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늦게 네이트톡에 한편의 글이 올라왔다.
저녁에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일은 드물었기에,
호기심에 클릭해 보았더니, 일상의 사소한 갈등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요지인즉슨,
(글 쓴 분은 악플에 상처받고 그 글을 지우기까지 했는데, 다시 내가 그 글을 언급하게 돼 죄송스럽다.)
직장회식에서 술이 많이 취했는데, 직장동료(유부남)가 다른 사람들에게
글 쓴 여자 분을 데려다주겠다고 공공연히 말을 한 후,
여관에 데리고 가서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그분은 술에 만취된 상태였기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은 그 일로 직장을 그만두고, 합의를 위해 피해자에게 매달렸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 글 자체가 전해주는 끔찍한 범죄행위가 아니었다.
베스트에 오른 리플(무려 추천수를 15개나 받았던)이
“성폭행 당할만하니깐 당한 거고, 그랬다고 남자를 직장에서까지 자르고 고통스럽게 하냐‘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인면수심의 밀양성폭행 사건의 후폭풍으로
온 인터넷이 시끄러운 터라 기분이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꼬리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일 크게 벌이냐며 피해자를 협박했던 가해자 식구들.
너 같은 더러운 것들 때문에 밀양의 물이 흐려진다며 폭언했던 경찰관.
미친년, x 같은 년이라는 상스런 폭언으로 피해자에게 저주를 퍼붓던 가해자의 여자친구들.
그러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이 특정한 사람들은 결코 아니었다.
끔찍한 고통을 털어놓는 피해자에게 그런 폭언과 야유를 서슴지 않고 퍼붓는 사람들이
여기 네이트 톡에서도 존재했던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에,
“분노”라는 네임으로 리플을 달아서 결국 그 리플을 베스트에서 밀어내긴 했었지만,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남자들의 본능>운운하며 아예 남자를 짐승의 그것과 같은 욕망덩어리
-사회성도, 도덕성도 압도하는 욕망-을 지닌 숙명적인 존재인양,
남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어리석은 남자들이 있었다.
오해하는 거다. 왜곡하는 거다. 남자들의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지금이라도 금요일 밤늦게 대학로를 가보라.
술 취한 남성뿐 아니라, 술 취한 여성들도 부지기수다.
그들 옆엔 멀쩡한 지인들이 부축하고 택시를 잡아준다.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들 모두가 뒤돌아서서
“아우..18 왠 술을 떡이 되게 마시냐....”라며 인간적으로 비난을 할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당연한 듯 '마침 이 기회에 원인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넙죽 강간하지는 않는다.
이런 일엔 꼭 남녀 성대결로 몰고 가려는 몇 몇 몰지각한 남성들이 있는데,
그들은 어리석은 자일뿐이기에, 여성들이 남성들의 일반화된 모습으로 오해하며 남성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아는 동기 중 한 명은 술에 만취된 여자후배를 등에 업고
오직 아파트 이름 하나에 의지해서 수십 동을 돌아 경비아저씨에게 일일이 여자 얼굴 확인시키며 집을 찾아준 적도 있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 동기녀석이 특별한 남자가 아니라고.
나도 그럴 거라 자신있게 말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남자 역시 그 녀석과 같은 행동을 취할 확률이 높다.
무기력한 여자가 옆에 있다는 조건 하나만으로, 쓸데없이 모텔 직행하지 않는단 말이다.
몇 개월 전 야근 끝내고 퇴근하는데(11시 넘은 시간이었다.)
오피스텔 뒷골목에서 한 여자가 엄청나게 취해서 내게 다가왔다.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눈에 띄는 옷차림에 세련된 외모였다.
너무 취해서 몸을 못가누겠는데 데려다 줄 수 있겠냐..는 거다.
생판 처음 보는 남자에게 그런 식의 부탁을 했다면,
그 모지리 악플러들의 논지대로라면,
나는 당연히 그녀를 고이 접수해서 모텔로 직행했어야 한다. 당연한 거다.
세간으로부터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왜?
여자 쪽이 술이 취해 관리도 못하고 남자에게 먼저 접근했는데...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부축해서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가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주겠노라고 했더니,
그냥 제 갈길 가겠다며 가더라.
내가 왜 그랬을까? 당연하거다. 왜냐면 나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남자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남자들은 나와 같은 행동을 한다. 아니면 못 들은 척 그냥 지나치던지...
오직 같은 생식기를 가졌다고 해서, 그 강간범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옹호하는 어리석은 남자들!!
같은 생식기를 가졌다는 이유보다는
같은 수준의 상식과 도덕성과 사회성을 가지는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런 ‘생식기 동일시남‘들의 악플보다 더 놀라운 게 있었다.
같은 여성들이 쓴 리플들이었다.
나는 몇몇 소수의 모지리 남자 악플러들보다 그녀들의 리플들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너무 기가 막혀 쪽지를 보냈더니,
“혹시 성폭행피해자 본인이냐..아니면 그 가족이라도 되냐..?”라는 답쪽지가 왔었다.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는지, "여자라고 같은 여자 편들지 마라“라는 말도 했었다.
성폭행 피해자 당사자나 가족이 아니면, 마치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드러내는 것에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 이런 일에 감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하고 싶었기에,
쪽지를 보낸 분에게 실명과 아뒤를 공개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자고 여러차례 제안해 보았다.
김민희씨라는 여성분이다.
우선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술이 취해 당한 강간은 피해자의 잘못이 가해자의 잘못보다 더 크다, 라는 의견을 가지신 분이다.
오늘 마침, <토론할려면 해라>, 는 쪽지가 와서 글을 쓴다.
시간나면 내 글을 읽고 리플도 쓸 요량이 있다는 식이니, 기대해보겠다.
그냥 인용만 해도 될 것을, 굳이 그 분의 글에 실명과 아뒤를 공개해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음은,
이제껏 성폭력 피해자들은 당할만해서 당한 것이라며, 원인제공(범죄에 원인제공이라는 말을 들어 피해자에게 돌을 던지는 경우가 성폭행 말고 또 있을까?)이라는 간편한 말을 들어 피해자에게 비난을 퍼붓는 이들이 하나같이 익명으로 무책임하게 말을 내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실명과 아뒤, 소재지는 그 분이 비공개로 해두지 않아, 누가 조회해도 알 수 있는 것이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
다음은 성폭력 피해자의 여성글에 달린 김민희씨의 리플들이다.
여자잘못이 더 큰거같네요..누가 자기몸주체못할정도로 술을 마시래나요..ㅡㅡ;;저도 여자지만 길거리에서 자기몸지탱두못하면 술에취해있는거 보면 한심합니다. 같은여자로선 정말 부끄럽습니다. 아예 날 잡아잡셔~ 이거자나요..ㅡㅡ;;아무리 술에 취했다해도 범하는데 가만있는것도 웃기고..남자도 잘못이지만 여자가 더 큰잘못이네요. 요즘 성범죄가 늘어나는판국에 관리를 못하신거네요.(222.113.160.***)
그 글에 대한 비난에 다시 적은 그녀의 리플글.
전 이런일 당할일이 없습니다^^ 술은 거의 안먹을뿐더러 밤늦게 다니지도 않고 전 아무리 직장상사가 데려다준다해도 안따라갑니다. 택시를 타거나 남친을 부르겠네. 여자잘못이 더 큽니다. (222.113.160.***)
님말이 맞는거같네요~ 이글에 리플다신분들 여자분들같은데...콩밥님말이 옳은건 옳자나요. 현실을 보세여..ㅡㅡ술은 자기 주량껏~ 여자들 술먹고 제정신못차리는거보면 정말 꼴불견이에요..여자인 저도 그런데 남자들이라고 좋게 보겠어여? 내가 남자라면 그런여자랑 절대 안만난다 (222.113.160.***)
자.
내가 우선 시작했으니, 김민희씨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겠다.
우선 그녀의 요지는 이렇다.
같은 여성으로서 피해자는 범죄유발행위를 한 것이고, 그래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
같은 여자로서 한심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것이다.
김민희씨의 리플에는 가해자의 잘못은 결코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믈론 성범죄자가 잘못이 없다, 는 요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고백글에, 그녀는 <너는 여자로서 부끄러운 존재, 웃기는 존재, 한심한 존재>라는 낙인을 찍고, 당당하게 <너의 잘못이 ‘더’ 크다>라고 공언한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단언’한다.
“나는 그럴 일이 없다!!‘라고.
즉, 이 말 한마디로, 피해자는 ‘범죄를 유발해서 스스로 피해자’ 가 된 어리석은 자로 매김된다.
성폭행이란, 스스로가 유발하지 않는 한, 절대로 당할 수 없는, 즉, 귀책사유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정신적 살해'라 일컫는 반인륜적 범죄는 ‘어리석은 행동에 의한 당연한 결과’로 결론이 난다.
개인적으로 내게 온 쪽지 글에는 더욱 심한 말이 쓰여 있으며,
(쪽지까지 공개하는 건 아직 동의를 구하지 않아 올리지 못하겠지만)
피해자가 성범죄를 일부러 유도했다는 식이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실수를 저지르고 산다.
담배를 지독하게 피는 경우, 술을 마셔서 몸을 못 가눌 경우, 잘못을 저지른 후 사과하지 않을 경우, 거짓말을 할 경우........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
술을 많이 마신 것은 분명 실수고 욕먹을 짓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비난을 한다. 실수에 대한 비난이고 비판이다.
그러나 그것이 범죄와 연관되어 범죄를 논하는데 있어 왈가왈부,
원인제공이니 귀책사유가 되니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행실을 바로 하라고?
여성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야근도, 회식도, 술자리도, 이제 남성과 동등한 입장으로 수행해야하는 시대이다.
남자들로선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술에 여성이 우연히 취했다고 해서,
통행금지도 사라진 이 시대 한 시민으로서 밤거리를 거닐 수 있는 권리를 누렸다고 해서,
끔찍한 범죄행위를 당한 것을 비난받아야 하는 시대는 정녕 아닌 것이다.
그러지 말라고 욕은 할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범죄와 동일선상에서 더 나쁘다, 잘못이 더 크다... 당할만하다, 는 말이 나오는가.
생활상의 실수와 과오는 범죄행위가 될 수는 없으며,
따라서 범죄행위와 동급으로 동일선상에 놓아 과실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오류이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왜 피해사실을 쉬쉬하면서 숨기며, 사회에게 단죄해달라는 호소를 하지 않은 줄 아는가?
그럼으로 인해, 결국 성폭행범죄인들이 가장 높은 재범률을 기록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줄 아는가?
바로 당신들!!
도덕성과 상식에 동질감을 느끼기보다는 오직 생식기가 같음만 우선시하여 범죄자를 옹호하는 소수의 남자들!!
그런 옹호가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를 세우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소수의 남자들!!
그런 남자들의 썩은 논리에 '눈치빠르게' 발맞추고 옹호하여
(자신은 그런 의도가 없었다 변명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자신도 능히 당할 수 있는 사회적 범죄의 본질을 무시하고,
같은 여자의 정조와 행실을 문제 삼아 돌을 던지고,
자신의 여성적 행실에 대한 가치를 높이려는 몇몇 잔인하고 무지하며 이기적인 여성들!!
당신들 때문이다.
자살하는 성폭행 가해자는 거의 없지만, 자살로 자신을 단죄하는 피해자는 부지기수다.
당신들이 그녀들에게 사형 선고를 했고, 그 선고를 직접 들은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들을 처형했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도움을 주는 사회단체의 설득을 받아들여 사회에 알렸을때,
백이면 아흔아홉이 후회한다고 한다.
구성애씨가 그랬다.
피해자들의 일차적 쇼크는 수치심이고,
그 뒤로는 자기는 더러운 년이라는 고통스런 자책감이라고.
수치심은 강간범이, 그리고 자책감은 왜곡된 편견을 가진 이들이
염산을 붓듯 한 영혼에게 쏟아붓는 거다.
<우린 그런 여자들과는 달라. 우린 그럴 일이 없을 걸. >라는 벌건 낙인을 찍어대는
몇 몇 자칭 행실바른 여자들의 마인드는 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하기 그지 없다.
정녕 자신은 ' 그런 여자들(?)이 겪는 범죄와 일평생 무관하다'는 무지하고 순박한 자부심일까?
걸레, 창녀, 행실 바르지 못한 부끄러운 년. 자기관리 못하는 한심한 년,
결국 너 때문이야!!!!!! 너는 더러워. 말은 그렇게 해도 실은 좋았지?
정황 보니까 니가 유도한 거구만.. 인과응보야. 당할 만 하네.
난 여자라도 너 같은 여자와 달라서 절대 그런 일 안 당하는데, 넌 그런 꼴 당하는 거 보니까..나와는 달리 한심한 년이야.
같은 여자로서 부끄러워!!!!
이런 돌이 던져진다.
언제나, 어디서나.
위에 내가 인용한 글귀들은 모두 네이트의 리플들에서 뽑아낸 것이다.
과연 누가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서도 저런 돌팔매질을 감수하고 사회의 응징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나라도 한 번 살해당하면 그만이지, 두 번 살해당하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남이야 같은 범죄로 나처럼 살해당하든 말든..
정신적 살해를 당하고도,
이중의 사회적 매장이 두려워 같은 사회인으로 범죄인의 응징을 요구 못하다니...
이것이야말로 정의가 상실된 참담한 사회 아닌가?
아프리카 몇몇 곳과 오래전 중동 여러 지역에선,
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가족이 나서서 수치스러운 존재로 낙인찍고 살해했다.
어리석은 몇몇 남자들은 그렇다고 치자.
도대체..왜, 왜 몇 몇 여자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로 피해자들을 단죄하려드는가!!!!!!!!!!!!!!
당신들은 아는가.
성폭행의 75프로 이상이 지인들에 의해서 저질러졌다.
익숙한 환경, 익숙한 존재, 익숙한 상황에서,
당신들도 항상 겪는 그런 일반적인 상황에서 끔찍한 정신적 살해가 저질러졌다는 거다.
특별히 행실이 나쁜 여자에게 응분의 대가로 성폭행이 저질러지는줄 아는가.
당신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반인륜적 살해행위가 강간이다.
착각하지 말라.
성폭력은 올바르지 않은 행실에 대한 당연한 단죄가 아니다!!!!!!!!!!!!!!!!!!!!!!!!!!!
*써놓고 다시 읽어 보니, 성범죄 피해자들의 과오나 실수를 두드러지게 비난하는 남자와 여자들 중, 특히 후자쪽을 더 비판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 이유는 어리석은 남자들의 악랄한 말보다는,
'정숙, 바른 행실' 따위의 표피로 포장된 왜곡된 여성관을 들이밀며, 같은 여성이 해대는 잔인한 비난에 피해자들이 더욱 수치심과 자책감을 느낄 것 같아서였다.
모지리 남자들에 대해서는 그저 '억울'하고 챙피할 따름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덧붙여, 혹 내 생각이 틀렸다면, 김민희씨의 반박글 기대해 보겠다.
그리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신 분들, 김모씨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실명을 써주시기 바란다. 익명으로 감정적인 글은 사양하겠다.
왜 내 생각이 틀렸는지, 김민희씨의 생각이 왜 옳은지 말씀해주고 싶으신 분들은
실명을 써서 말씀해주시기바란다.
익명의 악플은 아무리 읽어도 설득이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