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춤[影舞] 5 -내글-
제1장 지나온 세월, 그리고 새로운 출발 4
- 새로운 출발은 항상 기분을 들뜨게 한다. 약간의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4
김인문은 얼렁뚱땅 연정의 이름을 물어 보았다.
“네? 네에, 연정 입니다, 김연정 이요.”
“아하, 연정 씨. 정민에게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하하하! 하여간 반갑습니다
.”
전화 속에서 작은 소리로 나이 많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한테 온 전화니, 민이냐?”
“아니요, 어머니. 정민오빠 선배님 이래요.”
“쯔쯔, 그 말투하고는. 오빠가 뭐냐? 언제부터 내가 네 어미가 됐냐?”
“어, 어머니...!”
김인문은 전화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고 연정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
었다.
“여보세요!”
“아이, 실례 했습니다. 잠시만 이요...! 어머니, 전화 먼저 받고요.”
“요새 것들은 도대체가...”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다시 연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좀 더 슬픔을 머금은
목소리 이었다.
“죄송합니다. 요즈음 정민 씨 때문에 어머니께서 예민하세요.”
“아하, 이해합니다. 그런데 정민이도 없는 데 그곳에 계십니까?”
연정은 순간 당황한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네! 사, 사실은 한동안 정, 정민 씨가 저에게 연락을 안해서요. 오늘은
제가 큰맘 먹고 직접 왔는데... 정민 씨가 없어서... 이렇게 됐어요.
“아하, 이해합니다. 그놈아가 연정 씨에 대해 말을 많이 했거든요. 연정씨가 용
감하고 씩씩하다고요.”
김인문은 특유의 순발력과 입심으로 연정을 안심시켰다. 연정은 전화상의 선배라
는 인물의 말에 방금까지의 우울했던 기분을 어느 정도 걷어낼 수 있었다.
“어머, 그런 말까지 했나요? 굉장히 가까운 선배님 되시나 보죠? 그런데 성함이?
”
“아... 에, 그렇습니다. 김인문이라고 합니다. 그놈아가 제이야기를 안했나?”
“그러세요. 처음 듣는 분이네요. 정민 씨가 친한 선배들이나 후배들은 제가 다
아는데... 이상하네?”
순간 김인문은 아차 싶었다. 너무 친한척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는 생각이 들
었다. 더 이상 통화를 했다가는 정체가 들러날 것 같아 서둘러 말을 끊기로 했다.
“아, 하하하! 사회에서 만난 선배입니다. 혹시 그놈에게서 연락이 닿으면 연락하
란다고 전해주십시오.”
“네, 그렇게 하지요. 연락처는...?”
“하하, 그놈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다음엔 얼굴을 보
여 주십시오, 제수씨!”
“네? 네에!”
- 딸각
당황하는 연정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김인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후, 용감한 아가씨군. 본인도 없는데 남자의 집에 쳐들어가 전화까지 받다니.
별로 환영받지도 못하는 것 같은데,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 아가씨로군.
’
다시 정민의 신상 파일을 들쳐보기 시작했다.
‘정보가 부족해, 너무 막연하잖아. 인척이나 가족관계는 자세하게도 조사했지만,
정작 친구관계는 나타난 게 별로 없군. 고등학교부터 뒤져야겠군. 당분간은 여기
저기 돌아다닐 곳이 많겠군.’
연정은 처음 알게 된 자칭 정민의 사회 선배라는 사람의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
겼다. 정민과 처음 만난 후로 지금까지 2년 가까이 정민을 사귀면서 많은 일을 격
어지만 최근의 일처럼 황당하고 곤혹스런 일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난 날, 그 당시 정민은 공군사관학교 이학년 생도였고, 연정은 대학 일학
년생이었던 1982년 시월 이였다. 정민을 소개한 전강욱은 생도 삼학년으로 연정이
고등학교시절 문학반 특별활동을 통해 의남매를 맺은 사이였다. 정민이 사관생도
라는 것과 고등학교 동창 단짝친구인 승연이 역시 전강욱이 소개한 생도 삼학년인
강정석을 사귀는 것도 그 자리에 나가게 된 이유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친구가
사귀고 있는 사람의 후배라는 것 때문에 꺼려 졌으나, 정민이 재수를 해서 강정석
과 나이도 같고, 밖에 나오면 셋이 친구처럼 지낸다는 설명을 듣고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정민의 첫인상은 좋았다. 가끔 흰 이가 드러나는 환하고 소리 없는 웃음과 헌칠한
키, 그리고 그런대로 봐줄만한 호남형의 얼굴 등, 대체로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정민은 정말 말이 적었다. 꼭 필요한 말만하고 그
다음은 바로 찬바람이 불었다. 전강욱의 강권에 억지로 끌려나온 티를 냈다. 그는
연정이 물어보는 말에만 단답형의 대답을 했다. 연정이 생각하기에 정민은 키가
크고 사관생도라는 것밖에는 좋게 봐줄 것이 하나도 없는 멋대가리 없고 꼭 제거
되어야 할 폭탄이었다.
처음 만나고 나서 소개한 전강욱에게 뭐 그런 남자를 소개했느냐고 짜증을 냈다.
전강욱은 고스란히 연정의 짜증을 듣고는 말했다.
“그놈은 내가 제일 아끼는 후배야. 솔직히, 내게 너 같은 여동생이 있었다면 무
조건 그놈아 하고 당장이라도 약혼을 시켜버렸을 거야. 짜증은 내게 부리더라도
그놈한테는 잘해주라. 좀 더 사귀어 보면 그놈의 좋아하게 될 거다. 그러니 잔소
리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만나라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말이 통해야지. 내가 백 마디 하면 겨우 한, 두 마디 입
을 열면 뉴스감이야. 오빠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하지 않아?”
그 후로도 전강욱은 삼주 내내 주말에 외출, 외박을 나올 때마다 정민을 끌고 나
왔다. 단짝 친구인 승연도 꼬박꼬박 연정을 만나는 장소로 끌고 나갔다. 승연은
정민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연정에게 바람을 잡았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 가면서 정민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정은 그런 성화에 마지못해 만
나는 장소에 나가서 정민을 만나는 그 순간부터 후회가 됐다.
정민은 정말로 말수가 적었다. 연정과 만난 정민은 그저 돌부처처럼 앉아서 주문
한 차나 가끔 마시고 묻는 말에는 별 감정 없이 담담한 말투로 단답형 대답만 했
다. 연정은 처음에 오기가 생겨 정민의 말문을 열기위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했지
만 실패했다. 그나마 정민은 연정과 헤어질 때는 꼬박꼬박 집근처까지 데려다주는
기사도(?) 정신만은 철저하게 지켰다.
결국 네 번째 만남에서는 연정은 정민과 똑같이 말을 안했다. 결국 한 시간 동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다 결국 변변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
날도 변함없이 택시를 같이 타고 집근처까지 따라온 그는 유일하게 먼저 꺼내는
말인 정중한 인사를 변함없이 연정에게 건넸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다음에 뵙겠습니다.”
헤어질 때면 변함없이 하는 말에 연정은 불편한 심경을 그대로 얼굴에 떠올리며
말했다.
“다시...! 언제요? 어디서요? 누구랑?”
순간, 속사포처럼 쏘아 붙이는 연정의 말에 정민은 당황한 듯했다. 그것도 잠시,
정민은 그 특유의 흰 이가 드러나는 환하고 소리 없는 웃음을 지으며 평소와 다름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연정에게 말했다.
“다음 주말에 외출이나 외박을 나오게 되면 강욱선배랑 변함없이 나올 겁니다.
장소는 정석선배와 같이 다니는 분과 약속이 될 것이니 걱정할 필요 없을 것입니
다. 역시 선배 두 분과 저, 그리고 연정씨와 승연씨 이렇게 다섯이 같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정민은 연정이 물어온 말 순서대로 대답했다. 정민의 말이 끝나자 연정은 더욱 화
가 치밀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의 성화에 못 이겨 정민을 만나는 일은 그만 두어
야겠다고 결심한 연정은 정민에게 쌀쌀한 말투로 말했다.
“알았어요, 다음에는 뵙지 못할 것 같네요. 더 이상 주위 사람의 강요로 정민씨
를 만나는 걸 그만 두겠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정민은 연정의 말을 듣는 순간 얼굴에 띠우던 웃음을 싹 지우고 굳은 표정으로 대
답했다.
“그렇습니까? 오늘이 연정씨와 마지막 만남이 되는 겁니까? 그동안 재미없는 저
를 만나 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연정은 너무나 담담하게 말하는 정민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다. 이렇게 쉽게 자신
의 말에 순순히 동의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 이었다. 연정은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는 정민의 말에 화가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에 몸을 돌려 집
으로 걸어갔다.
연정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전화를 집어 들었다.
-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 탈각
“여보세요, 전강욱씨 계세요? 저 고등학교 후배 연정이라고 합니다.”
“어이, 연정아 웬일이냐? 벌써 데이트 끝냈냐?”
“데이트는 무슨 데이트, 다음부턴 그 사람 안 만날 거애요!”
“무시라고, 다신 안 만나? 누구 맘대로...?”
“누구 맘은, 내 맘이지. 선배 진짜 그 사람, 더 이상은 않되. 다음에 선배랑 만
날 땐 그 사람이 옆에 없었으면 해요.”
전강욱의 굳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찼냐?”
“그래요 내가 그만 만나자고 했어요.”
“너는 왜 그렇게 성급하냐? 그놈이 바로 그러자고 했겠지. 아이고, 나도 그놈에
게 당한 셈이네.”
“무슨 소리죠?”
“그놈이 우리들 사이에 좀 인기가 있다고. 여러 면에서 난 놈이라, 그놈하고 고
리를 연결하려 애를 쓰고 있지. 그놈은 애써 숨기고 있지만 전 공군참모총장 정열
장군의 조카이고, 뿐만 아니라 공사의 전설인 옥호 장군의 친척이기도해. 그런 배
경에다 인간성도 좋아서 그를 따르는 후배가 수두룩하다고. 우리 동기들을 비롯해
서 모든 선배들이 너도나도 여자를 소개해주었지만 다들 몇 번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더라고. 너는 다를 줄 알았는데, 실망인 걸.”
“그 사람, 완전이 벽창호야. 아무리 배경이 좋고, 인간성이 좋으면 뭐해요. 누구
라도 두 번 다시 만나기 싫어하는 타입이라고. 아무리 참고 감수해 보지만 이젠
손들었어요. ... 잠깐만, 선배니~임!”
“어! 왜 그래?”
“저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그러는 거애요?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히 속물이
네. 실망했어요.”
순간, 화가 난 연정은 큰소리로 전강욱에게 쏘아 붙였다.
“어어, 점점...! 야, 그만해라! 너, 나를 안지 4년이 넘었는데 나를 그렇게 모르
냐? 그 말 취소해라.”
“어머, 미안해요. 취소할게요. 하지만 그 사람을 계속 만나다간 제가 속 터져 죽
을 것 같아요. 다시는 만나기 싫은 사람이라 구요.”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내일 귀영하면 그놈 호출해서 혼 좀 내야겠다. 한
이삼일 굴려야 네가 나를 오해한 대가를 받아낼 것 같은데...!”
“선배님, 괜히 그러지 마세요. 전화 끊을게요. 내일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후후, 그래...! 그럼 잘 지내라. 다음에 보자.”
전화를 끊은 뒤, 연정은 정민이란 인물을 머리에서 지우려 노력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연정은 무언가 모를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 주말에는 2학년생도 전체가 한 달간 금족(생도들이 외출, 외박이 금지되어
교내에서만 지내는 벌칙)을 당했기 때문에 연정은 정민과의 거북살스런 만남을 피
할 수 있었다. 연정은 전강욱에게 정민과 같은 사람 말고 동기생을 소개해달라고
지나가는 말로 건넸지만, 전강욱은 연정에게 정민과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는
소리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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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입부라 인물 성격을 설명하기 위한 내용이 많습니다.
처음부터신나는 활 극을 기대하셨던 분들에게는 조금 실망 스럽겠지만,
이 이야기는 꽤나긴글이 될 겁니다.
문자그대로 장편이 될 예정입니다.
내글이 올립니다.
===> 오늘도 변함없이 벌레들의 공습이...![]()
혹시 네이트 게시판지기가 이글을 보신다면
'파란'에는 없는 벌레 좀 잡아주이소.
힘들어서 글 못 쓰겠습니다.![]()
벌써 5번째입니다.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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