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왔어"
"응"
옛 생각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하니"
진짜 친오빠가 동생을 걱정하듯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오빠를 보면 하정은 이상한 감정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10년전 그런 일이 있고, 하정은 한번도 오빠를 다정하게 대해준 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못된 동생이다. 속도 좁고, 심술부리는 동생. 그러나 오빠는 항상 무슨 날이면 선물을 보내주었다. 작은 것 하나 신경쓰는 오빠를 보면 당연히 행복해야했다. 그러나 하정은 한번도 행복한적이 없었다. 단 한번 오빠에게서 받은 목걸이가 탐이 났다. 옛날 어느 공주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받았다고 하는 꽃모먕의 목걸이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그 두 남녀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이 났지만 여자의 무덤속에 발견된 그 목걸이는 아직도 아름다운 전설과 함께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남녀의 사랑을 이루게해 준다고 했다. 하정은 그것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왜그리 그 목걸이가 슬프게 보이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정말 그 목걸이를 절실하게 갖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목걸이를 오빠가 생일선물로 주었다. 그것도 내 17번째 생일날. 그걸 받고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결국 되돌려주었지만 다시 찾고 싶은 유혹에 또 다시 잠을 자지 못했다. 그 목걸이를 목에 딱 한번 걸어보았다. 그때 하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고 있었다. 얼마나 그 목걸이가 보고 싶은지 모른다. 가끔 그 목걸이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자존심때문에 쉽게 말을 할수가 없었다. 지금 그 목걸이가 왜 생각날까?
아버지의 회사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어떤 용도로 쓰이는 건물인지 모르지만 층수는 작았다. 그리고 부를 상징하듯 돈으로 도백을 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인공호수까지 하정은 이런 인공적인 느낌이 너무나 싫었다. 로비에 서 있는 안내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재준오빠 옆에 서서 하정은 익숙하지 않는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도 좋지 않았다. 여기 분위기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재준오빠때문도 아니었다. 자꾸 불길한 뭔가에 의해 하정은 몸이 좋지 않았다.
파티장 입구에서 재준은 하정의 팔을 잡아 자기 옆으로 끌어당겼다. 재준의 행동의 잠시 당황했지만 가만히 있기로 했다. 다른 생각으로 재준의 행동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자리가 처음이므로 조금 더 익숙한 사람과 있고 싶기도했다. 두 사람에게 호기심 어린 눈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런 시선에 하정은 경직되었다. 하정과 달리 재준은 그런 시선들을 즐기고 있었다.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2년동안 한번도 아버지의 얼굴이 본적이 없었다. 이런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그 여자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눈의 가시처럼 쳐다보는 그 여자에게 하정은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래 왔구나"
그게 다였다. 왔구나.. 지나가는 개한테도 이 정도는 아닐것이다. 하정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두었다.
"재준아. 저기 저분에게 가보거라, 무슨 할 말이 있는것 같더구나. 그리고 저기 너를 기다리는 숙녀분도 있더라. 어디서 만난 애니 나중에 엄마에게 꼭 소개시켜주기 바랐다."
과장된 목소리. 과장된 행동. 새 어머니 미모만큼이나 부자연스러웠다. 하정은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하정를 쳐다보는 남자들이 많았다. 새 어머니 옆에 서 있는 하정은 신비스러워보이까지 했다. 그러나 본인은 알지 못했다. 그녀 혼자 남겨두고 재준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와 언성을 높이기 싫어 할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재준이 기다리고 있는 여자는 이세린이었다. 그녀도 이 모임에 올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여자였다. 세린의 시선이 잠시 하정에게로 향했다. 곱지 않는 눈이었다. 하정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재준이 언제 왔는지 하정의 팔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무슨 짓이야"
"나와 함께 있는거야"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재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했기때문에 그녀 밖에 듣지 못했다.
"이거 좀 놔줘 다른 사람이 보고 있잖아"
"내 옆에 있어"
두 사람을 향해 세린이 요염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하정은 지금의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여자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오직 재준오빠만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보았다. 그러나 재준오빠는 달랐다. 지금 뭐하자는거야. 하정은 잡힌 팔을 빼러고 하다가 강한 힘에 의해 신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놀란 재준이 팔을 놓아주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하정의 팔에 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게 자국을 남겼다.
"어머 재준씨 여기서 보네. 이런 곳에서 보니 더욱 반가운데... 집에서 보다 더 분위기 있고 스릴있어, 마음에 들어, 자기는 안그래"
의식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 하정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하정은 이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면인데 노려보는 그 눈빛이 눈에 거슬렸다. 하정은 두 사람만 남겨두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듯 다른 곳으로 갔다.
"알수 없는 사람들이야. 재준오빠도 그 여자도 ..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시선도 마음에 안들어. 둘이 결혼하면 딱이네.. 그 여자 스타일도 좋고, 그만하면 미인이지"
발코니에 나와 하정은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런 도시에서 별을 보기는 하늘에 별따기보다 힘들다고 하는데... 오늘은 아주 작은 별이지만 별이 빛나고 있었다.
"정말 너구나 혹시나 했는데... 반갑다."
여기에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 하정은 그를 쳐다보았다. 멋진 정장차림으로 서 있는 이 남자는 2주전에 미팅을 한 권민호라는 친구였다. 지금과는 달리 2주전에는 낡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머리는 금방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지저분했는데 오늘은 전혀 딴 사람이 되어있었다
"요즘 청소부들은 이런 곳에서 일하나봐"
"요즘 고아들은 이런 고급옷을 입고 이런 호화스러운 곳에 오나봐"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 웃었다. 하정은 처음부터 민호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락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이런 곳에서 다 만나고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자존심 상하는 말인데 왜 그때 연락하지 않았니"
"전화했어 그런데 없는 번호로 나오더라"
"어 이상하다.."
"나는 니가 그날 날 퇴자 놓은 줄 알았는데.. 좀 자존심이 상했지"
"몇번이지"
"번호도 몰라. 진짜 더 섭하네"
"미안 내가 건망증이 좀 심해."
"그래도 이런 곳에 보니까 더 좋은데.. "
"나도 좋아"
하정은 오랜 친구를 만난것 같아 너무나 반가웠다. 그래서 민호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너는 오늘 어느 집안으로 여기에 온거야"
"모 백화점 권상철 사장님이 우리 아버지셔 난 둘째아들이고, 나도 이런 모임 별로 안 좋아해. 아는 사람도 없고 말이야"
"난 지금 저기 단상에서 연설하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야. 그래서 나도 여기에 오게 됐어. 나도 아는 사람 없어. 너라도 여기서 만나서 반갑다."
"우린 같은 이유로 거짓말한것 같은데 맞어"
"응 비슷한것 같아. 그래도 그때는 정말 너 불량청소년으로 보았어"
그때 민호의 첫 인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이가 없었다. 그때는 정말 매너없고, 뭐 이런 지저분한 애가 다 있나 그런 생각뿐었다. 부모님이 청소부로 일한다는 소리에 솔직히 하정은 조금 동정심이 갔다. 그래서 민호를 이해보기 위해 노력한적도 있었다. 조금은 민호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첫 인상은 꽝이었지만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구석도 있었다 .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 우리를 아까부터 째려보는 저 남자 누구야. 너 아는 사람이니"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거기에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재준오빠였다. 정말 민호의 말대로 유쾌한 얼굴은 아니었다.
"아는 사람인것은 맞아"
"애인이니"
"애인처럼 보여"
"글쎄 널 보는 눈빛이 어찌 좀 뜨거워 보이네"
"우리 오빠야"
"정말 아닌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동생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닌데.."
"무슨 말이하고 싶은거야. 오빠 맞아"
친오빠는 아니지.. 하정은 자세한 얘기는 생략했다. 그리고 민호에게 다음에 또 만날것을 약속하면 이번에는 확실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꼭 전화해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밝은 달을 빛 삼아 저 아래 호수에서 단 둘이 걷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녀가 다정하게 걸어가는거야.. 정말 멋있다.
"아까 그 남자 누구야"
재준의 험한 인상에 하정은 화들짝 놀랬다.
"인기척 좀 내고 다가와"
"바보처럼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너의 얼굴을 10분정도 쳐다보고 있었어"
"남의 얼굴 보는게 취미생활인가봐"
"여기서 얘기했던 남자 누구야"
감정을 자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역력하게 보였다. 그가 지금 이 순간 태연하게 행동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내심 필요한지 하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