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서원은 처음 검사 결과처럼 사고로 인하여 다친곳은 하나도 없었다. 외관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그 충격으로 인해 자신에 관한 모든 기억을 잊은 것이다.
- 이 환자의 경우 자신이 기억해 낼 수잇는 것 중 오직 ‘자신과 관련된 것’만 잊어버렸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정보,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만 말입니다. 그 외의 다른것들은 기억을 잊기전 그대로 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이름을 다 알고 있으며 그 물건들의 용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환자가 지나간 과거 속에 잊고 싶어하는 어떤 기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일테면 고통스러워 두 번 다시 떠 올리고 싶지 않은 그런 기억 말이죠.
그는 범열에게 묻는 눈치였다. 하지만 범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별로 말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서원이 잊고 싶은 기억이 범열에게도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기 때문이다.
- 기억을 되찾을 수는 있겠습니까?
- 그건 확실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선생님도 이론적으로는 아시지 않습니까? 운이 좋으면 자신의 과거와 연관되어 있는 행동이나 말로 인해 하나씩, 하나씩, 그러다가 모든 기억을 다 찾을 수도 있지요... 다만, 그 시초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 운이 좋은 경우라... 그러면 운이 안 좋은 경우는...
- 예... 평생 기억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거죠... 그래도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환자의 경우는 자신의 기억을 잊었지만 그 잊은 기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 이 모든 것이 확인되지 않는 환자들도 허다하거든요...물론 옛날이야기지 만요... 요즘은 워낙 휴대폰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서 지금 환자처럼 신분을 확인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죠. 그러니 다행이지요. 어떤 경우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마저 잊는 환자도 많거든요... 학습능력이나.. 모든 것을요.
범열은 서원의 잃어버린 26년의 세월을 생각해 보았다. 특히 자신과 자신의 아들과 함께 했던 지난5년의 시간을 말이다. 숨이 막혀왔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 현민의 사무실 분위기는 엉망이다. 아니... 현민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출근 시간이 넘어도 현민이 출근을 하지 않자 다들 ‘당연하지... 어제 그런일이 있었는데...’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현민의 결근에 무덤덤했다. 그런데... 11시를 조금 지나서 현민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이 왜 저러지?’ ‘이건 또 무슨 플레이야!’ 모두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직원들의 복잡한 머리를 현민의 표정은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무언가 아주 골똘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습... 또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떠는 모습... 공포감 까지 조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민은 지금 서원을 생각하다가 신참의사 양동석을 생각해내고는 분을 억지로 삭이고 있는 중인 것이다.
- 야... 실장님 어떻게 된거 아니야...
- 무슨 소리야?
- 어제 그 난리를 쳤는데... 오늘 출근한 것도 이상하고... 화를 참고 있잖아! 지금... 실장이 좀 심한 다혈질이잖아. 평소 같았어 봐라... 저대로 앉아 있겠냐...
- 그게 강실장님의 매력이잖아... 그리고 성격정도야 다른 것들로 어느 정도 커버 되잖아... 인물 되지... 집안 되지... 완전 봉이지 뭐...
- 그래... 일을 잘하긴 하지... 근데, 사람이 너무 차갑지 않냐? 찔러 봐라 피 한 방울 안 나올 꺼다. 내가 장담한다. 그나저나 어제일은 어떻게 처리되는 거지?
-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당연히 우리부서에서 진행하는 거지?
-
아니! 그거말고 왜... 사람들이 일은 장대리가 다한고 뭐... 강실장님은 빈둥댄거 아니냐는 말...
- 에휴~~ 넌 그걸 믿니? 장대리 실력은 우리가 더 잘 알잖아? 브리핑 할때 못 봤어? 남이 한거 가지고 그렇게 할수 있겟니? 그리고 강 실장님... 자존심이 좀 심해서... 밤에 남아서 일했잖아... 낮에는 별루 안하고... 그러니 그런 오해를 하는거겠지만...
- 그렇지...
- 이럴때는 집안 좋은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니까... 괜한 오해만 사고 말이야...
어제 오전 현민은 회사 임원들과 신제품 개발에 참가한 다른 팀 사람들과 대회의실에 있었다. 어제가 6개월 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프로젝트의 당선팀을 발표하는날 이였기 때문이다. 모인 많은 사람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물론 현민 자신도 긴장을 했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무척이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자신감도 조금은 있었다. 그만큼 노력을 많이 했으니까... 예전엔 개발3팀이 한조를 이루어 신제품 개발을 해왔는데... 발전이 없어보이자 회사에서 방침을 내놓은 것이 회사 안에서 서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회 삼아 현민은 아버지의 눈에 들어보기 위해 노력을 했다. 자신이 하는건 뭐든 못마땅해 하시는 아버지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예... 일주일전에 있었던 브리핑들을 토대로 하여 심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결과 발표만 남았습니다.......이번 가을 신상품은 3팀 강현민실장 부서의 안건대로 진행 할 것입니다.
- 와우~....
- 수고한 분들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 그럼 모두들 다시 본연의 임무에 힘을 다해 주시고 나머지 2팀도 강현민실장님이 도움을 필요로 하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지난 6개월간 고생했던 모든 것들이 현민의 눈앞에 영화 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간의 고생을 보상 받는 느낌일 것이다. 정말 6달간의 현민의 생활은 말로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였으니까... 하지만 현민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욕심을 냈다. 그것이 문제가 된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한 그것이... 현민은 자신이 이번 신제품 프로젝트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큰 프로젝트를 같은 부서 장대리라는 사람 한명과 팀을 이루어 준비했다. 어쨌든 행운의 여신은 현민의 손을 들어주기는 햇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현민의 모습은 애쓰지 않앗는데... 회장의 아들이라 무조건 현민의 계획이 뽑혔다고 생각했다.
- 에이 씨발... 더러워서 회사를 때려치우던지 해야지... 시작할때부터 회장아들 꺼 뽑을 생각이였으면서... 자유경쟁은 무슨 자유경쟁이냐? 회장 아들놈이 더 빛나 보이기 위한 들러리가 필요했던거지!
- 그러게나 말이다.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잡고 태어나야 한다니까!!! 어느놈은 빈둥대도 척하니 성공하고 우리 같은 놈들은 죽어라 고생해도 될까 말까니....
- 그건 아니지... 다 같이 브리핑 들어 놓고는 왜들 그래... 잘 짜여진 계획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속상한건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런 교육을 못 받았다는거에 화풀이를 해야지... 왜 엄한 곳에 화를 풀어.
- 그래... 너 잘났다. 니 상판 보기 싫으니까 가라.
- 혹시 아냐? 다른사람이 대신 해줬을지... 만약 그럼 어쩌냐? 니 믿음에 금이 가서...
- 큭큭큭... 얼른가서 딸랑딸랑이나 해라...
멀리서서 이 모습을 현민은 다 보고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다. 너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들이 무시 할까봐 일부러 밤에만 일을 했는데... 그게 이런 오해의 소지를 만들다니... 열이 받았다. 분을 삭이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서 현민은 사무실로 들어가지 않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아무리 서울이 공기가 나쁘다고 해도 높은 곳에서 맡는 공기는 현민의 머리를 많이 식혀 주었다.
- 어머... 정말이야...
- 그래... 어쩜 사람이 그러니...
- 아니... 아무리 회장 아들이라고 해도 너무 한거 아니야...
- 그래... 열심히 일한 장대리는 뭐니?
- 뭐... 그래도 어느 정도의 보수는 받지 않았을까? 그래도 사람인데... 양심은 조금 남아있겠지?
- 야! 양심있는 사람이 그런짓을 하니? 양심을 다 팔아 먹었으니 그런거지... 그리고 지금 돈이 문제니... 머리 굴려가며 고생한걸 어떻게 돈으로 환산하니?
현민은 옥상에서 내려와 사무실까지 오는 동안 게속 이런 수근댐을 들어야 했다. 모두들 현민이 귀를 막아서 안 들린다고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현민이 들으라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어쨌든 현민은 아주 상세히 주변의 수근대는 사람들의 말을 다 알아 들을수 있었다. 좀전에 농담처럼 누군가가한 ‘혹시 아냐? 다른사람이 대신 해줬을지’ 이 말 한마디가 이제는 완전히... 장대리가 준비한 계획을 강현민 실장이라는 놈이 돈을 주고 샀다. 강제로 빼앗았다. 주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협박을 했다... 이렇게 점점더 커져만 갔다. 눈덩이 처럼... 방금전 까지만 해도 현민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고 뿌듯했다. 자신이 한 일의 결과가 좋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사람을 지옥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었다. 현민은 이런 상황까지도 참을수 있는 인내심의 소유자가 아니였다. 아까 마주친 세명의 남자야... 자신들이 지니까 괜히 핑계거리가 필요했고 화를 낼 상대가 필요할꺼라 생각하며 참았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결국은 현민은 인내심을 바닥을 드러냈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도로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자신의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치고 말테니까... 결론적으로 치면... 서원을 차로 쳤으니... 깨끗하게 끝난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 강실장님... 실장님... 강. 현. 민. 실. 장.님.
- 예? 예... 부르셨습니까?
- 예...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십니까? 회장님실 호출입니다.
- 아! 예... 알겠습니다.
- 저... 어제 일은... 그게... 다 해명이 됐습니다.
- 아... 그렇습니까? 잘 됐네요...
이해할 수가 없다. 이성적이고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현민 이였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는데 아버지 치용이 사람의 도리니 출근전에 병원에 들르라며 말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을 텐데 오늘은 현민의 뇌가 파업을 했는지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니면 죽을 때가 되었던가...라고 현민은 생각했다. 그만큼 현민은 번거로운걸 싫어하고 남이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하는 청개구리 성격이였다. 거기다 자존심까지 세서 남에게 머리 숙이면 죽는줄 알고있는 사람이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잘못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서원에게 가기 싫을만한데... 아무런 반항없이 서둘러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현민은 서원과 눈이 마주쳤다. 현민은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느낌!!! 그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삶이 참 우수운 것이 바로 어제 저녁에만 해도 평소대로 몸매에 대하여 평가하던 현민 이였다. 일명 플레이보이의 원조라 할 수있는...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잡지 않는... 절대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하지 못 할 것 같은... 그런 모습이 바로 어제까지의 현민이였다. 물론 서원의 몸매도 어제 평가를 내렸다. 이쁘기는 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현민을 따라 다니는 열혈팬들 중엔 서원보다 못한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동일 인물임에 분명한 이 여자! 문.서.원.에게 한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며 무시했던 자신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현민에게 찾아온 것이였다. 사랑이 이렇게도 오는구나... 라고 생각하던 현민이였다. 그리고 조금후에 일어난... 그러니까 서원이 두려움에 떨며 울던 모습이 현민의 눈앞에 아른거려 지금은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고 서원의 생각외에는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다. 우선은 아버지가 부르신다고 하니... 회장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마음은 콩 밭에 가있는 현민이다.
- 왔다고 전해 주실래요?
- 예!... 회장님! 개발실 강현민 실장 오셨습니다.
- ‘들어오라고 해요’
- 실장님! 들어가시죠!
‘똑똑’
- 앉거라.
- 예...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 그래... 병원은 다녀 왔고?
- 예....
- 어떻드냐? 일어 났더냐?
- 예.... 그런데... 그게... 별로 좋지 못합니다.
- 무슨 말이냐? 어제는 괜찮다고 하지 안았느냐?
- 예...그랬죠. 그런데... 정신적인 문제라고 하는데... 실어증과 기억상실증 증세가 있습니다. 확실한건 오후에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고요...
- 그러게... 내 니놈 그 성격 때문에 사고 한번 칠거라 생각했다.
- 아버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 사내 자식이 주위에서 조금 수군댄다고 그걸 못참고 뛰쳐나가! 그러니 넌 큰일을 못하는게야! 쯧쯧쯧... 정민이는 그러지 않았다. 이그... 반만 닮지...
- 아버지!
- 왜! 할말 있느냐? 내 말이 틀리느냐?
- 모든 잘못이 저에게 있는 겁니까? 저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더 참아야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겠죠 아버지 눈엔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이 가짢아 보이겠죠... 하찮다고 생각 하시겠죠. 죄송합니다... 이렇게 한심해서!!!
잊고 있었던 어제의 일을 아버지 때문에 생각난 현민은 결국엔 치용에게 화를내고는 회장실을 빠져 나왔다. 솔직히 자신에게 화를낸 것인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이정도면 훌륭하다라고 생각한 자신의 행동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 하하하~~ 모자란 놈! 왜? 아버지가 정곡을 찔렀니? 그래서 그렇게 발끈한거니?
답답한 가슴을 안고 현민은 또 건물 옥상에 올라왔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해보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어제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분명히 서원은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괜스레... 서원에게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 기억 상실증이라.... 기억이야 알려주면 되는것이고... 문제는 말을 못하는건가? 나 때문인거지?... 강현민! 넌 왜 사고만 치냐? 뭐가 되려구 그래 임마!!!
모르는 사람이 보면 틀림없이 미쳤다고 할 것이다... 아니 아는 사람이 봤더라도 그리 다르게 봐줄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혼자 쇼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민은 자신의 형인 정민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학교를 다닐때부터 쭉~~ 모범생의 길을 걷고 있는 정민...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 더 욕심을 낸건지도 모른다. 자신도 인정 받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