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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연예인과 사귄다면... <4> 연예인이란..

이원영 |2004.05.28 02:20
조회 3,584 |추천 0


우리가 묵은 VIP룸은 모텔 맨 꼭대기층에 있었다

천장의 덮개가 열리면서 유리관이 나타나고 분위기를 돋우는 인공 비까지 내린다

 


난 꼬마를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꼬옥 덮어 주었다

꼬마는 아까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저씨 가지 말아여... 아저씨 가면 안 되여」

 

「그, 그래... 아저씨 안 갈게」

 

「정말 가면 안 되여. 난 혼자 있는 거 무서워여」

 

「그래... 아저씨 옆에 있을게」

 

 

녀석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밝고 명랑하고 때론 시니컬하고 퉁퉁거리기도 했지만 언제나 당당했는데

지금의 모습은 상처 받고 지쳐 있는 꼬마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여리고 나약한 아이인데...

난 내가 피해 받을 게 두렵다고 몰래 도망칠 생각을 했다니...

정말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실망스러운 존재란 말인가...

 


꼬마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그래

이 꼬마가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해도

말로만 연예인이고 실제로는 꽃뱀이라고 해도

나만큼은 그 말을 믿어주고 감싸줄 것이리라...

 


세상 사람 모두가 이 애를 정신병자 취급해도

나에게는 나만의 연예인으로 언제까지나 기억해 주리라

이 여린 마음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할 것이리라

 

「아저씨」

 

「어, 어?」

 

「아저씨 왜 그렇게 비장한 표정을 지어여?」

 

「아, 그, 그냥...」

 

「근데 아저씨」

 

「어, 어...?」

 

「나 지금 말이에여」

 

「어」

 

「나 지금 아무것도 안 입고 이불 속에 있는 거 알아여?」

 

「어?....... 푸헉!!」

 

「으악! 아저씨 또 코피!...」

 

「앗!!」

 

「... 가 아니라 콧물이 나왔잖아여!」

 

「아...」

 

「진짜 아저씨는 변태스러워! 어떻게 여자애가 벗었는데

 

  그걸 보고 콧물을 흘려욧!」

 

「그, 그건... 니 가슴이 쪼그매니까 콧웃음 나온거지 임마」

 

「아쭈! 또 썰렁 유머 치시는군여!」

 

「썰렁 유머라니 임마. 이래뵈도 잘 나가는 소설가...」

 

「오호! 잘 나가는 소설가!」

 

「그러니까... 앞으로 잘 나갈 소설가란 소리지...」

 

「그럼 지금부터 아저씨의 그 소설에 대해 논해 볼까여?」

 

「그, 그래」

 

「그럼 편하게 누워여. 편하게 얘기하게」

 

「알, 알았어」

 

「아니 침대 속으로 들어오지 말구! 옆에 침대 바닥에 누워욧!」

 

「바닥에 누우면 안 편하잖아!」

 

「그럼 다 벗고 누워 있는 내 옆에 누우면 편한가 보져!」

 

「그, 그게...」

 

「참 편하기도 하겠네!」

 

 

녀석은 베개 하나하고 자기가 몸에 걸쳤던 수건을 휙 던졌다

 


「그거 덥고 누워여」


 

난 할 수 없이 베게를 베고 수건을 덥고... 보다는 냄새를 맡으며

바닥에 누웠다

 

 

「아저씨 소설은 재미 없어여」

 

「그 말은 이제 그만 좀 해라. 날 몇 번 죽이려고 그러냐」

 

「왜 재미 없는 줄 알아여?」

 

「쌍팔년도식 개그라며」

 

「그런 이유보다 현실성이 없어서 재미가 없는 거에여」

 

「현실성?」

 

「소설 제목이 ‘삼수생의 사랑이야기’라고 했죠?」

 

「그래」

 

「쥐뿔도 없는 삼수생과 일류대 미대생의 사랑이야기?」

 

「그래」

 

「소설 속의 주인공도 아저씨구?」

 

「그건... 그래...」

 

「게다가, 그 여주인공은 세상 다 포기하고 삼수생 입시 뒷바라지 하죠?」

 

「그것은...... 그래......」

 

「현실성 완전 제로라는 거 아저씨도 인정하죠?」

 

「......」

 

「내 생각으로는 아저씬 연애를 한 번도 못 해 본 사람 같아여

 

  연애 한 번만 해 봐도 요즘 여자애들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금방 알 거에여」

 

「그래도... 사람들은 이런 사랑 인정해 줄 거야」

 

「오호~~ 아저씨 내 말을 못 믿는군여?」

 

「그래. 난 믿을 수 없어」

 

「그러면 인터넷에 한 번 연재해 봐여. 요즘엔 많이 그렇게들 하니까여」

 

「인터넷 연재?」

 

「연재해 보면 반응을 금방 알 수 있을 거에여. 아마 아무도 안 읽을 걸」

 

「뭐! 너 말 다 했냐!」

 

 

 

 

아유 정말!

저놈의 지지배 말하는 거 진짜 밉게 한다!

상대방 속을 홀라당 뒤집는 것에 타고난 선수같다!

 

 

너무 열 받아서 등을 확 돌리고 외면을 해 버렸다

저 지지배랑 다시 말하면 내가 개다!

 

 

「아저씨」

 

「......」

 

「아저씨?」

 

「......」

 

「아저씨 삐졌어여?」

 

「......」

 

「에구~ 아저씨 삐졌나부다」

 

「......」

 

「남자가 허구헌날 삐져여?」

 

「......」

 

「오늘 처음 만났는데 벌써 몇 번을 삐지나 몰라」

 

「......」

 

「삐지면 말도 안 해여」

 

「......」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말 하다가 지쳤는지 꼬마녀석도 더 이상 말 하지 않았다

 

 

약 5분 정도 지났을까...

 

 

「아저씨 소설 나중에 영화 되면 여자 주인공 누구 할 거에여?」

 

「......」

 

「뭐 영화 될 가능성은 없지만 혹 되면 누가 했으면 좋겠어여?」

 

「......」

 

「주인공 이미지에 맞는 배우가 현재 있으려나?」

 

「......」

 

「그나마 내가 그 이미지에 꼭 맞긴 한데...」

 

「넌 아니야」

 

「피! 왜 내가 아니에여?」

 

「여자 주인공은 맑고 밝고 순수하고 청순하고 환해야 돼」

 

「내가 바로 그런 이미지라구여」

 

「넌 말버릇도 나쁘고 행동도 험악하고 쉽게 삐져서 안 돼」

 

「어휴~~ 아저씨는 내 실체를 봤으니까 그런 줄 알지만

 

  나 원래 밖에서 보이는 컨셉은 순수 그 자체에여」

 

「그래도 넌 아니야」

 

「그럼 누가 해야 되는데여?」

 

「송혜교」

 

「네?」

 

「송혜교가 하면 돼」

 

「혜교 언니가 그 이미지랑 맞는다구여?」

 

「그래」

 

「아저씨 혜교 언니는여 얼마나 내성적이고 낯 가리는데여」

 

「아니야. 송혜교는 밝고 순수해」

 

「아니에여. 차라리 효리 언니가 하는 게 나여」

 

「이효리? 걘 섹시잖아」

 

「효리 언니가 얼마나 털털한데여. 효리 언니가 더 어울려여」

 

「이효리는 안돼. 이미지가 전혀 안 어울려」

 

「정말! 아저씨!」

 

 

 

갑자기 그 애가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등은 돌리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시선이 내 등짝을 후벼 팠다

 

 

「아저씨의 그런 선입관들이 얼마나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지 아세욧!」

 

「선입관 아니야」

 

「선입관이에여! 실제로 보면 안 그렇단 말이에여!」

 

「그렇다면 그건 가식이잖아」

 

「가식이 아니라 컨셉이에여!」

 

 

 

꼬마녀석 완전히 열 받았는지 방방 뜨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이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여?

 

  배우들은 영화에 맞는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이고

 

  가수들은 곡의 컨셉에 맞춰서 노래하는 것이에여

 

  곡의 컨셉이 섹시면 섹시하게, 댄스면 댄스풍으로

 

  배우의 역할이 순수하면 순수한대로, 악하면 악한대로

 

  전부 컨셉에 맞춰서 연기를 해야 하는 거잖아여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안 보잖아여

 

  보여주는 모습을 그들의 모습 그대로라고 믿어 버리고

 

  순수하면 마냥 순수하길 기대하고

 

  섹시하면 마냥 섹시하길 기대하고 혹은 저급하다고 욕 하고

 

  공인에게 공인인 것을 요구하면 공인인 것만 요구해야 되잖아여

 

  왜 우리에게 성인군자의 것을 요구해서 우리를 가식적인 사람으로 만드냐구여!

 

  나도 아저씨 보는 것처럼 성질머리도 있고 신경질도 잘 내고 그래여

 

  그러면 나도 사적인 자리에서 그런 내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거에여?

 

  조금이라도 보이기만 하면 인터넷에 금방 싸가지 졸라 없다고 올라오고

 

  그런 꼴 안 당하려면 난 숨도 못 쉬게 착한 이미지로 살아야 하고!

 

  말로는 솔직한 모습 보여 달라고 해 놓고선 솔직하면 싸가지 없다고 그러고!

 

  좋아하면 좋아하는대로! 싫어하면 싫어하는대로!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에여!!!」

 

 

 

 

꼬마 녀석은 지가 지금 홀딱 벗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 버렸는지

물침대 위에 서서 방방 뛰면서 성질을 냈다

 


내가 웬만하면 한 번 정도 돌아보고 싶어 죽을 뻔 했으나

하두 열불을 토해 내길래 돌아봤다간 아마 제 명에 못 살지 싶어서

 

 

「정말 미안... 너가 그렇게 화를 낼 말인지는 몰랐어...」


 

미안한 표정으로 저딴 멘트를 던지면서 슬쩍 돌아보려고 했는데

 


「쿠울......」

 

 

어라!

저 녀석, 지 혼자 열 내다가 금방 새근새근 잠을 자는 게 아닌가!

정말

도무지 파악이 안 되는 녀석이었다

 


 

(어차피 이번 연재를 하면서 중간에 큰 사건으로 등장하겠지만

미리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삼수생의 사랑이야기’는 결국 인터넷에 연재를 하게 되고

반응이 좋아서 비슷한 시기에 연재되던 소설들 (엽기적인 그녀, 동갑내기 등...)

그 소설들과 함께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현재는 이효리가 여자 주연 배우로 확정된 채 크랭크인을 준비중이다

이효리의 캐스팅은 아무래도... 녀석의 조언이 크지 않았나 싶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어이... 꼬마...」

 

「......」

 

「꼬마 자냐...?」

 

「......」

 

 


저 녀석은 아무래도 만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인가 보다

막 흥분해서 떠들다가 갑자기 잠 들어버리는 그런 캐릭터

 


녀석은 새근새근 잘도 잠을 잔다

녀석이 잘 자나 안 자나 확인차 침대에서 들여다 보았는데도

여전히 새근새근 잘 잔다

 


녀석이 혹시 추울까봐 이불을 한번 들춰 볼까 하다가 (뭔 말이지?)

괜히 이상한 시비에 휘말릴 듯 싶어서

정말 큰 맘 먹고

참았다

 

 

일단은 참고 다시 바닥에 누웠으나

녀석이 한 말들이 자꾸 머리 속에 생각이 나는...

...것보다 역시 녀석의 방방 뛰는 장면들이 괜히 연상이 되어서

 

 

에이!

 

 

도저히 잠이 들지가 않아서

난 벌떡 일어나서는 내 자신에게 또박또박 크게 말하였다

 

 

「내일 오전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려면 알람을 맞춰야 하겠지!

 

  근데 난 핸드폰이 아직 없네!

 

  그러면 핸드폰은 누가 있을까?

 

  아! 꼬마 한테 핸드폰이 있겠구나!

 

  그럼 핸드폰을 꺼내야지!

 

  핸드폰이 어디 있을까?

 

  아! 바지 주머니에 있겠지!

 

  그러면 바지에서 찾아봐야지!」

 


 

난 꼬마의 바지를 뒤지기 위해 침대로 갔다

그래서 침대를 들추려고 했는데

 

 

「흠냐... 난 지금 바지 안 입었을텐데...」

 

 

녀석이 잠꼬대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아차!

 

  바지를 안 입었겠구나!

 

  그러면 바지가 어딨냐

 

  여기 있군」

 

 

여기까지 말 한 다음 난 맥이 풀려서 더 이상 말 할 기운이 없었다

왜 맥이 풀렸나면

뭐 그냥 맥이 풀렸지 뭐

 

 


녀석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배터리가 없나?

전원 버튼을 누르니 핸드폰이 켜진다

핸드폰을 켜고 알람을 열심히 설정했다

 


 

뭔가 한참을 설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 듯 큰 소리가 났다!

나도 모르게 버튼을 눌러서 얼결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 저편에서 당황한 듯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누구야!」

 

「네?」

 

「전화 받는 당신 누구냐고!」

 

 

상당히 목소리가 두꺼운 남자가 열 받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 그냥 사람인데요...」

 

「야 이 새끼야! 너 장난 쳐!」

 

「네?... 아닌데여...」

 

 


남자 목소리 졸라 터프했다

그래서 잽싸게 꼬마를 깨웠다

 

 

「야! 일어나 봐!」

 

 

녀석은 강아지마냥 낑낑거리며 안 일어나려고 그런다

 

 

「전화 왔는데 목소리 두꺼운 아저씨가 화 잔뜩 났어」

 

 

갑자기 녀석이 눈을 퍼뜩 뜬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휙 뺏으며 날 보고 화를 낸다

 

 

「왜 핸드폰 켰어여!」

 

「그, 그게... 알람 때문에...」

 

「큰일났네 정말...」

 

 

녀석은 한숨을 길게 내 쉬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유... 소리 좀 지르지 마요

 

  나 귀 안 먹었으니까

 

  서울 올라 왔어요

 

  피씨방에서 밤 새는 거에요

 

  피씨방 알바 아저씨에요

 

  진짜 알바 아저씨라니깐여!

 

  거 참!!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난 내 맘대로 어디 가지도 못해요!!??

 

  들어가면 되잖아요!!

 

  하루도 맘 대로 못 노냐구요!!!

 

  들어간다구요!!!!

 

  내일 들어갈게요!!!!!

 

  걱정 하지 말라니까요!!!!!!!

 

  에이 정말!!!!!!!!!!」

 


 

녀석이 전화기를 확 끊어 버린다

또 흥분한 거 같다

난 겁이 덜컥 나서 녀석의 눈치를 슬슬 봤다

녀석이 날 획 쳐다본다

 

 

「아저씨!」

 

「어, 어...?」

 

「나 내일 들어가야 되여!」

 

「어......」

 

「이번에 들어가면 4개월 동안 영화만 찍어야 되여!! 젠장!!」

 

「어, 어......」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내일 하루 뿐이라구여!! 젠장!!」

 

「어......」

 

「나 이번에 올라오면 꼭 가고 싶은데 있었거든여!!」

 

「......」

 

「에버랜드하고 캐리비안베이 가고 싶었어여!!」

 

「어......」

 

「나 거기 내일 데려가 줘여!!」

 

「어...... 어?......」

 

「우리 내일 실컷 놀자구여!!」

 

「어......」

 

「그럼 아저씨 빠빠이!!」

 

「어......」

 

 


흥분상태에서 말하던 녀석은

정말 거짓말처럼 이불에 푹 박히더니 금새 새근새근 잠에 빠졌다!

 

 

난 벙 찐 상태로 녀석을 잠시 내려 보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만화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가

난 너무 벙 쪄서

진짜 너무 벙 쪄서 그냥 계속 내려다 보았을 뿐인데

녀석이 무슨 본능인지 이불로 자기 몸을 완벽하게 덮고 자는 게 아닌가

 

 

도대체 이 녀석은 만화 캐릭터처럼 흥분하면 잠이 드는 타입인가

아니면 흥분하고 뒷수습이 감당이 안 되어서

쪽 팔리니까 잠이 드는 척 하는 타입인가

정말 종 잡을 수 없는 녀석이다

 

 


에라

나도 어서 잠이나 자야겠다

내일 들어 간다는데

들어가면 4개월이나 꼼짝 못 한다는데...

재미있게 놀다나 들어가게 해야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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