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제 한 여대생이 자살할 결심까지 있었다는 절박한 사연을 정리한 것인데, 장난삼아 댓글을 달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 분노를 금치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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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선 남자와 잠자리 했다고 자살을?
이미 천 년 전에 공자(孔子)는 죽었지만, 그의 망령은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서구처럼 성문화가 많이 개방화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는 기성세대를 포함하여 일부 젊은이들까지 성(性)에 대해 왜곡된 보수적인 경향이 짙게 남아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을까? 그럼에도, 최근 한 여대생은 학교선배와 우연히 잠자리를 갖고 자책감과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여 자살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체의 모든 행위가 자신의 잘못이며, 그 사실이 그녀의 부모님을 포함하여 가족들에게 알려질 것이 가장 두렵고, 학교에서 동료들 사이에 입소문이 번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과연 그녀가 죽어야 될 만큼 큰 죄를 지었을까? 오히려 젊은 남녀의 사랑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21세기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 낡은 유교경전을 꺼내들고, 조선시대처럼 남자들은 다른 여성들과 관계해도 관대하고 바라보고, 반대로 여성들은 한 남자를 위해 지조(志操)를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한 윤리와 도덕인가?
당연히 윤리와 도덕은 그 시대와 사회를 지탱해주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시대와 상식을 배반하는 부정적인 일체의 법과 제도, 윤리와 관습이라면, 우리들은 그 부정적 요소에 굴복하지 말고, 과감히 저항할 필요가 있다. 그 저항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유사한 고통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개척하는 원동력이 된다.
더불어, 무지와 편견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를 괴롭히고 죽일 수도 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처럼, 항상 우리들은 자신의 무지와 편견에 대해 살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무지와 편견에 대해 올바른 깨달음을 전해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된 삶이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여대생이 해야 될 일은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당당하게 살아가다보면, 자신과 같은 처지에서 고통을 받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조언자로서, 깨달음의 전달자로서 역할을 해야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자들 중에는 여성과 관계한 것을 마치 무슨 자랑인 것처럼 입소문으로 옮기는 어리석은 경우도 있지만, 많은 남성들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참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현명하고 배려가 깊은 남자라면 상대 여성의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생각해서 언행에 더욱 조심을 할 것이다. 비록 사랑은 영원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그녀가 과도한 자책감으로 어리석은 결정이 없기를 바라며.......
TIP : 언어적 해결의 시도란 말이 있다. 그 의미는 인간의 소중한 자산(資産)인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민이나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상대가 자신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을 다시 살펴보면, 여성 상담전화나 청소년 고민을 해결해 주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비겁한 침묵보다 용기 있는 언어적 해결의 시도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