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 요번주에 아주 착실하죠?
ㅎㅎㅎ 비가 그쳐 전 일을 하는 중이랍니다.
새순이 이젠 제법 의젓한 잎사귀들이 되어
푸른 빛을 뽐내는군요. ^^*
햇살도 좋아서 새잎사귀들이 더욱 깨끗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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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classic365일 빈터
20 . 미로 속으로
눈을 떴을 때 창 밖으로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창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와 빌딩들 사이로 해는 지고 있었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감싸고 있었다. 그 붉은
빛 속에 민하 가 서 있었다. 하얀 병실, 빙빙 돌아가는 하얀 천장, 홍이 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민하 는 한숨을 내 쉬었다. 벌써 일주일째 홍이 는 링겔 에 의지해 자고 있었다. 열여섯, 처음 홍이 를 만
났을 때 그 어린아이를 그렇게 붙잡아 두는 게 아니었다고 후회가 되는 건 처음이었다. 차라리 함께 미
국으로 데리고 갔었더라면 , 홍이를 조금만 덜 사랑했더라면 싶었다.
언제나 민하의 마음엔 홍이를 가졌다는 만족감과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이 함께 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민하는 다시 깊이 잠든 홍이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도 다 가지지 못한 홍이의 마음 때문 일거라고 생각했다. 민하는 어느새 홍이의 끔찍한 마음이 같이 아파 와 얼굴을 찌푸렸다. 가만히 손가락을 뻗어 홍이의 땀에 젖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겨주며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홍이는 너무 일찍 혼자가 되어 버린 탓에 강해지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결코 강해 질 수 없는 약하고 여린 마음을 가졌었는데도 불구하고 강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병원에 오려고 홍이의 짐을 챙기면서 홍이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그 상자에서 발견한 유유의 편지는 하나같이 뜯어보지 못한채 가만히 넣어두기만 했던 것들이었다.
그 순간 편지를 곱게 모아둔 홍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흔들릴 것 같은 마음을 두려워해 차마 유유의 편지를 열어 보지 못했을 홍이의 마음이 안스러웠다. 그리고 곧 그 안스러움은 두려움으로 공포로 변해 왔다. 홍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면 민하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홍이는 보낼 수 도 없었고 포기 할 수 도 없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홍이는 완전 탈진 상태였다. 민하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동안 거의 먹질 못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이렇게 까지 아팠으면서도 아프다는 내색 없이 견뎠던 홍이를 생각하자 날카로운 면도날을 한 덩어리 씹어 삼킨 것처럼 아프고 상처 난 곳이 고통스러웠다. 홍이의 고통을 함께 할 수 없어서 두렵고 슬펐다.
“이제 …좀 , 괜찮아?”
홍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민하의 목소리가 홍이의 희미한 의식을 붙들고 늘어 졌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계속 죽음 같은 잠을 자고 싶었지만 일어나야만 했다. 애절하고 고통스러운 눈으로 민하가 내려 다 보고 있었다.
“이젠, 나 알아 보겠어?”
“알아요. 내 신랑이잖아. 내 신랑 이 민하.”
민하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가는 다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나, 너를 잃는 줄 알았어. ”
당당한 그 답지 않게 좀 수선스럽다 싶게 아무렇지도 않게 반기는 민하의 태도가 남의 일처럼 어색했지만 홍이도 민하를 향해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했군요.”
홍이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목이 매어와 홍이의 야윈 몸을 가만히 가슴에 꼬옥 부둥켜안아 보는 민하다.
“그치? 너무 오랜만이지? 우리 색시를 이렇게 안아 보는게? ”
“미안해요.”
홍이는 힘없이 배시시 웃었다.
“근데, 회사는 어떻게…? ”
“응, 난 몇 일 자리를 비운다고 말해 두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저 …그게…아버님은 화가 많이 나셨겠죠?”
깨어난 홍이가 죽을 먹고 있을 때 이 학장이 마침 세호와 함께 병실에 들러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홍이를 쳐다보았다. 속으로는 그깐 철없는 사내녀석 하나 잊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느냐고 쏘아주고 싶었으나, 어디서 내 집안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는 거냐고 호통을 쳐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서 그저 여유롭게 미소만 지었다.
“이러지 말고 너도 어서 집으로 들어가자. 먹을 것도 먹어 가며 간호를 해야 될 것 아니야? , 일도 하고, 언제까지나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이 학장은 한심해서 죽겠다는 듯 당장이라도 퇴원시켜 홍이를 집으로 데려 갈 듯한 못 마땅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어쩌냐? 우린 지금 시간이 없어서. 어딜 좀 가던 길이라. 민 교수와 함께 가봐야 할일이라 … ”
결국 이 학장은 홍이에게는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병실을 나가 버렸다.
“그래? 어딜 가는데 ? 형? ”
확연히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는 민하에게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세호는 미리 주문해서 준비해온 음식들을 을 꺼내 건넸다.
“그만 하니 다행이구나. 응, 문중의 모임이 있다고 롯데호텔에서 모이기로 했어. 시끄러 울듯 해서 심기가 불편하신 걸 꺼야. 이해해 드려라. ”
민하를 위로하며 홍이를 바라보는 세호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 아씨, 그만 해서 다행입니다. 얼마나 민하가 걱정했는지 몰라요. 아씨, 마음을 단단히 가지세요. 네? ”
홍이는 대답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형, 아버지 기다리시겠어. ”
“그래. 내가 전화할게. 근데…너, 얼굴이 반쪽이 됐구나. 이런…”
“아씨, 다른 생각하시면 안돼요? 이젠 안 그러시겠다고 약속하실 수 있지요? ”
“너무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
“그거야 뭐…그런데, 아! 민하야, 나 먼저 가야겠는데. 늦었거든?”
“응…그래, 어서 가봐… 형. 나대신 부탁해. ”
세호가 돌아서서 걷는데 홍이 세호의 이름을 나즈막히 불렀다.
“세호?”
발걸음을 떼려던 세호가 갑자기 서늘한 마음이 들어 홍이를 돌아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 안고 통곡하고 싶은데 민하의 어려운 마음을 생각해서 병실에 오지도 못하고 참아오던 세호였다.
“네, 아씨.”
떨리는 눈으로 세호가 대답했다.
그러나 홍이는 여전히 그 이상은 아무 말도 없이 거기에 그 표정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바라 보고 있었다. 아쉬움이랄지, 안타까움이랄지, 그도 아니면 쓸쓸함이랄지. 그런 쓸슬한 분위기를 풍기며 세호를 불러세워 바라보고 있는 것 이었다. 그런 홍이의 모습에서 민하는 세호에 대한 간절한 애틋함을 느꼈다.
“홍이야, 형은 그만 가라고 하자. 바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다음에 오면 이야기하고 아버지가 밖에 기다리고 계시거든.”
민하가 세호의 팔을 잡아당기자 하는 수 없다는 듯 세호도 병실을 나갔다.
“홍이는 죽을 더 먹지 그래. 어서 먹고 빨리 기운 차려서 집에 가자. 응? ”
“집에…?”
“응, 왜? 집에 가기 싫어?”
“아니, 너무 걱정 말아요.”
“무슨…걱정?”
닫힌 병실 문을 열어 젖히고 의사가 씨익 웃으며 들어 왔다. 홍이는 잠시 어지러운듯 자리에 다시 누웠다.
“약속해요. 앞으로는 다시는 이러면 안되요? 자,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퇴원 시켜 드릴게요. 푹 쉬고 계세요.”
“죄송해요. 선생님.”
자신에게 당부하는 의사를 보며 홍이는 수줍게 웃어 보였다.
“어떻게 … 열은 없습니까? ”
“없어요, 지금은.”
“그럼… 검사 결과보고 집으로 가셔도 좋습니다. 간호사 여기 차트좀 모두 가져다 줄래요? 내일 결과보고 퇴원하실 수 있게 원무과에 말해 둬요. ”
“감사합니다. 선생님. 언제 저녁 대접이라도 하겠습니다.”
“네, 어서 다음 병실로 가 봅시다.”
의사가 민하의 인사말을 괜찮다는 듯 끊으며 앞장서 병실을 나섰다.
“ 홍아, 무슨 생각해? ”
“ 아니요. ”
“집에 돌아가면 말이야. 학교는 조금 쉬도록 하자.”
“네.”
“미안하다.”
“……”
민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가요.”
“시간 되면… 유유라는 그 사람 산소라도 한번 가보자. ”
“……”
홍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대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수저를 내려놓고도 홍이는 자리에 눕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금쯤 어리광을 피웠어도 되었을 텐데. 슬퍼서 죽겠다고 징징거려도 충분히 허용이 되었을 텐데. 어쩌자고 그토록 담담하게 참으려고만 했을까. 민하는 그런 홍이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파 왔다.
민하는 한쪽 팔을 베고 엎드리듯 침대에 죽은 듯 다시 누운 홍이 곁에 기대 누웠다. 단숨에 묵은 피로가 스물스물 몰려들었다. 누운 지 아주 잠깐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가 민하를 깨웠다. 병실 문이 열려 있었고 침대에도 병실 어디에도 홍이는 없었다.
“환자 어디 가셨어요? 안정을 취해야 하는 데요.”
“네?”
“제가 살펴 봤는데 화장실에도 없는걸요.”
병실을 나가다 말고 민하는 작은 책상위 가습기 곁에 놓여 가만히 손짓 하는 하이얀 편지 봉투를 들여다보았다.
민하는 신음하듯 손에 그 편지를 꼭 틀어 쥔채 한동안 서 있다가는 편지를 다시 펴보았다. 그 편지 안에는 아무런 글씨도 씌어 있지 않은채 하이얀 백지만 한 장 들어 있었다.
잠들지 말아야 했는데 그렇게 깊이 잠들지 말아야 했는데 후회로 가슴을 치며 병실을 뛰어 나갔다. 후회 안 하기로 언제나 다짐하며 살아온 이민하도 미칠 것 같은 후회로 가슴을 쳤다.
이번엔 어쩐 일인지 선뜻 응하더라니까? 민하는 세호를 불러 세울때의 홍이의 표정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고 휴학하자고 하는데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던 홍이의 창백한 얼굴을 생각해내고는 자신을 책망했다.
병실 밖으로 뛰어나가 미친 듯이 거리를 헤매고 다녔지만 유유의 편지가 가득 담긴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간 홍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병원앞에 늘 대기 중인 택시들을 모두 붙잡고 홍이처럼 생긴여자를 태우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 서울의 갈만한 곳을 모두 뒤졌지만, 이렇다 할만한 게 나오지 않았다. 안개 속으로 사라져 그 안개에 가려 진 것처럼 아무 것도 없었다. 민하는 세호의 이름을 부르던 그 짧은 기억 속에서 그처럼 애틋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홍이의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그러나 기억은 희미했다. 마치 달 그림자 한 조각이 스치듯 머물렀던 것처럼 홍이의 힘없는 웃음만이 배시시 떠올랐으나 그것 역시 이미 흐렸다. 어디로 간걸까…
아침에 눈을 떳을 때도 홍이는 돌아오지 않았고 찾을 수도 없었다. 길을 걷다가 문득 돌아 본 그곳에도 홍이는 없었다.
다시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민하가 탄 차가 출근길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민하의 눈은 조금 전 거리 저편 커피숍 안, 맞은 편 자리의 다정한 연인들을 향해 있다.
얼굴이 유난히 까맣던 아이… 어디로 간걸까? 그날 옷도 거의 챙겨가지 않았는데 … 홍이도 나처럼 지
금쯤 날 한번쯤 기억해줄까.
이런, 이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다니...... 이민하... 홍이를 생각해서라도 내일부터 다시 알아보고 다시
찾아보자. 너무 미안해서 나를 떠나갔을 거야.
건널목의 신호등이 켜지고 차가 멈춰선 동안 한 무리의 인파가 그 건널목을 지나가는것을 샅샅이 훑어
보면서 부질없는 상념에 애써 고개를 저으며 눈길을 옮긴다. 그리곤 다시 등받이에 기대 새로 온 기사가
운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더 더욱 의자 깊숙이 몸을 묻는다.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난 사람처럼. 민하는 기대 눕자 마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깊은 잠의 나락으
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하는 다시 꿈처럼 보았다. 마지막 돌아 보는 홍이의 긍정하듯 조용히 미소 짓는 모습
을…
' 그럴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를 외롭게 만드는 여자를 하나 알고 있죠. 그러나 그 여자도 그러고 싶은건 아니었을거예요. '
민하는 다시 그대로 그 꿈속에 주저앉았다. 몸에서 기운이 죄다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날 홍이를 잃은 상실감은 어디에서도, 무엇을 해서도 , 어떻게 해서도 다시 회복할수
없는 잔인한 상흔이 되어 민하의 가슴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