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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박근혜와 ‘박근혜 아닌 것’의 차이

어떤생각 |2007.01.05 17:38
조회 78 |추천 0

박근혜와 ‘박근혜 아닌 것’의 차이
 
최근 박근혜가 북한에 특사로 갈 용의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우파의 열혈논객 한 사람이 “김정일을 만나는 날이 바로 박근혜의 정치적 장례식날”이라고 일갈했었다. 박근혜를 변함없이 지지 성원하는 일부 사람들도 “가지 말아요”라는 걱정스런 말들을 했다.

한나라당이 민노당의 만경대 방문을 비난하자 민노당이 “박근혜도 만경대를 방문했다”며 잘 걸렸다는 듯이 한나라당과 박근혜를 싸잡아 맞장 뜰 기세로 큰소리쳤다가 잠잠해졌다.
기사회생의 빌미를 찾기에 온갖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열린당은 조용했다. 박근혜의 티끌만한 약점이라도 보이는가 싶으면 뚜껑 열고 구두탄 세례를 퍼붓는 열린당 무리가 왜 조용할까를 탐색하는 건 간단하다.

지금까지 박근혜를 공격했다가 본전을 찾은 일이 그들은 없다. 열린당은 정치적으로 사망했다. 언론과 여론은 열린당의 패망을 집권세력의 총체적 실패에서 찾고 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은 반사이익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대안 정책의 부재 등) 한나라당을 이끌었던 박근혜의 정치적 무게를 가볍고 보고 있는 이 착시(錯視)현상을, 한나라당과 박근혜는 조금도 억울해할 필요가 없다. 착시현상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박근혜는 건재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착시는 한나라당에게 보내는 입에 쓴 보약이 되는 반면 집권세력의 싸가지를 키운 독약으로 작용해 왔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당선 문턱까지 갔다가 박근혜가 한번 지원 유세를 다녀가는 바람에 낙선한 열린당 후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박근혜가 하면 다 정당해 보인다”
당사자의 패배감을 넘어 심리적 충격의 깊이와 두려움을 한구석 숨기지 않고 털어놓은 말일 것이다. 아마 열린당 무리 중에서 나온 거짓말 아닌 참말 한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이 말일 것이다. 

민노당이 ‘만경대 방문’과 관련해 박근혜에게 태클을 걸려다가 슬그머니 물러난 이유를 복잡하게 관찰할 것도 없다.
“박근혜와 민노당이 같으냐” 
정치에 무관심한 한 문인(文人)이 하는 말이다. 그의 말은 일반 대중의 인식을 표본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미주알고주알 따질 것 없고, 이러쿵저러쿵 티격태격할 가치가 없다 함이다.

박근혜와 맞장 떠서 줄줄이 나자빠진 열린당 대표들(이를 부인할 수 있는 자 손들어 보라), 그 변두리에서 대학교수네 뭐네 하는 좌파 딸랑이들이 온갖 정치공격, 인신공격을 퍼부었지만 결국 다 망가져 꼬리를 내리고 있다.

위에 언급한 열혈논객의 경우, 노무현 일당의 등장 이후 지금까지 그가 쓴 글을 보면 답이 나온다. 충정어린 그 글의 행렬을 따라가면 사사건건의 주장과 논리가 오판과 시행착오로 여러 곳에서 망가져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하긴 노무현 일당이 오늘날 요모양 요꼴이 될 줄을 3,4년 전에 어찌 알았겠으며, 퇴임후 봉하마을에 자기 기념관을 짓겠다는 말을 마치 이순신이 살아 생전에 자기 동상을 세우는 것 같은 모양새로 구제불능으로 미쳐버릴 줄을 애시당초 누가 알았으랴. 그러니 패망한 정권의 말년, 비정상과 정상을 구분해 바라보기가 혼란스러운 이때에 어찌 열혈논객의 공허한 말참견만을 탓할 수 있으랴만, 그래도 순간순간 진실한 것 같은 열혈논객의 뜨거운 외침이 우스꽝스럽게 비치는 건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박근혜를 쫌 겪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나고 보니 결국 박근혜가 옳더라”
망해버린 열린당이 저들끼리 가장 통절하게 느낀 바를 실토한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들이 박근혜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게 된 자초지종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건 시간낭비다.  

한나라당과 박근혜의 지금 위상을 그 높낮이 따질 것 없이 여하튼 집권세력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보는 건 탁구나 테니스 경기에서 이긴 자를 상대방의 범실 탓으로 돌리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음 바로 그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 박근혜 그는 아버지 박정희 매도가 기승을 부리던 80년대 말에 10년 세월 은둔의 덮개를 열고 언론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날로 높아질 것이다”
당시로서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려니 치부할 소리였다. 소위 박정희 신드롬이 등장한 것도 90년대 중반이었다. 박정희에 대한 긍정 평가가 정치역풍에 관계없이 대중에게 확산되는 것을 신드롬이라 오판한 것부터가 박근혜를 제대로 관찰하는 데 실패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당시의 박정희 현상이 한때의 물거품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신드롬이 아니라 역사 평가의 본격적인 시작이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박근혜만큼 아버지 박정희를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5.16혁명, 10월유신, 18년 장기집권 등 아버지에게 불리할 사안들에 대한 통찰과 연구를 역사적 안목으로 박근혜만큼 천착한 사람이 있을까.

아버지 평가에 대한 그의 미래 예측은 정확했다. 그 평가의 한복판에 박근혜가 위치해 있고, 그것이 상대적으로 과거사에 올인했던 집권세력의 이념적 실패와 정치적 패망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의 정체성은 유신 독재정권의 퍼스트레이디로 미소짓는 정체성밖에 없다. 박근혜의 정체성은 반민족 반민주 반인간적이며 이는 박근혜의 정체성일 수밖에 없다”
강아무개가 하는 이런 소리도, 세상 사람들에게 박근혜를 미워하게 만드는데 전혀 기여하지를 못했다.

박근혜를 미워하려면 보통의 증오와 보통의 정신상태로는 안된다. 적어도 ‘봉하마을 노무현기념관’ 발상 정도로는 미쳐야 한다. 그러니 아주 헤까닥 가버린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정치입문 10년이 안되는 박근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보라. 박근혜에게 덤볐다가 나자빠져 골병든 신음소리는 질펀해도 박근혜를 이겼다고 쾌재 부르는 소리는 없었다. 박근혜는 꺼릴 게 없다. 단 그에게 죄가 있다면 그에게 모질게 덤볐다가 나가떨어진 ‘몹쓸 인간’들을 만들어낸 ‘동방불패’의 죄라 할 것이다. 
 
박근혜가 피습당하던 날 오전에 만난 사람이 전 싱가포르 수상 리콴유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아는 구면 사이다. 그날 리콴유의 부인이 선거 지원 유세를 다녀야 하는 박근혜에게 싱가포르 산 목캔디를 주었다. 유세를 다니면 목이 아프다면서 그에게 주려고 싱가포르에서 일부러 가져온 것이다.

미국에 사는 교민들은 거기 박근혜가 왔을 때 ‘조국’을 보았다고 말했다. 미국에 이런저런 정치인들이 많이 다녀갔지만 텔레비전 개그처럼 ‘이건 아니잖아’를 반복하다가 박근혜를 보고는 한마디로 압축해서 ‘조국’이더라고 했다.

두 사례에 설명을 붙이는 건 구차스럽다. 간명하게 말해 박근혜는 연구대상이다.

상대를 알아야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법.
박근혜를 알려면 ‘박근혜가 아닌 것들’과의 차이를 공부할 일이다.
그를 제대로 알아야 이겨볼 희망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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