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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13-①]-눈빛의 얽힘※

미강 |2004.08.03 00:03
조회 3,184 |추천 0

 

 

 

13. 눈빛의 얽힘


 

 

 

 뒷좌석에 타고 있는 내내 민혁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연은 그런 민혁의 옆모습만 바라보았고,

 

상현은 이따금 백미러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민혁이 고개를 돌려 하연을 바라보는 바람에

 

허공에서 시선과 시선이 한데 얽혔다.

 

 

민혁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듯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난 누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에 그리 익숙지 못해.”

 

 

“…알았어요. 그럼 안 볼게요.”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마!”

 

 

“…알았어요. 그럴게요.”

 

 

“됐어, 그럼.”

 

 

 

됐어, 그럼. 민혁의 짤막한 말 한 마디가 하연의 가슴속에 일렁였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난 아무데도 가지 않아요.

 

 

 

하연은 민혁의 말 속에 들어있는 울림에서 결핍을 느꼈다.

 

 

채워지지 못한 빈 공간.

 

그 결핍을 채워 주고 싶었다.

 

 

그의 마음속에 들어찬 어둠을 밀어내고,

 

빈 공간을 채워주고 싶었다.

 

 

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은 민혁은 호수 같이 잔잔한 하연의 말을 들으면서

 

더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여자.

 

언제든 베풀 준비가 되어 있고,

 

쉼터와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 같은 여자.

 

마치 먼 나라에서 전해져 오는 전설처럼 민혁은 입을 열었다.

 

 

 

 

“참…오랜만에 느껴봐. 이런 느낌.

 

늘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공포에 질려서 깨어나곤 하지. 잠드는 게 두려울 만큼.

 

하지만 당신이 내 곁에 온 이후로 악몽 같은 건 없어.”

 

 

“어떤…꿈을 꾸나요? 이를테면….”

 

 

 

“…처절한 추락! 비참한 공포!

 

암담한 좌절! 언제나 꿈속에선 패배자가 되곤 해.

 

몸부림치며…깨어나 보면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더군. 아무 일도 없는 거지.”

 

 

“…난 길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나 봐요.

 

늘 무서운 꿈을 꿀 때면 길을 잃어 버려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를 갈 생각이었는지…아무 것도 모르게 되죠.”

 

 

“……눈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는 기분, 어떤 건지 이해할 수 있어?

 

난 늘…죽어가는 모습만 바라보고 있지.”

 

 

 

 

하연은 그가 꺼낸 이야기에 담긴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하연은 가만히 손을 뻗었다.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 민혁의 손이 놓여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 온 하연의 손을 바라보던 민혁은 지긋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스하게 전해지는 체온.

 

하연은 이미 단순한 꿈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민혁씨….”

 

 

“그냥 들어! 아무 말 말고.”

 

 

 

민혁의 제지로 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듣고 싶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사흘 밤낮이 짧다면 그보다 더 길어도 상관없어요.

 

나에게도 알려줘요.

 

당신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과 슬픔의 이야기를.

 

 

난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 있어요.

 

 

하연의 눈빛을 깊숙이 응시하던 민혁은 다시금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눈을 감아서 외면할 수도 없고,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어.

 

그저 마음만…마음만 필사적으로 움직일 뿐이야.

 

뜬 눈으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언제나 이를 악물곤 해.

 

매일 찾아오는 밤이 두려울 만큼…괴로웠지.”

 

 

 

 

하연의 눈에 촉촉이 물기가 어렸다.

 

담담한 그의 목소리가 하연의 마음 구석구석을 아프게 찔렀다.

 

 

굳건하고 강해 보이는 이 남자.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오르듯,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밤.

 

 

그리고 매일 밤 꿈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아픈 잔상들.

 

 

속으로 곪아 들어가는 상처를 얼마나 참아 왔을까.

 

외로이 혼자 어둠 속에 숨어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얼마나 속으로 삼켰을까.

 

쓰라림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단단한 껍질 속으로 숨어있는 그의 자아는

 

아직도 붉은 선혈을 철철 흘리고 있으리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아픈데.

 

잠들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그건 꿈이 아니었어. 단순한 악몽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오래 전 묻어 두었던 내 과거였지.”

 

 

 

마치 신호탄처럼 민혁의 말 끄트머리에 하연의 눈물이 주르르 따라 흘렀다.

 

 

하연은 잡고 있는 민혁의 손에서 격렬한 고통의 진동을 느꼈다.

 

부르르 떨리는 민혁의 손을 더 꽉 붙잡아 주었더랬다.

 

 

어느 새 부슬부슬 차창 밖으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윈도우 브러쉬가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내 이야기 하는 거 서툴러. 뭐라고 좀 해 봐!”

 

 

“…그 여자 인가요?”

 

 

 

하연은 뭐든 이야기 좀 해보라는 민혁의 말에 사진 속 여자를 떠올렸다.

 

해사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여자.

 

바람결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웃고 있던 여자.

 

슬픔에 흔들리는 목소리도 아니고, 속속들이 파헤치는 듯한 어조도 아니었다.

 

 

 

민혁의 어조처럼 담담하고 아련했다.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두 사람 모두

 

고즈넉한 여름밤 들려오는 빗소리만큼이나 차분했다.

 

 

민혁은 짧게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녀는 당신과 정 반대였어.

 

늘 큰 소리로 웃고, 화도 잘 내고 변덕스러웠지.

 

좋아하는 것 보다는 싫어하는 게 더 많았고.

 

아직도 잊지 않은 건, 늘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주는 감촉이지.”

 

 

 

사진 속 그녀에게선 똘똘 뭉친 에너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엷은 파스텔톤 보다 강렬한 원색이 어울릴 것 같은 그녀를 참 많이 사랑했었나보다고,

 

하연은 생각했다.

 

 

 

“사고…였나요?”

 

 

“…사고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책임하고,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망해.

 

죽어가면서 날 바라보던 그 눈빛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어쨌든, 내 곁에서 죽어갔으니 내 책임이겠지.

 

한 마디 원망도 하지 않고서 눈을 감았어.”

 

 

 

아찔했던 순간의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민혁은 질끈 눈을 감았다.

 

 

하연은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민혁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흐트러진 조각들은 얼마든지 나중에 맞춰나가면 된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다는 사실 뿐.

 

 

그 사이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내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할 마음조차 없다는 듯 민혁은 차에서 내려 버렸다.

 

 

엷은 아쉬움.

 

민혁의 빈 자리를 눈으로 잠깐 훑은 뒤 하연도 차에서 내렸다.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민혁의 뒷모습을 보며 하연은 희미하게 웃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나 걸어 다닐 때나…항상 먼저 가 버리네요.”

 

 

“…하연씨가 뒤 따라 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시니까요.”

 

 

 

아…!

 

하연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어느 새 눈에 맺혔던 물기는 다 걷힌 뒤였다.

 

 

빙그레 웃고 있는 상현의 얼굴을 쳐다보던 하연은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놀라움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고마워요, 모르고 있던 저를 깨우쳐 줘서.”

 

 

“별 말씀을요. 어서 가 보시죠.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상현의 말처럼 민혁은 엘리베이터에 탄 뒤 열림 버튼을 누른 채

 

하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더랬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말할 수 없이 평온했다.

 

 

나도 그래요. 지금 내 마음도 그래요.

 

하연은 몸 구석구석으로 스미는 따스함을 느끼며 민혁을 보았다.

 

 

 

“지금…어디로 가는 건가요?”

 

 

“집.”

 

 

“그러니까…무슨 집이요…?”

 

 

“내려.”

 

 

 

스르륵 열리는 문 밖으로 민혁은 하연을 데리고 나갔다.

 

하연은 더 이상 대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가 보면 알겠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 선 하연은 놀란 눈을 뜨고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가구가 뿜어내는 냄새에 눈이 따끔거렸지만

 

하연은 거실에서 주방, 그리고 각 방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그 동안 민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더랬다.

 

구경을 마친 하연이 민혁 곁에 왔을 때 그가 말했다.

 

 

 

“여기서 지내!”

 

 

“…왜요?”

 

 

“이유 같은 건 없어! 내가 원해!”

 

 

“그런 건 이유가 될 수 없잖아요.”

 

 

 

“당신한테 중독됐어! 중독이 뭔지는 알겠지. 한 번이라도 거르면 고통 속에 살아야 해.

 

당신이 날 중독 시켰으니까 여기 있어! 내 말 알겠어?”

 

 

 

중독!

 

중독은 기능 장애를 일으킨다.

 

정상적인 생체 리듬을 깨트리고,

 

치명적인 독성에 잠식당하는 과정이다.

 

 

민혁은 진하연이라는 독(毒)에 이미 적응되어 있었다.

 

 

아름답고 순수하며 치명적인 여자.

 

그녀를 곁에 두고 싶었다.

 

 

절대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사랑. 이 얼마나 발칙한 단어던가.

 

다시는 어줍잖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으리라 작정했었다.

 

이미 한 번 끊어진 사랑은 아예 버렸다.

 

 

사랑을 하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약도 희망도 없는 절망뿐인 삶 속에 그녀가 걸어 들어왔다.

 

 

원래 일단 한 번 마음을 정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민혁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랬다.

 

 

 

“거절하려면 지금 해! 난 상관없으니까!

 

대신 이것만은 알아 둬. 난 확신 없는 일은 하지 않아!

 

어설픈 감정놀음 따위에 시간 낭비 할 생각은 없어.

 

그러니까 결정 해! 3분 내로.”

 

 

 

살가운 말도 없었고 달콤한 유혹도 없었으며 감질나게 달아오르는 기다림도 없었다.

 

 

거침없이 저돌적으로 밀려들어오는 남자를 앞에 둔 채

 

하연은 자꾸만 번지려는 웃음을 참았더랬다.

 

 

사실 막연하게 사랑 비슷한 걸 꿈꿔오긴 했었다.

 

 

흔히들 말하는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남자의 고백에 자꾸만 웃음이 번져 나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불꽃이 튈 것만 같은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품속에 당장이라도 안길 것 같은 이런 기분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하연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대담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 넓은 집에 날 혼자 남겨 둘 거라면 그냥 보내 줘요.

 

차라리 좁은 집에 혼자 있는 게 덜 외로우니까.”

 

 

 

말을 끝마치자마자 하연은 두 볼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결코 민혁의 눈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약간 붉게 상기 된 하연의 얼굴을 바라보던 민혁은

 

미친 듯이 타오르기 시작한 격렬함 때문에 조용히 마른숨을 삼켜야 했다.

 

은은한 조명을 반사하는 그녀의 동그란 볼은 민혁을 숨 막히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 나도 이 집에서 머물게 될 거야.

 

하지만 스물 네 시간 함께 있어 줄 수는 없어.

 

내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만 참으면 돼!”

 

 

 

“…여전히…당신의 간병인 자격인가요?”

 

 

 

솜털 같은 한숨이 담긴 질문이었다.

 

살짝 내리깐 하연의 눈꺼풀과 짙은 음영을 만들고 있는 속눈썹을 보자마자

 

민혁은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바보 같은 여자! 날 자극한 건 당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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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잘 보내셨나요? 아침 일찍 뵙지 못하고 지금에서야 뵙네요. ^^

 

더위가 조금 꺾이면서 제 건강도 자연히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답니다. 

 

아직 말복을 지나지는 않았지만 입추의 문턱을 앞두고 있다는 걸 계절도 아나 봅니다. ㅎ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바램,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다는 자각은 함께 하는 데서 얻어지는

 

행복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제 글을 읽는 동안 만이라도 마음의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시죠? 늘 댓글 달아 놓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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