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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 Mr.Lee 하나] 588-xx 버스는 늘 만원이다.

Mr.Lee |2004.12.16 22:18
조회 295 |추천 0

[이야기 하나] 588-xx 버스는 늘 만원이다.

            

To. dear Reader

신촌 로터리에서 출발해 성산대교를 거쳐 부천시까지 가는 5XX-2번 버스는 늘 만원이다. 적어도 10시까지는.

버스에 앉아가다 보면 아이의 울음소리, 여고생들의 수다소리, 응큼한 손에 엉덩이를 도둑맞은 젊은 처자의 비명소리 등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10시를 넘어서부터 버스의 고객은 주로 야간대학생이나, 취객 등이 전부였다. 간혹 낭만적인 커플도 한강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함에 지하철 대신 이 버스를 이용한다. 그때부터 버스에 탄 사람의 수는 운전기사를 합쳐도 10명이 채 되지 못한다.

그날따라 버스 탑승객은 더욱 적었다. 취객이 3명, 야간대학생이 2명, 커플 한 쌍...

좌석은 넉넉했다. 그들은 띄엄띄엄 간격을 유지하며 앉아있었다.

 

영업부 사원 Mr.Lee 역시, 그날 저녁 신촌의 한 선술집에서 소중한 고객과의 접대주를 마신 후 심드렁히 취한 상태에서 버스에 올랐다. 소주의 기운이 온몸을 돌아 귀 밑까지 뜨거워졌지만, 그는 잠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정류장 사이의 간격이 비교적 넓은 버스라, 내릴 곳을 놓치면 아까운 택시비를 지불해야만 한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 아까운 접대용 술값만 날린 Mr.Lee는 애꿎은 지갑만 내려다보았다.

 

젠장. 이놈의 영업부인생.

그는 정말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스스로가 자부하고 있었다.

가방 끈도 길고, 군대 갔다 오고, 남들은 구경도 못한다는 자격증도 따보고, 대기업에도 다녀봤다. 자식 놈 공부시켜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이제는 당장 내일 학비가 걱정이다. 아니, 당장 내일 식탁부터가 걱정이다. 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올랐다. 마누라의 잔소리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늘었다. 월급? 그래. 지난달에 비해서 월급이 오르긴 올랐다. 물가가 오르니 월급 또한 오를 수밖에 없는 법칙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 달부터는 접대비용 절약 역시 사원의 능력이라는 CEO의 황당한 발언으로... 접대비용 환급을 받지 못한다. 결국 이래저래 월급은 그대로다.

 

Mr.Lee는 한숨을 내쉬었다. 뜨거운 술기운이 나오는 바람에 창문에는 뿌옇게 서리가 꼈다. 그는 소매로 그것을 닦으려 했다.

 

버스가 급정차 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런, 개시끼!"

운전기사가 운전대를 거세게 내리쳤다.

그 바람에 번뜩 정신을 차린 Mr.Lee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곡동으로 접어드는 길목이었다. 워낙에 인적이 드물고, 상가가 적은 곳이라 주위는 어둑했다. 차도 역시 텅 비어있었다.

사고인가?   

차는 멈춰있었다. 신호가 걸리지도 않았는데. 차가 고장났나? Mr.Lee는 괜히 초조해졌다. 늦었다고, 또 취해서 들어왔다고... 마누라의 잔소리가 귀가를 맴돌았다. 이제 막 중학교 교복을 입은 딸에게 일찍 들어온다고 약속했는데... 아... 초콜릿을 사다준다고 했었지. 어떤 초콜릿이었더라? 집 앞에 새로 들어선 초콜릿 판매점 폐장시간이 몇 시였지?

 

"어이, 기사양반. 뭔 일이오? 빨랑 좀 갑시다."

"......"

 

기사는 말이 없었다. Mr.Lee는 언성을 조금 높였다.

 

"어이! 어이! 빨리 좀 가자고"

 

초조함과 함께 짜증이 밀려오는 Mr.Lee 였다. 점심에 나이어린 상사에게 호통을 당한 일, 저녁에 업무에 시달려 퇴근이 늦어진 일, 기껏 시간을 맞춰나간 바이어와의 술자리에서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 일, 마누라의 잔소리, 세금걱정, 돈 걱정, 아들걱정, 노부모걱정... 이 모든 게 술기운에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총구는 엉뚱하게도 운전기사에게 향해버렸다.

 

"아, 씨발. 내 말 안들리냐고!"   

"거참 되게 시끄럽네. 아저씨. 조용히 좀 해요."

"모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이 새끼. 양심도 없냐? 사고 난 거 안보여?"  

 

하지만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 Mr.Lee 에게 이미 사고 따위는 관심대상이 되지 못했다.

 

"씨바. 몬 상관이야 그게. 야. 기사양반. 어서 밟아. 아님 택시비라도 내주거나."

"이대로 가버리면, 저 사람... 죽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Mr.Lee의 복부에 깨진 술병이 박힌 건 그로부터 불과 3분 후의 일이었다.

 

"야.. 이런.. 너..!"

 

필자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당시 버스에는 취객이 두 명, 야간대학생이 한 명, 처음에 탔던 커플 중 남자가 내리고 여자 혼자만 타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Mr.Lee가 두 명의 취객에 포함되어있음은 당연하다. 과연 이들 중 누가 미스터 Lee 의 배에 술병을 꽂았을까?

                  

                                                                                                                  From. Writter

 

To. The Reader

 

내가 범인 아니냐고? 웃기지 마라. 난 사람을 죽일 만큼 모질지가 못하다. 아니, 오히려 죽고 싶은 건 나다. 그 날... 난 오랫동안 교제해 온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것도 아주 보기 좋게 차여버렸다. 난 그녀를 찾아가 빌고 또 빌었다. 소용없었다. 답답했다. 그렇게 세 시간 쯤 멍하니 신촌 바닥을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탄 것뿐이다. 버스 안에서도 내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죽고 싶다.. 아.. 젠장.. 고속으로 달리고 있는 버스에 뛰어 들면...

버스의 급브레이크 소리와 무언가가 튕겨져 나가는 소리를 들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차 밖으로 한 젊은이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죽을 수 있을까? 젊은이의 생사보다 그것이 더 궁금했다. 하지만 내 발에 무언가가 닿는 순간, 그런 궁금증들은 싹 누그러들었다. 깨진 술병이었다. 고작 술을 담는 도구가... 날 죽일 수 있을까?

- 내 말 안들리냐고! -

누군가가 외쳤다.

취객... 저 사람이 이 도구를 흘린 것인가? 내 죽음을 도와주기 위해... 하늘이 보낸 사자일까? 고마운 마음에, 웃음을 지며 말했다.

- 거참 되게 시끄럽네. 아저씨, 조용히 좀 해요 -

누가 그를 죽였냐고?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중요한 건 내게 절실히 필요한 도구였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피를 먼저 머금었다는 것뿐이다.

 

                                                                                                                  From. XX

 

To. The Reader

 

난 버스에 타고 있던 취객 중 한 명이다. 그 날은.. 그래..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홍대 근처에서 대학동기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열시 무렵.

난 이미 한계 주량을 한참 넘어선 후였다. 친구들은 여관에서 자고 가라고 했지만, 잠자리가 불편할 것 같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신촌까지 걸어가면서 찬바람을 쐬면 술이 좀 깨겠지... 라고 술집에서 들고 나온 새 소주병을 얼싸 안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부터는 영 가물가물 하다 이 말이다.

아, 한가지. 버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 어떤 사나이가 말을 걸었던 것 같다. 불을 빌려달라고 했던가? 함께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했는데... 그는 지극히 평범한 샐러리  맨 이었다. 경제난에 고통스러워하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일방적으로 그가 말하고 내가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버스가 올 때까지 내내 신세한탄만 하더니, 버스가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와 멀리 떨어진 좌석에 털썩 앉아버렸다. 날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몹시 불쾌했지만, 그 뿐이었다.

뉘엿뉘엿 정신을 차린 것은 버스가 급정차를 하는 바람에 였다. 그 바람에 내 품안에 있던 술병이 땅바닥으로 떨어졌으니... 확실하다.

사고가 났나?

역시나 창 밖으로 한 젊은이가 쓰러져있었다. 버스기사는 몹시 당황해했던 것 같다. 샐러리 맨은 빨리 가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순간 내 기분이 울컥 치밀어 올랐던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욕설을 섞어 외쳤던 것 같다.

- 이 새끼. 양심도 없냐? 사고 난 거 안보여? -

누가 그를 죽였냐고?

그걸 왜 나한테 묻나.. 그 후에 그를 본 건, 배를 움켜잡고 있는 모습뿐이다.

 

                                                                                                                  From. YY

 

To. The Reader

 

멍청이 같은 작가가 단순히 편지만 써주면 된다고 해서 응하긴 했는데, 누가 범인인지 말할  생각 따위는 없다. 당시의 상황을 얘기하는 거 자체가 나에겐 고통이니까.

원래 버스란 그런 곳이다. 수많은 에피소드, 수많은 세상사, 수많은 걱정, 수많은 고통들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다, 버스는.

그 버스에 남자친구와 함께 오를 때만해도, 난 기쁜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버스에 오르기 두 시간 전쯤, 헤어진 남자친구 XX가 날 찾아와 애걸복걸을 할 때에는 잠깐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그날은 새로 교제를 시작한 남자친구와 딱 한 달 째 만나는 날 이었다.

그 이가 사준 근사한 저녁식사를 한 후 한강정취를 구경할 겸, 버스에 탔다. 근데 거기에 옛 애인이 타고 있을 게 뭐람. 그 때부터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옆에 있는 남자친구를 보며 웃고, 앞좌석에 앉아있는 옛 애인을 보면서는 울고.

화곡동 근처에서 남자친구가 내렸다. 난 행여나 XX가 내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볼까, 눈으로만 인사를 나눴다. 남자친구가 내리고.. 한 2분여 정도를 달렸을까, 갑작스레 차가 정차한 것이다. 분명 차는 사고를 냈고, 차 앞에는 조금 전 버스에서 내린 남자친구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 이대로 가버리면, 저 사람... 죽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

수 만 가지 감정이 교차했지만, 당장에 눈에 들어온 것은 XX가 깨어진 소주병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From. ZZ  

 

To. The Reader

막차를 운행하는 내 기분은 몹시 경쾌해져 있었다. 마지막이다. 마지막......

버스의 매출이 좋건, 좋지 않건 상관없었다. 어차피 월급은 나오지 않는가? 그렇게 신촌 로터리를 떠난 버스는 성산대교를 지나 어느덧 화곡동 어귀로 접어들었다. 그때까지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취객이 2명, 야간대학생이 한 명, 커플이 한 쌍. 물론 숨진 Mr.Lee 라는 사람이 두 명의 취객에 포함되어있음은 당연했다. 화곡동 어귀에서 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커플 중 남자가 내렸다. 이제 네 명이다. 네 사람만 내리고 나면 집으로 간다!

이쯤 되었을 때, 버스의 속력을 올리는 건 여느 운전기사들도 마찬가지리라. 그렇게 신나게 속력을 내고 있었는데, - 보행자 신호등은 분명 적색이었다. - 한 젊은이가 갑작스레 차도로 뛰어들었다.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소용없었다. 젊은이는 이미 버스에 튕겨져 나간 후였다.

- 이런, 개시끼! -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빨리 귀가하고 싶다.

하지만 이대로 가버린다면 저 젊은이는... 아니 지금 버스에 타고 있는 누군가가 날 뺑소니로 고발이라도 한다면!

뒤에서 누군가가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 했다. 또 누군가는 그를 제지하려고 욕설을 퍼부었다. 버스는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시끄럽다. 시끄러워...

한 여자의 음성이 귀로 흘러들어왔다.

- 이대로 가버리면, 저 사람... 죽어버릴지도 모르잖아요. -

난 반사적으로 버스에서 내린 후, 쓰러져있는 젊은이를 차에 태웠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버스 안은 그때까지도 한 취객의 주정으로 인해 아수라장이었다. 시끄럽다. 시끄러워...

난 버스의 머리를 병원으로 향하게 하기 위해 핸들을 급히 꺾어버렸다. 버스는 다소 억지스럽게 유턴을 했고, 그 바람에 한 젊은이의 손에 들려져있던 깨어진 소주병이 튕겨져 나갔다. 매우 강하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급 유턴을 한 이유가 쓰러진 젊은이를 살리기 위함이었는지, 시끄러운 취객의 입을 막기 위함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From. AA

 

 

http://funnymystery.hiho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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