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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앓이 - 1

키라라 |2004.12.22 04:06
조회 640 |추천 0

 

..

도저히 용납 되지 않았다.


나 외의 다른 여자가 그의 곁에서 맴돈다는 것 말이다.


 

 

[가슴앓이 by 키라라]


 

 

그에게서 날 사랑한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지만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곡간처럼 가슴 한 귀퉁이는 늘 허전했다.

그 때문인지 그와 친한 과 친구들까지도 밉게 보였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난 그때마다 습관적으로 손톱을 깨물어 뜯어 피를 보곤 했다.

어째서 그의 미소가 나에게 지어 보이는 것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친구들조차도 내가 질투의 화신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주 우스운 말로 표현하자면 그만큼 걔들에게 나란 사람은 냉정하고 맺고 끊음이 정확한 사람으로 보였던 거다.

 

하지만 주문처럼 중얼거리는 질투 섞인 그 소리를 알아 들은 친구 하나는 내가 무서워졌다며 날 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애를 피하기로 맘먹었었다.

 

뜻대로 되진 않았지만.

 

 


 [가슴앓이 by 키라라]

비가 심하게 내리던 날이었다.

 

어째서 난 비가 내리면 심한 욕구불만을 느끼는 것일까...


 

처음부터 그따위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의 곁을 거머리처럼 따라 붙어 다니는 그녀들을 제거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선택한 게 그들 중 하나인 미애였다.

 

날 피해 다니는 미...애....
.
.
.
우린 중학교 때 부터 친구다.

 

3년 내 내 같은 반이었고  대학까지 같은 과로 붙어 다니게 됐다.

 

거기에 기숙사 생활까지.

 

가끔씩 미애는 나 때문에 적성에도 맞지 않는 귀금속과를 택했다면서 투정을 부리곤 했다.

어찌나 그 소리가 듣기 싫었던지 한번은 미애가 자는 동안 쇠로 된 2층 침대를 엎어 버리고픈 충동까지 일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밉더라도 미애를 혼내줄 계획을 실행해 옮기기까지는 시간도 많이 걸렸고, 또 생각만큼 쉬운 일도 아니었다.

 

그놈의 정이 자꾸 발목을 붙드는 탓이지 뭐겠는가.
 
그러다 우연히 계획 실천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세워졌다.

 

 

아주 우연히.


 

어딜 가나 미애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대신 시청각 실에 다녀오겠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내가 예상했던 대로 미안해진 미애가 여러번 사과의 말을 되풀이 하며 용감하게 시청각실로 향하는 내 뒤를 따라왔다.


계단에서 밀어 버릴까.

 

아니면 미애의 뒷 통수를 붙들고 지하 계단 아래로 뛰어 볼까...


내 곁에서 둘 사이의 어색함을 없애보려고 쉴새없이 재잘대는 그녀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가슴 벅찬 그림을 그려봤다.

 

어찌나 가슴이 설레고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가던지 사레가 들어 기침이 날 정도였다.

 


 

굴러 떨어지면 그냥 골절상 뿐 일거야...

 

아니야...운이 좋으면 쉽게 죽을 수도 있을지도 몰라...

뒤에서 목을 조르는 것은?...아니야..너무 흔해...흔적이 남잖아...

 

가장 좋은 것은 사고야...사고...후훗...사고라...맘에 든다....


 

"왜 그래?"  

 

"응?"
초조하면서도 벅찬 느낌에 손톱을 물어 뜯었던 모양이다.


이런...

 

손끝에서 피가 흘렀다.

 

유난히도 주홍빛을 띠는 피 때문인지 갑자기 마음이 바뀐 미애가 시청각 실엔 다음에 가자는 말을 꺼냈다.


"그래? 다음에 갈까? 난 미애 네가 유난 떨 길래 급한 자룐 줄 알았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내가 먼저 너스레를 떨며 발을 뺐다.


"엉? 으응...급하기는 해...근데 너 피나잖아..."

 

평상시의 미애와는 다르게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그녀의 표정이 이젠 가증스럽다.


 

"하핫!! 이 정도론 안 죽지...."

괜한 너스레를 떨어 미애를 안심시켰다.


"그럼...미안하니까 나 혼자 다녀올게..."

내가 이렇게 웃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물쭈물 망설이는 태도다.


"시청각 실은 무섭다며?"

대답을 재촉하는 내 말에 미애는 그래도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럼 난 강의실 옆 화장실에서 기다리겠노라고 말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덜어 준 다음 먼저 자릴 벗어나 건물 모퉁이에 재빨리 숨어 미애를 지켜봤다.

 

우산은 이미 미애가 가지고 가버렸으니 비가 들치지 않는 건물 벽에 붙어 서 있어야만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거짓말 조금 더 보태자면 눈이 빠지도록 미애가 시청각 실이 있는 건물 안으로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1...2...3...4...........29...30..."

 

수를 어느 정도 센 다음 그녀의 뒤를 따라 뛰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뒤에서 뛰쳐나오는 사람 이랬던가...?"

 


미애가 예전에 했었던 말을 중얼거리며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니 지하로 통하는 문 옆엔 밀걸레와 비가 새는 곳 아래에 놓아두어 빗물이 가득 찬 플라스틱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우선은 양동이에 가득 고인 빗물을 계단 아래로 쏟아 부었다.

 

혹시라도 날 제치고 도망칠까봐 미리 손을 쓴거였다.
 
날 발견한 미애가 도망치려 뛰다 보면 그녀가 신고 있는 낡은 샌들의 옆 끈이 물기 때문에 벗겨지게 될 거라는 계산을 해서 마구 쏟아 부은거였다.

 

하지만 야무지게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에 물 흐르는 소리가 묻혀 이게 빗소린지 물 흐르는 소린지 나조차도 분간이 안됐다.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바깥 풍경을 돌아본 다음 조심스레 난간을 붙들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어느 정도 걷다 유난히 어두운 구석에서 미애가 나타나길 숨죽여 기다렸다.


"비가 내리는 게 오늘처럼 싫어져보긴 처음이네...쳇...같이 올 걸 그랬나?"


그녀의 그림자가 나즈막히 투덜대며 시청각실 문밖으로 나왔다.

 

몇 걸음 걷다 잉크 얼룩같은 어둠 속에 몸을 묻고 있는 나를 봤는지 잔뜩 굳은 채로 움직이질 않았다. 

수 초간 그 자세를 유지하던 미애가 슬슬 뒷 걸음질 치더니 냅다 뛰기 시작했다.


"젠장.....눈치 하난 빠르네! "


얼결에 같이 뛰게 된 나는 손을 뻗어 도망치는 그녀의 목덜미를 붙잡아 벽으로 밀어 부쳤다.

 

그녀의 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벽 한쪽 귀퉁이로 고꾸라졌다.


"미안해...내가 잘못했어...헉!..."

 

쉰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다시 한번 그녀의 머리를 붙잡아 망치질을 하듯 벽에 찍었다.

 


쿵.쿵..쿵...쿵..쿵..쿵.

 

내 심장 박동이 빨라진 만큼의 속도로 찍어댔다.

 

 


어두운 복도 끝....

 

경련을 일으키며 몸을 뒤트는 그녀를 뒤로하고 조용히 그곳에서 빠져 나왔다.

 

 

 

[가슴앓이 by 키라라]

 


바깥 역시 어두웠다.

 

아마도 비가 심하게 내리는 탓인 것 같았다.

 

난 내 옷에 피라도 묻었을까봐 자연 세탁을 위해 일부러 빗속을 헤매고 다녔다.

 


얼마 쯤 다녔을까....

 

"수진아, 미애 봤어?"

기숙사 건물 앞에서 룸메이트 수진일 만났다.

 


"아까 같이 갔잖아...근데 너 왜 혼자 비를 맞고 다니니?"

 

자신이 쓰고 있는 우산 속으로 날 이끌면서 물었다.

"화장실에서 기다린다고 빨리 오랬는데 안 와. 기다리다 지쳐서 가보니까 시청각실 문이 잠겼더라."

 


순간적인 거짓말을 해서인지 머릿속에서 빗물과 함께 땀이 흘러내렸다.

여자인 내가 봐도 예쁜 그녀가 어디 아프냐며 젖어서 이마에 붙은 머리칼을 넘겨주었다.

"미애 기다리느라 비를 너무 많이 맞은 것 아니니? 이러다 폐렴이라도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 미애 걔는 왜 자기 일을 너한테까지 미룬다니?"

 

툭툭 내뱉는 수진의 목소리는 다소 신경질적이지만 사고를 친 뒤의 불안한 내 마음을 달래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어이없다는 듯 내가 어깰 들썩거려 보이자 수진은 자신이 가볼 테니 들어가서 쉬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처음엔 그녀 말대로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범죄자는 범행 현장에 다시 가보는 것을 좋아 한댔던가....?


말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시청각 실로 향했다.

 

기분 좋은 수다를 떨며 서로에게 보폭을 맞춰 천천히 걸었다.

거의 다 도착할 무렵, 우린 뭔가 잘못된 느낌에 우산을 버려 둔 채 시청각 실이 있는 건물로 뛰었다.

 

건물 앞엔 근처 막 도착한 듯해 보이는 병원 구급차 한 대가 앵앵대는 소릴 내며 서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입구 주위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수진이가 나보다도 먼저 물었다.

 

"저기...그게 말이야..."

 

우물쭈물 망설이는 과 친구가 내 팔을 붙들었다.


"미애 봤어?"

 

잠시 내가 저지른 일을 잊은 채로 물었다.


"들어 가지마"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과 대표가 걸어 나오며 말했다.

 


손이 떨려오고 숨이 막혔다.

 

과 대표와 다른 과 친구는 내가 겁을 먹은 것으로 생각했던지 어깨를 붙들고 놔주질 않았다.


 
"오빠...무슨 일인데요?"

 

멍한 눈으로 돌아 본 수진의 얼굴이 빨갛다.

 

알 수 없는 불안함에 혈액순환이 빨라진 모양이다.


 

"저기...미애가...말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시트에 쌓인 무언가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


"이봐 잠깐만!!"

 

그들의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그 쪽으로 뛰어갔다.

 

사람들이 말리려고 했지만 내 손이 먼저 시트를 걷어챘다.
 

이런!

 

시트 속 인물을 확인 한 순간 뒤통수가 비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들것에 실려 나온 그녀는 미애가 아니라 우리 과 후배 지연이었다.
지연의 머린 심하게 깨져 있었고, 얼굴은 이미지 상으로만 확인이 될 뿐 눈 코의 형체가 거의 뭉그러져 있었다.

 

그게...너...였...냐....?

 

뭉개진 지연의 얼굴이 점점 더 크게 부각되어 보이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손발의 힘이 모두 빠지는가 싶더니 다른 사람들의 외침을 뒤로 하고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가슴앓이 by 키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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