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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가 당한 너무너무 억울한 모친상...

불쌍한내친구 |2004.09.09 16:34
조회 1,414 |추천 0

얼마전 절친한 제 친구가 유명하다는 이 병원에서 너무 어미없고 황당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내년초 결혼을 앞둔 그 친구는 한창 엄마와 함께 결혼준비와 미래설계에 행복해해야 할 지금 비통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병원의 행태를 참을 수 없어 그 친구의 글을 올립니다... 여러분들도 읽어주시고 많이 퍼뜨려 주세요... 언젠가 나의 가족 혹은 친지도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할 나름입니다... ㅠㅠ

 

2004년 6월 말경 집 근처 내과에서 갑상선 이상 진단을 받아, 가톨릭대학교 부천성가병원으로 검사를 받기 시작하여 약 2개월간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친 후 최종적으로 8월 16일 갑상선암 2기 진단을 받으셨다. 결국 8월 22일 일요일 병원에 입원하셨고, 수술 주치의(김욱교수, 외과과장)는 수술 준비를 위해 이틀동안 혈압과 심전도 검사를 하였고, 수술하는데 무리가 없다며 8월 24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수술을 하셨다. 수술 후부터 8월 26일까지 어머니는 마취의 휴유증과 수술 시 기도에 삽입했던 호흡기 튜브 때문에 죽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셨다. 허나 어이없게도 첫날 어머니 식단은 보통사람이 먹는 밥이 나왔고, 어머니는 한 숟가락도 드시지 못하셨기에 나는 간호사실로 가서 죽으로 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갑상선 제거로 인해 칼슘 수치가 떨어져 손발과 얼굴 안면이 저린 증세가 있었으나 이는 수술 전 환자와 보호자에게 권고를 한 터라 칼슘제와 주사약으로 크게 불편함없이 저린 증세만 있어 오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인 2004년 8월 27일 오전 05:45분경 눈을 뜨니 이미 어머니가 일어나 계셨길래 잘 주무셨느냐고 물었더니 손발이 저려서 새벽 03:00부터 일어나 있었다고 하셨다. 계속 주물러 드려도 점점 심해졌고 평소 저린 증세보다 너무 달라 간호사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자, 07:30분 간호사실로 황급히 뛰어가 어머니가 손이 뻗뻗하고 마비증세가 있고 얼굴 또한 마비증상이 있다고 호소하니, 식전인데도 별다른 말없이 그럼 “약먹이세요”라고 하며 어머니의 상태를 직접 보고 체크도 하지 않은체 김혜아 간호사는 알약 3알을 주었다. 다시 병실로 돌아와 급히 3알의 약을 드린 후에도 약 30분이상 증세는 계속되었고, 그쯤 홍지연 간호사가 링겔에 주사약을 투입했는데 이전에 주사 맞으실 때와는 달리 왜이리 아프고 뻐근하다며 괴로워하셨다.
9시경 평소 회진 돌던 시간보다 40분정도 늦게 김선아 의사(주치의, 레지던트 1년차)가 왔고 목에 연결되어있던 핏통을 빼주고 마비증상이나 손떨림은 일시적으로 오는 예상된 증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그 후 11시쯤 엄마 친구분(진아 어머니)이 병문안을 와서 얘기 나누시던 중 저린 증상에서 다시 마비증상으로 증세가 심해졌고, 얼굴도 마비증세가 또 와서 약 11시 30분쯤 다시 황급히 간호사실로 달려가 호소하니, 이선희 간호사가 또 알약 4알을 주며 직접 보지도 않은체 어이없게 그냥 먹이라고 하였다. 이때도 또한 간호사는 오지 않았고 나는 알약을 들고 다시 병실로 와서 어머니에게 먹인 후, 어머니 친구분과 나는 계속 주물러드렸다. 약을 드신 후 속이 자꾸 매스껍고 헛구역질 심하게 하고, 기운이 너무 없어 보였다. 점심도 못 먹고 원탁있는 곳으로 갔는데, 엄마 얼굴이 창백하고 눈만 감고 묻는 말에도 대답을 못하셔서 병실로 모시던 중 복도에서 쓰러져 주저앉으셨다. 이때가 14:30분쯤이였고, 마침 바로 앞에 있던 이운경 간호사를 불러 엄마가 쓰러졌고 이상하다고 호소하니 혈압과 맥박만 체크하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하고 뒤돌아 차트에 뭘 적었다. 이운경 간호사는 이때 김선아 의사에게 두 번 콜을 했었다고 이후 진술했으나 의사는 콜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진술하였고 그때 오지 않았다. 바로 병실로 모시고 침상에 눕혀드렸는데도 계속 말씀도 못하고 얼굴이 창백하여 온몸을 만져보니 너무 차고 식은땀이 심하게 나있어 다시 간호사실로 달려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말하고 병실로 뛰어왔다. 어머니가 화장실에 힘겹게 갈려고 하시길래 화장실로 부축하여 앉혀드리고 나니 간호사가 와서 어머니를 보고는 어디 아프시냐고 물어도 대답을 못하니깐 뺨을 여러 번 때리고 큰소리로 말해보라고 다그치니, 잠시 후 힘겹게 “숨이 차다”고 말씀하셨고 바로 바지를 올리려고 일어서는데 쓰러지셨다. 이때가 14:40분쯤이였다. 그때까지도 의사는 없었고 간호사와 저만 엄마를 일으키려 했는데 되지 않자, 큰소리로 도와달라고 소리를 크게 치니깐 병원에서 일하시는 아저씨 한 분이 오셔서 어머니를 침상으로 옮겼다. 이후 간호사들이 응급처치를 하려는지 뭔가를 가지고 뛰었고, 이후 주치의도 아닌 다른 의사 한명이 와서 엄마를 급히 봤으며 이후 의사들 몇 명이 왔다. 나는 너무 당황하여 엄마를 지켜보지 못하고 복도에서 가족들에게 울며 불며 사실을 알린 후, 약 10분 후에 언니가 도착하였고 그쯤 어머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언니와 나는 계단을 통해 중환자실로 도착하였다.
중환자실로 어머니가 옮겨지신 후 약 30-40분 후에 아버지도 도착하셨고, 중환자실에 옮겨지고 약2시간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하였다. 여러 번 의사가 우리를 불러 자기들도 왜 이러는지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추정컨데 심장이나 폐쪽에 노폐물 같은 것이 혈관을 막는 폐색전증으로 의심하였고, 계속 심폐소생술을 하였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면서 의사가 5시 40분쯤 가족을 중환자실 안으로 불러 어머니를 보여준 후 호흡기를 빼는 시간이 사망시간이라며 보호자들의 동의하에 호흡기를 빼겠다고 하였다.
혼자서 어머니를 4일간 밤낮으로 병간호하며 정성을 다해 새벽에는 알림을 맞춰 보살폈던 딸로써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습니까? 병원 밖도 아니고 병원 안에서 그것도 단순 입원환자도 아닌 암수술 환자를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하던 바로 직전까지 의사 한번 와서 보지도 않고, 간호사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나쳐버린 부천 성가병원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날 새벽 김선아 주치의를 만났는데, 어머니는 살아계셨어도 이미 온몸에 암이 퍼져있을 가능성이 80%가 넘는다며 우리 가족을 체념하게 만들었고, 차라리 편하게 가신 편이 낫겠다 싶었는데, 다음 날 토요일 다른 의사하는 말이 어머니는 이미 100% 암은 제거가 되었고 90% 교과서상으로는 치료가 끝난 상태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시 김선아 주치의를 만나려 해도 성가병원측에서는 연락처가 없다는 둥 알려줄수 없다는 둥 휴가를 갔다는둥 연락이 안된다는 둥, 만남을 회피했고 일요일 밤 자기 핸드폰도 아닌 공중전화기로 전화가 왔고 자신은 간호사에게 콜 받은 적없다며 자신은 내일도 병원에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간호기록에 있던 그 당시 간호사도 쉬는 날인데 핸드폰을 두고 산에 갔다는 둥 여러가지 거짓말들로 시간을 끌었고, 절대 부검까지 갈 수 없었던 저희 가족은 회의를 통해 장례를 치렀고, 2004년 9월 2일 2시경 병원측에서 연락이 와서 당시 있었던 간호사들과 만나 물었지만, 자신들은 할 소임을 다했다며 책임전가에 급급했다. 수녀라는 분도 거짓말만 하고 자기 간호사들을 감싸기 급급했다. 의사는 의사대로 연락을 못받았고 자신들도 황당하다하고,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자신들 할일 다했다고 하고, 도대체 환자와 보호자는 누굴 믿고 부천 성가병원에 간단 말입니까?
너무 분통하고 답답합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 절대 가톨릭대학교 부천 성가병원엔 절대 가지 마십시오. 소중한 한 인간의 생명을 늦장 조치로 죽게 만들어 놓고 아무도 단한번도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도 없이 자신들은 책임없으니 고소할려면 해보라는 식입니다. 너무 분통하고 분통하여 앞으로 어떻게 지낼지 까마득합니다.

2004년 9월 3일
딸 최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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