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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방금한 것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요즘 세상에 그거 때문에, 여기서 그거는 키스를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요, 키스 한 번 했다고 책임지시려고 하는 건······. 음···, 그런 생각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굳이 책임진다고 할 필요는 없는 거죠! 아, 그러니까 제가요······, 키스가 미숙했을지는 모르지만, 저····, 음····. 그러니까 처음도 아니었고요. 그러니까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에 결혼을 한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건 제가 싫어요.”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갑자기 바보처럼 말을 더듬거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왜 키스 한번에 윤섭씨가 책임감으로 결혼을 하자는 말을 꺼냈다고 말을 하고 있을까? 책임감으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뻔한 사실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해봤다는 고백을 왜 하고 있는 거냐고?
사실 명확히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윤섭씨가 갑자기 남자로 보였던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명의 남자. 지금 내게 윤섭씨외의 모든 남자들은 그저 남녀구분 없는 그냥 ‘인간’일 뿐이었다.
그렇게 따져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여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좀 떠는 거야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니까. 그렇다! 난 그를 좋아한다. 사랑은 아닐지라도 이렇게 눈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가슴 떨림으로 말을 더듬을 정도로 그를 좋아하는 것이다!
“문희씨! 키스한 것을 책임지겠다고 한 말은 아닙니다.”
“예! 예! 알아요, 저도. 사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요즘 세상에 키스 한 번하고 책임지려고 결혼을 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저, 문희씨! 저는 지금 남들이야 어떻든 관심 없거든요. 좀 전에 문희씨에게 결혼하자고 말했어요. 문희씨는 대답을 해주시면 되고요.”
“그러니까 그 결혼이라는 얘기가 키스 때문에 나온 것 맞죠?”
“아니라니까요. 책임지려고 꺼낸 말이 아니에요!”
“아니, 아니. 책임이 아니라 키스요. 저랑 방금한 키스가 좋아서 한 말 아니었어요?”
“문희씨도 좋았어요?”
“예? 음, 그러니까······.”
‘정신을 잃을 정도로 황홀해서 미칠 뻔했다고, 꿀보다 세상 맛본 어떤 것보다 달았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나쁘지 않았어요. 솔직히 좋았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섭씨의 팔이 허리에 감겨왔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은 나의 뒷목을 잡았다. 항상 풀어진 머리카락들에 의해 가려져 있던 목이었다. 근래 들어 햇빛 구경도 힘들었던 뒷목은 민감해져 있었던지 남자의 손길에 흠칫 놀랐다. 그 대신 내 입술은 아까보다는 용감하게 움직여주었다. 수동적이었던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이쪽에서 그를 느끼고자 적극적으로 그의 입술을 탐하고 있었고, 내 두 손은 그의 목을 감쌌다. 이미 나의 신체 기관들이 나의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볼 수 없었다. 각기 자신들의 쾌감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나의 등을 어루만지던 윤섭씨의 손도 아직 허기진다는 듯 나의 두꺼운 외투의 단추를 풀려냈다. 그제서야 나의 손은 정신을 차리고 나의 의지에 속하게 되었다.
“저, 저기요!”
나는 그를 밀치며 말했다.
“잠깐만요, 이건 너무 이르지 않아요?”
갑자기 내게 밀쳐진 그는 머쓱해 하는 듯 해 보였다.
‘마음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남자들은 이런 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는 걸 잡지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스킨쉽을 거절한 것을 자신을 거절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던가?’
“문희씨 마음 상했어요? 죄송해요.”
그는 미안한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아! 이건 아니지.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려 했던 건 아니란 말야! 그저 너무 빠른 건 아니냐고 물었던 건데.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대답을 할 것이지, 죄송하다니? 그럼 내가 정말 마음 상한 것이 되어 버리잖아! 아니, 저 표정은 뭐야? 마음은 자기가 상한 것 같은데.’
나는 급하게 할 말을 찾았다. 마음 상한 것이 아니라며 그를 달래야 할지 아니면 냉정하게 서두르지 말자고 하며 상황을 정리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 나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을 바라볼 용기는 없어서, 그의 눈과 마주치게 되면 아까처럼 또 말을 더듬게 될까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입가 주변에 희미하게 립스틱 자국이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워 보이던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너무나 단정한 이목구비로 늘 냉정해보이기만 한 그의 얼굴에 번져있는 붉은 립스틱자국은 그를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보이게 했다. 몰래 찹쌀떡을 훔쳐 먹고 안 먹었다고 서툰 거짓말을 하는 어린 아이 말이다.
“윤섭씨가 마음 상한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하하하.”
냉정하게 목소리를 깔며 말하는 윤섭씨를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는 겁니까?”
“얼굴 이리 돌려봐요.”
나는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아 천천히 돌렸다.
“립스틱이 묻어 있는 게 너무 예뻐 보여서 그랬어요.”
그의 입가를 닦아준 후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리고 ‘쪽’ 소리가 날 정도로 한 번 더. 우린 그 상태에서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의 눈동자 속에 내가 보였다. 심장 두근거림이 귓가에 울릴 정도로 격렬하게 뛰었다. 그의 눈동자가 말하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에. 날 사랑한다고. 나 문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양주를 병째 서로 번갈아가며 마셨다. 조금씩 마셨는데도 어느새 한 모금 분량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한 모금이네요. 문희씨가 마실래요?”
“아니요. 윤섭씨 드세요.”
“알고 있죠? 술 다 마시면 대답해 주기로 한 거. 이 거 다 마시면 대답해 주셔야 해요.”
“예. 알고 있어요.”
그는 마지막 남은 술을 남김없이 마셔 버렸다. 그의 매력적인 하얀 목이 길어졌다가 다시 짧아졌다.
“다 마셨어요. 이제 대답해 줘요.”
“예. 하겠어요. 결혼 할래요!”
그렇게 첫 키스를 한 날 청혼을 받는 나는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
***
- 너 미쳤구나!
채련의 반응은 내 예상을 조금도 빗나가지 않은 것이었지만 막상 듣고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미쳤다고까지 할 거 있니?”
- 미친 거지. 미친 거. 너 그거 몰라? 결혼은 미친 짓이다?
“넌 결혼 안 할 거야?”
- 나도 할 거지. 나도 결혼은 할 거지만 정상적으로 할 거라고. 첫 키스에 청혼도 웃기지만 그걸 받아들인 넌 더 웃기다.
“결혼 얘기를 그날 먼저 꺼낸 건 너였잖아!”
- 그건 그런 뜻은 아니었잖아. 네 기분은 어때? 윤섭씨랑 결혼하게 되어서 좋니?
“응. 좋아.”
- 좋아 죽는구나. 그럼 됐지 뭐. 너 나한테 옷 한 벌 사야 하는 거 아니니? 그날 결혼 얘기를 내가 먼저 꺼내줘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너 아니었어도 윤섭씨는 얘기 했을 걸.”
- 싸운 날 윤섭씨를 데리고 나간 건 나였잖아.
“그날은 원래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뭐.”
- 그래서 옷 한 벌 안 사주겠다는 거야?
“사줄게. 사줄게. 이렇게 오기까지 네 공이 크지.”
- 아무튼 미친 것 같긴 하지만 행복해 보이니 다행이다. 윤섭씨 늘 바쁘다면서? 얼굴 보기 힘들겠네.
“응. 얼굴 못 보는 건 내가 힘든 거니까 참을 수 있는데 피곤해 보이는 우리 자기를 보면 정말 미치겠다니까.”
- 우리 자기? 미치겠는 게 아니라 미쳤구나, 미쳤어.
“너 자꾸 미쳤다는 소리 할래?”
- 너 진짜 순진하다. 어쩜 연애 못 해본 티를 고스란히 내니? 그래도 나이가 있어서 이 정도로 빠질 줄은 몰랐는데 아주 푹 빠졌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난 정말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순진한 여자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적어도 연애를 하게 되면 밀고 당기기 정도는 능숙하게 해낼 줄 알고 있었는데 그의 전화가 오기만 해도 목소리는 굳어지고 꽤 긴장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 그 사람 얼굴도 못 쳐다보겠어.”
- 왜?
“너무 떨려서.”
- 야! 끊자. 도저히 들을 수가 없다. 너 그 떨림 멈추면 전화해. 알았지?
“야아. 나 또 큰 일 난 거 있다!”
- 큰 일? 뭔데?
“우리 자기 일주일이나 출장 간데. 나 어떻게 하면 좋니? 얼굴을 일주일동안이나 못 보는 거야. 나 보고 싶어서 밥도 못 먹다가 병원에 실려 가면 문병 올 거야?”
- 문희야! 이만 끊자. 안 그래도 안 친한 우리, 없던 의마저 상하겠다. 끊자, 끊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지나칠 정도였지만 난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런 내 기분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난 행복해! 난 너무나 즐겁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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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편 답글주신
아인토벤님, 이점님, 후^^님, 좋은아이님, 미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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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맘님, 봄꽃님, 시하님, 은아님, 아이티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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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님, 딸이님, 지니님, 코알라님, 최지영님,
-_-+님, 유즈나님, 바른생활소녀님
감사드립니다.
알려드릴 것이 있어요. 7월 4일 독자님들과 만남을 가지게 됐어요.
청평에 가서 고기를 구워먹고 올지
어린이대공원에서 수건돌리기를 할지 아직 결정은 못 내렸지만요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어요!
정모에 관한 소식을 보시려면 클럽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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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나님과 샤이니님,
시아님과 레이나님, 전선인간님과 함께 만든 클럽입니다.
오셔서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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