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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3. 으~ 괴물이다

무늬만여우... |2004.08.28 01:06
조회 26,402 |추천 0

시댁이 양봉이민 2차로 이민 오셔서 아직 양봉을 시작도 안한 시기였다.
그래서 아주버님이 작은 슈퍼마켓을 열었는데, 말이 작지 그 안에 정육점도 있었고, 야채가게도 있었으며 휘암브레리아 라고 햄을 종류별로 사다놓고 썰어주는 데도 있었다.

그 가게에 나도 나가서 스페인어를 한 마디씩 하게 되었다.

어느 나라를 가건 외국인들이 한국인에게 놀라는 것이 있는데, 그건 숫자를 세는 능력이다. 말이 안되어도 숫자에 관한 스페인어는 너무도 정확했기 때문이다. 나도 한국인이라 원래 나자신 계산하곤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아르헨티나 사람의 눈엔 희한하게 숫자는 정확하게 말하는 꼬레아나 (한국인)로 비치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암산이란걸 잘 못한다. 뭐 나도 인문계열이라 숫자에 약하지만, 게다가 더하기 빼기에서 실수 투성이지만 걔네들이 보기엔 빨리 계산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우린 6천원짜리 물건을 사며 만원짜리를 내면 얼른 4천원을 내주면 되는구나 하고 바로 계산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일단 만원에서 육천원의 물건값을 생각하고 돈이 만원이 되길 채우는거다. 그래서 그들에게 거스름돈을 주게 된다면 큰소리로 천원짜리를 내주며 말해야한다.

"자 물건값이 육천원...칠천원 팔천원 구천원 만원. 됐지?"

이러면서 채우는데, 처음에는 그게 너무 불편하고 걔네들이 머리나빠보이고 그랬다. 근데 오래 살다보니 우리가 하는 계산은 틀릴 확률이 많아서 실수도 가끔하고 그러는데, 걔네들 방식은 틀릴 염려가 전혀 없어서 실수가 없다는거다.

그래서 카운터를 보게되었다.

형님이 손님이 오면 딱 두마디를 했는데,

"부엔디아~" (안녕 이란 아침인사다)

"뽕가쟈"(저기 넣어라....병을 박스에 넣으라고 하는소리다.)

아르헨티나는 빈 병을 가지고 오고 새로 사갈 때는 병값을 안내는 종류가 몇개 있었는데 주로 포도주와 코카콜라같은 음료수 종류였다. 걔네들은 코카콜라를 물처럼 마셔대는데 하루종일 입에 달고산다.

난 부엔디아와 뽕가쟈란 단어가 말하는게 참 재미났다.
그래서 오는 사람마다 그랬더니, 손님들이 내가 무쟈게 스페인어를 잘하는지 알고 나를 붙잡고 수다를 떨어댔다.
우하하~
난 한마디도 못알아들었지만, 그 말하는 폼새며 표정이 웃겨서 웃어주곤 했더니 날 지네들 친구로 받아들였는지 하루종일 풀방구리처럼 드나들며 나와 수다를 늘어놓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곤했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외롭게 사는 사람들이었고 또 원래 아르헨티나 국민성이 무쟈게 수다스런 사람들이라 한번 서서 말하기 시작하면 두 세시간 길거리에서 수다떠는걸 즐기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다리도 안아픈가부다.

거기서 무조건 부엔디아만 하면 오후가 되면 손님들이 내가 말하는 인사가 틀렸다고 즐거워하며 고쳐주었다.

"부엔디아~"

"노노노, 부에나스 따르데스~"

그 뒤에 늘어지는 수다는 빼놓고 난 그 말을 정정해주는걸 눈치까고 고쳐서 말하면 되게 좋아했다.

우리 시댁 모두를 위한 가정 교사가 있었는데 "오펠리아"란 여선생님이다.

나도 그 선생님댁에 아이를 낳기전에 배우러 갔는데, 임신부라 잠은 많고, 백프로 스페인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려니....하나도 못알아먹겠는거다.
그저 먹는 얘기나 하면 내가 워낙 먹는걸 즐기니 알아들었다.

난 태어나서 첨으로 외국인을 그렇게 가까운데서 마주대하고 공부했다.

오펠리아 선생님은 독일계 피가 약간 섞여서 눈 색이 엷은 갈색같기도 하고 하늘색같기도한 약간 흐릿한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전형적인 노랑머리였는데 노랗다못해 약간 흰색에 가까운 금발이었다.

젊을 적엔 미인이란 소리를 꽤나 들었을 법하다 싶게 이쁘장했는데, 난 졸음을 참으며 그 선생님 눈을 쳐다보곤 하면.....미안하지만 개의 눈이 연상되었다.

그러다 공상에 빠지곤했는데, 가끔 현실로 돌아와서...그 눈이 도무지 사람눈 같지가 않아서 사람같지가 않아보였다. 솔직히 고백하건데....약간 무서울 때도 있었다. 왜?

'이이가 날 잡아먹진 않겠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곤했기 때문이다. ㅎㅎㅎ

아공...오펠리아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알면 을매나 섭할꼬...미안해라.
암튼 그 선생님은 날 맘에 쏘옥 들어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도와주려고 애를 쓴 고마운 분이다. 자기보고 엄마라고 부르라고 할 정도였다.

외국 생활에서 너무도 외로웠기에 나도 그 선생님에게 정을 쏟았다.

이제 아이를 낳으려면 일주일 정도 남았기에 랑과 난 좀 먼데로 드라이브를 나가기로 했다. 아이를 낳으면 당분간 바깥 출입을 못할테니 미리 코에 바람이라도 넣자 싶었다.
김밥도 싸고 다른 친구들과 팔레르모 공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병원에 진찰 받으러 갔다.

의사는 진찰해보더니 무쟈게 놀라는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이가 나오려고 해요."

잉. 이게 뭔말인가.

"배도 하나도 안아픈데 아이가 나오다니요?"

의사는 랑에게 설명했다. 내가 전진통이 없는 특이체질인 것 같단다. 얼른 집에가서 아이 입을 배내옷이랑 필요한 기저귀, 아이를 쌀 이불같은 것을 얼른 가져오라고 시켰다.

헉, 나같은 여자가 그러니깐 애낳으러 택시타고 가다가 길거리서 낳아버리는 여자인가부다.
의사는 애는 금방 나올꺼라는데 난 배가 하나도 안아팠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 쪽으론 정보를 하나도 들은바가 없어서 난 심히 불안했다.

하필이면 이때쯤 급한 일이 생겨 아버님 어머님은 한국 방문중이셨고, 형님은 가게보랴 8개월짜리 아이보랴 정신이 없었다.

의사와 난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하러 엘리베이터에 올랐고 당황한 랑은 나에게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바늘로 쑤시는 고통이 갑자기 찾아왔다.
갑작스런 고통에 털썩 주저앉아버렸고, 그대로 침대에 뉘어졌다.

고통이란 것도 미리 조금씩 맛뵈기가 있다면 덜아플꺼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다 적응 기간을 거치면 덜 아플텐데...이건 갑자기 격렬하게 쉬지도 않고 아프니 사람이 죽어날 판이였다.
한국에 있으면 제왕절개 수술을 했어야만 하는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아르헨티나 의사들은 일단은 제왕절개 수술을 싫어하는 부류라 자연분만을 유도한다. 게다가 동양인 산모는 우리 형님 담으로 나였기에 그 사람들도 경험이 부족한 상태였다.

랑이라도 분만실에 들어왔으면 덜했을텐데....난 부끄럼이 많아서 정말 그건 싫었다. 그래서 말도 잘 안통하는 오펠리아를 불러와 같이 있게 되었다.

예전 아이 낳는 고전 드라마를 보면 천정에 기다란 기저귀천을 늘어놓고 그걸 잡고 낳는 장면을 많이 뫘는데 그건 지나놓고 생각해보니 선조들의 지혜인 것 같다. 난 그걸 몰랐다.

너무 아픈 가운데 의사들은 친절하게 내게 이거저거 물어왔는데...뭔가 잡을 것이 필요하냐고 물었는데 난 필요 없을 줄 알고......노.....라고 대답했다. 너무 아프니깐 스페인어고 영어고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말통하는데서 의사한테 나 아픈거 증상 다 말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 밤만 지나면 되겠지.
하루만 아프면 내일부터는 안아픈데, 오늘 하루만 죽는다고 생각하고 참자.
속으로 그렇게 다짐을 하며 참아내고 있었다.
이까짓것....그러면서 일부러 별거아닌 고통으로 넘겨버리고....천정의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보여야 아기가 나온다고 그래서 그 불빛을 봤더니 너무도 뚜렷하게 보이는게 아닌가.

아띠.
아파 죽겠는데 왜 불빛이 저케 또렷한거야.

딴 생각을 하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져서 친구랑 병원에 가서 초음파로 아이를 보던일...참 신기했지.
팔다리도 생기고 머리도 생겼는데 정신머리없이 온 몸을 개구락지처럼 흔들어대는게 이상했더랬는데.....이 아인 또 뱃속에서 장난도 넘 심해서 한쪽으로 몰려 있는걸 좋아해서 보통 임산부는 배가 동그랬는데.....난 옆구리에 아가가 달라붙어 있기 일쑤여서 늘 찌그러진 배를 갖고 있었지.
그 모양이 재밌어서 내 일기장에 거울을 보며 날 데생해서 그려넣곤 했드랬는데...

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조금 나왔다고 한다.

난 서서히 지쳐갔고,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고,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난 혼절했다.
검은 암흑속에서 내 영혼이 헤매일 때, 의사들은 다급하게 되었고, 수술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랑은 아기는 죽어도 좋다는 각서에 싸인을 하였고, 일단 산모를 살리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들은 일단 아기를 겸자로 집어서 끄집어 내려고 하였다. 아기가 별로 나오지 않은 상태라 그 겸자에 끌려 아기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그대로 아기를 둔다면 아기도 질식하여 죽을 것이고 산모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들이 아기를 겸자로 집어서 막 꺼내는 순간 기적처럼 나도 깨어났다. 모성애가 그런건가부다.
아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상황에 정말 내 실핏줄이 터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난 벌떡 일어나며 온 힘을 주었다.
아기가 나오고 온 몸에 힘이 빠졌다.

3.5키로에 키 59센티랜다......그리고 아들이랜다.

병실에 누워있는데 아기가 왔다. 쭈글쭈글 못생기고 비리비리 말랐다. 겸자에 집힌 볼과 뒷머린 보라색으로 멍이 들어있었으며 머리가 나오다 말고 멈춰있었기 때문에 머리 모양은 호리병 모양으로 외계인 형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뭔 아기가 그케 어깨가 떡 벌어졌지? 남자녀석이라 지아빠 닮아서 긍가부다. 보통 아기는 51센티정도라는데...얘는 무지 길어서 다리를 꺼내봤는데 개구락지처럼 다리가 길어보였다.

의사는 아가를 배위에 얹어주며 내 심장 소리를 들려주라고 했다. 꼬물꼬물한 아가를 배위에 얹었더니 따사롭고 평화로웠다. 아가도 불안해하더니 내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안정을 찾는거처럼 보였다.
젖을 물려보란다. 에공.
아가는 배가 고팠는지 무지 쎄게 빨아댔다. 으~ 아파라. 눈물이 쏙 났다.
젖먹던 힘까지 낸다고 했는데 그 젖먹는 힘이 이렇게 강할 줄 미처 몰랐다.
젖은 핑그르르 싸르르 아프더니 너무도 많은 양을 아가에게 펌프처럼 주었다. 난 먹는게 다 젖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양이 너무 많아서 세쌍둥이 먹여도 될 젖이 나오는게 아닌가.
랑은 깡마른 여자가 젖만 많이 나온다고 놀려댔다.

기진한 상태라 침대에서 쉬야를 보게해줬는데, 안나왔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다가 난 기절초풍했다.
거울에 너무나 무서운 괴물이 있는게 아닌가.

"으악~"

피로 가득찬 두눈, 얼굴이며 목이며 팔이며 실핏줄이 터져서 수도없이 빨간 반점들로 가득찬 괴물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막판에 힘주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때 눈에 있던 핏줄들이 터져서 눈을 덮었고 역시 몸에 있던 실핏줄이 터져서 온몸에 얼룩과 붉은 반점들이 생긴거란다.
랑한테 왜 내가 그렇게 되어있는걸 말안했냐고 했더니, 그래도 자긴 이쁘댄다. 대견해서 그랬댄다. 역시 내가 공주병 기질을 여전히 갖고 있게 한 주범이 울랑맞다.

또다른 후유증은 쉬야를 못한다는거다. 무슨 일인지 쉬야는 차서 배는 불러오는데 도무지 나오질 않는거다. 그래서 조그만 관을 일주일 끼고 있었는데 으아~ 그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산후조리란걸 모른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여자들이 일찍 늙어버리는지도 모르겠다. 여자 나이 30만 넘으면 할머니처럼 보였다.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 여자들이 젤루 더디 늙고 피부가 고운게 그 이유같다. 아이를 낳자마자 여기 여자들은 찬물로 샤워하고 아이를 안고 그날로 밖으로 돌아댕긴다. 암튼 무쟈게 힘도 좋다. 난 제대로 서지도 못하겠드만.

나한테도 샤워를 시키려고 해서 안한다고 버텼다. 한국 여자들은 씻는걸 싫어한다고 생각했을꺼다. 그러니깐 오렌지 쥬스에 얼음 동동 띄워서 가져왔다. 난 차가운거 싫어한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 신맛가진 오렌지 쥬스는 더 싫다케따. 그 다음 부터는 미지근한 걸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병원에서 주는 생선까스같은 요리는 맛있었다. 난 버터를 좋아하는데 아르헨티나 버터는 유난히 고소하고 맛있다.
토스트에 발라서 먹는걸 좋아했는데. 시시때때로 그걸 가져오면 남기지않고 다 먹어치웠다.

아이 이름은 스페인어 이름과 한국이름 두개를 지어줬다.
스페인어 이름은 랑 친구 이름이 멋있어 보여서 똑같이 알렉한드로라고 지었고, 한국 이름은 돌림자를 따서 아버님이 지어오셨다.

성이 조씨라 이름짓기가 그지같다.
지어온 하나는 커서 학문으로 성공할 이름이라는데....장희였다. 난 그 이름이 이뻐서 지으려고 했더니 랑이 안된다고 우겼다. 쎄게 발음하면 나중에 애들에게 놀림감이 될 우려가 있다나.

"쎄게 발음하면 뭐가 문젠데?"

"좆장이로 발음되잖아"

"켁. 내가 미쵸."

그래서 희자 돌림이라 다른 여자 이름으로 짓게 되었다.
윤희 라고. 이건 사업하면 부자된다는 이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넘 돌 때 상에 실이며 붓이며 이거저거 놓았는데 백불짜리 달러만 집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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