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환의 집 서재에서 재환과 초희가 서로 각자의 일을 보여 대화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애기한번 해주세요?”
“할아버지?”
초희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저씨 아버지요.”
“아버지라...”
재환은 항참 뭔가 생각해 내려는 듯… 그렇게 서 있었다.
“초희양은 소위 ‘컨닝’ 이라는 것 해본적 있나?”
“조금 엉뚱한 질문이시네요… 뭐 사연이라도 있으세요?”
“아주… 인상적인 사연이지…”
재환은 미소를 지으며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어린 재환은 그의 아버지가 풍기는 무거운 분위기에 잠식되는 것만 같았다. 지금 안방에서 재환은 아버지에게서 종아리를 맞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재환을 엄하게 다스리고 있었다. 재환의 종아리에서 피나 날 정도로 아버지는 아들을 꾸짖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었지만 재환은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저녁이라도 먹게 하죠.”
재환의 어머니니 남편에게 재환을 생각해서 말해 보았지만 아버지는 완고했다.
“그만둬!”
“여보...”
“아, 글쎄 그만 두라니까!”
재환의 이야기를 듣던 초희가 장난기 서린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뭐가?”
“결국 저녁은 못 드셨나요?”
“저녁이 문제가 아니었어... 아버진... 자신의 자식이 떳떳치 못한 일한 한 게 창피하셨는지... 학교를 그만두라고 까지 하셨어... 겨우 초등학생 인데 말야...”
“후훗...”
“웃을 일이 아냐...”
“죄송해요... 근데… 좀… 섭섭하셨나봐요?”
“그땐… 그랬지…”
“지금도 섭섭하신 것 같은데요?”
“…”
재환의 초희의 말에 끝내 대답해 주지 않았다.
“꾀… 엄하신 분이셨나봐요?”
“평생을 그렇게 사셨어... 늘 옳게 말야... 그게 문제였지...”
“문제… 라뇨?”
“나이 40에 얻은 외동아들에게 그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에게는 어떠셨겠어...”
그런 부자관계를 상상하며 두 사람은 잠시 전혀 말이 없었다.
“말해줘요.”
“뭘?”
“아버님이 두 사람 사이를 반대하시는 걸… 어떻게 이해 시켰어요?”
“이해라… 전혀 이해하지 못하셨어…”
신영의 집에 찾아 온, 재환에게 신영이 무엇인가를 따지고 있었다.
“도대체, 왜 부모님에게 날 인사 시키지 않는 거야?”
“...”
“응...?”
“그건...”
“뭐야? 도대체...”
“아버진... 널 이해하지 못할 거야...”
“이해하지 못하다니?”
“너도 알다시피... 난 대학 강의도 나가지만 영화 일도 해... 하지만... 아버진 내가 영화 일을 하는지, 또 내가 유학 가서 영화를 전공한 것도 모르셔... 내가 이러는 것은 그만큼 아버님이 이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시기 때문이야…”
“무슨 소리야 지금...? 주한씨가 무슨... 어린애야?”
“그런 뜻이 아냐...”
“그럼... 내가 영화 배우라서 안 된다는 거야? 지금 그 말을 하고싶은 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나 참! 기가 막혀서 정말...”
“미안하다...”
“그럼, 뭐야? 지금까지 날 만나건 그냥... 장난이었어?”
“그런 거 나야? 절대로…”
“그럼, 왜 영화를 선택했듯이 날 선택하지 못하는 거야?”
“선택하다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듣고싶지 않아! 그런 변명!”
두 사람은 그만 대화가 단절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신영이 말했다.
“일단 만나게 해줘! 내가 책임 질께...”
“그건... 네가 아버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야...”
“그럼, 나보고 뭘 어쩌란 애기야?”
“...”
초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주한에게 다음 이야기를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결국 용기가 없어서 부모님께 한번도 소개를 시켜드리지 못했어...”
“말도 안돼...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땐 그랬어... 나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그 어떤 산보다도 높고 거대했으니까... 항상 날 좌절하게 만드셨지... 내게 돌파구란... 잠시나마 이곳을 떠나는 것이었지. 그런데…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까지도 몰랐는데… 결혼 얘기가 나온 이후로.. 아버진 많이 쇠약해 지셨어… 결국 나도 나이가 들어 가면서는... 아버지의 낮아지는 어깨를 보며... 또 한번 좌절했어...”
“아버지를 정말 사랑하셨군요...”
“그래...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과도 바꿀 수 없었어...”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마주 앉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초희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저... 어떤 사람이죠? 도대체…”
“좋은 여자였지...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 지금까지… 이신영과 아버지 애기 뿐인데…”
“…”
“그러니까… 아저씨는요...”
“...”
“...”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재환은 갑자기 먼저 일어나서 자리를 뜨고 있었다.
그날 밤. 초희는 별장으로 돌아와서 줄곧 인터넷을 통해서 '그루누이' 감독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초희는 그루누이 감독에 대한 데이터를 조사하면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루누이... 그루누이... 왜 자꾸 아무 관계가 없는 이 사람에게 이리 신경이 쓰일까...? 단지 엄마와 아빠가 같은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아빠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어서? 도대체 뭐지…? 이 이끌림은…’
초희는 계속되는 의문 속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