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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56. 고양이도 풀 뜯어 먹어

무늬만여우... |2004.11.20 13:49
조회 2,414 |추천 0

우리가 얻은 집은 방 두개에 화장실 하나 그리고 작은 부엌 겸 거실이 하나 있는 집이었다.

길가로 나 있는 방은 작은 창과 문이 있고 마당쪽으로 있는 방은 창문은 있는데 문이 안달려 있고 문 틀만 있었다. 일단 문이 있는 곳을 우리가 쓰기로 하고 문이 없는 방은 아버님이 쓰시라고 했다.

대충 짐을 거실에 내려놓고 아버님과 랑은 벌통 짜놓은 것을 가질러 창고에 가자고 했다.

아이를 들쳐업고 차에 올랐다. 한 15분이상 차를 타고 가면 창고가 나온다. 오랜만에 보는 창고는 참 반가웠다. 속으로 인사했다. 안녕 겨울 잘지냈니?

우리가 지내던 그 숲도 궁금하고, 개미들은 안에서 어케 활동하나도 궁금하고, 이래저래 궁금한게 많았다.

창고문을 열려고 다가서는데 창고 안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가 났다.

"잉. 창고 안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

"무슨 고양이... 안에 아무 것도 없었어."

랑도 거의 두 달만에 오는 창고다.
문을 여니 예전에 우리랑 친했던 그 고양이가 뛰어 나온다.
으잉.
우린 모두 놀래서 고양이를 쳐다봤다.

고양이는 나오자마자 풀밭에서 한바퀴 뒹굴더니 풀을 마구 뜯어먹는게 아닌가.
옹. 고양이가 원래 풀 뜯어 먹나?
아리송하네. 우스갯말로 개 풀뜯어 먹는소리하네 그러든데... 그럼 개도 풀을 뜯어 먹나? 아니지 안뜯어먹으니 황당한 일에 그케 표현하는건데 참말로...

"어머 지가 토끼인지 아나봐."

랑이 기가막히다는 듯이 고양이를 쳐다본다.
그럼 저게 두 달동안 창고에 갇혀 지냈다는건데. 도대체 안에서 뭘 먹고 살은겨. 랑한테 고양이 안에 있는지 확인도 안하고 창고를 잠그고 왔다고 뭐라고 했더니 절대로 안보였댄다. 고양이 소리도 안났더랜다.

암튼 그 불쌍한 고양이는 거의 빠삐용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날아다니는 벌도 획 날으며 잡아먹고 거미, 개미도 마구 줏어먹고 다녔다.
적응하며 산다고 하지만 저 들고양이는 토끼도 됐다가 날다람쥐도 됐다가 참말로 희한했다.
너도 참 사는게 험하다.

창고 안의 개미들은 검은 개미가 장악을 했는지 불개미는 별로 안보이고 크고 뚱뚱한 검은 개미가 많이 돌아다녔다. 그 개미들은 꿀을 훔쳐먹고 살았는지 도망가는데 꼬리부분이 꿀로 꽉차서 뚱뚱하고 투명했다. 그 개미들은 다른 보통 검은 개미의 다섯 배 정도 컸다. ㅋㅋㅋ 저걸 고양이가 먹고 살았구먼.

숲은 그대로였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 라드만 나무도 숲도 풀도 아주 작은 웅덩이도 그대로였다.

너무 웃긴건 내가 설거지 하던 도랑엔 수박넝쿨이 우거져 있는게 아닌가.
우리가 먹고 버렸던 수박씨가 넝쿨이 되어 있는게 재미나서 한참이나 봤다. 이럴줄 알았음 멜론씨도 버리고 사과씨도 버릴껄~ ㅎㅎㅎ

우리는 벌통인 계상을 잔뜩 싣고 고양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려는데 도무지 잡힐 생각도 우리 가까이 올 생각도 안했다.
그래. 너도 배신감 느끼겠지. 그렇게 두 달 가두고 갈 사람인지 알았겠냐.

밤에 들판에 나가서 쥐라도 사냥하든가... 저 정도면 뱀도 우습게 잡아먹을 수 있겠다 싶어 그대로 두고 가기로 했다.
역시 집 고양이 씨와 야생 고양이 씨가 다른건가?
강한 야생 고양이 빠삐용이 불쌍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맘에 들었다.

창고에 만들어 놓았던 계상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아버님과 랑은 그걸로 여러개를 촘촘히 붙여 바닥에 깔아주며 침대로 사용하라고 했다. 난 거길 걸레로 깨끗이 훔치고 이불을 두텁게 깔았다.
마룻방이 되었다. 근데 바닥이 흙바닥이라 고르지 않아 침대가 울퉁불퉁 들어가고 나오고 했다. 잉.

아들넘은 좋다고 이불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난리다. 그 때마다 삐그덕 삑삑 소리가 요란하다. 아구 시끄러라.

일단 졸리니 잠부터 자자.
아들넘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씻겼다.

혼자 밖에 못들어가게 생긴 너무 작은 화장실은 문도 완전히 안열렸다.
변기와 문이 부딪혀서 반쯤 열리다 만다.
임신으로 배가 꽤 나왔는데 들어갈 때마다 문고리에 배가 닿아서 신경쓰였다.
애를 데리고 자리에 누웠다. 아버님은 벌써 주무시는지 조용하시다.

우리 방은 랑이 움직이는대로 내가 움직이는 대로 우리 개구장이 아들 넘 움직이는대로 삐그덕 삑삑 소리를 냈다.
난 그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겠다. 게다가 깡마른 몸이 딱딱한 나무에 닿아서 뼈가 아팠다.
또 날씨는 왜그렇게 더운지....온 몸에 땀이 난다.
그러니 뱃 속의 아가도 긴장을 해서 배가 딱딱해졌다.

잠을 설치다 새벽에 일어나서 문을 여니 아침 공기가 너무 신선하게 불어왔다.

우리 집 앞 정경은 그냥 들판이다. 아무 것도 없는 들판. 누군가 집을 지으려고 구획만 정해놓아서 길은 네모 반듯하게 있는 풀이 무성한 들판이다.

상쾌한 아침 바람에 풀냄새가 실려왔다.
잠을 설쳐서 찌부둥한 몸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의 햇빛을 바퀴 벌레는 좋아하지 않는지 한 마리도 눈에 안띄었다.

엊저녁에 제대로 보지 않은 거실을 둘러봤다.

잉. 여긴 키다리들만 살았나. 기역자 부뚜막이 내 가슴께 닿는다. 밑에 발판을 만들어달라고 해야겠다.
근데 개수대에 수도 꼭지가 없다. 우찌된겨. 그러고보니 수도꼭지라고 생긴건 집 안에 화장실 세면대와 샤워기 밖에 없네. 도대체 어디서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해먹는거지.

랑을 깨웠더니 잠자며 하는 소리가.

"어 밖 마당가에 하나 있대든데..."

"아잉. 나 뙤약볕에서 설거지하기 싫은데."

창고는 수도가 안에 있어서 그래도 고무 호스 연결해서 안에서 했는데 여긴 그나마 집이라 안에서 물 버릴 데도 없다. 으.

부뚜막 밑은 훵한 공간이라 야채 박스를 거기 들다 놓고, 계상을 이리저리 위로 포개서 찬장으로 활용했다.

철제 식탁은 녹슨데가 많아서 가지고 간 비닐로 한꺼풀 씌우고 상으로 사용했다. 부뚜막에 휴대용 가스렌지를 올려 놓고 마당으로 가서 빨래줄 매어 놓은데다 빨래집게도 꽂아놓았다.

마당가에 알로에랑 우리 어릴적에 꿀 빨아먹던 분꽃도 있었다.

새벽같이 남자들은 밥을 챙겨먹고 아침 일을 하고 왔다.

점심을 챙겨먹고 너무 더워서 선풍기를 사러갔다.

가전 제품 파는 가게는 무지 작았다.
선풍기가 다 팔리고 천정에 다는 거 딱 하나밖에 없다고 한다.
임신을 해서 그런지 난 더워서 반 미칠 지경이었다. 잠을 도저히 못자겠는데 선풍기가 하나밖에 없댄다. 그거라도 달라고 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아버님께 말씀드리고 우리 방에다 선풍기를 달았다.
아버님은 우리가 그걸 밤에도 틀고 자다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다는걸 너무 싫어하셨다.
또 그걸 사느라 돈을 쓴게 너무 아까워서 역정을 좀 내셨지만, 더운걸 어쩌란 말인가.

'에구 아버님 좀 이해해 주세요. 제가 더워서 미칠꺼같아요.'

고르지 못한 바닥으로 인해 침대로 만든 계상은 움직일때마다 삐걱거렸다. 별짓도 안하는데 아버님 눈치가 되게 보였다. 난 일부러 꼼짝도 안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버님은 이틀을 삐걱소리를 들으시더니 아침에 우리방으로 오셔서 계상을 다른 방법으로 엎어놓으면 덜 삐걱거린다고 다시 침대를 놓아주셨다. 에구 민망스러라.

어쨌든, 덜 삐걱거리니 좋았다.
계상은 나무 네조각을 그냥 네모반듯하게 짜서 밑도 없고 뚜껑도 없는 벌통의 한 부분이다.
계상은 옷장도 되고 침대도 되고 찬장도 되었다. 우리 아들넘 식탁도 되고 책상도 되었다. 나중에 한국 잡지를 봤더니 한국은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알록달록 색을 칠해서 애들 방에 놓아주기도 하는걸 보고 웃음이 나왔었다.

설거지는 다라에 놓고 부엌에서 하기로 했다. 마당가 수도는 잘 나오지도 않았다. 거기선 작업복만 빨기로했다.

배는 점점 더 불러오는데 좁은 화장실 문 들어가고 나오는게 곤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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