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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71. 엄마는 무식해요

무늬만여우... |2004.12.16 07:03
조회 2,825 |추천 0

아가는 젖을 먹으며 무럭 무럭 잘 자랐다.

너무 어릴 적에 첫 아이를 낳은터라 이쁜지 모르고 그냥 내새끼니까 이쁘려니하고 키웠는데, 둘째는 그 느낌이 달랐다.

남자 녀석을 키우다보니 우왁스럽고, 덩치도 좋고 뼈대도 굵고 늦은 저녁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나가도 이상하게 든든한게 아들이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이 아들 녀석은 내가 지를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내 보호자를 자처하고 나서니 가끔 기가막힐 때가 있다. 쪼고만게 길 건널 때도 날 보호해주려고 하고, 컴컴한 밤 둘이 손이라도 잡고 슈퍼를 가게되면 날 위로한다. 자기가 있으니깐 겁먹지 말라고.

은근히 나도 겁이 많은터라 아들 녀석이 쪼고맸지만 의지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둘째는 뼈대부터 가늘고 여리게 태어났다. 첫 아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 컴플렉스는 남들보다 손이 작고 손가락도 짧은 초등학교 손이란거다. 근데 아들 녀석이 닮을껄 닮아야지 그걸 날 닮아갖고 아들 손 볼 때마다 속이 상한 적이 많다.

그런데 딸은 이쁘게도 우리 엄마, 즉 외할머니 손을 닮아 나온게 아닌가.

잘 때는 얌전한 얼굴에 길다란 손가락을 앞에 얌전히 포개고 잠이 들곤했다. 남들은 못난이라고 놀려댔지만, 난 세상에서 제일 이쁜 내 아가 내 딸이였다.

피부는 하얗고 천사같은 표정으로 하품이라도 하거나 나와 눈이 마주치며 미소라도 짓고 까르르 웃는 소리라도 나면 난 그만 감격에 겨워 어쩔줄을 몰랐다.

아들은 질투심에 처음엔 동생을 발로 툭툭 차거나, 이불을 덮어놔서 아이를 놀래키거나 했다. 그래서 윤희보고 아가를 미워하니깐 아무래도 다른 집에 줘야겠다고 했더니 아들은 그때부터 태도가 돌변하며 자기 동생을 보호하고 이뻐해줬다.

같이 차를 타고 나가면 언덕이 없이 평평한 아르헨티나에서 구릉을 만날 때가 있다. 차를타고 올라가며 올라간다~ 올라간다~ 으쌰 으쌰~ 힘을 줘서 아빠를 도와야한다면 자기도 의자에 앉아서 너무 좋아하며 차를 밀었다.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자기가 밀어서 차가 잘 가는지 아는지 너무 좋아하며 내려간다~ 를 외쳐댔다.

이민 나와서 태어난 2세에게 가장 힘든 일이 뭘까? 그들에게 무얼 중점적으로 가르쳐야할까? 그건 한국어를 모국어로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사는 나라의 언어는 완벽하게 습득이 가능하다. 그럴려면 아이가 본래 모국어로 돼야하는 언어는 당연 부모의 나라 언어여야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민 2세들이 한국어 습득을 제대로 못해서 심지어 우리 또래의 친구들조차 모국어가 스페인어가 되어서 부부끼리 가정에서 스페인어로 대화를 한다.

친구 알렉한드로네 동생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아이이다. 그는 본인이 한국인이 아니고 아르헨티노라고 말한다. 한국말을 가끔 쓰고 이해는 하지만 주로 스페인어로 대화가 통하는 아이이다. 얼굴은 완전 동양인 얼굴에 속은 아르헨티나 사람이 그다.

어느 날 길에서 그는 아르헨티노의 잘못으로 싸움이 벌어졌었는데 온 경찰이 그 아르헨티노 편만 들었다. 어느 정도 인종차별이 있는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알렉한드로 동생은 격분했다. 자기도 아르헨티노인데 그 경찰은 자기가 얼굴이 동양인이기 때문에 한국인 취급을 하며 차별대우를 하고 아르헨티노로 인정을 안하니 말이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이런 아이들을 미국에서는 바나나라고들 부른다. 겉은 노랗고 속은 백인인 그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느 그룹에 끼지 못한다.

난 경각심을 느꼈다. 내 아이들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서 아르헨티나 국적과 한국인 국적 두 가지를 다 갖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한국말로만 대화하고 한국어로만 교육을 시켜서 아이는 스페인어보다는 한국말을 더 쉽게 알아들었다. 그렇게 되다보니 아이는 스페인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단어 하나 하나가 궁금해지는 나이가 됐다. 한국어로도 궁금한게 많아서 하루종일

"저거 뭐에요?" 를 외쳐대는 나이가 그 나이인데 오죽하랴.

지나가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저건 스페인어로 뭐야? 를 묻는게 윤희의 일과가 되었다.

"아빠, 저 승용차는 스페인어로 뭐에요?"

"음, 아우또 모빌"

"저 트럭은?"

"까미온"

"저 집은?"

"까사"

"코끼리는?"

"엘레판떼"

"개는?"

"뻬르로"

아이의 질문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귀찮아진 아빠는 아이에게 엄마보고 물어보랜다. 내가 상냥한 얼굴로 말했다.

"응 윤희야 엄마한테 물어봐."

아들은 심각하게 잠시 생각하더니 묻는다.

"메뚜기가 뭐에요?"

헉.
나쁜넘. 쉬운거 물어보지. 나한테도 코끼리, 개, 그런거나 물어보지. 나쁜넘.

"몰라."

아이는 불신이 가득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다람쥐는?"

"아르.....아르 뭐였는데? 뭐드라...아르디야였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사전을 찾아서 아이에게 가르쳐줬다. 메뚜기는 살따몬떼, 다람쥐는 아르디야.

다음 날도 아이는 아빠에게 이거저거 묻는다

"길은?"

"까미노"

"의자는?"

"시쟈"

다시 귀찮아진 아빠는 엄마에게 떠넘긴다. 아들 윤희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기린이 뭐에요?"

흐흐흐, 아는거다.

"히라파"

"깻잎은?"

헉, 깻잎. ㅡ.ㅜ
뭐라고 해야하지? 이 나라에 들깨가 있나? 참깨는 아홍홀리라카드만....

"어.....그건 오하데 프리모데 아홍홀리.(참깨사촌의 잎)" ㅋㅋㅋ

"엄마 그럼 마늘쫑은 뭐에요?"

아띠. 이 넘이 작정을 했나. 마늘쫑을 뭐라케야지? 괜히 백구촌 다녀오면서 나한테 물어보라고 했네. 왜 오늘따라 마늘쫑하고 깻잎을 샀단 말인가.

"몰라 임마. 넌 엄마한테 꼭 어려운것만 묻냐? 아빠한테처럼 길, 자동차, 구름, 하늘 이런거 물어 임마."

아이는 내가 뭐라고 불평을 늘어놔도 가만히 쳐다만 보드니 한마디한다.

"엄마는 무식해요. 아빠는 다 말해주는데..."

"너랑 안놀아. 임마. 아빠하고만 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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