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 나를 슬프게하는 사람들
신혼여행때 가보지 않으면 어쩌면 영영 못가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해외로 나가기로하고 적당한 일정을 찾다가 가게된 태국은 비취빛의 바다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수도 방콕은 우리나라의 일반 도시 같았으며 그외에는 시골이나 변두리를 연상케하는 풍경의 일색이었다. 하지만 이젠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생각이 그 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끔 했고 무엇을 하든 재미있을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일정은 매우 빡빡했고, 신혼부부들은 자유시간이라고는 전혀 누려볼 수가 없었다. 아침 7~8시에 출발해서 저녁 12시가 다 되어서야 하루 일정이 끝나다보니 호텔로 돌아오면 녹초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첫날밤. 신혼부부라면 누구나 은근히 고대하는 그 시간. 모든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다녀온 부부에게 가장 궁금해 하는 그 ‘첫날밤’이라는 것에 대해 여자들은 나름대로의 환상이 있기 마련이다. 그건 평소에 다소 무뚝뚝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남자들이 그 하룻밤을 위해 많은걸 준비하고 또 생각한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던터라 ‘과연 그는 우리의 첫날밤에 어떤 추억을 만들어줄까’ 하는 기대에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던가 보다. 우린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따로따로 샤워했고, 아무런 의식 없이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따로따로……
아! 그가 내게 잠자기전 뭔가 하고 싶다고 했던게 있긴 했다.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여먹고 싶다고 했다. 그때까지만해도 그게 우리 첫날밤 기억의 전부가 될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었기에 난 군소리없이 컵라면에 물을 부어주었고 그는 밥이라도 굶은 사람처럼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게 전부였다. 첫날밤 치뤄진 의식의 전부.
침대에 머리를 눕히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하는 그를 등뒤로 한 채 벽을 보고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자존심을 심하게 다친 한 여자의 눈물. 베개 커버를 축축히 적실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쓸데없는 기대를 한걸까? 어쩌면 내 자신이 그렇게 바보같고 비참하게 느껴지는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자존심을 다쳐서 흘린 눈물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그때만큼은 너무도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남자 때문에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거라곤 미처 생각 못했었는데……
정말 그래야만 했을까?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명색이 신혼 첫날밤인데 각자 자리에 누워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잠에만 열중해야 했을까? 나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늘 그자리를 지키고 있던 자신의 애완견이나 되는양 너무도 편하게 생각해버리는 그런 하찮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날이 우리의 실질적인 첫날밤(?)은 아니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양가 상견례 날짜가 잡히는 등 모든 것이 명확해졌을 때, 그가 너무도 원했고 나 또한 그에 대한 확신이 섰기에 이십사년간을 지켜온 순결을 그에게 허락했었고 그날의 첫경험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하얀 이불위에 생긴 장미꽃잎과 같은 자욱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두사람이 부부로써 함께 지내는 생애 최초의 날이었고, 밤이었으며 더욱이 낯선 이국땅에서의 달콤한 허니문이었기에 그 의미를 부여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을 그런식으로 어이없게 보내고 말았다.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린 말그대로 그냥 잠만 잤다. 흔히 말하듯이 손이라도 꼭 붙잡고 잤으면 덜 억울했을 것을 그 어떤 신체적 접촉도 없이 서로 남남인냥 4일 밤을 지내고 만것이다. 난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했지만 더 이상 비참해지기 싫어서 4박 6일의 일정 동안 그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았으며 그저 평소처럼 의연하게 행동하려고 무척이나 애썼다.
어찌보면 내가 발정난 암캐 마냥 너무 밝히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내가 그에게 내 몸을 허락하기 전과 또 허락한 이후 얼마동안은 그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내게 그런 관계를 요구했었는지 본인이 돌이켜본다면 지금처럼 나만 우스운 여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한동안은 시도때도 없이 회사에서, 자신의 집에서, 때로는 극장이나 비디오방에서 키스부터 애무에 성관계까지 미친듯이 내 몸을 탐닉하는가 싶더니 몇 개월이 지나자 이내 시들해졌는지 본인이 먼저 요구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든 것이었다. ‘남자란 동물이 그런것일까?’ 아니면 ‘그가 유달리 심한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 몸이란게 그닥 멋지지 않아 흥미가 떨어진것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땐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땐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그런것들을 더욱 바라고 먼저 유혹하고 있는데 대해 잠시 당황하고 있을 때였기에 한창 피어나기 시작한 내 성적 욕구을 조금 억제시키려고 노력했을뿐 그의 그런 변화를 큰 문제점으로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신혼여행 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런 특별한 날까지 그런식으로 행동한다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정도가 더 심해질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으며 그 예감은 곧장 현실로 다가왔다. 그는 내게 먼저 다가오는 법이 없었다. 늘 내가 먼저 그런 의사를 내비쳐야 했으며 그렇게 시작한 관계는 항상 내게 ‘만족’이라는 단어를 느낄 수 없게끔 허무하게 끝나기 일쑤였다. 늘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며 흩어진 옷가지를 추스려야하는 그 허탈감, 그에게 상처를 줄 수 없기에 그런 관계에 만족한 듯 연신 교성을 질러대야 하는 그가 알수없는 고통들……
이렇게 겉으론 멀쩡하지만 속으론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선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를 가져야할 것 같다.
속으로만 화를 삭이는 나날이 계속되다가 신혼여행의 마지막날 입국을 앞두고 생리까지 시작되어 내 몸상태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이었다. 그런 수척한 얼굴을 하고 인사차 시댁을 먼저 들렀는데 그 당시의 상황은 아픈 몸을 잊을만큼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어 열쇠로 열고 들어간 시댁 거실엔 시어머님이 천조각으로 머리를 싸매고 누워계셨다. 무슨 지병이라도 도지신건지 걱정이되어 연신 왜그러시냐고 물었지만 시어머니는 대답을 않고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계셨다. 영문도 모르는 우리는 태국에서 사가지고 온 선물들을 풀어서 어머님께 드렸는데 시어머님은 그제서야 몸을 일으키시더니 이런 얘기를 하셨다.
“내가 어지간하면 암말 안하고 지나가려고 했다만 내 성격이 한 번 끌어오르면 못참고 부르르 떨리기까지하는 불 같은 성격이라 얘기를 하고 풀어버리던지 해야것다. 내가 결혼식날 얼마나 챙피했는줄 아냐? 손님들은 전날 다 와계시는데 대접할건 하나도 없어가지고 그런 망신살이 없었다.” 난 그때까지도 어머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무리 안사돈끼리 만나서 이바지고 뭣이고 서로 불편할 것들은 되도록 생략하자고 얘기했더라도 사람이 예의상 그러면 쓰것냐? 그래도 성의는 보였어야지 인사치례로 할 수 있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시댁에 떡 한상자, 과일 한박스 보내지 않는 집이 세상에 어디가 있다냐? 내가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더라.” 한참을 씩씩대며 말씀하시는 시어머니 앞에서 무릎 꿇고 자초지종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눈 앞이 캄캄해지는 듯 했고 뭔가 무거운 물체로 뒷통수를 여러대 얻어 맞은 것 처럼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거였구나.’ ‘어머님이 신혼여행을 끝내고 해외에서 막 돌아온 자식내외를 끌어 앉혀 놓고 언성 높여 하고 계신 얘기의 요지가 바로 그거였구나.’ 그제서야 알았다. 순진한 우리 엄마가 이바지 음식 문제로 골치를 좀 썩다가 주위 사람들의 조언를 듣고 실천에 옮긴 것이 함이나 이바지 음식처럼 복잡한 절차들은 되도록 생략하자고 시어머님한테 동의를 구한거였는데 어쩔 수 없이 그러자고 한 시어머니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결혼 전날 시댁에 아무것도 보내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예의상 한 얘기였는데 진짜로 음식을 보내지 않은데 대해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올라 머리에 끈까지 질끈 동여맨채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것이었다. 게다가 일정이 빡빡해서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드리지 못한 것도 무척이나 못마땅하셨는지 덧붙여 언급하셨다.
‘그래서 결혼식 내내 그렇게 벌레 씹은 듯한 표정으로 앉아계셨던 거구나. 그것도 모르고 혼자 몸으로 키워낸 막내아들을 장가보내는데 대한 알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진걸로 착각했던 나라니……’ 정말 바보 같았다. 나나 우리 엄마나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을 뚝뚝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초췌한 얼굴로 눈물을 떨구고 있는 내 얼굴을 보니깐 조금 안돼 보였던지 어머님은 쉴새없이 퍼붓던 말을 그치고는 한참을 한숨만 내쉬고 계셨다. “죄송해요. 어머님, 뭔가 오해가 있었던가봐요.”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무슨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죄인처럼 역정을 내시는 어머님께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참을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내게 어머님은 “그만 울어라. 뭐 생각해보면 너한테 무슨 잘못이 있겠냐만은 가만히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에 화가 치밀어 내 몸이 아프려고 해서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순간적인 화를 못참아 욱 하고 올라오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뒷끝이 있는 사람은 아니니깐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어라.” 하시며 그제서야 선물꾸러미를 풀어 이것저것 살피시는 것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계속 흐르는걸 느끼면서 난 내 허벅지를 꼬집으며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오빤 그러는동안 아무 말도 없었으며 자신의 어머니를 말리려는 시도 또한 전혀 하지 않았다. 그또한 나를 서럽게 하는 이유중에 하나였다. 방관하는 남편……
시댁에서 그런 일이 있은후 집으로 돌아와 친정에 가기 위해 한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데 어느 순간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리에도 힘이 풀려 일어설 수 조차 없었다. 방바닥에 주저 앉아 거의 1시간 가까이를 울었던 것 같다.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친척들이 모두 기다린다며, 상 다 차려놓았는데 왜 아직 안오냐며 묻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또 설움이 복받혀 거의 울먹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우여곡절 끝에 친정에 갔는데 엄마를 포함한 친척들은 하도 울어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 나타난 나를 보고는 선뜻 왜 그러느냐 묻지를 못했다. 나중에 다들 돌아가고 식구들만 남았을 때 내가 이러저러해서 시어머니가 좀 언짢아 하셨다고 얘기하자 엄마, 아빤 기가 막히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름대로 귀한 큰딸을 시집보내놨더니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눈물바람이 왠말이냐는 의미였다. 아빤 당장에 사돈을 찾아뵙고 그 사건에 대해 얘기를 해봐야겠다며 펄쩍 뛰셨지만 엄마가 붙잡고 말리는 통에 다시금 마음을 가라앉히시는 듯 했다. 눈물이 나도 참아야했다. 내가 슬퍼하면 부모님은 더 마음아파할 테니까. 그까짓 이바지 음식 못해보내서 딸이 그런 꼴을 당했다고 마음 아파하고 있는 부모님께 더 이상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기에 참기로 했다.
하룻밤을 자고 다시 시댁으로 가려고 하자 엄마가 어디선가 색고운 보자기에 쌓인 커다란 상자들을 대여섯 개 내어주셨다. “안그래도 아무것도 안보내고 넘어간게 못내 마음에 걸려서 너희들 이쪽에 들렀을 때 그 편에 보내려고 이바지 음식을 이미 준비해놨었다. 그런데 그런 찰나에 너네 시어머님이 그렇게 서운해 하셨다니 뭐라 할 말이 없구나. 다 내 불찰이지 뭐니. 강서방 미안하네. 자네 입장도 무척 난처했겠구만. 어머님께도 우리가 그렇게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아니니 제발 화 푸시라고 전해주게.”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시댁에 가서 그런 대접을 받게한 새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었기에 그것에 대한 미안함의 눈물이기도 했고 어떻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음식쪼가리 때문에 갓 인연을 맺은 두 집안이 언성높이고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슬퍼서이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이런걸 인제서야 뭐하러 가져왔냐며 시큰둥하게 대꾸한 후 건성건성 보따리를 풀어보는 듯 했으나 나중에 들은 바로는 여기저기 자랑하며 나눠먹었다고 했다.
내가 고국에서 보낸 신혼 첫날은 그렇게 화려했다. 외국에서는 그녀의 아들에게 된통 실망하고 돌아와 고국에선 또 그 아들의 어머니에게 된통 당한꼴이 되었으니 난 참 지지리 복도 없나보다. 나를 슬프게하는 그들…… 그들 때문에 상처받는 나……
얼마전 어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인 노처녀 여기자가 말했던 ‘결혼의 정의’가 문득 떠오른다. “여자에게 있어 결혼은 300원짜리 공책을 1000원 주고 사는것이다.”
그래도 남자들에겐 적어도 500원짜리 공책을 사는 효과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Notice : 어찌보면 부부간의 잠자리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이기에 둘만의 비밀로 간직되어지는게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가끔씩 보면 여자든 남자든 배우자와의 잠자리를 공공연히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매우 만족스럽다는 의견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불만족스럽다는 내용(대략 과하거나 부족하거나 둘 중 하나죠)이거나 상대방을 평가절하하는 비방도 서슴지않고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남편은 기껏해야 5분이야.” “우리 남편은 자기 혼자 흥분해서 난린데 난 아프기만하지 아무 감흥 없어.” “우리 마누라만 보면 할 맛이 뚝 떨어져.” “우리 마누라 샤워소리가 청천벽력보다 더 무서워.” 등등……그건 왜일까요? 흔히들 ‘속궁합’이라고 얘기하죠. 부부란 외적인 조건이나 습관 등 서로 맞아야할 것들이 너무도 많지만 부부간의 잠자리 또한 서로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정한 수준을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무력감’이나 ‘권태감’ 등 그닥 좋지않은 감정들이 표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상대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고 항상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자신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상대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알려줘야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부부들은 너무 소극적인 성생활을 유지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이 적극적인 것을 무척이나 자존심 상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서로간에 그런 노력이나 대화가 부족하기에 항상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는거겠죠. 모든 남편분들! 연애시절의 불같던 그 감정들을 생각해보세요. 그때 그렇게 원하던 그녀가 바로 당신의 눈 앞에 누워있는데 왜 머뭇거리시나요?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섹스는 이제 그만두세요. 부인이 OK할때까지 인내하는, 배려하는 미덕이 필요합니다. 물론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그래요.전날 잠자리에 의해 다음날 반찬이 달라진다는 얘기가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만은 아니니까요.
[알리는 글] 긴 글을 여기까지 모두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결혼생활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데 시.친.결 방을 애용하시는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기혼여성 분들인것 같아 글 중 일부를 올려봅니다. 지난번에 이어 두번째 이야기 입니다. 지난번 이야기를 보고싶으신 분들은 제 블로그에 가시면 볼 수 있어요. 주관적인 경험이고, 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네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