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이라서, 라고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우리 음식이니까 내 몸에 맞는가 보다 그랬죠. 그런데 아니에요. 양식, 중식 다 공부했지만 제철 재료를 이용한 과학적이고도 다양한 조리법을 누가 당해내겠어요.”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의 관심사는 우리네 삶과 맞닿은 우리 음식이다. 게다가 영양학적으로도 훌륭한 그 음식들이 다정함까지 겸비했다고 생각해 보라. 어머니를, 어머니의 어머니를,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를 느낄 수 있는 문화의 산증인이기까지 하다면?
“친정어머님이 개성 분이셨는데, 워낙 요리 솜씨가 뛰어나셨어요. 집에는 늘 떡과 직접 빚은 술이 있었죠.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요리하시는 거 지켜보는 게 소일이었다니까요. 어쩌면 음식은 제 고향인지도 몰라요.”
그녀가 끊임없이 옛날 우리 음식을 복원하는 이유도 그런 연유에서라고. 그처럼 따뜻하고 정겹고 영양 만점인 고향 같은 맛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윤 소장은 없던 요리도 개발해내는 요즘, 왜 있던 음식을 묻어둘까 내심 못마땅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조선시대의 ‘증보산림경제’에 수록된 조리법대로 당시의 전통음식 151가지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증보산림경제’는 조선 영조 때 어의를 지낸 유중림이 1766년 펴낸 책으로 당시의 의식주 전반과 사대부 층의 문화생활까지 아우르는 일종의 농업백과사전. 총 16권 12책 분량 중에서 그녀는 식생활과 관련된 치선(治膳)편 상하권을 복원했다. 한문으로 표기된 본문을 한글로 풀어내고, 하나하나 요리로 복원하는 데 6년이 걸렸다. 고어 때문에 벅찬 건 물론이고 구하기 어려운 재료와 계량 단위가 지금과 달라 쉽지 않았다. ‘규합총서’에 이은 두 번째 전통음식 복원은 사라질 위기의 우리 음식을 모두에게 환기시켜주었다.
음식문화 바꾸는 그녀만의 온고지신
여자의 것이라 글로 전해지지 않고, 가문의 비법처럼 구두로 이어진 조리법.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수집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래서 종갓집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조리법을 문헌화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후손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음식을 물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식생활만 바뀌어도 질병을 예방할 수 있으니, 그녀가 하는 일은 후대의 건강, 더 나아가 풍요로운 삶을 선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언젠가 겨울 아침이었어요. 부대끼는 속을 달래라며 스승님께서 끓여주신 죽 한 사발은 제게 ‘음식이란 무엇일까’란 화두를 던졌어요. 온갖 한약재가 들어간 떡을 갈아 만든 죽이었는데, 제대로 알고만 있으면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죠.”
간편하고 정성스런 요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녀 중심을 메운 생각들. 그것은 양념 맛이 아니라 재료의 순수한 맛을 살리는 우리 음식의 본령과도 맥이 닿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적확한 맛과 멋의 우리 음식. 그녀는 삶에서조차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던 게다. 어떤 손님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늘 잘 다듬어진 떡국 재료를 냉동실에 쟁여놓고, 질시루 떡카페와 전자레인지용 떡, 간편하고 정확한 조리 방법을 복원, 개발하는 윤숙자 소장. 그녀로 인해 한국음식은 시나브로 세계에 스밀 것이다. 은은하고 담백하게 세계를 휘어잡을 것이다.
우승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