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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건국기 1부-19편: 꿈속의 영웅들

Alone |2004.10.26 19:26
조회 134 |추천 0

요우단은 안타까왔다.
정복왕께서 십 년의 대계 속에 키워낸 아스가르드 왕국의 대업이 자신의 형인 니시마루의 손에서 점차 그 빛을 바래가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심정에 요우단은 방을 나와 묘지로 향했다.

성의 북쪽 지역에 마련된 정복왕의 묘 입구에는 양쪽으로 용 모양의 아치가 길게 드리워져있고 과거 영웅들의 석상이 주욱 늘어서 있다.
경비병의 경례에 답한 후 요우단은 길다란 입구를 한참이나 지나 정복왕의 묘비 앞에 서서 예를 행한 후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양반 다리를 한 채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주위는 조용하고 벌레 우는 소리뿐이다.

"폴크스겐님..."

나지막히 정복왕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는 곧 회상에 잠겼다.

처음 대륙통일 전쟁이 시작될 당시 자신은 불과 9세의 꼬마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의 오랜 세월동안 대륙의 소국들은 정복왕의 이름 아래 점차 하나가 되었고 자신도 정복왕과 그를 따르는 수많은 영웅들을 보면서, 자라나는 자신의 키만큼 원대한 꿈을 키웠다.

당시 니시마루는 대륙 전체에 걸쳐 크리스트 신앙을 전파하려는 꽤 규모가 큰 교구집단의 촉망받는 젊은 사제였다.
니시마루는 그의 나이 얼마 되지 않을 때부터 이미 신으로부터 커다란 능력을 부여받았었다.
그런데 널리 대륙에 그들의 종교를 전파하려던 교구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정복왕에게 그의 능력을 빌려주면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니시마루와 요우단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고아 형제인 탓인지 그 우애가 남달랐다.
그런 각별한 우애를 가진 형제였기에 니시마루는 항상 요우단의 손을 잡고 전장을 누볐으며 요우단은 자연스럽게 수많은 전쟁 영웅들을 접하게 되었다.
자신의 형인 니시마루도 그런 정복왕을 따르는 영웅들 중 하나였다.
요우단은 항상 그런 형이 자랑스러웠다.



요우단이 묘 주위에 피어난 풀잎 하나를 꺽어내어 곱게 접어 입에 대고 피리를 불었다.
그 때 그 시절 전장의 고요하고 아름다운 밤이면 형이 들려주던 풀피리 소리였다.
한참 그렇게 피리를 불다가 요우단은 요즘의 형의 모습이 생각나 자신도 모르게 눈을 적셨다.
주색에 절어 깡마른 모습하며 촛점을 잃은 흐리멍텅한 형의 눈동자는 예전에 자신이 알던 아름다운 신의 사제로서의 형이 아니었다.
정복왕께서도 그렇게 가신 일도 그렇고 요우단은 이 모든 것이 분명 신의 축복을 시기하는 마귀의 농간이라 생각되었다.

"요우단님은 어디 계신가?"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느 정도 후련해진 요우단이 막 정복왕의 묘 입구를 나오려는데 그의 부관이 애타게 자신을 찾고 있다.

"무슨 일인가? 베넥~!"

베넥의 안내에 따라 요우단이 초소에 도착했다.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베넥을 보고 요우단이 왜 그러느냐며 물으려다가 저 쪽 후미진 곳에서 심하게 토악질을 해대는 병사 하나를 발견하였다.

"요우단님 전 차마 다시 볼 수가 없습니다."

베넥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애원하기에 요우단은 혼자서 초소 안으로 들어갔다.
초소 안은 아무도 없이 휑한데 가운데 탁자 위에 나무로 만든 술독 하나만이 올려져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온통 피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흐...아....아...."

요우단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술독을 들여다 보았다가 깜짝 놀라 뒤로 서너 발자욱 물러났다. 심하게 비위가 상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허리를 숙이고 토악질을 하려다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다시 술독으로 다가갔다.

"요...우...단...님... 흐...아...아..."

술독 안에는 저민 고기처럼 반죽이 된 채 구겨 넣어진 병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분명 들어 있는 것은 저민 시체의 고깃덩어리일 터인데 신기하게도 빼족히 고그 사이로 삐져 나온 머리가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아직 살아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요...우...단...님... 주...죽여...주...세...요. 제발... 저...를 ... 죽여...주세...요."

"소속을 밝혀라~!"

"요...우...단...님... 저는... 달라니안의..."

요우단은 술독 안에 저민 고깃덩어리 병사가 하는 얘기를 듣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달라니안은 이미 함락되고 백성들은 몰살당하였으며 성주와 자신의 아들인 파크조차 생사 불명인데 자기는 적의 대장 하나가 죽은 데 대한 보복으로 잘게 다진채 술독에 넣어져 노새가 끄는 수레에 실려 바이자르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즉, 의미인즉슨 저항하지 말고 어서 항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사가 덧붙인 한마디는 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제발 어서 자신을 죽여없애달라는 것이었다.

요우단은 초소를 나와 베넥 부관을 불러 절대 이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도록 엄히 단속시킨 후 술독 안의 병사를 무슨 수를 써서든지 어서 빨리 죽여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한 채 그도 곧 토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평원이 펼쳐졌다.
폴크스겐의 뒷모습은 언제 봐도 믿음직스럽다.

"형~! 폴크스겐님은 언제 봐도 멋진 거 같애."

"그렇지? 요우단. 나도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다."

니시마루가 동생 요우단의 금빛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상냥하게 웃었다.
곧 투르크 족과의 일전이 벌어질 터인데 평원은 조용하기만 하다.

"형 이번에도 꼭 우리가 이기는거지?"

"그래 그렇단다. 하지만 그래도 만약을 모르니 넌 항상 이 형 옆에만 있어야 한다."

"예 알았습니다.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멋진 형님!"

경례를 하며 제법 존대를 하는 귀여운 요우단의 모습에 옆에 섰던 제라드와 엘리아가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폴크스겐의 곁에 있던 도우가가 뒤를 돌아다보며 말한다.

"투르크 일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아가 대답한다.

"예 오빠~! 모두 준비시킬께요"

"후와~! 엘리아! 난 어서 빨리 일 끝내고 매운 핫소스를 가득 바른 양구이 다리를 뜯고 싶다고"

거대한 체구의 지그가 하품을 해대며 투덜거리자 제라드가 말한다.

"지그는 언제나 먹는 타령뿐이군요."

제라드의 핀잔에 지그가 이렇게 대답한다.

"난 진지한 건 별로라구. 제라드양! 그런건 폴크스겐 녀석한테나 해달라구래~"

"어머머~! 지그님 왜 이러세요. 폴크스겐님은 이 엘리아꺼라구요. 제라드 언니도 절대 넘볼 수 없다구요. 알았죠 언니?"

"우하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농담이라구!"

엘리아가 샐쭉거리며 정색하자 지그가 호탕하게 웃는다.


그의 커다란 웃음소리에 니시마루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쩍 마른 손가락으로 방금 전에 꾼 악몽을 잊으려는 듯 옆에 놓인 술병을 들어 마시려는데 투명한 술병에 자신의 얼굴이 비추인다.
머리칼은 온통 새하얗고 얼굴 가득 주름살이 꾀죄죄한 노인네의 모습이 보이는데 눈은 움푹 꺼져 어둡고 퀭한 눈동자엔 초점이 없다.

잠에서 깬 니시마루는 들었던 술병을 입에 가져다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밤새 마물들의 꽥꽥 되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에 휩싸인 달라니안 성의 모습은 수백장 떨어진 먼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레오르도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한다.

"이곳도 이미 마물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었군."

"결국 달라니안 쪽으로도 갈 수 없겠구료."

동카스가 레오르도의 말을 받아 한마디 더했다.
레오르도 일행이 루씨와 베르베르를 따돌리고 곤두와나를 떠나 길을 나선지도 한참이 지났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인간들의 땅을 목도해왔다.
자신들이 이런 혼돈의 전장 속에서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아이리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건만 아마도 대륙 전체에 걸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것 같군..."

"이만큼 됐으면 당신도 자신의 과거에 대한 얘기를 좀 해줘야 하지 않겠소?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소만 이 혼란한 와중에 왜 바이자르에 가려고 하는 것이오?"

"후~우!"

동카스에 물음에 레오르도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이리스도 자신의 아버지가 왜 바이자르로 가려는지 내심 궁금했다.

"그 많은 사연을 모두 얘기할 수는 없소만... 지금은 우선 어떤 초라한 늙은이의 옛날 얘기를 하나 해드리리다."

레오르도는 잠시 자신의 딸을 쳐다본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오르도의 이야기와 함께 동카스, 그리고 아이리스는 마물들의 눈을 피해 말머리를 돌려 달라니안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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