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종을 작은 방망이로 치고 작은 종을 큰 방망이로 치려 한다
구흥서님!
"우물 퍼서 물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는데"에 대한 졸고 읽으시고 보내주신 메일에 공개 답장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흥서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단지 나름대로 세운 원칙이 있어서 정치적인 글은 가급적이면 삼가고 있기에 마음속에 불만이 쌓여도 피할 따름일 뿐입니다.
저 역시 오랜 도시생활 끝에 귀향하여 시골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만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들이 살아나가는 방법은 똑 같습니다.
이제 제가 따온 <격양가擊壤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심심하면 고문진보古文眞寶를 자주 읽습니다. 옛글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너무도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격양가>는 고문진보 잠류箴類에 장온고張蘊古가 쓴 대보잠大寶箴에 있는 글귀입니다.
"대보잠"이란 주역 제사 하에, ‘천지의 대덕大德을 생生이라 하고, 성인의 대보大寶를 위位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곧 천지의 대덕은 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화육하는 것이요, 성인이 앉은 천자의 자리라는 것은 만민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대보는 천자의 위요, 잠은 문체의 하나로서 경계하는 뜻을 붙인 글을 말합니다. 곧 천자의 자리란 지극히 어려운 자리이므로 이를 가르쳐 경계하는 글입니다.
장문이기에 전문소개는 피하고 따로 우리나라 임금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중간부분만 소개해 볼까 합니다.
----- 중략 -----
임금의 마음은 잠시라도 혼혼渾渾하여 흐려져서는 안 되며, 자그마한 악도 용납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너무 지나치게 희고 깨끗해서는 안 되며, 마음이 인욕人慾에 가리워 사리에 어두워져서도 안 되며, 남의 털끝만한 작은 흠까지 환히 꿰뚫어볼 수 있으리만큼 그렇게 너무 세밀하게 밝아서도 아니 됩니다.
오직 맑거나 흐리거나 밝거나 어둡거나 그 중간을 잡아 쓰시면 됩니다. 임금의 면류관冕旒冠은 관 앞뒤에 꿴 끈을 드리웁니다. 그것은 자질구레한 하찮은 일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데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록 눈앞을 가렸어도 임금의 눈은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 꿰뚫어 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임금은 참소하는 말, 쓸데없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황색 귀막이 솜방울을 양쪽 귀에 닿을 만큼 면류관에 늘여 답니다. 그러나 임금의 귀는 아직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은 소리까지 들으실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은 한 점 흔들림 없는 깊고 고요한 영역에 자유로이 놓아두시고, 신혼神魂은 성인의 최고 경계의 정묘한 데 멋대로 노닐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종소리가 나무 방망이의 크고 작은 데 따라, 큰 방망이로 치면 그만큼 크게 울리고, 작은 방망이로 치면 그만큼 작게 울리듯, 또 물을 긷는 데 있어 그 물통의 깊고 얕으면 그만큼 물이 차듯,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하다한 사건을 자연 한가운데 두고 그때마다 가장 알맞게 대처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하늘로서 영원히 변치 않는 도道가 있고, 땅은 땅으로서 영원한 안정이 있으며, 임금은 곧고 바름으로써 천하태평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시는 아무 말 없이 어김없이 서로 갈마들고 이 가운데 만물이 또한 말없이 제각기 알맞게 생성 변화하고 있습니다. 성인의 지극한 덕은 저 영원한 천지의 덕과 한가지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이 말없는 가운데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절로 자라듯 성덕이 있는 임금이 위에 앉아 계시면 아무런 말이 없어도 애써 그리하고저 아니하여도 세상은 절로 잘 다스려집니다. 그리하여 길이 태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때 사람들은 그것이 대체 누구의 덕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임금의 크고 드넓은 덕임을 모르는 체 온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제각기 제덕인 양 태평을 노래하며 살아갑니다. 하늘이 만물을 어루만져 길러 주어도 그것이 하늘의 덕인 줄을 모르듯이 임금의 덕이 천지의 덕과 같이 하도 크고 넓기 때문입니다.
옛날 성왕이신 요堯임금이 위에 계실 때, 한 노인이 땅을 치며<격양가>를 불렀습니다.
“해 돋으면 밭갈이하고
해가 지면 잠자고
우물 퍼서 물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는데
임금의 힘이 나와 그 무슨 상관이리!“
라고.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하략 -----
당요唐堯때 성왕聖王 아래 천하가 태평한데, 한 늙은 농부가 태평을 노래하여<격양가>를 불렀습니다. ‘해 돋으면 밭갈이하고, 해가 지면 잠자고, 우물 퍼서 물마시고, 밭 갈아서 밥 먹는데, 임금의 힘이 나와 그 무슨 상관이리!’ 라고, 이 대문의 뜻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정치가 잘 된다면 임금이 있는 줄도 모른다는 뜻인가 합니다.
그런데 우리 임금은 조그만 싫은 소리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오만과 독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아 보입니다. 때로는 진중해야할 임금의 언행이 시중 잡배가 쓰는 말처럼 경박하기까지 합니다.
국민의 절반이상이 천도를 반대하는데도 임기 중에 끝내려 합니다. 반대의 목소리는 아예 안중에도 없어 보입니다.
특유의 편 가르기를 하려하고 있습니다. 또 다시 지지 세력의 반등을 업어보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한번 촛불을 들게 하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론은 생각하지도 않고 일부 신문이 선동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른 말이지만 고구려는 수도를 환도성에서 남쪽으로 국내성에서 다시 남쪽으로 평양에 천도한 후 망했습니다.
백제는 하남 위례성에서 남쪽으로 공주에서 다시 남쪽으로 부여에 서울을 정한 후 망했습니다.
신라는 경주에서 달구벌로 북상하여 천도 계획을 세운 일이 있지만 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거나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고려는 평양보다 아래인 개성에 수도를 정한 후 망하였습니다.
조선은 더 남쪽인 서울에 수도를 정한 후 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임금은 통일 통일 하면서도 통일 후의 수도는 생각지도 않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통일이 되었을 때의 임금은 또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수도를 옮기려 하겠지요.
경제는 임금인 내가 있는 한 걱정 없다 합니다. 그런데 체감으로 느끼는 서민 경제는 말이 아닙니다. 내 주위의 누구도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풍족하게 쓰면 눈총을 받는다 합니다. 모두들 몸을 사리며 내핍만 하려하고 있으니 내수가 살아날 수 없겠지요.
오늘 뉴스를 보니 청와대가 일부신문과 전쟁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전운이 감도는 을씨년스러운 날입니다.
며칠 기다리다보면 우리 임금의 친위대와 별동대가 밝히는 촛불이 또 온 나라를 덮어려나 봅니다.
우리 임금은 큰 그릇에 작은 물을 담으려 하고 작은 그릇에 큰 물을 담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임금은 큰 종을 칠 때 작은 방망이로 치고, 작은 종을 칠 때 큰 방망이로 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 임금이 국민에게 딴지를 걸고 있는지, 우리 국민이 임금에게 딴지를 걸고 있는지 이 촌놈은 모르겠습니다.
우리임금님 대보잠이나 한번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끝으로 오늘 아침 배달된 고도원의 아침편지 입니다.
매주 토요일엔 독자가 쓴 아침편지를 배달해드립니다.
오늘은 채기영님께서 보내주신 아침편지 입니다.
위가 아니라 앞에 있는 지도자
지도자는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 있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위에서 군림하기 보다 맨 앞에 서서
따르는 사람들을 미래로 이끌고
나가야 합니다.
- 최성규의 <아들아> 중에서 -
*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려고만
하는 이 때에, "나를 따르라"고, "나를 본받으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지도자가 목마릅니다.

2004, 07, 09
김 명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