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악랄한 무리들이로군.’ 유혼교도를 향한 효연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반드시 이 빚을 천배 만배로 갚아줄 것이다.’ 마음이 급하지만 여러 생명이 걸려있고 또한 무림의 안위와도 중대한 관련이 있기에 경거망동이 금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효연이기에 급한 마음을 다독이며 운공조식과 책읽기에 열중하는 것으로 황제의 명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효연이 현금을 타며 어지러운 심사를 달래려는데 한 궁녀가 숨어들어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쉬”하였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효연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궁녀가 조용하게 말하였다. “당신이 주효연인가요?”
“그렇소만... 그리 말하시는 낭자는 뉘시오?”
“말 듣고 생각한 것보다 더 준수하신 분이로군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
“난 경원공주 후란이라고 해요. 당신도 성이 주씨라면서요?”
“허! 공주께서 미천한 백성의 거처에 어인 행차이시오? 그것도 변복까지 하시고....”
“당신의 소문이 하도 많아서 궁금하기에 몰래 와 본 것 뿐 이예요. 내가 듣기에 당신이 무림의 최고라는데 정말인가요?”
“당치 않으신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뛰어난 인재가 많으며 지금 무림에도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동창과 동반의 원사가 한 말이 전부 거짓말이라는 말인가요?”
“그럴...겁니다. 아니면 그분들이 황궁에만 있어서 세상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아닌 것 같은데.... 가끔 놀러 와도 되나요?”
“큰일 날 말씀이십니다. 황제폐하가 아신다면 즉시 제목을 치실 겁니다.”
“누가 말이나 한대요?”
“아무리 그러신다 하여도 안 될 말입니다.”
“누가 안 된다고 했나요? 제가 그런다면 그러는 거지.... 그리고 아까 타던 현금 계속 타 보세요. 너무 듣기 좋았어요.”
“허! 이거야 말로..... 진퇴양난이로군요.”
“어서요~~” 하는 수 없이 효연이 현금을 타기 시작하였다. 울적한 심사와 어지러운 마음의 상태가 그대로 현금을 통하여 나타나자 듣는 이까지 괜히 슬퍼지는 것이었다. 공주가 눈물을 글썽이며 “왜 그렇게 슬픈 곡조를 타는 거예요?”
“흠.... 제 마음이 울적한데 그대로 나타난 것이겠지요.”
“잘 들었어요. 오늘은 이만 가고 나중에 다시 들를께요. 그래도 되지요?”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고귀한 분이 이런 행동을 하시면 어찌합니까?”
“내 마음이예요. 그럼 잘 있어요.” 하며 살며시 나가는 품이 제법 무공이 뛰어난 솜씨였다.
“이거야 원 정말 큰일이 나겠는데...” 걱정을 해 보지만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상대였으니.....
그나저나 경원공주는 정말 월궁의 항아와도 같은 미모를 지니고 있어 변복을 했지만 그 미색이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말 그대로 경국지색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늘씬한 키에 투명한 눈빛으로 아직 소녀티가 가시지 않은 순진무구한 표정 등.... 앞으로 효연을 얼마나 갈등 속에 빠트리려는 것일까?
효연은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실없는 웃음을 날리게 되었다......
이제 완벽하게 무공을 회복하였으나 밖으로 드러나게 할 수 없는 효연은 오히려 무공이 폐지된 상태가 더 편하였음을 느끼며 무공에 대한 회의.......서로 상반되는 마음의 상태를 느낀다.
그날 밤 효연이 막 운공을 하려는 차에 미세한 소리가 감지되었다. 거의 들리지 않는 인기척과 함께 다가서는 날카로운 살기....... 효연의 무공이 전폐되었다고 믿는 유혼교일까? 아니면..........
효연은 얼른 침상에 베개를 가지런히 하고 이불을 가운데로 모아 사람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는 재빨리 어두운 벽에 몸을 붙이고 침입자를 기다렸다. 한동안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침입자가 가느다란 철사를 사용하여 창문의 고리를 풀고 문을 조용히 열고 있었다. 효연은 숨마저 끊은 채 방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으나 침입자는 대롱을 집어넣고는 미혼약까지 불어 넣었다. 완벽하게 제압하기 위하여서는 침입자가 방안으로 들어 왔을 때 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효연은 지루하지만 침착하게 기다렸고 결국 검은 인영이 창을 통하여 방안으로 들어서 침상 쪽으로 다가서서는 침상에 비수를 꽂아 넣는 것이었다. 그 순간 효연이 재빨리 침입자의 전신 주요대혈을 현음지를 쏘아내 순간적으로 제압해버리니 괴 인영은 침상위로 엎어져 버렸다.
효연이 재빨리 침입자의 복면을 벗겨내니 천무장에서 보았던 얼굴이었다.
전신을 제압당한 침입자는 당황한 빛이 완연하게 보였다. 무공이 전폐되었다던 효연이 자신을 제압하였으니 그 놀라움이........ “정말 끔찍하도록 잔혹한 집단이 아닐 수 없군....” 효연이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당신은 이제 황궁을 침입한 죄목으로 갇히게 될 것이오. 그 전에 나에게 좀 고초를 받아야겠고......”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단 두 가지 뿐 이오. 그 하나가 유혼교의 본부위치이고 두 번째가 유혼대제의 정체인데 말해줄 수 있겠소?” 조용하지만 억양이 없이 싸늘한 효연의 말소리는 상대의 마음을 누르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눈동자만 굴릴 뿐 꼼짝을 못했으며 효연의 손에서 싸늘한 음한지기가 자신에게 전해지기 시작하자 스스로 심맥을 끊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이미 때가 늦어 전신이 얼어 들어가는 기분이어서.......
“이제 당신의 전신은 나의 현음지기에 거의 얼어붙었고 조금 지나면 서서히 동상을 입을 것이오.” 하며 아혈을 풀어주었다. “그냥 쉽게 죽여주면 고맙게 생각할 것이오.”
“흠..... 당신들 유혼교도는 이상한 사람이 많군요. 그냥 죽여 달라는 부탁밖에는 할 줄 모르오?”
“.....................”
“난 쉽게 죽도록 할 수 없으니 그게 좀 문제가 되는군요.”
“당신이 물었던 두가지중 어느 것에 대하여도 나의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이오.”
“그래요? 그럼 당신이 겪을 고초가 걱정될 터인데....”
“상관없소.”
“흠..... 역시 의지가 굳으신 분이군요. 한번 시험해 보겠소이다.” 하며 효연이 양강의 진기를 급작스럽게 부어 넣었다. 그런 후 몇 군데의 혈도를 풀고 다시 아혈을 짚었다. 얼었던 전신에 갑자기 열류가 흐르자 전신이 가렵기 시작하더니 피부가 갈라지며 진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마치 작은 벌레가 전신을 기어 다니며 물어뜯는 듯하니 전신을 어찌할 수 없는 침입자의 눈자위가 희 번뜩하였고 효연이 몇 곳의 혈도를 더 열자 몸부림치기 시작하였다. 잠시 더 진행을 시킨 효연이 혈도를 제압하여 전신을 마비시켜버리자 고통이 가시는지 늘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
“아...아무...말도 할...말이 없다.”
“흠...... 정말 기개가 있는 분이시군요. 그렇다면 나도 오기가 생기는데.......” 상대가 들을 때는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 말소리인가? 나지막하였지만 억양이 없이 싸늘한.... 마치 저승사자의 소리 같지 않을까?
다시 서늘한 기운이 효연의 손을 타고 전신으로 흘러들었다. 이제는 마치 바늘로 전신을 마구 찌르는듯하여 입을 열수 있다면 목청껏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하지만............
아무런 표정의 변화조차 없는 효연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겁에 질릴 지경이었는데.........말소리까지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효연은 얼른 이불로 덮어서 가리어 놓고 걸터앉았다.
“안에 주대협 계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원사께서 어인 일이신지?” 하며 안으로 안내하니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말하였다.
“유혼교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걱정 마십시오. 저 하나야 어찌 간수 못하겠습니까?”
“하여간 조심하시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효연이 아무 일이 없는 듯하자 안심하고 돌아서는 것 같았다.
“흠.......” 효연은 문을 닫고 다시 문초를 시작하였다. 이미 한차례 지독한 고통을 맛보았던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효연이 이불을 걷어내자 눈동자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반쯤은 넋이 나가버린 상태였다.
“그래 아직 말할 결심이 안선 것 같군.... 지금 바로 시작하면 너무 심할 것 같아서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지.”하며 두곳의 혈도를 풀어 놓았다. 족삼리와 용천혈이었다. 발바닥에서부터 간지러운 기운이 대퇴부까지 이어지니 울지도 웃지도 못할 가려움에 전신이 뒤틀리는 것 같을 것이다.
효연은 모르는 척 운공에 들어가 일주천을 하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아! 내가 잊고 있었네.....”
“그래, 좀 생각이 납니까?” 이건 아주..... 몸이 성하여 대항할 수 있다면 절대 그냥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은 지탱할 수 없는 가려움에 뼛속까지 저려오기 시작하니....... 아무리 이를 악물고 참으려 해도 그 고통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기절이라도 하면 고통을 잊을 수 있지만 교묘한 효연의 손놀림에 기절 할 수도 없어 마냥 겪을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을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으니......
“음..... 정말 대단히 참을성이 강하군요. 이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그럼 나도 끝을 보고 싶군요.” 누가 끝을 보고 싶다고 했는가? 지금이라도 그냥 죽여준다면 여한도 없을 터인데...
효연은 더 이상 괴롭히는 것에 대하여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 그럼 한가지로 줄이겠소. 유혼대제가 독안마제 본인이 아니오? 눈으로 대답해도 됩니다.” 하지만 침입자의 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고 모든 것을 포기한 체념의 빛이 흘렀다. 효연은 더 이상의 고문도 그에게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당신을 과소평가한 것 같군요.” 하며 그의 하반신을 헝겊으로 동여매고 치료를 시작하였다. 더 이상의 동상이 진행되지 않도록 음한지기와 양강지기를 소멸시켜버리니 더 이상의 고통이 소멸되었는지 편안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였다. 효연이 그의 금제된 혈도를 전부 풀고 나서 “이제 그냥 가셔도 됩니다. 단, 돌아 가시면 유혼교에 반드시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황궁의 일이 끝나면 반드시 유혼교를 찾아 그 빚을 받아낼 것이니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왜 죽이지 않았나?”
“당신의 기개에 감복하였소.”
“음.... 지금 나를 보내면 후회할 수도 있을 터인데.....”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긴..... 나 정도야..... 하지만 나도 유혼교에 돌아가면 강시가 될 뿐이니 그렇게 살기는 싫고 기별은 해주고 멀리 떠나야 할 것 같소.”
“그리 생각하신다면 그냥 멀리 떠나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럼 지금 떠나겠소.” 하며 아직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며시 황궁을 빠져 나갔다.
다음날 경원공주는 아예 동반의 원사를 대동하여 효연을 찾았다.
“당신의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공주께서 무슨 무공이 필요합니까?”
“아무리 공주라도 내 한 몸 지키지 못한다면 그게 더 우스운 일이죠.”
“황궁의 서고에는 수많은 무림기서와 비급이 쌓여있을 것인데 어찌.......”
“그럼 당신이 같이 서고에 가서 내가 배울 무예를 골라서 가르쳐 주시면 되죠.”
“황궁의 서고를 아무나 들어갈 수 없으니 그건 불가능합니다.”
“나와 같이 가는데 무엇이 문제가 될까요?” 동반의 원사가 고개를 끄떡이며 동조하였다.
‘허어,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야..... 황궁의 서고에 나 같은 무림인을 들여보낸단 말인가?....’
“내가 손해 될 것은 없으니 그럼 가봅시다.”
셋이 동반의 구역을 벗어나 황궁의 서고로 들어갔다. 별 다른 제지도 없이 서고에 들어선 효연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수많은 장서와 그 놀라울 정도의 치밀한 분류......
서고의 무공실이 별도로 되어있어 들어가 보니 더욱 놀라게 되어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싱그러운 주말입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맞는 주말이라보니 관광버스의 대기열이 자꾸 길어지고있네요.
독자여러분들도 회색빛 도시를 벗어나 자연속으로 나가 책이라도 한권 읽어보심이 어떨런지........
저도 오늘 저녁에는 춘천으로 가보려 합니다.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