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 아버지 아이디로 글을 씁니다...
부모와 자식은 인연으로 만나서 서로를 훈련시키며 자란다는,
어느 님의 글을 읽고 우리 아버지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것보다
나의 아버지가 교과서나 tv에 나오는,
가난하지만 인자하고 정직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다만 너무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자신을 돌볼 틈 없이 살아오다 보니
원래 급하게 타고난 성격에, 교육으로 품성을 길들이지 못하고
사회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해 가정에서는 완벽한 권위주의자로 군림하고 싶어하는
그냥 안쓰러운 사람입니다.
다만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취중진담이라고 할까요.
말이 많아지며 가족들이 상처받을 행동을 합니다.
그냥....가장 기억나는 건
제가 초3때, 술에 취해 오빠와 저를 불러앉혀
우리집이 너무 가난해서 너희들을 못 키우겠으니 고아원에 보낸다고
아는 아저씨가 그러는데 고아원에서는 매일 치즈도 한장씩 주고
너희들도 쓰레기통 뒤져서 우유곽에 있는 우유 한방울씩 얻어마시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만하라고 말리는 엄마를 심하게 때려서 엄마가 맨발로 도망쳐 버렸고
떨고있는 오빠와 저 앞에서 전기밥통을 발로 차고 육각형 성냥곽을 던졌어요.
다 찌그러진 전기밥통 옆에서 곯아떨어진 아버지를 뒤로 하고
오빠와 저는 울면서 떨어진 성냥들을 주워 모았구요.
다음 날, 아침밥도 못먹고 점심 도시락도 못 싼 채 학교에 갔다 오니
엄마가 집에서 목욕하고 있더라구요.
가까운 친척집이 있어서 거기서 자고 오신거에요.
저는 엄마한테 오빠하고 나 언제 고아원 가냐고 물었지요.
엄마는 아빠가 헛소리한거라고 하지만 저는 26살이 된 여태껏 잊혀지지가 않네요.
그리고 며칠전에는...
당신 젊었을 때는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알았는데
지금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절대 결혼 안 했을거다,
너네들 키울 돈으로 혼자 잘 먹고 잘 살았을 거다 하시더군요.
저 그냥 속으로... 그 정도 돈으로 잘먹고 잘살기는 어렵지요 하고 웃고 말았지요.
지금 전 제 아버지에 대해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지만
어렸을 때에는 어른이 되어 돈 많이 벌어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보내는 게 꿈이었답니다...
성장하면서 저보다 더 어렵게 자라난 다른 사람들의 경험도 들었고
부모지만 정말 부모자격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도 사람인데 100%완벽할 수만은 없는데다
중간 과정이야 어떻든 아버지가 자신의 온 능력을 다해
우리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혼자 떠맡아 온 건 사실이니까요.
이제 예전처럼 아버지에 대해 크게 증오하거나 원망하는 건 없지만...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남자친구 집에 자주 놀러가고, 남친 부모님들과도 식구처럼 정든 상태인데
남들은 다 이렇게 온화하게 사는구나, 생각하니
조금은 억울하고 서럽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네요.
남자친구는 저와 7살 차이나고, 과거에는 좀 잘 살았다지만
사업이 IMF때 부도나서 지금 저희 집 재정상태랑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친은 모은 돈도 없고 빚조차 있지만-500만원-
아버지와 비교해서 너무너무 다르고 정말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남친이 직장에서 승급을 하며 연봉이 많이 올라
내년부터는 저축을 할 수 있게 됐네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가난에 익숙해서인지...
그냥 밥이랑 집걱정만 안하고 살면 된다는 주의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정이 아버지 눈에는 어떻게 비쳐질까 걱정이 됩니다.
아빠가 원하는 사윗감에서 남친은 한참이나 멀찌감치 떨어져 있지요.
남친이 아버지를 만나면 그 언행에 충격받을까봐
아빠가 집에 늦게 들어온 나를 죽인다고 망치를 들고 덤빈 일과(엄마가 말려서 살았지요)
진밥만 드시는데 어쩌다 된밥이 되면 숟가락을 밥그릇에 꽂아놓고 안 먹는다는
기행담들을 간간이 얘기해 준답니다.
남친이 말을 조리있게 잘 해서 남친 VS 아버지는 별로 걱정 안하지만
상견례 때, 예비 시댁식구 앞에서 아버지가 어떤 돌출발언을 할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한숨이 나옵니다.
결혼식 때 친구 대행도 해준다는데, 멀쩡하게 살아계신 아버지를 두고도
정말 알바라도 고용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건 아닙니다.
예비 시부모가 저와 아버지를 흠잡을 게 두려운 것도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는 몰라서...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결코 고칠 수 없기에
아버지가 자식들에게조차 외면하고픈 존재로 남아야 하는 것이 슬프네요.
그리고 그런 아버지 옆에서 묵묵히 참기만 하는 엄마도 슬프구요.
엄마는 오빠와 제가 결혼해서 떠나면 약먹고 죽을거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것이 두렵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고슴도치 같습니다.
다가가면 찔려서 피를 흘리고
그러다 상처가 아물어 다시 다가가면 또다시 피를 흘립니다.
아버지는 고슴도치라서 아무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파서 다가가면 피를 흘리고
그렇게 돌아서며 눈물이 흐릅니다.
아버지는 고슴도치라서,
웅크린 몸을 펴기 전까지는 자신의 가시로 내가 다치는 것을 모르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모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는 날이,
아버지가 이 세상에 나와 있어 주실 때,
단 하루라도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