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머리 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본능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유혹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은 매우 원초적인 것이며 가장 동물적인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를 선택하는 본성적인 기준은 남자가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원시적인 환경에서 힘이란 곧 먹고 살며 자식을 양육할 수 있는 자원의 공급이며 적으로부터의 보호이다. 그 본성은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도 변하지 않고 있으며 무의식 속에서 사랑에 불을 지른다. 서양의 문명이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영어권의 서구인은 다른 문화권 남녀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모습이 미의 정형이 되고, 그들의 습관은 세련됨 그 자체이며 그들의 규범이 도덕의 척도가 된다. 그러니, 한국 여자들이 노랑 머리의 서양 남자를 유혹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남자는 가난한 나라의 여자들을 쉽게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소유라면 페미니스트들이 펄쩍 뛸 일이지만 남성주도의 전통적 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었다. 미국 병사들은 전쟁으로 피폐한 유럽에 들어가 수많은 유럽 여자들을 사 왔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누비며 많은 여자들을 사 갔다. 근래에는 한국도 힘을 좀 쓰게 되었고 중국,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 여자들을 사고 있으며 심지어는 러시아로부터 꿈에 그리던 서구형 여자들도 사고 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아무 여자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 많은 한국 남자들이 태국이나 중국에 가서 중산층 집안의 여자들이나 혹은 많이 배우고 지적인 여자들을 사기는 어렵다.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은 대체로 가난하고 못 배웠으며 무능력한 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여자의 본성에 기인하는 이유들 때문이다. 여자들이 강한 남자에 쏠리는 것이 상정이지만 남자의 부를 다 차지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가수 인순이의 노래에 “난 괜찮아”는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주는 사랑이 아니면 필요없다는 내용이다. 남자가 모든 것을 자신에게 투입해 줄 것이 아니면 여자는 본성적으로 그런 사랑을 거부하며 남자에게 섹스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여자들은 이질적 문화의 서양남자에게서 항구적이고 모든 것을 투입하는 사랑을 기대하지 못하며, 서양 남자를 유혹하지 못하거나 혹은 서양남자의 유혹을 거부하게 된다. 중국여성이나 태국여성을 구하는 한국남자들도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닐 때 그들이 구할 수 있는 여자는 대체로 광의의 매춘부이거나 그런 이방인 남자를 수용해야 하는 처지의 가련한 여자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양남자들과 쉽게 잠자리를 같이 하는 한국여자들은, 자연히, 서양남자들의 유혹을 항구적인 사랑의 메시지로 오해하는 여자들이거나, 사랑의 본성적인 질문에 개의지 않는 여자들일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즉, 서양남자의 유혹을 항구적인 것이라고 오해하는 여자들이거나 서양남자들과 항구적인 관계를 원하는 것이 아닌 여자들인 것이다. 전자는 앞뒤를 제대로 살피고 따질 능력이 매우 부족한 여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매우 식견이 부족하고 지능이 낮고 못 배운 여자들이 된다. 후자는 서양남자를 생식의 파트너로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원어민 영어강사가 몇 십명의 한국여자들을 쉽게 즐겼다고 좋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보면 서양남자를 즐기고자 하는 한국여자들이, 많이 공급되지 않는 괜찮은 모양의 서양남자들을 서로 돌려 가며 즐긴 것이기도 하다.
여자들도 사랑과 유리된 섹스를 얼마든지 원할 수 있다. 여자라고 다 표준적인 본성과 생리를 갖는 것은 아니며 여자들 가운데도 남자같이 무분별(promiscuous)하고 잦은 성적 욕구를 갖는 사람들이 있다. 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원하는 사랑을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원어민 영어강사 같은 외국인은 좋은 유혹의 대상이 된다. 괜찮은 외모의 서양남자는 일시적이나마 동경을 현실로 만들어 주고, 서양남자와 연출하는 친밀한 모습은 열등감을 불식시켜 주며, 영어 강습이라는 합리적인 기회가 제공되며, 적극적으로 달려 들어 유혹하면 쉽게 넘어 가며, 같은 사회의 사람이 아니어서 사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자극과 궁핍을 느끼는 한국여자에게는 호재인 것이다.
원어민 영어강사의 즐거운 비명에 한국남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본성적인 것이다. 한국여자는 한국사회에 속하며 관념적으로는 한국남자의 성적인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원어민 영어강사와 잠자리를 같이 한 한국여성들은 간통한 것이며 한국남자에게는 최대의 모욕이고 참을 수 없는 손실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그대로 간직되어 있는 동물적 본성의 시대착오적 발현에 불과하다. 섹스가 생식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모든 한국여자들이 서양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한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도 원어민이 즐겼다기 보다는 한국여자들이 즐긴 면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원어민 영어강사가 즐긴 어떤 한국여성도 그 남자가 여러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원망하거나 또 그 남자와의 추억만을 그리며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사람은 없다. 서양남자의 신선함과 편리함을 맛본 한국여자들은 또 다른 참신한 서양남자 강사가 있는 영어강좌를 찾아 다닐 것이다. 한국남자들이 해외에 나가 후진국 여성들을 사서 욕구를 채우듯이 한국여자들은 수입해 온 서양남자들을 가지고 호기심도 충족시키고, 한국남자들이 해결해 주지 않는 외로움이나 좌절로 아픈 마음을 위로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