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미즈넷 30대들의 나눔에서 퍼온글입니다.
힘든 시대에 사시는 분들 모두 힘내세요~ 모두들 화이팅하세요~
제 키는 145 cm에 작은 키 입니다..몸무게는 46kg 이고 머리가 엄청 큽니다..지금은 37살에 남자이고요..
도시로 올라온지 5년째 입니다...
도시로 첨올라올때 가져온 10만원을 여인숙 방값과 빵값으로 다 쓰고 하루 7천원씩 내던 방값을 하루치를 못내게 돼자 여인숙 주인 아주머니가 방을 빼달라고 그러시더군요..
여인숙에서 방값이 밀리기 하루전날 아주머니가 그곳에서 지내는 손님중에 노가다를 나가는 분에게 부탁을해서 제가 그분을 따라서 새벽에 일을 나갔더니 인력사무실에서 저만 일을 안보내는 겁니다..
저에게 키가 너무 작아서 일을 보낼수가 없다고 그러는 겁니다..
그 아주머니도 나름 저에게 신경을 써주신 고마운 분이였습니다..
갈데가 없어서 한참을 걷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빌라앞에 내놓은 짜장면 그릇에 남은 음식물 찌꺼기와 군만두를 남들눈을 피해서 먹으려고 빌라 뒷편으로 가져가서 먹고 있는데 갑자기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오고 잠시후 어떤 학생하고 빌라뒷편에서 음식물을 먹고있던 저를 발견하곤 도독놈이라고 그러면서 빰을 막때렸습니다...저는 배고파서 그랬습니다..정말 죄송합니다..이러고 한동안 혼난뒤에야 그곳을 떠날수 있섰습니다..
짜장면 그릇 3개를 잃어버린 배달원은 순간 화가 났섰나 봅니다...
시골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행복하게 지내던 일들이 생각이 났습니다..고향생각은 두번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고향 생각이 나더라고요...할머니와 단둘이서 5살때 부터 같이 지냈고 할머니가 고생을 하셔서 저를 고등학교까지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없고 아무도 없는 고향으로는 가고싶어도 갈 수가 없섰습니다...
정말 막막하더라고요..이 아무도 없는 거대한 도시에서 어찌살아야 할지를 어떻케 살아내야 할지를 몰라서 말입니다..
가만히 쭈그려 앉아있스니 모기가 물어서 쓰러질때까지 걷고 또 걷고 그러다가 리어카로 박스를 줍는 어떤 아저씨를 만났습니다..그 아저씨에게 아저씨 박스를 주어서 뭐 하시는거에여..이러고 물었더니 아저씨가 웃으시더라고요...나이는 40정도이신데 친절하시더라고요..이걸 고물상에 팔아서 이걸로 돈을 번다고 하시더군요..그래서 그 아저씨를 따라서 같이 다녔습니다..박스나 프라스틱을 주어서 리어카에 실어드리고 리어카를 밀면서 따라다녔서요..리어카가 가득차자 고물상 앞에다가 주어온 박스를 쌓아놓고 다시 가길래 따라다니면서 박스며 헌옷이며를 주어서 리어카에 실어드리면서 밤을 샜습니다..
아저씨가 저에게 이것저것을 묻더군요..저는 솔직히 대답을 했서요..아저씨가 그럼 고물상에다 너에게 리어카를 주라고 이야기를 해놀테니 앞으로 고물을 주으라고 하더라고요..하루종일 열심히 다니면 만원정도는 벌고 화요일은 2만원 정도는 번데요..그럼 밖에서 안자도 돼고 찜질방에서도 잘수가 있다더라고요..
도시에 올라와서 난생처음으로 하루에 8천원을 벌었습니다..삼각 김밥 2개로 하루 를 살았고 물은 고물상에서 얻어서 먹고 잠은 리어카위에 합판을 올리고 그 밑에서 잤습니다...
그러면서 한푼 두푼 모이는걸 만원으로 바꾸고 만원이 모이면 10만원 수표로 바꾸고 그러면 뱃속에다 돈을 간직했서요..씻는거와 볼일은 공원 화장실에서 해결했고요..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데 학원차량안에 타고있던 나만한 어린 아이들이 나를 보면서 욕을하고 웃고 그래도 저는 앞만보고 묵묵히 갔습니다..
한번은 도로에 커다란 차에서 떨어진 모타하나를 주워서 싣고 다니는데 경찰관이 다가와서 신분증을 요구하더라고요..저는 말소상태였고 실려있던 100kg정도에 모타에 출처를 도로에 떨어진걸 주웠다고 말했는데 믿지를 않아서 지구대라는 곳까지 갔습니다..무슨 조서를 꾸미고 중부경찰서로 이송을 시키더군요,,
경찰서에서 말소상태라고 그러면서 수갑을 채웠습니다..그리고 다음날에야 플려날수가 있섰는데 모터에 나와있는 제조표인가 그걸보고 그걸 만든 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그곳에선 그냥 분실했다고만 그러고 도로에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를 안하더군요..차를 세워뒀는데 분실했다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그 회사 사장님이 저를 용서해 주신다고 했서요..그래서 플려는 났습니다..
그리고 압수당한 리어카만 겨우 찻아서는 차이나타운인가 그곳을 돌아다니는데 웬 할머니가 저를 한참을 보시더니 어느 3층건물로 데려가시는 거에요..그곳 옥상에서 장판이며 샷시대문이며 신문 모아둔거를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묻더군요..저는 강원도 살둔이라고 했습니다..그분은 한국사람이 아니라더군요...그런데 한국말은 정말 잘했서요..저보고 가면서 먹으라고 그분이 찜질방에 가져가서 먹으려고 했던 떡을 주시는거에요...정말 고마웠습니다...저는 페티병에 담겨있던 물을 마시면서 떡을 먹었습니다...
처음으로 5만원이라는 큰돈을 벌었습니다...한 2년간 고물을 줍고 돈이 모이면 뱃속에 넣어두고 잠은 리어카에서 잤습니다...
그동안 리어카에서 생활하면서 2백만원 정도에 꽤 많은 돈이 모였더라고요..
그걸로 제일먼져 월세 15만원 방을 얻고 말소가됀 주민등록증을 살린뒤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연안부두에 있는 기아자동차학원 1달만에 1종보통 면허를 얻고 96년식 1톤포터를 고물상에서 70만원에 싸게 구입을 했습니다..
그걸 인천 영종도에 끌어다 달라고 그런뒤 그곳에서 운전감각도 익히고 돌아다니면서 영종도에서 고물을 줍다가 영종도 재개발이 터진거에요..
토지공사에서는 집주인들이 비닐하우스와 방앗간 염전등을 고철로 팔아도 됀다고 그래서 저는 처음으로 방앗간을 60만원을 주고 고철을 샀습니다..그곳을 혼자서 다 철거했더니 고철만 10톤이 나왔서요,,,
1kg에 180원 해서 중상에 팔았더니 180만원에 고철값 60만원 빼고 산소값과 기름값을 빼고 70만원 정도가 남더라고요..5일을 혼자서 작업을 했습니다.밤 9시까지요..비철이 40만원 나왔습니다...
그리고 방앗간 아저씨 소개로 반넬로 만든 조립식 건물을 소개 받았습니다...5가구가 사는 집과 그앞에 교회건물까지해서 100만원 달라고 하더라고요...방바닥엔 동이깔렸다고 그래서 돈을 줬습니다..
그리고 얼마후에 kg에 180원하던 고철값이 500원으로 인상을 하고 동값이 7천원으로 인상을 했습니다...
고철값만 500만원에 동값과 비철값해서 250 나오더군요..혼자서 10일 작업을 했고요..
너무나 좋았습니다...
나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결과가 말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해서 이만큼까지 해낸 제자신이 정말 대견스러워씁니다..
그리고 대책위원장 분들과 부동산 나까마분들이 소개를 해주어서 나중에는 인력사무실에서 아저시들에게 8만원을 주고 일을 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보고 어이없어 하시며 일을 대충대충 하시던 인력사무소 아저시들도 제가 겁도 안내고 몸도 안사리면서 일을 하는걸보고 조금은 도와주시더군요^^
전 지금 송림동에다 실외 17평 실내 15평 자그만한 단독주택을 경매로 2천5백에 구입을 했습니다..
지금은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지금 이만큼까지 오는데 운도 따라주었지만 힘든 시간도 많아?ㅆ고 자살을 생각해 본적도 많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잠시라도 행복했섰던 할머니와에 행복했던 추억을 생각했고 지금에 내 삶과 나에게 도움을 주던 분들에게 감사했습니다...또한 나에게 욕을하고 때리던 학생들과 술취한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했고요..
제가 남들보다는 아주 작은 신체조건을 가졌기에 더욱 열심히 이를 악물고 살은거 같습니다...
생활이 좀 불편한게 뭐가 대수라고 아ㅣ러면서 난 괜찮타고 나자신을 위로하면서 나 스스로를 가두지 말자고 그러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전 여기서 다른분들에 글을 읽다가 나보다 더한 삶을 사시는 분들이 제글을 보고 힘을 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에 2시간을 졸린눈을 비비면서 느린타자로 글을 씁니다...
지금 저는 세상 모든걸 사랑 합니다..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습니다...
언제나 희망을 잃지마시고..나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거인이 돼시길 바랍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작은 거인이라 생각합니다...
(퍼온이: 소설이라고 생각 하시는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악플은 퍼온 제가 받겠고 선플은 글쓴분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