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칙사랑 - 20. 첫 키스 상대의 등장
“오늘 치마 입고 왔네.”
운전 중인 그의 손이 진한 청록색 치마 위에 놓였다.
“왜 그래? 운전 해!”
“운전하잖아. 진짜 집에 가야 돼? 그냥 이대로 홍천가면 좋겠다.”
“안돼. 그 날도 얼마나 혼났다고. 내일 몇 시에 출발할까? 데리러 올 거지?”
“7시까지 갈게. 집 앞으로.”
“7시? 너무 일찍이다. 일어나려면 힘들겠어.”
“일찍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가서 낮잠 자면 되잖아.”
치마 위에 있던 손이 무릎을 매만지고 있었다. 간지러움에 다리를 피했다. 하지만 다시 그의 손이 다리를 더듬었다.
“오늘따라 왜 그래?”
“그러게. 이상해. 집에 보내기가 너무 싫다.”
싫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점점 무릎 위로 올라오는 손길은 그 뿐만 아니라 나까지 자극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일이 있긴. 내가 건강하다는 증거지.”
집 근처에 온 차가 평소와는 다른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로 우회한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챈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잠시 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점잖은 그와는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될 터였다. 나의 숨은 막히고 심장이 미친 듯 뛸 것이다. 몸이 점점 뻣뻣하게 굳어져 갔다. 차는 곧게 서있는 가로등과는 조금 먼 곳에 주차되었다. 그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무, 무슨 일이야?”
“너무 졸려. 운전 못하겠다. 잠깐 너한테 기대 있을게.”
“피곤하면 차 두고 택시타고 가. 내일 내가 가져갈게.”
“아니, 이렇게 쉬면 돼. 지금 필요한 건 피로회복제라고.”
벨트도 풀지 못한 난 몸을 조금 틀을 수 있을 뿐이었다. 벨트를 풀고 싶었지만 그를 원한다는 적극적 표현 같아서 주저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머리가 많이 자랐다.”
“그래서 지저분해? 미용실에 가야겠다. 다음 주에 가야겠네.”
괜스레 커지는 목소리. 민망함에 좌석 앞에 달린 거울을 내려 보았지만 어둠 속이라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가만 있어봐.”
그의 얼굴이 다가와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얼굴을 잡아 돌리더니 입술을 맞추는 그. 시린 얼음이 닿은 듯 했다. 그는 입을 벌리지 않은 채 천천히 얼굴을 움직였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상태로 부벼졌다. 입술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입술은 도톰했고 미끌거렸다. 그것이 기분을 자극해 묘한 상상으로 이어졌다.
“슬라이드 키스래.”
귀에서 속삭이는 말소리.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가 먼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고개를 천천히 움직였다. 지긋이 눌려진 입술은 그의 입 속을 탐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았다. 혀를 가만히 내밀어 입 속에 밀어 넣었다. 따뜻한 입 속으로 들어간 혀는 그의 혀와 만났다. 그의 것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입술을 핥고 들어온 혀를 살짝 물었다. 그의 손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만져주었다. 털이 부드러운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좋았다. 목의 피로가 풀리면서 긴장도 풀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고개가 자연스레 젖혀졌다. 그는 공격적이 되었다.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한 입술이 목에 키스했다. 탄성이 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그의 등에 얹어진 손으로 딱딱한 등 근육을 만지자 좀 더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서로 끌어안고 있었지만 몸을 가깝게 밀착시키고 싶어졌다.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를 살짝 밀면서 몸을 빼냈다.
“우리 첫 키스가 언제인 줄 알아? 내가 창고에 있던 날 아침에 내가 뽀뽀했었어. 몰랐지?” 내가 말했다.
“몰랐는 걸. 그래도 그게 첫 키스는 아닌데.”
“······?”
“창고에 있던 밤. 너 잘 때 내가 먼저 뽀뽀했다. 아침 전이니까 내가 먼저지?”
“사랑해, 오빠.”
물에 빠진 화장지처럼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식간에 젖어버렸다. 건져내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적도록 푹, 하고 담금질 되어진 기분이었다. 흥건해진 사랑의 기분은 키스보다도 황홀했다. 그도 나를 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웠다. 세상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픈 기분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넙죽넙죽 절하고 모든 것에 아름다운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백미러도 예뻐 보이고 안전벨트의 검은 색도 유일한 색처럼 소중하게 보였다. 그가 깨물고 싶은 정도로 예뻐 보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난 두 팔을 벌려 그를 꽉 끌어안았다.
“사랑해! 오빠. 앞으로도 사랑할 거야. 계속 사랑하고 싶어.”
“나도 사랑해. 홍주야.”
날 끌어안은 두 팔에 힘이 실렸다. 호흡이 곤란해질 정도였지만 너무나 행복했다. 그 때 우리를 방해한 것은 오빠의 핸드폰이었다.
“사장님이다.”
‘아빠?’
“예. 사장님.”
전화를 끊은 그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
“어쩌나. 내일 아침 일찍 출장으로 가라고 하시네.”
“출장? 내일은 일요일이잖아. 그럼 홍천은 못 가는 거야?”
“그렇지.”
곧 내 핸드폰도 울렸다. 아버지였다. 나의 위치를 물으시는 아버지에게 집 앞이라고 하자 일찍 들어오라고 말씀하시곤 끊으셨다.
‘무슨 일이야? 별 말씀도 안하시고 일찍 들어오라니. 평소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지금이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고.’
“뭐라셔?”
“일찍 들어오라고.”
“그래. 집에 데려다 줄게. 가자.”
“응.”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의 손을 꽉 잡는 그 때문에 곧 잊고 말았다.
그가 아침 일찍 출장을 가버린 일요일은 또 무료함에 시달려야 했다. 아침 10시에 일어난 나는 12시까지 비디오가게가 열기까지 기다렸다.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지만 적당한 영화를 골라와 오후를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군바리가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거야? 군대 좋아졌다.”
“휴가 나왔거든.”
“언제?”
“모레 들어가. 너 오늘 시간 있니? 괜찮다면 보고 싶은데.”
동창인 동욱이었다. 내 첫 키스 상대. 초등 동창이었던 동욱이를 다 커서 만난 것은 수능이 끝난 직후였다. 시험도 그럭저럭 본 듯 했고 시험 해방감에 들떠 하루 종일 등 뒤에 거대한 풍선을 매달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런 들뜬 기분을 가라앉힐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초등 동창들의 연락이 속속 이어졌다. 동욱이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연락을 받고 나간 카페에 앉아있는 그는 어린 애가 아니라 어른처럼 보였었다.
“홍주, 넌 언제 키가 이렇게 큰 거야?”
“너야 말로. 난 네가 나보다 작을 줄 알았는데.”
유쾌한 대화가 이어졌고 어른으로 데이트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 졸업을 한 건 아니었지만 언니 화장품을 몰래 쓰는 것도 묵인되었으며 좀 어른스러운 겨울 코트를 걸치고 그를 만나러 나가기도 했다. 너무 추웠던 날이었다. 그 날 밤 날 데려다 주던 동욱이는 점점 내 곁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10cm도 떨어지지 않게 걷던 동욱이는 추워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내 손을 꺼내어 자신의 외투 속에 넣었다. 추웠지만 손엔 땀이 차왔다.
집에서 안녕, 이란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를 때 동욱이가 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키스했다. 이제 생각하면 아주 어색한 장면이다. 키스에 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깨를 잡고 벽으로 밀어붙이고 얼굴이 점점 다가오는 키스라니. 마치 옆에서 불러준 대로 따라하는 듯한 어색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생각이지 그 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키스를 하고 우린 당연히 사귀는 사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겐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걸 안 건은 키스 후 3일이 지난 때였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처음엔 분노 섞인 감정으로 그를 대했지만 세월은 분노를 잠재우고 담담함을 선물했다. 반창회에서 마주칠 때도 난 아주 담담했다. 따로 연락이 오는 적이 가끔 있었지만 한두시간 후면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군대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다른 친구를 통해서였고, 이번에 연락이 온 것은 군대에 가고 나서 벌써 세 번째였다.
“휴가 나와서 왜 날 만나? 여자 친구를 만나야지.”
“헤어졌거든. 놀아줄 사람이 없어. 오늘 나랑 놀아줘라. 영화도 보여주고 밥도 사줄게.”
나의 첫 키스 때부터 줄곧 그의 옆에 있었던 여자친구라 난 잠시 놀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헤어졌어, 왜?”
“궁금해? 만나면 얘기해줄게.”
그 사연이 그리 궁금했던 건 아니었지만 심심하던 참이라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와 잡은 약속 장소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카페 앞이었다.
- 다음편 계속 -
이제 본격 로맨스 소설모드 입니다.
지금 빨리 써서 한 편 더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