지?”

 

유진이 다가와 미진이 등뒤에 숨은 윤에게 한심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거기 숨으면 네 덩치가 가려진다고 생각하는 게냐?”

 

“뭐야?”

 

“유진이가 틀린 말은 안 하지.”

 

“너까지 뭐야?”

 

미진은 환하게 핀 얼굴로 유진의 팔짱을 끼려다가

유진이 피하는 바람에 허공을 휘저은 꼴이 되었다.

 

‘혹시 오늘 나 데이트 있는 거 알고 온 거 아니야? 일단 피하고 보자.’

 

“미진아, 너 저번에 유진이한테 물어볼 거 있다고 했었지 않니?”

 

“내가 언제?”

 

“아이, 왜… 저번에 그랬잖아.

 일단 이야기를 해 봐. 하다보면 반드시 생각날 거야."

 

멀뚱히 서 있는 미진과 유진을 버려두고 윤은 달렸다.

 

‘미안하다, 미진아.

 악마의 손아귀에 널 버려놓고 가야 하는 내 심정도 좀 이해해 주라.

 나중에 준서랑 잘 되면 새끼쳐서 보답하마.

 아니, 넌 남자가 많으니까 돈으로라도… 아니, 난 돈도 없는데… 아무튼…’

 

이런 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준서와의 데이트에

줄기차게 따라붙은 그림자가 있었으니….

 

도시락을 들고 멀뚱히 윤의 뒤를 쫓는 유진이었다.

 

‘100미터 23초 주제에 뛰면 얼마나 뛴다고.

 그나저나 한이형은 왜 나한테 이걸 전해달라고 한 거냐.’

 

한편 준서는 윤의 옆모습을 천천히 살펴보며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래, 오늘 보니 꽤 귀엽네. 순진한 맛도 있고…

 역시 여자들은 다 예쁜 구석이 하나는 있다니까. 난 역시 여자가 좋아.’

 

“뭐 먹을까? 사과로 사는 거니까 네가 먹고 싶은 걸로 하자.”

 

‘난 비싸고 가끔 먹는 건 다 좋더라.’

 

윤은 속마음과는 달리 천진하게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야, 나 가 본 데가 없어서 잘 몰라. 네가 골라주는 걸로 먹을게.”

 

그런 둘의 대화를 엿들은 그림자는 잠시 멍해졌다.

 

‘사준다는데 비싸고 가끔 먹는 걸 먹지, 왜 안 하던 짓을…’

 

“여기 떡볶이 2인분하고… 라면 하나요. 면은 두번 삶아 주세요.

 윤이도 기름기많은 건 싫지?”

 

“그럼.”

 

‘쪼잔한 새끼. 겨우 분식집에 와서 별 쇼를 다 하네.

 왜, 차라리 웰던으로 익혀달라지.’

 

준서는 아무말없이 방긋거리고 있는 윤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런 애들은 역시 소박한 곳이 좋은가보군. 잘 됐네. 돈도 굳고…

 남는 돈으로 희영이 선물이나 해줘야겠다.’

 

준서와 마주앉은 윤은 준서의 웃는 모습을 보며 다시 생각을 고쳤다.

 

‘돈이 없나봐. 그래도 나한테 밥사주는게 기쁜가. 저렇게 좋아하다니…

 예상외로 건실한 청년이군.’

 

윤은 두번 끓여 퉁퉁 분 면을 먹으면서 웃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지 실감하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못했다.

 

‘그래, 사랑에는 역경도 있는 거야.’


******************


‘아니, 저것들은 어찌하여 목적도 없이 배회하는 거냐.

 밥시간이 다 돼 가는데 이 도시락은 대체 언제 전해주고 들어간단 말인가.’

 

성공적인 데이트를 마친 윤은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준서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아쉽다. 너희 집이 조금 더 멀었으면 좋았을 것을.”

 

‘벌써 동네를 네바퀴나 돌고도 부족하다는 게냐.

 한 바퀴 더 돌 심산이라면 이 도시락은 내일 주마.

 저녁시간을 놓치면 세진이가 밥을 안 준단 말이다.

 그러고보니 세진이 녀석, 요즘 많이 기어오르는데…’

 

“다음에 또 보면 되지.”

 

배시시 웃고는 있지만 윤은 아까 먹은 라면이 위속에서 점점 더 불어나는 느낌에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돌아서는 윤의 손을 준서가 확 잡아챘다.

 

“나랑 있는 게 싫어? 왜 그렇게 급해?”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빠들이 걱정할 것 같아서.”

 

“아직 7시밖에 안 됐는데 뭘.”

 

“우리 오빠들이 좀 유난을 떨거든.”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이라면 나라도 그럴 거야.”

 

순간 그윽해지는 준서의 눈빛에 윤은 당황했지만

어깨를 붙들린 상태에서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이, 이건… 너무 이르잖아!’

 

“작별인사 정도는 하게 해 줘.”

 

윤은 손을 흔들었다.

 

“빠이빠이~”

 

“풋, 넌 정말 귀여운 애야. 그럼 답례를 해야지?”

 

준서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윤은 경직한 채 점점 고개를 뒤로 빼다가 벽에 쾅 부딛히고 말았다.

 

“아야!”

 

진퇴양난이다. 앞에서는 준서의 입술이, 뒤에는 벽이 윤을 가두고 있었다.

 

“저, 저기… 집앞이거든?”

 

“괜찮아. 인산데 뭐.”

 

‘넌 괜찮을지 모르지만 난 안 괜찮아!’

 

“싫어!”

 

“수줍어 하기는…”

 

물러서지 않는 준서의 끈적함이라니…

윤은 있는 힘을 다해 준서를 떠밀었지만 준서의 얼굴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기까지.”

 

윤과 준서 사이에 꽃무늬 도시락이 끼어들었다.

 

도시락과 입을 맞춘 준서는 황당한 표정으로 도시락의 임자를 쳐다보았다.

 

“유진아!”

 

생전 처음 유진이 반가웠던 윤은 얼른 유진의 등뒤로 숨었다.

 

‘그런다고 가려지지 않는다고 일러줬거늘. 역시 머리가 나쁜 게야.’

 

“김유진? 네가 왜 여기에?”

 

유진을 본 순간 준서는 뒤로 사사삭 물러나 주위를 살폈다.

 

“네가 여기 있다는 건 혹시 이한선배도?”

 

“한이형은 집안에 있다.”

 

“집안? 집안이라니? 이 집안?”

 

“그렇다.”

 

경악한 표정으로 대문을 한번 본 준서는

화들짝 대문에서 떨어져 윤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대체 이한선배랑 무슨 관계인 거야?”

 

“혈육이니라.”

 

윤이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유진이 대답했다.

 

“이한의 동생? 네가?”

 

다음 순간 준서는 동네가 떠나가라 괴성을 지르면서 저만치 뛰어가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어쩌다가 이한 동생이랑… 그것도 이한이 있는 집 앞에서…

 정신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 저주받고 싶지도 않아!

 잠깐, 정신병원에도 여자는 있던가?’


******************


“자, 어서 받아가거라. 너의 도시락이니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윤은

하필 유진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구겨졌다.

 

“겨우 이거 땜에 계속 쫓아다닌 거야?”

 

“한이형이 오늘 전해달라고 부탁했느니.”

 

윤은 도시락을 나꿔챘다.

 

“받았으니까 됐지? 이제 찢어지자.”

 

“헌데... 그 아이와는 무슨 일로 하루 종일 붙어다닌 게냐?

 혹시 너 그 녀석에게 빌린 돈이라도 있는 게야?”

 

“뭐가 어쩌고 어째? 넌 눈 없냐?

 아까 그 장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난 말이야, 오늘 당할 뻔 한 거라고. 너무 예쁜 것도 피곤한 일이야.’

 

“그게 아니라면 그 아이가 어찌 너를 협박하고 있었던고?”

 

“협박? 넌 그게 협박으로 보이디?”

 

비틀 쓰러지려던 윤이 유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유진이 가만히 윤의 손을 잡았고 순간 윤은 놀라 유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놔라. 옷 늘어난다.”

 

그리고는 옷을 잡고 있던 윤의 손을 떼어냈다.

 

“너 말이야, 내가 경고하는데 다시는 나 따라다니지 마.

 오늘도 봐라, 너 때문에 다 망쳤잖아!”

 

“협박받고 있는 걸 구해줬더니...

 그 아이는 여자들만 골라서 협박하고 다니는지 늘 여자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더구나.”

 

“네가 봤어? 봤냐고!”

 

"보았다."

 

당당한 유진의 대답에 윤은 할말을 잃었다.

 

‘그래, 이 놈이 비록 독설은 퍼붓지만 틀린 말을 한 적은 없어.

 그럼 준서는 대체 뭐지?’

 

“학교에서는 그 녀석을 일러 박사노바, 호색한,

 때로는 여자에 환장한 놈이라 하더구나.”

 

유진은 얄밉게도 윤의 속마음을 읽은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윤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이야? 너도 준서가 그러는 걸 봤단 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강의실로 난입한 한 처자가 박준서를 붙잡고 울부짖다가

 갑자기 과도를 꺼내들고 죽는다고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었다.”

 

“헉,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됐는데?”

 

“그 후로는 본 적 없다.”

 

“......”

 

윤은 아무 말없이 대문안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유진은 쯧쯧 혀를 찼다.

 

“꾼돈이 있다면 얼른 갚는 것이 좋을 듯 한데.”

 

돌아서던 유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밥때가 되었는데 왠지 먹고 싶지 않군.

 세진이에게 돈을 좀 달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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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시아님, 즐겁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 늘 감사드려요. ^^

 

코코님, 3편 올렸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

 

초코초코님, 기대 많이 해 주세요. ^^*

 

바닐라님, 답글 많이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요. ㅋㅋㅋ

이제 보니 윤이가 바닐라님을 닮은 듯한 기분이...^^

 

환님, 남자분이신가요? 말투가 그런 거 같아서... ^^;;  아니라면 죄송~,

근데 이상하게 제 글은 남자분들이 많이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신기해라. ^^

 

유에프오님, 와아, 반갑습니다. 제목이랑 어울리는 닉넴이라 기억에 남을 듯 해요. *^^*

 

야기님, 성이 이씨면 이야기~ 시네요 ^^;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말씀대로 끝까지 쭈욱~ 지켜봐주세요. 화이팅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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