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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선생님

철없던 아... |2004.05.15 13:43
조회 657 |추천 1

오늘 스승의 날입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너무나 사무치게 그립습니다.한분은 교직을 떠나신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 계신지 알길이 없습니다.두분은 모교에 재직하고 계시시라 생각하는데 오늘따라 심한 감기 몸살로 부산까지 움직일수가 없습니다.

1984년 중3때 부산 광무여중의 3학년 10반을 담임하셨던 손영철 선생님..새로 부임하셔서 학생들에게 조금은 만만하게 보였던 남자 선생님의 별명은 꺼벙이..우리는 한번도 선생님의 존함을 부르지 않았습니다.항상 꺼벙이.. 꺼벙이..그리고 또 한분 새로오신 영어 선생님의 별명은 어벙이..우리는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별명을 알거라고 생각안했습니다. 알면 우리를 가만 두겠냐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어벙이 선생님이 교실밑 화단쪽을을 지나가는데 우리 선생님이 창가로 다가가 손짓을 크게 하며 부르더군요. 어벙아..어벙아.. 여기 좀봐..

어벙이 선생님이 올려다보며 꺼벙아 왜 그래? 하더군요.그러나 이 아름다운 추억도 저에게는 없을뻔 했습니다.저는 어린시절과 청소년기를 절망적인 방황속에서 보냈습니다.가정문제로 인생의 위기에 봉착한 저는 기억할수 없는 시절부터  자살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때까지 심한 후천적 자폐증을 앓고 있었던 저는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한둘 마음을 맞는 단짝 친구들을 얻게 되었고 겨우 하루에 몆마디씩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하루종일 하는일이 책보고 공부하는 일뿐이어서 성적은 그런데로 상위권이었습니.중3올라가기 전날 저는 무엇엔가 이끌려서 쥐약을 사러 약국에 갔습니다. 약사는 무엇을 느꼈을까 어두운 표정으로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줄수가 없다고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졸랐지만 실패하고 저는 다음날 중3이 되는 첫날 책가방을 들고 그데로 먼도시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그후 이틀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우연인지 낯선 바닷가에서 제주도 출신 가출9뻔째 문학지망생을 만났는데 한눈에 제가 가출생임을 알아보더군요. 그리고 자기가 지금 긴 방황을 마치고 집에 귀환을 하려고 연안부두로 가는데 저를 보고 꼭 같이 각자 집으로 귀환을 하자고 간절히 호소를 하더군요. 자기는 귀환을 하면 우리 집으로 제주도 감귤을 한상자 보내줄테니 그것을 꼭 받고 받았다고 답장을 써 달라고 하더군요.

이런 우연챦은 일로 저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학교도 가게 되었습니다. 2학년 유일한 친구 주희가 난리가 났습니다.저는 그때 손영철 선생님을 처음 뵈었습니다.저를 보시더니 네가 ***냐 하시고 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저는 꾸중을 듣거나 퇴학을 당하지도 않았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일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며칠뒤 주희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2학년과 3학년의 경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두분 선생님이 아주 아주 상심하시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유일한 친구인 자기를 불러 물어보길래 가정에서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는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2학년 선생님은 불쌍하다 이해가 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3학년 선생님도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3학년 선생님은 저에게 아무것도 묻지를 않으셨습니다. 친구들도 제가 며칠간 아파서 결석한 것으로 알고 있더군요.조금은 죄송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제 방황이 너무 심각해서인지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릴 여력이 그때는 정말 없었습니다.그뒤로 선생님은 저에게 아무 선입관이 깃든 시선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그냥 놔 두셨습니다.그런데 두달 뒤 스승의 날에 반친구들이 사직동에 있는 선생님 댁을 간다고 너도 갈래? 하길래 무심코 따라나섰습니다.선생님 댁은 작은 아파트였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친구들과 함께 들어서자 선생님이

저의 이름을 부르시며 나직히 ***도 왔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그러자 그소리를 들으신 사모님이 너무나 놀라시며 자신도 모르게 아니 그럼 얘가 그럼 그때 그일로 ..어쩌고 저쩌고..다른 아이들은 알아듣지를 모했지만 저는 제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나때문에 얼마나 곤란하셨는지.. 잠도 못 주무셨고..얼굴이 팍상하고 걱정 근심으로 식사도 못하셨다는 것을..

모든것이 너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아무말없이 받아주시고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모든것을 덮어주신 선생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우리 선생님이 어떠한 사랑을 나에게 베풀어 주신 것인지..

그후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긴 했습니다.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선생님이 인문계인지 실업계인지 적어내라고 했습니다.인문계를 적어서 앞으로 가지고 갔습니다.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제가 인문계 갈 실력이 되는지..말끝을 흐리는 저를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가볍게 튕기시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녀석아. 당연히 갈 수 있지.. 네가 못가면 누가 가겠냐?눈물이 날것같았습니다.공부 잘하라 고 다시는 집나가지 말라고..한번 더 나가면 어떻게 하시겠다고 한마디도 없으셨던 선생님은 저를 계속 염려의 눈길로 지켜 보셨던 것을 그때 느꼈습니다.

참으로 하늘보다 높고 부모보다 더한 사랑으로 저를 지켜 주셨던 선생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진여고에 진학을 했습니다.중학교때보다 한시간이나 빠른 등교..어려워진 교육 과정

웃음이 없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저마다 자기 공부에 묻혀 딱딱한 경쟁의식으로 무장한 친구들..

10시까지 계속되는 야간 자율 학습..저는 차츰 부적응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지각이 잦아졌고

공부가 무서웠고 가뜩이나 영양실조로 약한 몸이 견디질 못하게 되었습니다.게다가 선생님들은 농담이 없었고 사립고등학교라 제가 다닌 공립 중학교에서 느꼈던 화목한 기분은 없었습니다.

중학교때까지 꽤 잘했던 영어 성적이 곤두박질쳤고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영어공부에 차츰 의욕을 잃었습니다.둘째딸인 저를 부모님이 아주 싫어하셨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체가 (저는 입학 우수 학생  반액 장학금을 받고 고등학교을 다녔습니다.)부모님으로서는 저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하고 있는 것이어서 제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중 3선생님이 계셨지만 더 이상 실망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생각이 좁았습니다.

전교 2등으로 입학한 저는 차츰 그렇게 낙오하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날 영어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영어 문장 15개가 적힌 인쇄물을 주시고는 다음주에 문장 외워쓰기 시험을 볼테니 공부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이시간에 시험이 보기 싫은 학생은 자기가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복도에 나가 서있으라고 그러면 시험을 안보게 해주겠다고..

친구들은 참 열심히 외우더군요. 그렇게 복잡한 문장들이 아니고 비교적 기본문장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미 영어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정말 한문장도 안외웠습니다. 다음주 영어 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 저는 두명의 간큰 친구와 함께 복도에 나가 서있었습니다.

힘들게 시험볼 친구들을 안됬다고 생각하며 나름데로 시험안보게 됬다고 여유를 부리며 좋아하며 그렇게 서있는데 선생님이 나오시던구요. 너희들고 들어가라.. 시험을 봐라 하시더군요..

이건 약속이 틀린데.. 선생님이 약속을 어기시다니.. 속으로 툴툴대며 들어가서 백지를 받아들었으나 선생님이 우리말로 불러 주시는 영어 문장 열다섯개 중에 겨우 두개를 정확하게 쓰고 마는데 그쳤습니다.

두개는 완전히 기본 실력으로 쓴 겁니다.채점이 끝나고 한 학생씩 불려나갔습니다.그날따라 선생님은 회초리를 준비해 오셨습니다.어떤 학생은 그냥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한두대씩 맞기도 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내민 시험지를 잠시 보시더니 저에게 나직히 손을 내밀라고 했습니다.제 얼굴이 선생님 얼굴을 바로 향하지 않도록 옆으로 세워 놓으시고 제두손을 부드럽게 모아서 살며시 잡았습니다. 그리고 회초리를 치켜드셨습니다.선생님의 태도가 부드러웠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그렇게 심한 무서움에 떨지는 않았습니다.회초리가 손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저는 견딜수 없는 아픔에 몸을 떨었습니다.마치 손을 불구덩이 속에 집어 넣은것 같았습니다.  손을 감추지도 못하고 다섯대의 아픈 매를 맞고 돌아서 오는데 눈물이 나서 혼났습니다.20년이 지난 지금도 조금 무리하면 그때 맞아서 약간 다친 엄지손가락 뼈가 조금씩 아픕니다. 하여튼 엄청 아픈 매를 맞았습니다.그뒤에 저는 다시 또 그런 매를 맞게 될까 하는 마음에 고등학교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영어공부를 하게 되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영어를 공부하고 있더군요-마침내 고등학교 영어 공부를 거의 정복하게 되었습니다.수학도 정말 많이 떨어졌는데 수학 선생님은 여학생은 으레히 수학을 못하는 것으로 여기시는 분이었는 까닭인지 우리반 절반이 수학 시험에 0점을 받아도 한번도 매를 때리신 적이 없고 성적도 많이 오르지 못했지만 영어가 너무 향상이 많이 되서 대입때 모자란 수학 점수를 카바하고도 남을 정도록 성적이 나와서 상위권으로 교대에 입학을 해서 초등학교 교사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교사가 되어서 스승의 날이 되면 우리 선생님들이 참으로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영어 시간에 정신을 번쩍들게 하신 부산진 여고의 이훈 선생님은 학생주임선생님이셨습니다.일명 학주셨는데 그뒤로는 그렇게 학생을 매질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3학년 선생님은 중 3선생님과 비슷한 분이셨는데 저는 교대로 가라고 인도해 주신 분이십니다.하보희 선생님이십니다. 참으로 어질고 인격적인 분이셨습니다.

따뜻하고 정이 많으셨습니다. 지각대장 저를 많이도 참아 주셨습니다.교대 원서 쓸때 교대응시생은 원서의 필체도 중요하다고 직접 써 주신 분입니다. 지각대장 저를 모든 행동 평가에 가를 주신 분입니다.

교대가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는 저에게 교대를 가라고 인도를 해주시고 제가 합격했을때 부모보다 더 기뻐하셨던 분입니다.교대는 그때 한학기 실제 학비가 20여만원이어서 우리 부모가 참으로 마지못해 보내주었습니다.

지금 열이 나서 몸상태가 많이 안좋은데 그래도 우리 선생님들을 이야기하는 글을 쓰자니 눈물이 나고

자꾸 자꾸 눈물이 또 납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며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 선생님도 모범생이 아니었어..난 말썽꾸러기의 심정을 알고 모든것을 스탠다드로 하지 못하는 너희들의 마음도 이해할수 있어.그리고 덮어주는 사랑의 위대함도 알고..나도 너희에게 그렇게 덮어주는 사랑을 주고 싶어..선생님도 경솔하고 주책스럽고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엉뚱하게 간부어서

엉뚱한 짓이나 하고..그런 학창시절이 있었단다.

늦게 일어나서 지각해 놓고 선생님들앞에서 어쭙잖게 연탄가스를 마셨다고 거짓말하고 어지러운 흉내도 내고..선생님들 다 아시면서 씩 웃고 어서 가서 냉수나 한잔 마시고 정신 차리라고 보내주고..철없던 선생님은 정말 선생님들이 내말에 속아 넘어가신줄 알고 혼자서 좋아하고..그렇게 철딱서니 없고 경망스러웠던 학창시절이 있었단다.87년에 야간 자율 학습 도망가서 양정로에 한창 벌어지는 데모 구경꾼에 끼었다가 최루탄에 잘못 맞아서 길거리에 쓰러지기도 하고 힘들게 학교에 도착했는데 엄청 무서운 지각 담당 선생님이 문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것을 보고 그데로  돌아서 집으로 가버린 일도 있단다.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줄도 모르고 태연히 놀고 있다가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여학생이니까 치마입으라는 소리가 그렇게 싫어서 치마속에 바지입고 등교했다 교문만 통과하고 교실에 가서 치마 훌렁 벗어버리고.. 단속이 오면 다시 치마 입고 얌전히 시침 떼고 앉아 있었지..

 

그리고 때로 지금은 잘못을 해도 야단쳐 줄 선생님이 안계시고 더이상 사랑의 매를 내려줄 선생님이 안계시다는 사실이 말할수 없이 외로움과 허전함으로 다가온다.그때 그렇게 게으르고 시건방진 학생을 손바닥 다섯대만 때리고 마셨는지..싸리 나무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더 때려 주셨더라면 하는 생각도 든다.내가 맡은 학생들은 초등학생이라 난 체벌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가 비록 어른이 되었지만 때때로 사랑의 매가 아직도 내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때 따끔하게 때려 주시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이 든다.스승의 날 노래가 나오면 눈물이 난다.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나를 바라보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먼 시간의 벽을 넘어 어리고 철없는 중고생으로 돌아가 우리 선생님들 앞에 서있는 환상에서 벗어날수가 없다.아이들은 내가 자기들의 부모님들이 준비해준 선물을 그 어린손에 도로 돌려보낼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받는다는 것을 알까?아무리 사양해도 꼭 

선물을 챙겨보내는 어머니들은 선생님 마음이 선물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다시 한번 학생이 되어서 선생님의 따뜻한 눈을 바라볼수 있다면 그리고 선생님의 손에 쥐어진 사랑의 매를 다시 한번 맞아볼수 있다면..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나에겐 그런 좋았던 시간들은 흘러가 버렷다.나역시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등불이 되는 스승이 될수 있을까?스승의 사랑이 하늘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줄수 있을까? 이 지독한 감기 몸살이 낫고 나면 우리 중 3선생님을 꼭 찾아뵈리라. 어디 계신지 모르지만 찾을 길이 묘연하지만 꼭 찾아서 큰 절 한번 올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 고등학교 선생님들도 찾아뵈리라. 방황하는 청소년기에 빚으로 다가오신 선생님들 꼭 찾아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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