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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2-②]-인내심※

미강 |2004.07.02 00:06
조회 3,245 |추천 0

 

 

☆★☆

 

 

 

 하연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민혁은 다시금 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을 작동했다.

 

끊어졌던 첼로 선율은 다시 부드럽게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자네가 보기엔 어때?”

 

 

 

하연이 방에서 나가자마자 민혁의 표정은 부드러워 졌다.

 

가늘게 쏘아보던 눈빛에 따스함이 깃들면서 입 언저리에는 미미한 미소까지 걸렸다.

 

조비서는 그런 민혁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물론 속으로만.

 

 

 

“뭘 말씀입니까?”

 

 

“모르는 척 시치미 뗄 줄도 아나? 저 여자 말이야.”

 

 

“진하연씨는 꽤 유능한 간병인입니다.

 

젊은 나이답지 않게 입도 무겁구요.

 

절대로 간병 의뢰 받은 집에 대해서는 바깥에 말을 옮기지 않으니까요.”

 

 

“능력을 물어본 게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뭘 새삼스레 제 의견을 묻고 그러십니까, 선배.”

 

 

“내 밑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세월이 흐를 만큼은 흘렀습니다.”

 

 

“그렇군. 반항하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마음대로 그러질 못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상황 파악이 안 됐다는 거겠지.”

 

 

 

“진하연씨 말씀이군요.”

 

 

“삼일 기한은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엔 제대로 찾았어. 밖으로 말 새어나갈 걱정 안 해도 되고. 아!”

 

 

 

“…뭐 잊으신 거라도….”

 

 

“진하연씨 핸드폰. 압수해.”

 

 

“그래도 그건 좀….”

 

 

“미주알 고주알 김윤경 실장한테 보고하는 거 맘에 안 들어.

 

괜히 말 새어나가게 하지 마. 어차피 여기서 지낼 거잖아. 둘이 잘 아는 사이라면서.”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처리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자네 하연씨 데리고 시내 좀 나갔다 와.”

 

 

“시내에는 무슨 일로…?”

 

 

“그 옷. 옷이 맘에 안 들어. 영 눈에 거슬려. 무슨 말인지 알지?”

 

 

 

조비서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하루 만에 민혁의 마음에 들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음에 없는 사람에겐 가차 없이 관심의 끈을 모조리 잘라 버리는

 

민혁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관심 없는 사람은 길바닥에서 굶어 죽어도 돌아보지 않을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곁에서 지켜봐 왔기에 옷을 장만해 주라는 지시 사항은 뜻밖의 것일 수  밖에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던 조비서는 소파 곁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하연 때문에 깜짝 놀랐다.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던 하연은

 

방문 닫히는 소리가 나자 슬쩍 뒤를 돌아 봤을 뿐

 

또 다시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잠겨 드는 듯싶었다.

 

 

선해 보이는 하연의 눈망울 끝에는 고집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어쩌면 그 고집 덕분에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든 일들을 훌륭히 해 왔는지도 모르지만,

 

그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사실이 조비서에게는 만만치 않은 난관으로 다가 왔다.

 

 

 

일방통행.

 

돌아가는 방법은 없다.

 

어려운 일일수록 단도직입적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왜요? 저한테 무슨 볼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저…핸드폰 좀 제게 맡겨 두실 수 없겠습니까?”

 

 

갑자기 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는 듯

 

하연은 뚱한 눈초리를 하며 조비서를 바라보았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하연의 눈동자를 애써 외면하며

 

조비서는 일부러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진하연씨 핸드폰은 제게 맡겨 두십시오.”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털을 세운 고양이.

 

빳빳하게 꼬리를 세운 폼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할퀼 것만 같았다.

 

 

평소에는 온순하고 가르랑거리며 얌전하게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만

 

아니다 싶을 땐 180도 돌변하는 여자.

 

 

할퀴어 질 땐 할퀴어지더라도

 

임무는 완수해야 된다는 의무감에 조비서는 빈틈없이 사무적으로 돌진했다.

 

 

“도련님께서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제가 왜 조비서님께 핸드폰을 맡겨야 하냐, 이 말입니다.”

 

 

“제게 맡겨도 아무 일 없습니다.

 

단지 하연씨에게 있던 핸드폰이 없으면 조금 불편할 거라는 것 빼고는.”

 

 

“싫다면요?”

 

 

“이 집에서는 도련님 말씀이 곧 법입니다. 잊으셨습니까?

 

그 조건으로 이곳에 고용되신 걸 잊진 않았을 텐데요.”

 

 

“그래도 싫다면요?”

 

 

“그렇다면 제가 억지로라도 가져가는 수밖에요.

 

그게 제 일입니다.

 

하연씨에게도 꼭 해야 하는 하연씨 일이 있듯이

 

제게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핸드폰은 철저히 개인적인 물건이다.

 

그런 개인적인 물건까지 압수한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절대로 따를 용의가 없었다.

 

 

적어도 하연에게는 말이다.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버티고 선 조비서를

 

한참동안 노려보던 하연은 조비서가 말리기도 전에

 

쏜살같이 민혁의 방문을 벌컥 열어 젖혔다.

 

 

 

아차! 조비서는 속에서 저절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연이 민혁에게 직접 달려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순순히 따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예상을 빗겨나도 너무 심했다.

 

오차 범위를 벗어난 실수였던 것이다.

 

 

막 물컵을 집어 들고 물을 마시려던 민혁은 노크도 없이,

 

게다가 날이 선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하연의 태도에 심한 불쾌감이 들었다.

 

 

난감한 표정으로 하연의 등 뒤에 선 조비서를 잠시 쳐다보던 민혁은

 

손에 들고 있던 크리스탈 컵을 그대로 벽에 던져 버렸다.

 

 

 

쨍그랑― 하며 박살이 났지만 하연은 놀라거나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버럭 소리를 지르는 민혁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하연은 한 걸음 앞으로 더 나갔다.

 

 

겉보기엔 독이 잔뜩 오른 고양이 같았지만

 

하연은 내심 마음속으로 부들부들 떨며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를 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컵까지 집어 던질 줄이야.

 

서슬 퍼런 눈빛으로 노려보는 민혁의 태도에 질린데다

 

조비서까지 말릴 엄두를 내지도 않는 것을 보면

 

하연 스스로 일을 저질러도 단단히 저지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건 아냐.

 

하연의 인내심에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핸드폰을 왜 압수당해야 하는 건가요, 이민혁씨?”

 

“내가 말 안 했던가? 여기서는 내가 법이라고.

 

내가 싫어. 그럼 끝난 거야!

 

그 이유까지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나? 한 번 봐 준 걸로도 모자라?”

 

 

“물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사생활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사생활도 중요하다는 사항을 한 번쯤이라도 고려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사생활? 이곳에서 생활하는 한 진하연씨 사생활은 없어!

 

됐나? 난 밖으로 이런 저런 말이 새나가는 게 맘에 들지 않고

 

하연씨 핸드폰은 업무상 맡겨 두라는 거야! 날 건드리려고 작정한 건가?”

 

 

 

“저도…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고, 성인입니다.

 

아무리 간병인 자격으로 왔다고 하지만 이런 조건은 처음에 없었습니다.

 

제 사생활 침해받을 이유, 없습니다.”

 

 

“…이유? 내가 준 돈 받았잖아! 내 지시 따르기 싫으면 먹은 돈 토해 내던가!”

 

 

 

하연은 민혁의 비열한 말투에 부르르르 몸을 떨었다.

 

돈 앞에서는 자존심도 통하지 않는 법이다.

 

하연은 손바닥이 패이도록 주먹을 꼬옥 쥐었다.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깨물었지만

 

하연은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설움을 이겨낼 수 없었다.

 

 

커다란 하연의 눈동자로 금세 물기가 일렁거렸다.

 

물기가 속눈썹을 타고 뚝 떨어지기 직전 하연은 천천히 방을 나갔다.

 

 

서늘한 기운을 풍기며 자신의 옆을 지나칠 때가 되어서야 조비서는 정신을 차렸다.

 

 

 

“왜 그러셨습니까…?”

 

 

“…몰라.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제가 알고 있던 도련님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좀 당황스럽습니다.”

 

 

“…여자….”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여자. 그래. 그것 때문일 거야.”

 

 

 

민혁은 휠체어를 빙그르르 돌려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액자 속에는 바싹 말라버린 장미꽃이 거칠게 그려져 있었다.

 

이슬을 머금은 선명한 붉은색의 장미꽃 대신

 

갈색으로 물기 한 방울 남지 않은 마른 장미 한 송이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민혁 자신도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얌전히 길 가에 머물러 있던 민들레 솜털 씨앗을 보면 잡아 뜯어서

 

훅, 하고 불어버리고 싶은 기분.

 

 

어린시절 느꼈던 그런 기분과 비슷했다.

 

잠자코 있는 여자를 자꾸만 자극시키고 건드리는 건

 

민혁의 취미로 보기엔 너무나 동떨어진 일이었다.

 

 

깨진 유리잔 조각들을 조심스레 주워 담던 조비서는

 

조금 전에 민혁이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여자.

 

그리고 조비서는 결론을 내렸다.

 

 

몸속에 단단히 생명력을 꽁꽁 묶어두고 있는 여자를

 

툭 하고 터트려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다만 바늘 끝으로 조금만 건드려 본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만 제대로 푹 찔러 버린 것이리라.

 

 

 

“그래도 너무 심하셨습니다.”

 

 

“나도 알아. 심했다는 거…. 지금쯤 진하연 그 여자는 뭐 하고 있을까?”

 

 

“울고 있거나, 짐을 싸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아니. 틀렸어. 그 여자, 절대로 그럴 여자 아냐.”

 

 

“그럼 도련님께서는 하연씨가 뭘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기다려. 10분, 아니 5분만 기다려. 그럼 알게 돼.”

 

 

 

확신에 찬 민혁의 목소리를 들은 조비서는 잠깐 고개를 갸웃 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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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첫날, 어떻게 보내셨나요? ^^

 

저는 여러님들의 리플들을 읽고 댓글을 달며 웃음지으며...그렇게 보냈답니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길게 올려드리고픈 제 마음 아시죠? ㅎㅎ

 

응원 들으면 힘나고 칭찬 들으면 입벌어지고 하연과 민혁의 이야기를 보면

 

더욱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미강이였습니다.

 

아직 잠들지 않은 분들은 아늑한 밤 되시고, 잠드신 분들은 행복한 꿈 꾸시길...

 

미강이는 이만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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