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 -'
두 번째 살인
강력계.
“또 실종신고라고?”
최근 마흔 여 건의 실종신고가 들어왔다.
문제는 그 중 스무건.
실종된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고, 증발한 것 마냥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목격자도 없고, 가출 같은 것을 할 이유도 없었다.
항간엔 요새 서울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실종사건이 연쇄살인이라는 소문이 나돌던데, 조금 걸리지만 증거가 없으니 급하게 판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네, 반장님. 이번엔 은평구였습니다. 21살 이진헌. 대학생. 학교 동기들과의 술자리가 그를 본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우선은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한다.
“......김형사, 일단 그의 친구가 사는 곳으로 가보지.”
“죄송합니다만, 이진헌군을 위해서니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네..하지만 저도 술자리에서 본 게 마지막이라 달리 더 드릴 말이 없는데..”
이진헌의 대학동기 중 한명인 박성웅의 집을 찾아가 탐문수사를 벌였다.
그의 말로는 술자리가 파한 후 술집 앞에서 잠시 얘기를 나누다 각자 흩어졌다고 하는데,
이진헌과 같은 방향으로 가던 박성웅은 이진헌보다 조금 뒤쳐져 걷다가 가장 가까웠던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아, 지금 생각해보면 좀 이상했던 것 같기도 해요.”
한참 상황을 설명하던 박성웅이 말했다.
“가는 동안 제가 좀 뒤쳐져서 갔다고 했잖아요. 근데 걔 표정이 좀 이상했어요.”
“표정이?”
내 옆에서 수첩을 꺼내들고 무언가 적어 내려가던 김형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자꾸 뒤를 힐끗거리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라고요.”
“다른 말은 없었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긍정했고, 탐문수사는 그것으로 마쳤다.
“김형사...김형사는 어떻게 생각하나?”
탐문수사를 끝내고 서로 돌아가는 차안.
운전을 하며 휘파람을 부는 김형사에게 물었다.
“뭘 말입니까?”
그는 분명 내 질문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튕기듯 되물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뒤를 힐끔거리면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라..뒤에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단 거겠지?”
김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난 눈을 감고 조수석에 몸을 묻었다.
“과연 그의 뒤엔 뭐가 있었을까?”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김형사는 다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저게 김형사가 생각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 이랬던가?
그것 참 생각 없어 보이게 만드는 버릇이군.
난 그의 우울한 느낌의 휘파람소리를 들으며 선잠이 들었다.
#
제..젠장...저년은 대체 뭐야...!
아까부터 자꾸 내 뒤를 졸졸 쫓아오는 여자가 있었다.
빨간 코트에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자.
잠시 가게에 들려 먹을 것을 사들고 오는 내 뒤로 계속해서 쫓아왔다.
스토컨가? 하는 생각에 집을 지나쳐 거미줄 같은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었다.
저 여자만 떼어놓고 집으로 들어가야지..
그 안이한 생각 따위 하지 않는 거였는데!!
핸드폰도 집에 두고 나와서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한 5분쯤 골목길을 돌고 돌았을 때, 저 여자가 눈치 챘는지 코트 속에서 기다란 사시미를 꺼냈다.
미...미친년!!!
점점 걸음을 빨리해도 어떻게 되먹은 년인지 하이힐을 신은 채로 잘도 쫓아온다.
헉..헉...
이대로 붙잡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함께 한 시간 정도를 도망 다닌 탓에 체력은 바닥을 기었다.
젠장..어차피 뒈질 거면 남자답게 죽자.
그리곤 달리듯 걷던 다리를 멈추고 뒤로 돌아서서 그녀를 마주보았다.
“야, 이 미친년아!! 뭐야! 스토커냐? 왜 자꾸 쫓아 오냐고!!”
“히크크큭..”
진짜 미친 건가! 이 상황이 그렇게 재밌나?
“저리 꺼지라고!!!”
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신발...
난 사시미를 들이대는 여자를 보고 순간 겁에 질려 뒤로 돌아 뛰어갔다.
골목 이리저리를 들어가며 따돌리려 했지만, 미친 듯 달려오는 그녀에겐 당할 수 없었다.
결국 난 따라잡혔고, 헛하는 순간 등을 찔리고 말았다.
“크헉...”
척추를 분리해 내는 듯한 고통에 난 몸서리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끄허어..미...미친...”
“키히힉..우리..재밌는 놀이 할까?”
여자의 말은 분명 날 죽이고 놀자는 뜻이겠지.
“내가..10초 동안 기다려 줄게..날 피해서 도망가면 돼..제한시간은 한 시간..”
내가 그딴 놀이에 응해줄 줄 알아? 차라리 죽고말지..
“자..시작!!”
“그냥 죽여!! 너 같은 년이랑 어울리느니..죽고말지.......죽여!!!”
조용하던 여자는 이내 입을 열었다.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네가 원한 거다?”
그리고 팔을 높이 들어 나의 등에 다시 칼을 내리 꽂았다.
한 번..두 번..세 번...수십 번을 내려찍던 여자는 남자가 죽자 이내 손을 멈추고 뒷머리를 붙잡았다.
다시 내려친 칼이 남자의 목을 한 번에 잘라내지 못하고 톱질하듯 쓱쓱 밀어서 잘라냈다.
덜렁 잘린 머리를 들어 흔들며 웃고 있는 그녀에게 목에서 뿜어진 피가 쏟아졌고,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며 분수처럼 뿜어지는 피를 감상했다.
몽롱해진 표정의 그녀는 고개를 내리더니 머리를 옆으로 던졌다.
다시 남자의 몸을 잘게 토막 낸 그녀는 품속에서 까만 비닐봉지를 꺼내어 잔해들을 쓸어 담았다.
피로 흥건해진 자리는 나 몰라라 하며 골목을 벗어난 그녀의 뒤로 조그만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와 담과 벽을 핥기 시작했다.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한참 피를 핥던 아이들은 더 이상 먹을 피도 없어지자,
다시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그녀가 들고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배상철 반장님!!”
팟
눈이 떠졌다.
아..잠이 들었었나.
“배반장님, 서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피곤하시면 집에 들어가서 주무십시오. 마무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뭉그적거리며 일어난 나는 차에서 내리고, 김형사에게 먼저 집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라는 김형사의 말을 뒤로하고 잠이 덜 깬 상태로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집에 가는군.
어차피 집에 가도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라곤 텅 빈 썰렁한 거실이겠지.
나이 오십 먹도록 장가도 못 가다니.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문득 자신이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집으로 가는 좁은 골목을 지나갈 때였다.
‘.........! 뭐야!.......고!!’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싸우는 듯 큰 고함소리가 들린다.
어디지?
거미줄처럼 복잡한 골목들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소리가 나는 곳을 알게 되었다.
이 골목길 앞인 것 같은데..
내 시야엔 골목길 끝에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두 개의 인영이 보였다.
가는 인영은 여자인 것 같고, 좀 더 큰 인영은 목소리로 봐서 남자였다.
‘이..이봐, 이유나 좀 알자고..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아까의 고함보다는 좀 작고 애절해진 목소리.
빌고 있는 건가? 여자에게?
조금씩 그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점점 남자에게 다가서는 여자.
손엔 무언가 들고 있다.
칼? 기다란 칼이다..일식요리용 칼인가?
여자의 얼굴은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 외의 것은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순간, 남자가 뒤로 돌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여자도 뛰었고, 그들을 따라 나도 뛰어갔다.
오른쪽..!
하지만 내가 그 골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커브를 돌았을 땐 이미 늦었다.
그 둘은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흐릿한 시선 때문에 그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그 사시미를 든 여자의 옷차림은 볼 수 있었다.
피를 머금은 듯 새빨간 코트.
그때였다.
또 어느 골목에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뛰어간 나는 내가 한발 늦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담과 바닥에 흥건한 피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맞아, 시체..
그 피바다가 된 골목엔 쓰러져 있어야 할 누군가의 시체가 없었다.
어딘가로 끌고 간 흔적도 없다.
끌려갔다면, 흐르는 피 때문에 핏자국이 남았어야 할 터.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나를 깨우는 김형사의 목소리에 꿈에서 깨어났었다.
여기였지..바로 이 자리에서 큰 고함소리가 들렸다...
꿈이라기엔 생생했던 느낌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꿈에서 봤던 그 골목으로 향했다.
꿈과 같은 구조.
골목을 들어가 오른쪽으로 꺾었다.
역시 아무것도 없나...
꿈에서의 자신은 너무도 무력했다.
죽은 사람은 여자인가 남자인가..
칼을 들었던 여자가 남자를 죽였을 수도 있고,
반항하던 남자가 어찌어찌 칼을 빼앗아 여자를 베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죽였다면, 당황하기 바쁠 텐데 이렇게 흔적도 없이 시체를 처리했을 리가 없지.
아니, 이동한 흔적 자체가 안 보이는 걸로 봐선 철저히 계획 하에 움직인 것일 터..
분명 남자가 죽었을 것이다.
난 마지막 비명이 들렸던 곳으로 향했다.
역시 없다.
난 무의식적으로 피가 뿌려져 있던 벽을 손으로 쓱 훑었다.
응?
붉은 흔적.
무언가 닦인 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설마...?
내 꿈이 사실이란 말인가?
아니지..말도 안 되는 일이야.
얼른 벽에서 손을 뗀 나는 왔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다시 집으로 향하던 난 주머니에서 울고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을 보니 김형사였다.
“그래, 무슨 일이야.”
핸드폰 건너편의 김형사 목소리는 낮았다.
“또 실종신고?”
나는 통화를 종료하고 다시 서를 향해 뛰어갔다.
설마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