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순이가 바베큐가 된지 일주일이 되어도 난 성규씨에게 차마 바베큐 신세가 된 갑순이 이야길 못했다. 얼마나 이뻐한 돼지인가말이다.
중간중간 물어도 그냥 딴청만 피다가 드디어 조심스레 말을 했다.
일그러진 실망스런 성규씨 표정을 보며 너무 미안했다. 괜히 내가 데려다 죽인게 아닌가 싶기도하고, 잘 관리 못해서 그랬나 싶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갑자기 우리 가게에 손님이 버글거렸다.
난 스페인어로 떠드는게 하도 지겨워서 집에 와서는 일체 텔레비젼을 안본다. 뉴스도 안본다.
그러니 바깥 사정에 어둡기 마련이다.
물건이 모자라 점심시간에 도매상을 갔더니 으메~ 웬 가격이 이케 올랐대?
우린 그 때 페소화로 받고 있었는데, 달러가 오르니깐 그 화폐 가치에 따라 물건값도 숫자가 올라가는거다. (아우스트랄 전 화폐의 이름이 기억이 가물하다. 아마도 페소가 맞을듯~ ㅎㅎ)
오늘 만약 1달러에 백페소면 낼은 1달러가 삼백페소 정도의 가치가 되는거다.
그럼 설탕을 백페소에 사다가 팔고 낼 설탕사러 가면 삼백페소를 내야 같은 설탕을 사는거다.
그동안 내가 밑지고 파는격이 된거다. 흐미. 얌체들. 그러니 갑자기 그케 모르던 손님들도 버글버글하지.
아르헨티노의 특징은 어디 뭐 싸다고 하면 멀어도 기를 쓰고 거기가서 줄서서 사는게 얘네들이다. 이제 정보를 다 알아야하니 도매상을 싹 뒤져서 모든 물건의 가격을 적어와야 했다. 거기에 맞춰서 가게의 물건값도 올려야하니까.
이제 집에가서 편하게 아이랑 있을 시간도 없어졌다. 매일 도매상을 들려 가격 조사를 한 뒤에 가게에 와서 가격표를 바꿔 붙여야했기 때문이다.
가격을 너무 정보 빠르게 올려서 다른 가게가 올리기 전에 올리면 또 이가게 비싸다고 소문나니 그것도 적당하게 잘 맞춰서 올려야하고 너무 늦게 올리면 손해보기 쉽상이다.
모든 물건의 가격을 보기쉽게 매직으로 써서 붙였는데 그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물건 종류가 오죽 많은가. 하루하루 정신을 어디 두고 사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지냈다.
춤추는 달러.
달러의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니, 그것도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니 미칠 지경이다. 달러로 물건값을 받는 장사는 편하고 이익도 꽤 짭잘하다고들했다. 뭐든 힘들면 올라서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 와중에 돈 번사람이 꽤 되니 말이다.
월부로 물건을 팔고, 페소로 받는 사람들은 쫄딱 망하는 일이었다.
그때 우리가 대형 냉장고를 카드로 사서 월부계약을 했는데 그 때 2천불 가치가 되는 그 냉장고가 달러의 가치가 높아지며 페소로 돈을 내다보니 일년뒤에 그 냉장고의 가치가 2백불도 안되었다. 물론 그건 우리가 낸 페소의 가치가 그랬단거다.
그래서 그 냉장고는 거의 공짜로 산거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렇게 달러가 뛰니 나라 경제가 말이 아니었다.
한국 사람끼리는 무조건 달러로 거래가 이루어졌고, 또 집값이나 중요한 차 값 같은 것은 달러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연말이 다가오면 아르헨티나는 돈이 있건 없건 축제 분위기가 된다. 놀기좋아하는 아르헨티노에게 크리스마스는 가장 큰 명절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 나라의 모든 은행은 문을 닫았다.
허~!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지?
경제가 위급하니 있던 대통령이 못해먹겟다고 손을 들었고, 차기 대통령 메넴이 자기가 경제를 함 잡아보겠노라고 특별 경제살리기 팀을 구성해서 정치를 잡았고, 그 첫 번째로 시행한게 모든 나라의 은행문을 닫는거였다.
12월, 1월, 2월까지 은행문은 꽉 닫혀져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은행에 돈을 넣고 있던 사람들은 기가막혔다. 그리고, 급한 돈도 문이 닫히고 일을 안하니 찾을 수도 없었다. 수출입하던 사람들은 부도위기에 있었고, 외국에 신용이 빵꾸가 나는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우리 시댁이나 나나 거기 은행에 넣을 남는 돈이 없어 다행히 우린 문닫은 거에 대한 피해가 없었지만, 은행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발만 동동굴르고 있어야하는 시기였다.
연말, 사람들은 축제할 돈은 커녕 생계 유지를 위한 돈도 없어서 쩔쩔매야했다. 많은 사람들이 데모를 하고, 생 난리부르스를 쳤지만, 경제를 살릴라구 그런다는데...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 때 까지만해도 공원 여기저기서 나라에서 빵을 구워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급식조가 있었더랬는데, 이 와중에 그런거도 없어졌다.
이 때 달러가 많은 사람들은 달러 쓰기 참 재미났다.
달러파동, 한국에도 몇 년전에 왔었지 않은가. IMF 이 무선 단어는 영어를 잘 모르는 울엄마도 아신다. 내가 한국에 다니러 갔을 때 달러파동난 한국이었는데, 내가 포도가 먹고싶다니깐 이 IMF에 너같이 많이 먹는애는 없다. 챙피하니 방 구석에 혼자 숨어먹으라고 했다. ㅎㅎ 그리고 물건도 참 싸게 샀던거로 기억한다. 난 달러를 들고 갔었더랬으니깐.
그렇게 가게에서 쩔쩔매며 있을 때 아주버님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구세주가 온거다. 이 가게가 내 가게였던가. 아니지. 아주버님 가게징~!! 얼른 가게를 넘겨줄 준비를 하였다.
아주버님이 이 달러파동난 상태에 있는 가게 운영에 적응하실 동안 내가 가게를 봐주기로 했다. 오자마자 물건을 채워넣고 나도 번갈아 가게도 나오고 아이랑 집에서 있는 날도 있게되어 너무 좋았다. 정들었던 손님들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되었고, 얄미운 손님들은 뒤꼭지를 보며 속으로 '아디오스(영원히 안녕)'를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