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2nd] #4 화성에서 온 왕자님

wagi |2004.06.29 01:50
조회 1,312 |추천 0

 

4.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뭔데? 말해봐.”

 

아까부터 당최 말을 못 하고 빙빙 돌리는 윤이었다.

미진은 너무 낯선 모습에 흥미까지 느끼면서 윤을 재촉했다.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버벅이는 윤이라니, 이건 상상도 못 해 본 일이다.

 

“그게... 저기, 나...”

 

“아까부터 그 소리만 계속 하고 있는 거 알아?

답답하니까 속 시원하게 말 좀 해 봐. 응?”

 

“......나, 좋아하는 사람이...”

 

“뭐라고? 좋아하는 사람?”

 

미진은 순간 입을 떡 벌렸다.

 

‘얘가 이런 소리를... 하여간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누군데?”

 

“그게... 저기... 네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안 웃을께. 절대 안 웃을 테니까 말 좀 해라. 정말 속이 바짝바짝 탄다.”

 

“세진오빠.”

 

“뭐라고?”

 

이거야말로 정말로 기절 감이다.

미진은 자기도 모르게 가슴 앞에서 성호를 그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이상한가?”

 

윤은 조심스럽게 미진의 눈치를 살폈다.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미진은 오버해서 크게 웃으며 부정했다.

 

“아니야! 이상하긴 뭐가... 사람이 사람 좋아한다는데 그게 뭐가 이상해?

게다가 세진오빠 괜찮잖아. 나이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요새 열 살이야 차이 축에 끼지도 못 하는걸.”

 

“그래?”

 

‘헉, 윤이가 저런 표정이라니... 정말 좋아하는 건가?’

 

“근데 윤아, 왜 갑자기 세진오빠를 좋아하게 된 거야?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뭔가 계기가 있지 않았나 하는 거지.”

 

“그게 말야. 실은 나 며칠 전부터 좀 이상하거든.

근데 이상하게 세진오빠만 보면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게...

그리고 어제는 잠이 깨 보니까 오빠 집에 가 있는 거야.

어떻게 된 거냐고는 묻지 마. 나도 모르니까.

그러다가 세진오빠랑 마주쳤는데 오빠를 보니까 마구 눈물이 나서 한참을 울어버렸어.”

 

“심각하네...”

 

미진은 새삼 윤을 바라보고 뭔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네가 정말로 사랑에 빠진 거 같다.

묘한 일도 다 있네. 오래 동안 서로 봤으면서 이제야 그런 감정을 느끼다니,

윤이 네가 너무 둔한 거 아니야?”

 

“아냐, 그 전에는 이러지 않았단 말이야. 갑자기 가슴이 뛰는 걸 어떡해.”

 

“뭐, 사랑이 예고하고 찾아오는 건 아니니까. 참, 근데 세진오빠는? 알아?”

 

“당연히 모르지. 그냥 이상한 애라고나 생각하겠지.”

 

윤은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좋아한다고 깨달은 순간에 이런 중차대한 실수를 하다니...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보냐? 아니, 그 전에 좋아한다고 말이나 하겠냐?

세진오빠한텐 안 그래도 여자로 보이지도 않을 건데,

거기다가 대고 그런 짓이나 하고 몽유병까지 들켰으니.”

 

의기소침해져 한없이 땅을 파는 윤의 어깨에 미진이 턱 손을 내려놓았다.

 

“나만 믿어! 내 친구가 퇴짜맞는 꼴은 못 보지.

내, 그 동안의 노하우를 몽땅 털어서라도 꼭 네 첫사랑을 이뤄주마.”

 

“정말? 정말?”

 

눈을 빛내며 물어오는 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며 미진은 오랫만에 불타올랐다.

 

‘흥, 어떤 남자도 나의 경험에 의한 가이드에는 넘어오게 돼 있다고.

조미진 사전에 못 넘길 남자란 없다.’

 

이상한 데로 전의를 불태우는 미진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윤은 그저 신뢰에 가득 찬 눈으로 미진을 황홀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어쩐지 네가 요즘 미팅에 별로 열의가 없다 했어.

후후, 이제 우리 윤이도 다 컸구나.”

 

뿌듯한 눈으로 윤을 바라보는 미진은 정말로 엄마나 언니처럼 흐뭇해하고 있었다.

 

“그래, 원래 곁에 있는 사람이 진짜 사랑인 법이지.

멀리서 찾지만 진짜 파랑새는 집 안에 있었던 것처럼.

아아, 아무튼 너무 잘 됐다.

이제 나도 드디어 미팅주선에서 벗어나게 되겠구나.

죽기 전엔 안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더 이상 미팅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냥 기쁜 미진이었다.

 

 


*********************

 

 


‘일단 밀어붙여. 남자는 찍으면 다 넘어오게 돼 있어.

좋아하지 않아도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를 내치는 법은 없거든.

거기다가 너는 든든한 후원자들도 있잖아. 세진오빠랑 보낸 시간들도 길고.

최소한 냉정하게 돌아서지는 못 한단 말야. 그 점을 십분 활용해야 해.’

 

미진의 말을 상기한 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난 어드밴티지가 있어.”

 

‘무조건 찍어. 찍으면 언젠가는 넘어오는 게 남자야.

자존심? 흥, 웃기네. 일단 네 걸로 만들고 나면

그 동안의 수모쯤이야 가볍게 갚아버릴 수 있지.

자존심 생각해서라도 절대 포기하면 안 돼.’

 

“그래, 맞아. 자존심 좀 굽히고 들어간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미진이 말마따나 잡기만 하면야 그게 장땡이지.”

 

‘여자는 첫째가 얼굴과 몸매, 둘째가 애교, 세째가 정성이야.

너는... 일단 첫째랑 둘째는 틀렸고... 컥!’

 

잠깐 이성을 잃어 미진의 목을 잡고 흔들었던 일을 반성한 윤은 미진의 다음 말을 떠올렸다.

 

‘그게 아니라! 너무 익숙하면 그런 게 효과가 없다는 뜻이었단 말야.

귀는 밝아가지고... 아무튼 너의 경우, 정성이야, 무조건 정성! 반복학습!

얼굴을 자주 마주치고 갈 때마다 네가 여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줘.

무슨 구실이든 붙여서 자주 놀러가고. 아! 갈 때 빈손으로 가지 마.

가서도 집안일 같은 거 거들어 주고.’

 

“우웅, 하지만 난 집안일 잼병인데...”

 

‘아, 세진이 오빠 혼자 살잖아. 유진이도 없다면서.

아무래도 혼자 밥먹기 쓸쓸할 테니까 뭐라도 만들어서 가져간 김에 같이 먹고 와.

분명히 감동할거야. 남자를 잡고 싶으면 그 남자의 위를 공략하라는 말도 있잖아.’

 

“그래, 해 보는 거야!”

 

불끈 주먹을 쥐고 화이팅을 외친 윤은

그러나 기백과는 다르게 눈앞에 널린 음식재료들을 난감하게 바라보았다.

 

“근데 뭘 하지?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라면하고 달걀 프라이 뿐인데.

그걸 갖다 줄 수는 없잖아.”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모조리 꺼내놓고 나니 도무지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파랑 양파... 두부... 고기... 근데 이거 정체가 뭐야?”

 

냉동된 고기봉지를 들어서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그 것의 원래 이름을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어쨋든 먹을 수 있는 거긴 하겠지. 으음, 뭘 만들어야 하나?”

 

냉동된 고기가 녹아 핏물이 배어날 때까지 윤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에라, 모르겠다. 뭐든 하다보면 되겠지. 일단 책을 펴고...”

 

‘도시락 반찬 365일’이라는 두껍기 이를 데 없는 책을 척 펼치고

기세좋게 읽어내려 간 것까지는 좋았지만

아무리 읽어도 대체 이런 걸로 뭐가 만들어진다는 건지, 라고 반문하고 싶어졌다.

 

“이거 좋겠다. 부두조림이라... 설명도 간단하고. 좋았어, 오늘은 이거야.”

 

윤은 손가락 끝으로 고기를 집어들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봉지를 벗기려니 속이 매슥거렸다.

 

“아씨. 이게 쇠고기 맞긴 맞는 거야? 일단 잘라놓고 보자.”

 

있는 대로 인상을 그으며 간신히 봉지를 벗기는 데 성공,

윤은 정체불명의 고기를 도마 위에 척 올려놓았다.

 

“납작하게 썰라고? 윽, 이거 칼이 왜 이렇게 안 들어?”

 

거의 톱질을 하다시피 슥삭슥삭 간신히 잘라놓고 보니

납작하기는커녕 뭉텅 잘려나간 고깃덩이들이 되어 버렸다.

난감한 윤은 애써 눈을 돌렸다.

 

“이걸 다시 자를 수도 없고... 근데 100g이 대체 얼만큼인 거야?

에라, 많으면 더 좋지. 넘어가자. 그리고 다음은... 조림장... 이건 좀 쉽군.”

 

양념을 죄 꺼내놓고 하나하나 확인한 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 한 컵에 간장, 고춧가루, 마늘, 맛술... 응? 술이 없는데...

아, 와인 남은 게 있다. 설탕, 깨랑 참기름... 음, 좋아. 다 됐어.

이제 다 넣고 졸이기만 하면 된다 이 거지? 간단하네, 뭐. 요리도 별 거 아니구나.”

 

큰 냄비에 모든 재로들을 다 부어넣고 윤은 랄라랄라 티비를 켰다.

 

“윤아, 이거 무슨 냄새냐?”

 

바쁘다며 요즘 코빼기도 잘 보여주지 않던 한이

타는 냄새에 질겁을 해서 나왔다가 황급히 주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빠, 그거 놔둬. 아직 5분 더 끓어야 한단 말이야.”

 

“대체 이게 무슨 사태야?”

 

한은 졸다 못해 타들어가기 시작하는 냄비의 내용물을 보고는 창백하게 질렸다.

 

“응, 요리 좀 해 봤어.”

 

“설마 이걸 우리한테 먹이려는 건 아니지?”

 

“무슨 말이 그래? 피. 걱정마. 달라고 해도 안 줄 거니까. 참, 오빠, 그거 간 좀 봐 줘.”

 

“이걸 나한테 먹으라고?”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었던 한은 다시 한번 절실히 하나 있는 여동생에게 공포를 느꼈다.

 

‘이걸 먹으란 말이야?’

 

그러나 초롱초롱 빛나는 윤의 눈빛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 한은

젓가락 끝으로 시커먼 양념장을 살짝 찔렀다가 윤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죽지야 않겠지.’

 

“%^#$%^%&”

 

“왜 그래, 오빠? 맛없어?”

 

“여기에 뭘 넣은 거냐?”

 

“책에 쓰인 대로 했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맛이 나오지?’

 

“이건 뭐야?”

 

“고기 넣으래서.”

 

‘한 눈에 봐도 안 익었군. 하기야... 주먹만한 고기가 쉽게 익을 리가 없지.’

 

“윤아, 너 이거 왜 만든 거야?”

 

“비밀이야.”

 

몸을 배배 꼬아가면서 말하는 윤에게 한은 불안감을 느꼈지만

자신이 먹을 것이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삼가 명복을 빕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희동이마을님, 네. 유진이는 어주 멀쩡히 잘 살아 있답니다.

아마도 곧 유진이의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듯. ^^

하지만... 돌아와도 걱정이네요. -_-

얘들이 과연 어떻게 될런지. 한숨.

 

윤호사랑해님, 헉, 그런 협박을...

안 그래도 유진이한테 맞고 사는 불쌍한 처지란 말입니다. ㅠ.ㅠ

이것들이 이제 기어올라선 패기까지 해요. 흑흑.

 

시온님, 고맙습니다. ^^*

유진이는 갑니다. 곧. -_-;;

그러나 윤이가 과연 유진이를 받아줄까요? ㅋㅋㅋ

 

비야님, 오오, *_* 실장님과 같이 보신다구요?

회사분들과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손까지 꼭 잡고 보시다니... ^^ 부러워요.

 

봄꽃님, 뭐, 복병이라고 해 봤자 기존의 인물이었습니다만. ^^;;

유진이한테도 복병이 있을지도 모르죠. ㅋㅋㅋ

온이의 충고는 보시다시피 아주 엉뚱한 사건을 만들고 말지요. ^^

 

닐리리님, 흑흑. 알고보면 제가 제일 불쌍해요.

윤이는 엇나가지, 유진이는 작가를 패지... 님은 게른 저를 독촉하시지...

저도 불쌍해해 주세요!

 

이점님, 반갑습니다. ^^ 고맙습니다. ^^*

신인등장할 때마다 좋아 날뛰는 바기랍니다. *^^*

기억이 돌아오는 약은... 없습니다! 두둥~

딜리트하고 나면 복원은 어려운 거죠. ㅎㅎㅎ

 

보노보노님, 기대대로 즐거우셨는지.. ^^;;

유진이 편들면서 작가 미워! 하시면 안 돼요. 훌쩍.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