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입니다.
인생 60년을 산다고 하면 서른은 딱 절반
마지막 날 마침표를 적절하게 후회없이 잘 찍기 위해
서른에 쉼표를 찍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와서 지금까지
스무살 그 시절은 다 가고 지금 서른입니다.
스무살에 대학와서 과외하고 아르바이트하고 그렇게 학교 다니느라
그 흔한 엠티도 가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스무살부터 집에서 경제적 지원없이 학교 다닌다는거 정말 힘든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1교시부터 수업 들어야 오후에 아르바이트 할 수있습니다.
장학금이라도 받아야 쉼통을 틀수 있어 밤엔 죽어라 공부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법대를 들어가 한 이년 다니니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전과를 했죠 고시 뒷바라지 해달라고 할 염두가 생기지 않았거든요
고2때 아버지 사업 부도나서 고2때부터 아르바이트 해서
독서실비 문제지비 원서대
다행이 운이 좋아 사립고등학교 장학금 받아 겨우 졸업했으니 까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모아 유학을 가려 했지요
사귀던 사람이랑 유학을 가고싶었는데 엄마가 쓰러지셔서
집에 몽창 들어가고
음 그 사람 혼자 유학가고 전 학교 졸업을하지 못하고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저녁에 학원서 아르바이트 하고
주말엔 과외하고 시간나면 뒤에라도 유학을 가려고
저녁엔 공부하고 그러다 돈이 좀 모여 전세로 집 옮기고
직장보다 학원이 돈이 좀 더 되길래
학원으로 아예 전업을하고 오전엔 공부하고 오후에 일하고
그렇게 준비를 차근차근 했지요
그러다 친구가 많이 아파서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 돈을 그 친구의 남자친구가 사기를 쳐서
전세금이고 적금이고 카드까지모두 사천만원정도 빚이 생기더군요
2달뒤면 적금타서 5달뒤에 유학가려고 다 준비한 일이
아침 이슬처럼 흔적없이 덧없이 되어 버리더군요.
그뒤 그 친구는 자살을 하고 전 그 일때문에 경찰서에
조서받으러 가고 삶이 참 허망하더군요.
은행이며 금융권에서 압박이 심해져오고
그 세월들이 얼마나 가슴에 한이 되는지..........
아무 생각없이 일만 했습니다.
다들 어디 여행을 간다 어디 드라이브를 간다 저에겐 꿈같은 일이였죠
그흔한 제주도 강원도도 못가보고 서울 아래서 그렇게 일만 했습니다.
의미도없는 그 빚을 갚기위해 일만했습니다.
다른 정신을 가진다면 아마도 미쳐버릴것 같았던때니까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만나서 돈을 쓰게되고
또 피곤에 지친 내 삶이 슬퍼질까봐......
잠이 오지 않은 날이 많아지면서 술을 마시게 되고
중독처럼 매일밤 술을 마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잠을 잘 수있고 그리고 내일 또 일을 해야 하니까
입지 않고 먹지 않고 쉬지 않고
주말엔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수업을 하고 나면
하늘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을 받는 답니다.
지친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심야영화보고
새벽에 잠시 자고 학원에 수업가고
그런 날도 참 많았습니다. 영화관에선 울어도 괜잖으니까
빚이 다정리 되는 그주말엔 눈물이 아침부터 치밀어 올라
동작동 국립묘지에 갔습니다.
어느 병사의 묘 앞에서 그냥 서럽게 울었습니다.
울음이 허락되는 곳이 그 곳밖에 생각나지 않더군요
지금도 동작대교 지나가면 그 때가 생각나 코끝이 시큰해지죠
학원일이 쉬운일은 아니랍니다.
아이들 학부모 선생님들 원장 하루에도
악을 쓰고 뛰쳐나가고 싶은 일이 한 두번이 아니거든요
학원에서 일을 하면서 위염에 장염에
스트레스성 두통 90분 수업을 4시간 하고나면
목이며 허리가 뻐근합니다.
내 상황을 전혀 모르는 남자친구는 결혼하자 했지만 할 수 없어 헤어지고
집에선 나를 참 무모한 딸로보셨죠.
친구에세 4000만원이나 사기당해
죽어라 일만 하는 딸
그러면서 여동생 대학교,대학원입학금 도와주고
학기마다 얼마씩 도와주면서
난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만 3군데 과만 3개 법대, 교육학,국문학
한 학기 공부하고 휴학하고 한학기 다니고 휴학하고 이젠 지겹네요
그런데 여동생 박사과정 준비한다고 유학가야 한다고
저에게 또 도와달라 하네요
난 아직 학부도 마치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 적금통장 털어 줬습니다. 이젠 적금 들지 않을려구요
그런데 그 돈에서 일부는 여동생 카드값을 냈다고 하더군요
전 카드 없습니다. 있으면 쓰니까.
그런데 동생카드빚이 엄청나더군요
난 엄두가 생기지 않아 써 보지 못한 화장품이며 옷 가방
학부로 차까지.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동생이니 어찌합니까.
집에 한달에 100만원씩 생활비 드리고 엄마 아빠 나 보험료
그리고 관리비 통신료 핸드폰비 학교 학비 생활비 교통비 경조사비 등등
그러다 보면 250은 기본입니다.한달에 사백만원 조금 안되게 벌려면
쉴 쉬간없이 준비하고 스트레스받고 온몸이 지치도록 일해야합니다.
가족은 지방에 있고 난 서울에 있으니 내 생활을 전혀 알지 못하는
가족들이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번 7월에 정말 쉬지 않으면 죽을것 같았습니다.
지난 3월부터 몸에 이상이 생기더군요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고 음 잠도 잘 들수가 없고
생리도 불규칙적이고 어지럽고 멍해지고
그리고 폭식하고 소화가 안되서 개워내고
수비증이라고 목근처 입안에 물혹같은게 생겨 레이져수술하고
한의원가서 침맞고 트레스때문이라고 쉬라고 하더군요.
맥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의사가 쉬라고하는데 눈물이 나더라구요
학원을 그만두게된것도 그저 내일처럼 열심히 일하고주변에선
내가 실장이 아닌 원장인줄 알 만큼 학원 개원하면서 들어와
이지역에서 최고로 자리 잡힐만큼 키워놓고 나니
주변에적이 생겨났더군요.
알 사람은 아는데 이사장이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들게 하더라구요
아파서 월요일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연락도 못하고
기절해서 하루종일 잤던것 같은데 화요일에 출근했더니 분위기 이상하더군요.
여차저차 해서 내가 키운 호랑이에게 뒤통수 맞고
8월부터 쉬기로 했는데 한 달빨리 쉬게 되었죠.
그리고 뒤에서 뒷말하는 저질인 인간들이 싫어
그만 뒸습니다.
그런데 한 동안은 속 시끄럽게 전화와서 엄한 소리 하더니
연락 두절되고나서 몇 선생들이며 아이들이 전화와서 하는 말이
학부모들이 실장만 찾고 학원일에 클래임이 많이 걸려 해결하지 못해
학원이 많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근처 부원 나간건 관리가 되지 않아 팔았다고 하더군요.
골프치고 맛사지다니고 백화점에서 살다시피하고
해외여행이나 다니던 사람이 원을 운영하려니 많이 힘들겠죠.
암튼 7월2일 짐도 다 버리고 그
냥 훨훨 털고 학원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6시에 해가 뉘엿뉘엿지는게 눈물나도록 아름답더군요
동생들은 다 있는 차가 저는 없습니다
면허 낼 시간도 없이 살았으니
그래서 면허를 내고 차를 사서 전국일주도 하고 그러면서
보고싶은 책도 보고 잠도 원없이 자 보고
산에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고
텔레비젼 끌어 앉고 밤새워보고
음 비디오도 많이 보고
연극도 보고 아무생각없이 산책도 해보고
친구들 만나 밤새 술도 마셔보고 그래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남동생이 사고를 쳐서 구치소까지 가는일이 생겼습니다.
착하기만 한 동생이 남의 일을 돕다가
이상하게 일이 꼬여 합의금이며 변호사비며 엄청나더라구요
그래서 전세를 월세로 옮겨 해결해 주고 여동생 유학자금 대 주고 나니 허망하더라구요
이런 서른이 참 외롭더라구요.
그래서 180만원을 주고 경락맛사지를 끊어서 치료 받고
몸이 아파서 한의원 다니고
보약 져서 먹고 영양제맞고 병원서 종합검진 받고 그
렇게 첨으로 나에게 돈을 제대로 써 보았답니다
몸이 너무 아파서 한 두 주동안은 집에서 잠만 잤습니다.
맛있는 식당 찾아 다니며 식사도하고
내가 힘들떄 위로가 되었던 연주자 30만원짜리 공연도 가고
지금 아니면 다시 그러지 못할것 같아서 지방까지 가서
공연이며 작품 전시회 다녀오구
첨으로 강원도 미시령에 가서 대포항고 가보고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오피스텔에서
책보다 음악듣다 비디오 보다 산책하고 좋은 사람들이랑 저녁에 공연다니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마디 말도 안하고 침대에서 잠만 자 보기도 하고
그렇게 2달이 지났습니다.
제대로 여행도 가지 못했습니다.
일도 많고 또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 그렇게 시간이 흘렸습니다.
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가을을 몇 년만에 느껴보는것 같습니다
너무도 정신없이 보낸 내 20대를 위해 어제는 와인잔을 높이들고 건배를 했습니다.
누구나 가진 20대의 잊지못한 기억도
아름다운 사랑도 아름다운 젊은날의 추억은 나에게 없지만
열심히 살았기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린시절 너무나도 부유하게 지낸 15살까지의 생활과는
너무도 다른 15년이란 시간들에 많이 상처도 받고
가슴에 한이 된 일도 많았습니다
아직 지난날의 부유했던 생활을 잊지 못하는
철없는 엄마와 동생
그리고 가난한 우리 가족을 외면하는 친지들
세상에서 너무도 지친 그러나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아빠
나는 믿습니다.
내가 이렇게 강하게 그리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세상에 설 수있었던것은
20년 넘게 새벽 기도회를 통해 새벽 제단을 세우신
사랑하는 아빠의 기도때문이란것을
그리고 나는 소망합니다.
이 서른의 쉼표를 통해
다시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바른게 걸어가 마침표를 찍을수 있기를
난 나를 믿습니다.
어린시절 친구들처럼 외제차에 명품에
그리고 유학을 다녀오지 않고 집안이 대단하지도 않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의 길에서도 절벽의 끝에서도
난 분명히 현명하게 그리고 이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집안일 그리고 동생들
그리고 내가 결코 포기 할 수없는 학문
장남만 무게감이 있는것이 아니라 장녀에게도 무게감은 있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결혼할려고 적금들어서 회식비 못내요"
그렇게 대학 졸업하고 궁상맞게 욕들어가며 결혼자금 만들어
바리 바리 싸들고 친정집 기둥 뽑아가면서 굳이 결혼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 결혼 자금으로 외국으로 여행하면서
공부하러 가는게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그런 생각이 드네요.
외롭다"
늘 외로웠지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외로움이 아닌
삶에 대한 생활에 대한 외로움이였는데
지금의 외로움은 기대고 싶은 외로움이 밀려듭니다.
결혼하고싶은게 아니라 사랑이 하고 싶은데
사랑할 준비도 사랑할 자격도 없는것 같아
이 외로움마저 낮설게 느껴집니다.
와인을 좋아하면 외로워진다는 말을 무시했는데
와인을 매일 마시면서 예전엔 느끼지 못한
외로움을 같이 마시고 있는것 같습니다.
서른에 맞이하는 쉼표의 의미는
5년을 마셔서 겨우 알아낸 와인의 외로움 같습니다.
깊은 한숨을 담아 긴 내 20의 삶의 흔적들을 내려놓으니
조금은 가벼운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