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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설화(雪化)----------2부

18화가 조금 짧은관계로 17화와 함께 올립니다.

 

 

 

설화(雪化)

 

21  전투


 

번쩍이는 섬광은 결의 눈앞에서도 펼쳐졌다.

 

이미 선비족과 부여군이 맞붙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칼과 칼이 부딪치며

불이 번뜩였다.

 

부여군이 훌륭한 군사들이긴하나 한창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는 선비족을 막기엔

힘이 부치는 상황임이 한눈에 보였다.

 

수세에 몰리는 부여군의 좌측언덕에서 결의 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정렬하며

올라오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선두에 선 병사들은 부여의 원군임을 알리는 깃발을 꽂고 있었다.

 

부여측에서는, 한창 사이가 좋지 않던 가우리측에서 원군을 보낸일이 놀라운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의 등장으로 선비족과 부여족의 사기는 급반전되고, 여기저기서 부여군의 함성이 솟아났다.

 

전투 가운데까지 정찰을 돌고 온 수하의 병사가 선두에 서 있는 결을 향해 말을 달려왔다.

 

 

“족장님...! 위에서 쏟아붓고있는 각궁(*선비족에서 사용하던 소뿔,

또는 나무와 뼈를 결합한 합성궁) 때문에 부여군이 앞으로 진격하지 못하고

이미 많은 손실을 입은 상태입니다.”

 

 

결은 각 대열의 장수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갑옷을 입은 쇠뇌수(*또는 석궁. 장거리 사격용 방어무기로 갑옷을 입은 병사와

입지않은 병사로 나뉘어졌으며 방패를 들었다)는 선두에서 개마기병

(*갑옷을 입은 기마병과, 갑주를 입힌 말)을 보호하라! 

각각 오십보를 사이에 두고 좌측에서 중앙으로 나아간다!”

 

 

결의 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맞추었다.

 

맨 앞줄에 갑옷을 입은 쇠뇌수들이 방패를 들고 기병을 보호했으며, 기병 뒤쪽으로는 갑옷을 입지 않은

쇠뇌수들이 쇠뇌를 장전했다.

 

진군하는동안 좌측으로 빠져있었던 결이 드디어 앞으로 나아갔다.

 

족장이 선두에 서자, 계루부의 군사들은 한층 사기가 높아졌다.

 

결은 부여를 향하는 하늘을 살짝 올려다보았다.

 

 

‘부족민의 피를 흘리게 만든 오늘일을... 하늘은 용서치 않으리라...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겠다.’

 

 

결의 굳은 표정위에서 눈썹이 움찔했다.

 

 

“모두 진격!”

 

 

결의 우렁찬 고함과 동시에 결과 말은 하나가 되어 앞을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사기충천한 군사들이 따랐다.

 

 


 

한편, 휘의 군사는 단연궁을 지척에 두고 포위했다.

 

기마병이 주를 이루던 결의 군사와는 달리, 궁수들이 주를 이룬 부대였다.

 

정면대결을 피하며, 궁을 함락할 목적이 아닌것이다.

 

휘의 명을 받은 전령이 궁으로 향했다.

 

관노부에서는 원이 왕명을 받아 집을나서자마자 그의 처 모로역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모로는 각종 패물이며 비싼 옷가지들을 끝도없이 싸고 있었다.

 

 

“마님, 이것들을 다 어디로 가져가시려는 겁니까?”

 

“흐음... 어차피 이런 허드레 옷 따위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겠지만... 놔둬봤자 어쩌겠어?

어디 쓸데도 없을것이고... 아니 넌 여기서 뭐하고 꾸물대고 있는것이야?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앙칼진 모로의 추궁에 계집종은 놀란 토끼마냥 방을 튀어 나갔다.

 

모로는 문득 쌓아놓은 패물더미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귀고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원이가 멀리 파사국(*페르시아)에 다녀오며 사가지고 온 선물이었다.

 

잠시 귀고리를 보고있는 모로의 눈에서 눈물같은 것이 맺혔다.

 

이내 모로는 귀고리를 패물더미에 험하게 던져넣고 종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것이 모두 내 탓만은 아니야. 당신이 조금만 더 마음을 주었더라면... 아니,

조금만 더 포부가 있었더라면... 여자라고해서 이렇게 살다 죽고싶은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다구...!‘

 

 

짐을 모두 꾸리고 떠날 차비가 끝나자, 모로는 직접 말에 올랐다.

 

그리고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채 종들과 함께 집을 떠나갔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부여의 내성이었다.


 

 

 

그리고 담이는...

 

미동도 없이 방 안, 그대로 서 있었다.

 

담이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간 칼은 담이의 머리카락 몇가닥을 물고 벽에 박혀 있었다.

 

만약 담이가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큭... 내 실력도 녹이슬었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표적을 놓치다니...”

 

 

하지만... 칼을 던진 무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무사함에 안심하면서도, 그녀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는것에

또한번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다.

 

무연은 첫째왕자를 위협하는 존재로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 어떤것도 믿지 못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것도, 흔들리지 않는것도 없고, 손 안에 넣지 못하는것도 없다.

 

하지만 담이는 어떠한가...

 

무연은 담이를 믿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절개과 자존심을 믿었다.

 

때문에, 그녀를 갖지 못하리라는 것도...

 

 

“왕자님...! 왕자님!”

 

“무슨일이냐!”

 

“가우리의 병사들이 단연궁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가우리측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뭐야?”

 

 

담이 놀랐다. 설마... 결님이?

 

죽을 각오로 모든걸 포기하고 있었던 담이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이는 이곳을 지켜라. 전령을 만나야겠다.”

 

“예.”

 

 

무연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담이는 복잡한 심경을 주체할 수 없어, 두 손을 꽉 마주잡은채 서 있었다.

 

무연왕자는 호위무사를 대동하고 전령을 불렀다.

 

 

“가우리의 병사들이 내 궁을 포위하고 있다는데... 사실이냐?”

 

“궁을 침입하거나 전투를 벌일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아룁니다.”

 

“수장이 누구냐?”

 

“대모달 휘님이십니다.”

 

“호오... 대모달이라... 그렇게 대단한 자가 어째서?”

 

“대모달께서는 다음과 같이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왕자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모두 수락하고 이미 계루부의 족장은 전장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으니,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라는 말씀입니다.”

 

“흐음... 그래? 그렇다면, 내가 약속을 지금 지키면, 계루부의 족장이

회군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무엇으로 너희를 믿지? 또, 약속을 지킨다음,

궁을 포위한 군사들이 물러갈거란 것 또한 어찌 믿느냐? 

가서 대모달에게 이렇게 전하라. 선비족과의 전투가 끝나든가, 아니면

계루부의 군사들이 전멸하든가, 둘 중에 하나가 아니면 내어주기로 한 것을

내어줄 수가 없다고 말이다.”

 

 

전령이 예를 갖추고 물러나자, 무연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대모달의 등장이라니...

 

족장의 부탁이었을까? 아니면 대모달조차도 담이에게 휘둘리는 존재인가...

 

휘 역시 전령의 답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부여연 왕자는 역시 교활한 작자이다.

 

그 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떻게 하실겁니까?”

 

 

달나미들이 먼저 입을 연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럴때 무록이라도 있다면...

 

 

“...무연왕자... 믿을 수가 없는 자이다. 결의 소식을 듣는데만도 한참이 걸릴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행동에 옮긴다. 너희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명심해라.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된다.”

 

“넷!”

 

 

궁수들은 장수들의 명령에 따라 궁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과 수풀사이로 몸을 숨기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휘는 궁과 조금 가까운곳에서 달나미들과 함께 어둠을 기다렸다.

 

바이는 무연왕자에게 이들의 동태를 보고하고 있었다.

 

 

“가우리의 병사들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저대로 회군할 생각인지도...”

 

“흥... 그럴리가... 너는... 가우리인들의 자존심을 너무 얕보는군.

분명 호락호락 물러가진 않을거다.”

 

“그럼...”

 

“낭인들에게 설화의 방을 철저히 지키라고 전해라.”

 

“설마 궁에까지 들어올리가...”

 

“저들에겐 달나미라는 무사들이 있다. 달 아래 서도 그림자조차 생기지 않는다는 자들이다.

달나미가 몇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뒤에서 친다면... 너 혼자서는 당해내지 못한다.”

 

 

바이는 속으로 무연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가우리에 갔을때, 족장의 집에서 그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바이의 독침을 맞고 순순히 잠들고 말았던 것이다.

 

 

‘푸하하하... 그들이 과연 천하제일 달나미란 것이야? 무연왕자는 아직도 내 솜씨를 얕보고 있군.

이번에 마주치면 모조리 해치워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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