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가 재미없나요....?
리플이나 추천수에 초월했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적으니... 저도 소인배 맞나봅니다. ^^
스토리 진행이 느린가? 포인트 방향을 잃어버렸나? 어디가 별루인걸까? 등등
열심히 생각중인데, 제 눈엔 잘 안보이네요.
지적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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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 흡혈귀 마녀와 동침을II - 04 >>
쓰는 이 : 연지바른 마녀(mskim0920@nate.com)
*등장인물*
-신윤아(여, 18세, 화자)
-최선우(남, 58세) : 아시아 대 배우, 엔터테인먼트, 푸른 극장 대표
-이민수(남, 19세)
-한 욱(남, 19세)
-지나현(여, 18세)
-이태석(남, 60세) : 태석 영화사 대표
-강현민(남, 49세)
-유성린(여, 58세) : 선우 약혼녀, 뮤지컬 배우
그 외...
#
한 학기가 지날 때까지,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아니, 보긴 봤다.
신문에서...
그동안 준비해 온 뮤지컬 공연이
곧 무대에 올려진다는 홍보성 기사에서.
아무에게도 아무일도 없었다.
나만 빼고.
나현이조차 매니지먼트 학원을 다니며,
다른 신인 탈렌트에게 푹~빠져, 그를 잊어가는데...
나만 혹독한 마음의 홍역을 앓고 있었다.
[민수 : 어떻할래.]
[윤아 : 뭘 어떻해요,
그 비싼 공연초대권 받았으면 가야지.]
[민수 : -_-;;;]
영화부 후원차원으로
푸른 극장에서
이번 뮤지컬 공연 초대권을 보내왔다.
[민수 : (다짐) 너 괜찮은거지.]
[윤아 : 안괜찮으면요.]
[민수 : ...]
[윤아 : 상관없잖아요, 그냥 구경가는건데.]
[욱 : 니들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냐? ^^
니네 사귀냐?]
[윤아 : 욱이 선배 찍은 영환 언제 개봉되요?]
[욱 : 음... 아픈델 찌르는군.]
욱이 선배가 복면쓰고 날아다녔다는 -_-;;;
그 영화는 후반부 제작비가 떨어져,
제작이 중단된 상태다.
자칫하다간 아예 엎게 생겼단다.
그 제작비 1/10이면
우리 영화부는 돈 걱정안하고
작품 하나 뚝딱 만들어놓겠구만.
휴우- 영화 생각할 땐
그래도 마음에서 열이 덜 난다.
#
" two 로미오와 줄리엣 "
푸른 극장에서
엄청난 홍보 작전을 시도한 것이
한 눈에 보였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좌우로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뮤지컬의 하일라이트를
뮤직비디오 뺨치게 편집해
뿌려대고 있었다.
헉!
우리 영화부 남자 멤버들,
그 화면에 완전히 넋나갔다.
하긴 같은 여자가 봐도... 놀랄 화면이다.
진짜루... 유성린이 탱크탑에
찢어지고 물들인 청바지를 입고
금발로 염색한 긴 퍼머머리를 휘날리며
저런 섹시춤을 춘단 말야?
중학생 딸을 둔 여자 맞아?
뮤지컬은 무대 라이브인데다
연기와 함께 춤, 노래를 함께
전부 소화해 내야하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는데...
저 나이에 저런 게 가능하다고...?
아아... 나로선 정말 불가사의한 세계다.
그런데! 고전 명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에 웬 섹시춤???
#
관중석의 조명이 꺼지고,
무대도 어둠에 싸이더니,
느닷없이 화려한 조명과 불꽃들이 튀어올랐다.
무대 가운데 서 있는 유성린은
로비에서 본 것보다 더 야하고 화려하고 섹시한 의상과 코디였고,
섹시코드로 가는 여가수의 콘서트를 방불케하는 파워풀한 무대로
(백댄서와 함께 역동적이고 폭팔적인 빠른 댄스와 노래)
단숨에 관중들을 사로잡았다.
유성린의 노래가 끝나자
무대 한 켠에서 두 사람이 박수치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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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플렛 : 오, 역시! 당신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구려. 하하-^0.^^]
[줄리엣 : 어머니, 너무 멋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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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유성린은 줄리엣의 어머니, 카플렛 부인?
그런데 원작에서 저 배역이
저렇게 능동적이고 활발한 배역은 아니었는데.
현대식으로 재해석 어쩌구 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두 커플이라고 하더니...
팜플렛에서 뭐라고 설명했더라...?
로미오의 삼촌인 최선우와 줄리엣의 어머니 유성린이
원조 로미오와 줄리엣,
그들이 약과 칼로 시도한 동반자살에서 실패해 살아난 후
17여년 후의 베로나에서
이렇게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전염병을 피해 외국으로 피신해있던
줄리엣과 그의 어머니가 베르나로 돌아오고,
젊은이들이 몰리는 베르나 광장의 클럽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원조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이었던 최선우와 유성린은
교회에서 각기 딸과 조카를 데리고 재회를 하고,
자신의 아이들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교류를 눈치챈다.
줄리엣은 로미오가 몬터규 집안 아들이라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캐플렛 부인은 딸에게 속삭인다.
"원수집안 남자면 어떠니, 네가 사랑한다면."
최선우는 로미오가 전염병으로 잃은 부모대신 키운 조카의 사랑을 위해
두 아이의 사랑을 지켜주리라 - 맹세한다.
그러나 유성린은 딸 줄리엣이 자신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갈 것을 두려워해
모정으로 두 아이를 갈라놓으려 한다.
그 중간중간 최선우와 유성린의 옛 사랑 회상 부분이 여러 춤과 노래로 들어가고,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도 원작에서 설정되어 있던 고난이
현대식으로 각색된 에피소드로 엮여, 차례 차례 닥친다.
그러나 몇백년 골이 깊어온 집안 간의 갈등이 한순간 없어질 수는 없는 일.
최선우는 두 아이를 외국으로 도피시키려 하지만,
유성린이 줄리엣의 도망을 막으면서 갈등은 극적으로 치닫는다.
"당신은, 우리와 같은 비극을 저 아이들에게 또 다시 되풀이 할 생각이오?"
커텐 뒤 실루엣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비극적 사랑에 대한 파워를 내뿜으며
무대 전체를 압도하는 최선우.
"나에게 당신은 빛바랜 과거일 뿐, 현재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은 내 딸이예요."
하지만 유성린은 최선우의 설득에, 줄리엣을 로미오에게 보내지만,
유성린의 남편 캐플릿이 등장해 두 아이를 보호하려는
최선우를 죽이고 만다.
유성린도 자신이 끝까지 감추고 있던 옛사랑의 죽음과
떠나버린 딸에 대한 잃어버린 모정에 미쳐서 자살한다.
부모 세대의 비극적인 사랑을 딛고,
신 세대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마감한다.
그러나 몇 년 뒤 베로나로 돌아온 로미오와 줄리엣은
또 다시 집안간의 갈등에 휘말리는 암시를 남기며 막이 내린다.
화려한 무대, 역량있는 신인 뮤지컬 배우와
원숙미를 지닌 원로급 배우들의 조화가 훌륭했다.
한 무대에서 여러 장소 연출이 순식간에 바뀌는 - 드라마 화면을 보는 듯한
무대 장치 연출은, 관객들을 무대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전체적인 긴박감있는 스피트한 스토리 진행과
원작의 고어와 현대어의 적절한 배합이 작품성을 느끼게 했다.
1년 넘게 준비해 온 철저함도 충분히 알 수 있겠다.
관객들의 기립박수에
커튼콜 앵콜 인사 무대가
서너번 계속 됐다.
[나현 : 역시 최선생님 대단해. 그치? ^^]
그가 희곡 작업부터, 연출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했던 것을
말하는 걸 거다.
[윤아 : ...그렇네.]
[민수 : 욱아, 나 무대 뒤에 잠깐 다녀올게.
애들 먼저 데리고 나가.]
[욱 : 어.]
#
[민수 : 넌 왜 나 따라오는데?]
[윤아 : ... 저두 축하드리러요.]
좋은 작품 본 것까진 좋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까, 기분이 상당히 드러웠다.
그 무대... 반 년 전 내가 그에게서 거절당하고 무너졌던
무대란 것이 갑자기 생각났기에.
무대 뒤 분장실은 단원들과 축하하러 온 지인들과 팬들로
북새통이었다.
[윤아 : (꽃다발 내밀며) 축하드립니다, 대성공이네요. ^^]
[선우 : 어... 고맙다. ^^]
내 등장이 의외였던 듯, 잠시 떫떠름하던 그의 얼굴에서
곧 밝은 미소가 나왔다.
아무것도 아니었어... 이 사람한텐.
그 무대가 어떤 무대였는지.
[민수 : 축하해, 삼촌. ^^]
[선우 : 응, 그래.]
서대리가 그에게 와서 귓속말을 하자,
황급히 일어났다.
[선우 : 미안하다, 급히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민수 선배와 함께 로비로 나가자,
마침 정대표와 한 외국인과 악수하며 인사나누는 그가 보였다.
외국인이 그에게 연신 '브라보! 브라보!' 하는 걸 보니,
굉장히 좋게 본 보양이다.
[민수 : 이번 거 해외 공연 진짜 나가나보네.]
[윤아 : 해외 공연요?]
[민수 : 어, 정대표님 알지. 이번 건 성사시키려고
웬만한 해외 공연 바이어들을 찾아다니며, 자비로 초대했다드라.
잘하면 세익스피어 고장인 영국에서도 공연할지 몰라.]
대단하다.
나는 열심히 발버둥쳐도,
아직까지 그 시간동안 다큐 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는데...
그는,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은...
숨막힐정도로 커다란 일들을 해내고 있다.
그와 나의 거리는,
그가 팔을 뻗으면 그의 손끝이... 내 머리에 닿았던만큼의 거리는,
하늘과 땅만큼
아주 멀리... 멀어졌다.
이미 그럴 필요도 없는거겠지만,
나도, ...내 마음을, 내 발걸음을 돌아 세운다.
정확하게 180도, 그에게서.
뒤로 돌아섯!
#
최선우의 식사 초대는,
의외였다.
[윤아 : 저두요?]
[민수 : 응. ^^]
[윤아 : 영화부 전체가 가는 것도 아닌데, 저두요?]
[민수 : ... 싫어? 이젠 괜찮다며.]
[윤아 : ...-_- 웬 갑작스런 식사 초대요?]
[민수 : 삼촌 곧 해외 공연 떠나잖아.
한동안 집이 비니까, 냉장고에 남아있는 음식재료 처리반이 필요한거야. ^^]
[윤아 : -_-;;;;;]
[민수 : 삼촌 항상 그래, 일있어서 외국에 나가게 되면
떠나기전에 보고 싶은 사람들 불러다
남은 재료들로 이름도 알 수 없는 퓨전 음식을 해 먹이지.
먹을만 해. ^^]
[욱 : 아냐, 굉장히 맛있어. ^^
나도 여러번 가봤는데, 꽤 괜찮아.]
[윤아 : ...-_-'''']
[욱 : 나도 가도 되냐?
이 자취생 간만에 영양보충도 하고, 음식도 좀 얻고.]
[민수 : 당근이지... 삼촌이 세 사람정도면 된댔으니까.^^]
[욱 : 근데 윤아 넌 왜 떫은 감 씹은 모냥이냐?]
[윤아 : 아, 아니예요.]
[민수 : 그럼 이따 같이 가는거다.]
[윤아 : ...]
#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선
민수 선배가 자기 집에 가방을 놓고 온다고
잠깐 윗층으로 올라가고,
난 욱이 선배랑 먼저 최선우의 집에 들어섰다.
[욱 : 안녕하세요!!! ^0^]
집 안 전체가 음식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성린 : (앞치마 두른 채 부엌에서 나오며) 어머! 어서와 ^^]
[윤아 : ! ]
최선우, 그도 뒤이어 앞치마를 두른 차림으로
부엌에서 나왔다.
[선우 : (아무렇지 않은) 윤아도 왔구나.]
[윤아 : (꾸벅 인사) ...]
...새삼스레 충격받을 건 없다.
두 사람... 결혼설까지 있었고,
게다가 누가 봐도 너무 잘 어울리는데...
더구나 엄연히 성인인 두 사람이 침실에서 나란히 나온다해도,
이상할 것 하나도 없는 건데...
...질투났다.
죽을 듯이 질투났다.
아... 내 마음이 아직도 그에게서
한 걸음도 돌아서지지 않았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수미 : 엄마!]
중학생쯤 됐을까...?
예쁘장한 소녀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유성린을 불렀다.
[성린 : 어, (윤아와 욱을 가리키며) 인사해.
엄마하구 최선생이 잘 아는 언니오빠들.
이쪽은 내 딸, 수미.]
[수미 : 안녕하세요~ ^0^]
[욱 : 안녕? 난 한욱이야.
와~ 유선생님 닮아서 그런지 무지 이쁘다.]
[수미 : (방긋방긋) 감사합니다~ *^^*]
[윤아 : 아, 안...녕...^^;;;;;;;]
그 때 민수 선배와 선배의 아버지 이태석 대표, 부인이 들어왔다.
[선우 : (태석에게) 어서와, 형.
(태석 부인에게) 어서오세요, 형수님. ^^]
[윤아 : (태석과 부인에게, 꾸벅 인사)]
[태석 : (약간 못마땅 한숨-, 윤아를 지나치는)...]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거실에 차려진 상 앞에 앉았다.
난... 견디기 힘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민수 선배에게 팔을 잡혔다.
[윤아 : (작게) 놔요.]
민수 선배가 슬쩍 거실 쪽을 보더니,
나와 함께 문 밖으로 나와, 살짝 현관문을 닫았다.
[윤아 : 선배, 진짜... 못됐다.
이런 거 보여주려고 일부러 나 데리고 온거죠?]
[민수 : 삼촌 이번에 떠나면 몇 년은 못들어 와.
정리하려면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하라구.]
입술이 피나도록
윗니로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런데도 눈물이 그렁... 고였다.
[민수 : 너 이러고 가버리면,
삼촌 절대 맘 편하게 못 떠나.
들어가자.]
[윤아 : ... 무슨 뜻이예요?]
[민수 : 다른 의미로 삼촌, 너 걱정한다구.]
[윤아 : ...]
[민수 : 현실을 직시해, 신윤아.]
알지, 왜 나도 현실을 모르겠어...
그가 함께 떠나는 사람은 유성린이라는 걸.
타향에서 함께 생활하며, 함께 공연하며,
이번엔 정말로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동반자가 되는 걸텐데.
유성린의 딸이 이곳에 온 것도 그런 의미일텐데.
[윤아 : 미안한데, 선배... 나, 다른 사람 생각해 줄 여유 없어요.]
민수 선배가 잠깐 화난 듯했다.
[민수 : 너 그 정도밖에 안 돼?
신윤아, 그 정도밖에 안돼?
내가 널 한참 잘못봤구나?]
...자존심 상했다.
민수 선배는 내 팔을 잡고 있던
자기 손을 탁- 놓았다.
[민수 : 알았다, 가. (문 열고 들어가려는데)]
[윤아 : 들어갈래요.]
[민수 : (돌아보는) ...]
#
거실에 차려진 상은 진수성찬이었다.
물론 욱이 선배 말대로
이름을 알 수 없는 퓨전 음식들이 태반이었지만. -_-;;;
미각은 맛있다고 아우성쳤으나,
식욕은 이미 사라졌다.
내 앞에서 그와 유성린 사이에 수미가 끼어서
그의 밥에 반찬을 놓으며
온갖 귀여운 짓을 다하고 있으니...
입안이 소태같았다.
욱이 선배는 아무것도 모르고, 참 잘 먹는다.
[태석 : (선우에게) 너 언제까지 이렇게 냉장고 정리하며 살래, 어?]
[선우 : 형두 참. ^^]
[태석 : (성린에게) 성린씬 왜 자꾸 미지근하게 그래요..?
이번 기회에 이 녀석 확실하게 주저앉혀요, 알았죠?]
[성린 : ^^]
[태석 : 국수 좀 먹어봅시다, 국수 좀.]
[선우 : 국수 먹구 싶어? 지금 삶아줄까?]
[태석 : 녀석, 능청은.]
[수미 : (냉큼 끼어들어서) 저두 국수 먹고 싶어요. ^^]
[민수 : (수미에게) 너 그게 무슨 소린지 알아?]
[수미 : 그러엄~ ^0^
저한테 멋진 새아빠가 생긴단 뜻이죠오~
(애교스럽게 선우에게 팔짱 끼는)]
모두에게서 유쾌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성린 : 하여튼 내 딸이지만, 요즘 애들은 너무 영악해. ^^]
[태석 부인 : 왜요, 하는 짓이 이쁘기만 한데.^^
나도 수미같은 딸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태석 : 나두 그래. ^^]
[선우 : ... (윤아 보더니) 왜 그렇게 못먹어?]
[윤아 : ...(억지로 잠깐 웃으며) 오기전에 군것질을 좀 했어요...]
[욱 : 남은 건, 저 많이 싸갑니다? ]
[선우 : 어, 그래. ^^ 나야 고맙지. 많이 먹어라.
자취하는데 혼자 챙겨먹는 거 만만치않지?]
[욱 : 넵!! ]
[민수 : 삼촌, 이거 대체 이름이 뭐야?]
[선우 : 음... 피자밭에서 김치와 돼지고기가 뛰어놀다. ^^]
[모두 : -_-;;;]
[수미 : 사랑하다-가 더 좋아요! ^^]
[선우 : ^_^ 그래, 피자밭에서 김치와 돼지고기가 몰래 연애하다.]
[수미 : 멋있다! ^0^]
[욱 : 맛있다. ^^]
하하하... 호호호... 후후후...
[태석 : (선우에게) 이번 공연 때 캐나다 쪽도 경유하면,
선영이한테 들려볼거야?]
선영... 캐나다에 살고 있는 그의 여동생.
[선우 : 응. ^^
참, 민수 너도 방학하면 캐나다에 한 번 들어갔다 와라.
선영이가 너 보고 싶어하더라.
너 기억나니? 어릴 적에 선영이 애들하고 같이 놀던 거.]
[민수 : (갸우뚱) 별로...잘. ^^;;;]
[선우 : 하긴 ^^ 어렸으니까.
(태석에게) 형, 민수 보내줄거지?]
#
어른들끼리 반주까지 곁들여,
느긋하게 즐긴 저녁 식사는...
밤늦게서야 끝났다.
그는 끝까지 매너좋게
현관문을 나서는 일행을
배웅했다.
[태석 : 잘 먹고 올라간다. ^^]
[선우 : 어. ^^]
[태석 부인 : 그릇 치우는 거 도와드릴까요?]
[선우 : 아니예요, 됐어요.
어차피 아직 짐도 덜 쌌는걸요.^^
같이 치우면 되요.
형하고 올라가세요, 얼른.
형 좀 취했네요.]
[태석 : 너도 취했잖어.]
[선우 : ^^;;;;]
[민수 : 일손 필요하면, 불러.]
[선우 : 알았다. ^^]
[성린 : 갈게. ^^]
[선우 : 조심해서 가요.]
[수미 : 아저씨, 안녕! ^^]
수미가 작별 인사로 그의 뺨에 뽀뽀하는데,
순간 그의 눈과 내 눈이 잠깐 마주쳤다.
[윤아 : ...]
[선우 : (굳는) ...]
[욱 : (꾸벅) 오늘 감사합니다.
공연 잘하시구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십시오.]
[선우 : 그래.^^
(욱에게) 윤아하고 같은 방향이야?]
[욱 : (윤아보곤) ... 아닐걸요.]
[윤아 : (어색하게 인사) 가보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잘했다, 신윤아.
너 오늘 잘했다.
이제 이 현관문만 나서면, 되는거야.
이 연극은 막을 내려도 되는거야.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 뒤를 따라,
욱이 선배를 따라,
마지막으로 현관문을 나서는데,
가슴이 콱- 메인 통증에 주저앉았다.
[선우 : 왜 그래?]
[윤아 : (하아하아-숨가쁜) 갑자기.. 가슴에 뭐가 얹힌 것 같아서요...]
간신히 대답하는데,
울컥 속에서 토악질이 올라왔다.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변기에 대고 넘어오는 것을 토했다.
여기서 먹은 것도 그다지 없는데,
점심 먹은 것이 도로 올라온 것 같았다.
[선우 : (따라와, 윤아 등 두드려 주며)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이젠... 제가 아파야만, 절 봐주시나요.
[윤아 : ...급체한 것 같아요.]
[선우 : ...!]
그는 잠시 짐작가는 듯한 표정이더니,
소리없이 일어나 화장실을 나갔다.
난 수돗물로 입안을 헹구고, 나왔다.
[선우 : (방안에서 뭔가 들고 나오며) 손부터 따자.]
[윤아 : ...]
[선우 : 잠깐만 따끔하면 돼.]
[윤아 : ...네.]
그의 손이 내 등을 쓸어내리고,
어깨에서부터 팔 전체를 여러 번 쓸어내리더니,
내 엄지손가락 손톱 밑을 사혈침으로 찔러
피를 냈다.
[선우 : (안쓰런) 손이 왜 이렇게 찬거야...
...급체 맞네. 피가 죽어있다.]
[윤아 : ...]
그가 다시 내 등을 두드리고 쓸어내렸다.
다른 손가락도 딸 생각인 것 같았다.
다시 속엣것이 올라왔다.
화장실로 가서 토해도,
이젠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쓴 위산만 올라왔다.
평소에도 컨디션이 안좋거나 신경이 예민해지면
비위가 잘 상하곤 했다.
토할 것도 없이 이렇게 속이 부대끼면, 늘 힘들었다.
미쳤지.
내가 날 잘알면서,
무슨 오기로 이런 자리에 앉아있었을까.
먹은 것도 없이, 토하기만 했으니
몸이 금세 축 늘어졌다.
[선우 : 안되겠다, 좀 누워있어.
금방 약 사올게.]
뭐라 대꾸할 기운도 없어,
하라는대로 손님 방 침대에 누웠다.
그가 급히 현관문을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여길 나가야지...
누워도 집에 가서 누워야지.
여기 계속 있다간,
내가 내 감정을 얼만큼 통제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어.
최선생님이 원치않는 내 감정으로
더 이상 서로 불편해지고 싶지않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일어서는데, 현기증과 함께 눈앞이 잠깐 캄캄했다.
또 빈혈 증세인가?
한동안 없었는데.
비척비척 손님방을 나와
가방을 챙겨메고
현관문으로 가는데,
현관 바로 옆의 옷방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옷방 안은
그가 짐을 싸던 중이었는지
열린 여행 가방과 옷가지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내 걸음이
옷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건 그 사람 셔츠, 이건 그 사람 바지,
이건 그 사람 모자, 이건 그 사람...외투...
옷걸이에 걸쳐진 옷들을
차례로 툭툭- 손끝으로 치며
안쪽 끝까지 걸어갔다.
...?
옷의 품이 작은 걸 보니, 여자 옷 같다.
근데, ...하나도 여자옷같지 않아.
주욱- 훑는데, 끝에 겨우 여자옷다운 옷 한 벌이 눈에 띄였다.
아이보리 원피스.
왜 독신인 그의 옷방에 여자 옷이 있는거지?
여자 조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세탁된 아이보리 원피스가 걸린 봉 아래에
웬 상자가 보였다.
저건 뭐지?
끌어내서, 뚜껑을 열어봤다.
...오... 세상에!
비명이 나올까봐 내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의 결혼사진앨범, 결혼식비디오, 반지케이스,
시나리오, 영화 테잎, 드라마 대본, 드라마 DVD,
그리고... 상자의 남은 공간을 빼곡히 채운 그의 러브레터들...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간신히 결혼사진을 집어들고,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봤다.
...정말 나와 너무 비슷하다,
사진 속의 그 분은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보일뿐.
사진 속의 그 분은, 젊은 최선생님과 나란히 서 있었다.
아이보리 원피스 차림에 간단한 꽃화환을 쓰고...
어딘가 아픈 것 같지만... 활짝 웃는 얼굴이 당당해보인다...
"최선우 & 김윤아 결혼식"
이 남자... 정말 결혼했었구나...
들었지만, 실감할 수 없었던 이야기...
이름도 나와 똑같다, 성만 다를 뿐.
아, 그러면 저 원피스는 결혼 예복?
세상에... 저걸 대체 몇 년동안 갖고 계셨던거야...?
나는 나도 모르게 원피스를 옷걸이에서 끌어내렸다.
그 사람이 그토록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던 옷...
거울 앞에서 내 몸에 대봤다.
거의 맞을 것 같다.
다음 순간부턴
마치 내가 정신나간 사람같았다.
입고 있던 교복을 벗고, 원피스를 조심스럽게 걸쳤다.
등뒤에 있는 쟈크를 낑낑대며 겨우 끝까지 올리고,
상자 속에 있던 반지케이스를 꺼내 열었다.
작은 반지만 혼자 덩그라니 있었다.
내 왼손 약지에 끼워봤다.
약간 헐렁하지만 그런대로 잘 맞는다.
왼손 넷째 손가락, 약지..
손가락을 하나씩 펼 때 네번째 손가락만 제대로 펴지지 않아서...
네번째 손가락만 '홀로서기'를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함께 의지하며 살아갈 사람을 찾았을때,
네번째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끼는 거라지.
다시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나... 누구...?
누구...?
덜컥!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최선생님?
#
현관 앞에 서 있던 그는...
옷방에서의 내 상황을 깜빡 잊어버리고
원피스 차림 그대로 옷방에서 나온 나를...
넋나간 사람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윤아 : 죄, 죄송해요, 선생님. 금방 갈아입을께요.]
그의 표정에 당황해서
옷방으로 도로 들어가려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질 듯 주저앉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윤아 : 서, 선생님...]
한참이 지나서야
그의 깊이 가라앉은 울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선우 : ...착각이라도 좋아... 조금만 이렇게 있어줘...]
...어느새 울고 있나, 이 사람.
그의 어깨가 간간히 들썩인다.
그의 얼굴을 묻어준 내 어깨가, 내 가슴이...
따뜻한 액체로 인해 천천히 젖어든다.
내 손이, 내 마음보다 앞서서
저절로 들려져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언젠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그의 손길처럼...
내 손길도 그의 마음을 토닥여줄 수 있는지.
나... 그 분이 되고 싶다.
이 남자의 사랑을 받았던 그 분이 되고 싶다.
이 시간 잠깐이라도.
그렇게라도 사랑받고 싶어,
이 남자의 사랑을 욕심내고 싶어.
그 분은... 그를 뭐라 불렀을까.
결혼했으니 '여보'라고 했겠지..?
연애할 때는 뭐라고 불렀을까...
그냥 이름만 불렀을까...?
[윤아 : ...선우씨.]
그가 눈물로 온통 젖은 얼굴을 들고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올려다봤다.
맞구나, 그 분은 이 남자를 '선우씨'라고 불렀구나.
나는 천천히 몸을 낮춰,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췄다.
마치 꿈꾸는 듯한 표정의 그...의 입술이
쉽게... 열린다.
그랬나... 이 남자, 그 분에게만큼은 이렇게 쉬운 남자였나.
나에겐 철벽같던 사람이었는데,
너무 먼 사람이었는데.
어느샌가 그 사람은 나와 깊은 키스를 나눴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잠깐의 망설임의 표정이 떠올랐다.
싫었다, 그 망설임이...
[윤아 : 괜찮아요, 나... 당신 아내잖아요.]
나도 모르게, 그가 소중하고 어렵게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아내...
그는... 그걸로 완전히 무너졌고,
다음 순간, 나를 바닥에 뉘이면서
여자로 안았다.
#
그... 그토록 하나의 사랑에 대해
이리도 뜨겁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던가.
처음이었다.
남자와 깊은 키스도,
한 남자의 사랑을, 내가 원해서
내 몸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도.
내 몸은 그 사람의 열기로 훑어지면서
그 사람처럼 뜨거워졌다, 마음도 함께.
비록 그 사랑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분을 향한 것이라도...
강제로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내 꼼짝할 수 없었다.
관계가 끝난 뒤에, 아팠지만,
여전히 나를 안고 있는
그의 힘이 너무 쎄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실지같지 않은 환상은 곧 깨졌다.
그가 나를 알아본 것이다.
[선우 : (당혹) ...세상에, 오, 맙소사, 맙소사...
내가,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그는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황망해하면서,
'맙소사'를 수십번 반복했다.
[윤아 : 아니예요, 선생님.. 저 괜찮아요.
아무한테도 말 안할게요. ]
그의 절망에, 나도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도 마치 내가 원했던 환상 속에
잠시 머물렀던 것 같았으니까.
[선우 : 그게 아냐, 그게 아냐.
너한테 내가... 어린 너한테 내가 대체, 대체... 맙소사...]
난... 몸만 아픈 게 아니라,
그가 당황해하며 더듬더듬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에 비수처럼 꽃혔다.
[윤아 : 선생님 잘못 아니예요, 제가 유혹한 거예요.
선생님, 선생님...]
그의 당혹함을 진정시키려
그의 팔을 잡으려 하자,
그는 마치 불에 닿은 듯이
내 손을 화들짝 뿌리쳤다.
아... 그는 한순간도, 날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마음을 갈망할수록,
내 마음의 상처는 더 깊어져...
내 눈이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대신,
내 마음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선우 :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어떻게 정신이 나가서... 미안하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절하고 싶었다.
지금 멀쩡한 제 정신인 것이 저주스러웠다.
양쪽 귀를 손바닥으로 꽉 막고
눈을 감아버리며,
'악!'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새언니 약병에 있던 임신진단시약을
몰래 가져다 체크했다.
설명서대로라면, 두 줄... 임신이다.
처음엔 원래 환절기에 잘 걸리는
감기몸살 증세인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이제 미치는 일만 남았구나, 신윤아.
그 날,
그 사람만큼이나 나도 절망했던 그 날,
내 마음 하나 추스릴 기운조차 없어...
미처 생각못했다.
내 몸... 강간 한 번으로도
덜컥 임신됐었단 사실을.
만약을 위해서 사후피임약을
어떻게든 구했어야 했는데.
단 한 번도 그 사람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절망 앞에서
더더욱 몸만이라도 그 후유증에 대비했어야 했는데.
...이제 어떻하지.
아직 난 어린데...
나... 겨우 17살 끝인데...
더럭 겁이 났다.
예전엔 엄마가 계셨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느니만 못하다.
날 사람취급않는 큰 오빠,
예전 일을 짐짓 모른척 덮어주고
평소엔 아무렇지않게 잘해주지만
진짜 속내를 알 수 없는 새 언니.
대전의 작은 오빠와 작은 새언니도...
속을 알 수 없긴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이 사실을 말할 수 없다.
나... 혼자 어떻게든 해결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배에 천천히 손바닥을 갖다 댔다.
...선생님.
저... 다신 죄 짓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과 제 아이라... 더 그래요.
혹시... 이 일을 아시게 되면... 저 선생님 곁에 있어도 되나요...
아니, 그건 또 안된다 - 하시더라도...
이 생명을 지키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는 예정대로 해외로 출국했고,
난 간간히 신문 기사를 통해 뮤지컬 해외공연소식을
알고 있는 정도였다.
이렇게 서서히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그도 알아야 한다.
이 생명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그도 절반의 권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상한 희망이 피어올랐다.
그가 이 상황을 결코 외면할 수 없을 거라는
신뢰에서 나오는 희망.
#
민수 선배를 학교 밖으로 불러냈다.
방학이 중반쯤 접어들었을 때였다.
[민수 : 왜? 보충 시작할 땐데.]
[윤아 : 저... 선배.]
[민수 : 응?]
[윤아 : 혹시.. 최선생님하고 연락할 수 없어요?]
[민수 : (확- 굳어지면서) 삼촌은 왜?]
[윤아 : 꼭 제가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
임신 사실을 알고,
난 수도없이 그에게 연락을 해보려고 애썼다.
푸른 극장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알게 된 서대리님께 사정하다시피해서
해외 공연시 뮤지컬 팀의 숙소연락처를 알아냈지만,
한번도 그와 직접 통화하지 못했다.
전화를 받은 매니저나 팀 멤버들은...
공연 중이라거나, 연습 중이라거나,
혹은 이미 다른 곳으로 먼저 이동했다며,
온갖 핑계를 대고, 내 전화를 피했다.
내 이름을 대고, 꼭 연락을 해달라는 메세지를 부탁했지만...
아무래도 그에게 한 번도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통화할 때, 상대편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이 그랬다.
나를 상당히 귀찮아하는 느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번번히 통화를 거절당할 때마다
내 마음은 자꾸 초초해지고,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매달릴 곳은 민수 선배였다.
[윤아 : (애원) 선배, 제발요.]
[민수 : 내가 전해줄게, 나한테 얘기해.]
민수 선배에겐, 할 수 없다.
막상 그도 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윤아 : 선생님한테만 직접 해야 되요.]
민수 선배는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돌아섰다.
그 때였다...
극심한 복부 통증과
아랫 부분이 칼로 찔린 것 같은... 죽을 것 같은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윤아 : ...서...선배...]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안고,
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팔을 뻗어 간신히 민수 선배의 다리를 잡았다.
[민수 : (놀라서 윤아에게 오는) 윤아야! 너 왜 그래!]
아아... 안되는데, 안되는데...
이 불길한 예감...
교복 치마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다.
[민수 : 야! 너! 너!]
[윤아 : (간신히) ...선배, 선배... 제발... 아기가, 아기가...]
[민수 : 뭐어?!]
[윤아 : ...살려, 살려주세요... 제발...]
#
하혈은, 유산으로 이어졌다.
나 혼자 속으로 안달복달한 것을...
그 가엾은 생명이 견디지 못한 걸까...
마취에서 깼을 때, 배가 너무 아팠다.
...미안하다, 아가야.
난... 너보다, 내 몸 아픈 게 먼저라서
그걸로 먼저 운다...
대신... 널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론...
나중에 더 오래 울게.
[민수 : (정신없는) ...어떻게 된 거야?]
[윤아 : ...]
[민수 : 니 집에 전화했어, 큰오빠신가?
아까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갔는데, 곧 오실거야.]
[윤아 : ...선배..]
민수 선배에게 마지막으로 매달렸다.
[윤아 : ...최선생님한테 연락해 줘요...]
[민수 : ...?]
의아해하던 민수 선배는,
내 말뜻을 알아듣곤, 경악했다.
[민수 : 너, 너, ...서, 설마...]
[윤아 : ...선배... 제발...]
[민수 : 아, 아냐! 절대 아냐!
너 미쳤어?
왜 우리 삼촌은 물고 늘어져?
삼촌은 절대 그럴 사람 아냐!!!!]
[윤아 : ...]
그렇겠지, 민수 선배한테
그 사람... 경우바른 사람이니까.
믿을 수 없겠지, 아니 믿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민수 : (결사적인) 절대 아냐! 절대 아니라구!]
그 때 병실 문이 열리고,
큰오빠와 새언니가 들이닥쳤다.
큰오빠는 나에게 오자마자
대뜸 내 뺨을 후려갈겼다.
[새언니 : 여보!]
[윤아 : ...]
...이젠 뺨이 아파서, 눈물이 난다.
[큰오빠 : (민수 멱살 잡고 흔들며) 너냐? 이 자식아! 너야?]
[윤아 : ! ]
난 정신없이 큰오빠에게 매달려 말렸다.
[윤아 : 아냐, 오빠! 아냐!
이 선배는 날 병원에 업어다만 줬어.
아니야! 이 사람 아냐! ]
내가 바락바락 악쓰며 계속 부정하자,
큰 오빠는 못미더워하면서도
민수 선배의 멱살을 탁-풀어줬다.
한바탕 폭풍같던 소동이
금세 고요해졌다.
민수 선배는 잔뜩 굳어서 어떤 변명도 없이,
도망치듯 병실을 나가버렸다.
'...선배, 제발 그 사람한테... 내 얘길 해 줘.
나... 지금 몸도 마음도 죽을 듯이 아파.
그 사람도 없으면, 나...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어.
...제발... '
학교에 돌아갔을 때,
민수 선배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민수 선배는...
몇 일 전 갑작스럽게
캐나다로... 떠났다고... 했다....
#
혹시나 하는 기대로
여러 날... 전화를 기다렸다.
기대는... 곧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민수 선배에게서도, 그에게서도,
...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큰오빠 : ...어떻할거냐.]
학교 밖에서 터진 일이긴 했지만,
민수 선배와 나를 목격한 눈이 있었다는게 문제였다.
내 보호자로 학교에 다녀온 큰오빠가
나를 불러 앉혀놓고 꺼낸 첫마디였다.
[윤아 : ... 대전 작은오빠네 집에 가서,
고등학교는 졸업할게.]
큰오빠 집에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건,
체감하고 있었다.
큰오빠가 그냥 있으래도,
내가 숨막혀서 뛰쳐나가고 싶었으니까.
그렇지만 아직 난 미성년자인데다,
큰오빠 성격에 날 독립시켜주지 않을 건 뻔했다.
또... 큰오빠네 살림이나 작은오빠네 살림도 뻔하니,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을 거고...
게다가 내가 사고친 성격도 성격이라...
큰오빠가 날 더 이상 믿지 않을 거였다.
[큰오빠 : ...그래라.]
큰오빠도 달리 다른 방법이 없는 듯 했다.
큰오빤 ...이제 날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 같다.
엄마 아버지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 - 그런 말 한 마디도 없다.
나... 처음엔 대전서 서울로 도망쳤는데,
이젠 다시 서울서 대전으로 도망친다.
나야말로, 겁쟁이다.
#
대전 작은오빠네 앞으로
고속버스편으로
짐부터 부쳤다.
늘 손에서 놓지 않던 캠코더도
그 짐 속에 넣어버려서, 손이 허전하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자포자기식의 마음...이
모든 집착에서 가볍게 해준다.
새언니와 조카 연호가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배웅나왔다.
[연호 : 꼬모, 꼬모, 가지마아~T_T]
그 새 정이 들었다고,
연호가 징징대며
내 다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윤아 : 고모 방학하면 놀러올게.^^
그 땐 연호 좋아하는 과자 많이 사올게, 응?]
[연호 : 까까??? 으응...? ~(^0^)~]
어린애니까... 돌아서면 금새 잊어버릴 것이다.
약속도, 나도...
그래도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를 -자기 친정 막내 여동생처럼- 늘 아껴줬던 새언니를
일부러 오버해서, 찐하게 포옹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
버스가 대전으로 가는 도중,
다른 터미널에 잠깐 정차할 때,
지금까지 타고 온 고속버스에서 내려,
다른 곳으로 출발하는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휙휙-지나가는 낯선 풍경들을 보다가
잠깐 졸았는데, 도착지인 낯선 지방에 금방 도착했다.
역 앞 슈퍼에서 우유를 사며 길을 물었더니,
터미널 옆에 정차하고 있는
허름하고 낡은 시골버스를 가리켰다.
비포장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시골버스는
인적없는 곳에 나를 내려놓고, 다시 떠났다.
버스운전기사 아저씨 말로는
여기서부터는 몇 십 분 걸어들어가야한다고 했다.
메고 있는 쌕이 그리 무거운 것은 아니지만,
하루종일 공복이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처음가는 곳이라, 인터넷에서 찾아 인쇄한
안내지도를 들고도 2시간여 헤맸다.
겨우... 내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다.
오직 계곡 물소리와 서늘한 바람 소리,
숲 짐승들이 바스락, 타타탁 다니는 발소리만이
존재하는 곳.
언젠가 여행잡지에 실려있던,
숨겨진 비경 소개란에서 보고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곳.
바위에 앉아,
메고 있던 쌕에서
팩소주 여러 개와
여러 날 이 동네 저 동네 약국을 다니며
모은 수면제를 꺼냈다.
공복이라 알콜에 금방 취하기 시작했고,
몸의 면역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수면제 효과도 금새 나타났다.
머릿속과 온 몸이 나른해지자,
쌕에서 마지막으로 과도(果刀)를 꺼냈다.
과도라지만 이곳에 오기 전 날
시장에서 날을 갈았기 때문에
서늘한 푸른 빛까지 띄고 있었다.
왼쪽 손목에 칼날을 대고
눈을 질끈 감으며 힘주어 그었다.
수면제때문에 몸의 감각이 무뎌졌지만,
창상의 통증엔 정직하게 반응했다.
아프다...
살갗의 상처에서 피가 스며나왔지만,
동맥의 피는 아니었다.
알콜을 더 마셔서,
용기를 끌어냈다.
몇번을 더 그었는지... 모르겠다.
세지 않았으니까.
이번엔 피범벅이 된 왼손에 칼자루를 쥐고
오른 손목을 그었다.
오른손잡이라 내 왼손은 칼질이 서툴러
통증과 함께 오른 손목 주변에 불필요한 상처를 냈다.
피비린내가 확- 코 끝을 스쳤다.
양 손목에서 떨어지고 있는 피 때문에,
신발을 벗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계곡 물 속으로
한 발, 한 발,...
첨벙 첨벙...
이미 내 몸같지 않게
나른한 몸을 끌고
비틀거리며
걸어들어갔다.
계곡 물이...
심장이 얼어붙을만큼
차가웠다.
'...사랑아, 나는 오늘 너와 함께 동반자살하겠다.
사랑말고도... 내 다른 열정도 그만큼 차고 넘쳤건만.
내가 어째서 그렇게 격정적인 사랑에 휘둘려,
생(生)의 끝에서야 겨우 멈출 수 밖에 없게 됐는지... 나도 알 수 없다.'
계곡 물이 가슴까지 차올라오자
나는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절 소중하게 낳아,
그 많은 사랑주시며 키워주셨는데...
더는 견딜 수 없어요.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미쳐버리길 바랬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마음만 죽인 채
좀비처럼 몸만이라도 살아보려 했지만...
그게... 안됐어요.'
피가 흐르는 손목이 물 속에 잠기고...
삼투압 작용처럼 피가
갑자기 한꺼번에 쫘악-빠져나가면서
...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참을 수 없이 미소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악몽말고...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늦은 오후...
내가 '학교 다녀왔습니다!" 씩씩하게 외치며 집에 들어오면,
엄마가 '우리 딸네미, 오늘도 공부하느라 수고했지? ^^'
반갑게 맞아주시고...
퇴근하신 아빠와 함께 우리 식구 모여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하는...
행복한 꿈.'
계곡 물 속 바닥의 미끄러운 돌에
발이 미끄러지면서 순식간에
머리까지 첨벙- 물 속으로 빠졌다.
숨이 막혔다.
정신없이 입과 코로
계곡 물을 마시고 들이켰다.
이 순간이 빨리 끝났으면....
바랬다.
미리 주머니 속에 넣어둔
돌멩이들의 무게 덕인지
몸은 천천히... 계곡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물 속에서 딱 한 번 눈을 떴을 때
내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물 흐름을 따라
곡선으로 너울너울 춤추며 흘러가고 있었다.
'연호가 크레파스로 마구잡이 곡선을 그려댄 것 같아...'
그것이 내가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리고...
난... 서서히 잠들어 갔다.
영원히...
그러니...
이젠...
안녕.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